[이건희칼럼] ‘세계 2위 부호’ 된 중졸 흙수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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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고 부자는 누구일까. 많은 사람이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 버크셔해서웨이 회장 워런 버핏을 떠올릴 것이다. 포브스가 발표한 2016년 전세계 부자 순위에 따르면 빌 게이츠가 재산 750억달러로 3년 연속 세계 최고 부자 1위에 올랐고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은 608억달러로 3위를 차지했다.

이쯤 되면 워런 버핏을 앞지른 세계 2위 부호가 궁금해진다. 670억달러의 재산을 보유한 스페인의 아만시오 오르테가가 그 주인공이다. 지난해 4위에서 2계단 올라섰다. 빌 게이츠, 워런 버핏에 필적하는 천문학적 재산을 소유한 아만시오 오르테가는 전세계에서 패스트패션을 주도한 자라(ZARA)의 창립자이며 자라의 모기업은 마드리드 증권거래소에서 시가총액 1위인 인디텍스다.

인디텍스 주가는 2008년 7월4일 5.50유로였으나 올 7월4일 현재 30.01유로로 450%나 상승했다. 같은 기간 빌 게이츠의 마이크로소프트 주가는 97% 올랐다. 지난해엔 유로 주식가격의 변동으로 10월23일 오전 일시적이지만 오르테가 회장이 빌 게이츠를 누르고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인디텍스는 스페인의 갈리시아지방 라코루냐주 아르테익소에 본사를 두고 전세계에서 7000여개의 매장을 운영 중이다. 임직원은 12만명이 넘는다. 자라를 비롯해 자라홈과 스트라디바리우스 등 7개 브랜드를 소유한 인디텍스의 2014년 순이익은 25억유로에 달했다.

지난해에는 순이익이 더욱 늘어 28억8000만유로(31억7000만달러)를 기록했다. 올 1분기 순이익은 5억5400만유로로 전년 동기 대비 6.3% 증가했으며 매출은 48억8000만유로로 12% 성장했다.

지난해 전세계에 330여개 매장을 신규 오픈했으며 올해도 15억유로를 투자해 베트남과 뉴질랜드 등 5개 시장에 새로 진출한다. 남유럽 재정위기로 경제가 어려울 때에도 인디텍스는 매장수를 확대해 글로벌 최대의류유통업체가 됐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은 “스페인의 유일한 안전자산은 ‘자라’”라고 평가했다.

루이비통의 패션디렉터 다니엘 피에트도 “자라는 세계에서 가장 혁신적이고 압도적인 유통회사”라고 말할 정도로 패션업계의 패러다임을 주도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사진=머니위크DB
/사진=머니위크DB

◆흙수저에서 다이아몬드수저로

전세계 2위 부자, 패션계 1위 부자인 오르테가 회장은 ‘금수저’를 뛰어넘어 ‘다이아몬드수저’이지만 출신은 전형적인 ‘흙수저’다. 오르테가는 1936년 스페인 중북부 레온의 가난한 철도원 집안에서 태어났다. 북서쪽 갈리시아지방의 소도시 라코루냐로 이주해 성장하다 13세 때 중학교를 자퇴하고 일을 해야 했다. 당시 셔츠가게의 무급 견습직원으로 일을 했던 그는 26세에 라코루냐에서 약혼녀와 함께 자신의 옷가게를 처음 열었다.

가게 이름은 ‘고아 콘펙시오네스’였다. 고아(Goa)는 그의 풀 네임(Amancio Ortega Gaona)의 앞글자를 뒤부터 읽은 것이며 콘벡시오네스(Confecciones)는 스페인어로 제조한다는 뜻이다.

그는 원단 구매와 옷 제작 및 판매과정에 많은 중개상이 개입돼 제작기간이 길어지고 비용이 비싸지는 점을 파악하고 직접 발로 뛰며 여러 일을 해냈다. 패션의 메카 파리에서 열리는 패션쇼에 직접 가서 최신트렌드를 조사하고 거기에서 얻은 아이디어로 합리적인 가격대의 디자인을 직접 완성했다.

또 그는 바르셀로나 원단공장을 찾아가 원하는 직물을 구했다. 유행에 부합하면서도 저렴한 가격의 상품을 다양하게 내놓자 오르테가의 옷 가게는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오르테가는 1975년(39세) 가게 간판을 ‘자라’로 바꿨다. 원래는 영화 <희랍인 조르바>(Zorba the Greek)에 매료돼 ‘조르바’(Zorba)로 정했으나 근처 술집에서 같은 이름을 사용 중이어서 이미 돈 들여 만든 주형 글자 중 3개를 재활용해 자라(Zara)로 했다는 일화가 있다.

자라브랜드를 사용하며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해 1979년 매장이 6개로 늘었다. 1988년부터는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미국, 프랑스, 멕시코, 그리스, 벨기에, 스웨덴 등 해외시장을 개척했다. 한국에는 2008년 명동에 최초로 매장을 냈으며 현재 100개 가까운 나라에 진출한 상태다.

초창기 옷가게를 운영하며 얻은 체험은 훗날 그의 패션사업 핵심전략인 패스트패션에 활용됐다. 패스트패션은 주문하면 즉시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와 같은 옷이라는 의미로 현재 유행하는 스타일을 한철 잘 입고 미련 없이 버려도 아깝지 않을 만큼 부담 없는 가격으로 공급하는 것을 말한다.

