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구례의 '속살'을 아시나요

송세진의 On the Road – 구례 천은사·쌍산재·봉성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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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하면 화엄사, 운조루, 지리산을 꼽는다. 그렇지만 화엄사 대신 천은사, 운조루 근처 쌍산재, 지리산을 보는 봉성산이 있다. 유명 여행지보다 한가하고 여유로워 발견하는 재미가 있는 곳, 구례의 숨겨진 여행지로 떠나본다. 

봉성산 전망.
봉성산 전망.

◆맑은 물 흐르는 천은사 

주차장에 차를 대면 바로 일주문이다. 이상하게 이곳은 일주문보다 옆으로 난 길이 더 인기다. 그래도 지나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일주문에 걸린 ‘지리산 천은사’라는 현판이다. 이 글씨는 창건부터 전설까지 이어지는 길고 긴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천은사는 통일신라시대 흥덕왕 3년(828년)에 덕운선사와 인도에서 온 승려 ‘스루’가 창건한 절이다. 처음 절을 지었을 때는 경내에 이슬처럼 맑고 찬 샘이 있어 이름을 ‘감로사’라 지었다. 이후 875년 보조선사가 이곳에 주석하면서 증축했고, 고려 충렬왕 때에는 ‘남방 제일 사찰’로 승격됐다. 조선 광해군 2년 (1610년)에는 혜정대사가 증수하고 숙종 5년(1679년)에는 단유대사가 복원했다. 영조대에 화재로 소실됐다가 1775년 다시 혜암이 복원했다. 

이렇게 중수와 복원이 많았던 천은사에는 구렁이 전설이 있다. 임진왜란 후 중건할 때 샘에서 큰 구렁이가 나와 이를 죽였더니 더 이상 샘에서 물이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감로사’라는 이름을 가질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이때 이름을 지금의 ‘천은사’로 바꿨는데 그 뜻은 ‘샘이 숨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그 이후 화재가 자주 발생하고 갖은 재앙이 일어났다는 것. 사람들은 그 원인이 샘에 사는 구렁이를 죽였기 때문이라 생각했다. 당시 조선의 4대 명필 중 하나였던 이광사가 천은사 소식을 듣고는 물 흐르는 듯한 서체로 ‘지리산 천은사’라 써 주었다고 한다. 이를 일주문 현판으로 걸었고 이후 재앙이 그쳤다고 한다. 

일주문을 지나 경내로 향한다. 녹음이 절정에 이른 계절, 우거진 나무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에 땀이 나지만 한번씩 반가운 바람도 불어온다. ‘곧 가을이겠구나!’ 하는 사이 냇가에 이른다. 바로 그 전설의 감로수가 이곳에 들었겠다. 

계곡을 건널 때 만나는 누각은 천은사를 특별하게 만드는 ‘수홍루’다. 전면에서 바라보는 수홍루는 다리 위에 있어 보다 높게 느껴진다. 그 위로 쑥 자란 나무와 돌다리, 난간이 어우러져 다른 사찰에서는 보지 못한 독특하고 멋스러운 풍경을 연출한다. 다리를 지나 다른 각도에서 수홍루를 보면 또 다른 이미지가 느껴진다. 역광을 받아 흑백사진처럼 보이는 수홍루와 다리의 아웃라인은 약간 쓸쓸하면서도 위엄이 있다. 

그러나 이도 잠시, 수홍루 아래 쪽 계곡은 이 지역 사람들이 와서 즐기는 한여름의 피서지다. 물이 많을 때는 아이들이 몰려와 까륵까륵 신나게 ‘감로수’를 즐긴다. 수홍루 아래로 다리를 지나면 커다란 물확에 ‘감로천’(甘露泉)이라 쓰여있다. 마침 목도 마르고 오늘의 천은사가 있게 한 물이니 여행자 또한 감로수를 즐겨본다. 

천은사는 앞서 소개한 것처럼 중건과 복원을 반복했다. 따라서 오래된 절이긴 하지만 천년 고찰의 느낌이 덜하다. 화엄사를 보고 왔다면 규모도 소박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오래된 돌계단과 검게 그을린 공양간의 서까래, 이끼 낀 돌담과 사찰을 포근하게 감싼 지리산이 고즈넉한 사찰의 아름다움을 충분히 전한다. 

천은사.
봉성산 전망.
쌍산재.
봉성산 전망.

◆빨려드는 매력의 쌍산재 

쌍산재는 입구부터 고택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보통 고택이라 하면 솟을대문 뒤로 보이는 위풍당당한 사랑채로 가문의 세를 자랑하는데, 이 집은 그저 낡고 오래된 느낌뿐이다. 그런데 안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예상치 못했던 풍경을 만난다. 

정문을 지나 몇 발자국 걷고 오른쪽으로 돌면 건너편에 바로 장독대가 보이면서 안채가 이어진다. 안채와 사선으로 바라보는 건물이 사랑채, 그러니까 방금 전 오른쪽으로 돌자마자 만난 건물이다. 사랑채에서 바깥 아궁이를 지나 건너채가 있고 안채 옆으로는 사당도 있다. 

이게 끝인가? 사랑채, 안채, 바깥채까지 옹기종기 모였으니 다른 고택에 비하면 규모가 작다. ‘그리 부유한 형편도 아니었던 것 같은데’ 라고 생각하면 쌍산재를 반도 보지 못한 것이다. 

정문에서 정면으로 이어지는 작은 숲길이 실마리다. ‘대문 안에 무슨 대나무 숲이 있나’ 생각하겠지만 이 집에는 있다. 담장 안에 있다고 하기에는 가파른 오르막이다. 작은 숲길을 오르며 왼편으로 보이는 것이 별채, 그렇게 몇분 오르다 보면 정자를 지나고 언덕 위로 잔디밭이 펼쳐져 있다. 앞에서 봤던 사랑채, 안채와는 다른 느낌, 또 다른 공간이 펼쳐진다. 

이곳에서 작은 밭을 일구고 차도 키운다. 서당채와 경암당이 있고, 왼쪽으로 영벽문을 지나면 낚시터가 있다. 이 모든 것이 쌍산재 정문으로 들어와 만난 풍경이다. 대문 안에 숲도 있고, 밭도 있고, 문을 열면 저수지도 있으니 작은 