옷이 낡아서 버리는 것이 아니라 유행이 지났기 때문에 버리는 시대의 흐름을 미리 읽은 것이다. 패스트패션은 SPA(Specialty store retailer of Private label Apparel)로도 불린다. 자라는 유통단계를 대거 줄이고 기획과 디자인부터 생산, 유통, 판매공정까지 일원화해 직접 관리하는 오늘날 SPA의 모태가 됐다. 그 뒤를 잇는 H&M, 유니클로, 갭 등이 대표적인 SPA브랜드다.

◆인디텍스 성공비결은 혁신

인디텍스는 광고를 옷값을 부풀리는 존재로 여긴다. 따라서 마케팅비용이 총비용의 0.5%를 넘지 않도록 한다. 또 다품종 소량 생산 형태이므로 재고부담이 없으며 아무리 인기를 끈 완판제품이라 하더라도 추가로 생산하지 않는다.

전세계 자라 매장에서 잘 팔리는 상품과 안 팔리는 상품을 파악하고 곧바로 제품생산에 반영해 다른 브랜드에 비해 2~3배 많은 종류의 상품을 매 시즌 출시한다. 며칠간 안 팔리면 즉각 공급을 중단하고 매장에서 철수시킨다. 아무리 잘 팔려도 4주 이상 진열하지 않아 매장 의류의 70%가 평균 2주에 한번씩 교체된다.

자라 애호가들의 매장 방문횟수는 연평균 17회에 달한다. 신선하고 새로운 유행의 다양한 상품을 매장에서 언제나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오르테가는 어촌에서 자란 배경으로 “옷장사는 생선장사와 같다. 유행이 지난 옷은 어제 잡은 생선처럼 신선도가 떨어진다”고 말했다.

또 인디텍스는 외주업체를 거치는 시간을 줄여 세계 각국 매장까지 배송하는 기간을 2주일로 단축했다. 시즌 중간에 새로운 유행이 부상하면 다지인팀은 새로운 트렌드를 적용한 제품을 3주안에 매장에 출시할 수 있다. 의류의 절반 이상은 스페인, 포르투갈, 모로코 등 가까운 곳에서 생산하므로 아시아에서 주로 제품을 생산하는 라이벌기업에 비해 더 빠르게 제품을 공급할 수 있다.

생산기지가 스페인에서 멀리 떨어질수록 생산인력의 인건비가 낮더라도 물류·배송·재고관리 등의 비용이 늘어나는 점도 고려했다. 최근에는 패스트패션 역시 비싸지더라도 높은 품질을 유지해야 살아남을 수 있기 때문에 유명 디자이너를 대거 영입했다.

오르테가는 마드리드의 43층 초고층빌딩 토레 피카소를 비롯해 뉴욕, 시카고, 보스톤, LA, 샌프란시스코, 런던 등 세계 주요 도시에 빌딩을 소유한 부동산 부자기도 하다. 자산운용사인 폰테 가데아 프라이빗에쿼티를 통해 개인자산을 운용하면서 30억달러가 넘는 배당금으로 유럽과 미국 유망지역의 상업용 부동산을 사들여 뛰어난 투자성과를 거뒀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2014년 말 그의 추정 부동산자산은 7조억원에 이른다. 지난해 말에는 아시아지역 중 최초로 서울의 명동 엠플라자를 4300억원 상당에 인수했다.

자라는 많은 종류의 상품을 진열해야 하기 때문에 일반 의류매장보다 넓은 면적이 필요하다. 오르테가 회장은 큰 매장을 만들기 위해 도심 번화가의 부동산을 구입하는데 이후 부동산가격이 크게 오르면 자산증식 효과도 누린다.

2011년 3월에는 세계 패션의 메카인 뉴욕 5번가 중심부 빌딩을 인디텍스가 3억2400만달러에 사들여 화제를 모았다. 고가의 명품브랜드숍이 즐비한 5번가에 중저가브랜드가 입성했다는 점에서도 관심을 끌었다. 세계 패션업계는 자라의 거침없는 성장세에 놀라고 있다. 이후 뉴욕 부동산경기가 살아나면서 이 빌딩 가격도 높아져 상당한 시세차익이 예상된다.

◆완벽하게 평범한 삶을 살다

오르테가 회장은 은둔형 CEO로 유명하다. 사교모임에 나가지 않고 언론 인터뷰나 공식석상에도 얼굴을 비치지 않는다. 심지어 2011년 스페인 국왕이 초대한 자리에도 불참했고 스페인 총리가 20대 대기업 총수들을 초청했을 때도 가지 않았다.

2011년 경영일선에서 물러날 때는 쪽지 한장으로 퇴임사를 대신했다. 막대한 부와 최고 기업가로서의 명예를 지녔음에도 “완벽하게 평범한 삶을 사는 것”이 그의 인생철학이기 때문이다.

그는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출퇴근하면서 직원들과 소통하고 회사 식당에서 밥을 먹었다. 또 넥타이가 없는 수수한 옷차림으로 축구경기를 관람한다. 그가 길거리를 활보할 때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는 익명으로 살아가는 것을 자신의 자유를 지키는 방법으로 여긴다.

오르테가 회장은 “인디텍스그룹의 성공은 모두의 노력과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말을 자주 한다. 인디텍스가 2001년 공모로 처음 상장할 때 자신의 주식을 직원들에게 나눠줬고 2007년 페루지진 시에는 희생자를 지원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중학교를 중퇴하고 지방 소도시의 옷가게 보조직원으로 시작해 세계적인 부호, 세계적인 기업가로 성장했다. 자수성가형 부자가 많음은 금수저·흙수저 논란에 절망하는 젊은이에게 희망을 준다.

오르테가 회장이 평소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노력하고 헌신하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 나도 그중 한사람일 뿐이다.”

☞ 본 기사는 <머니위크>(www.moneyweek.co.kr) 제44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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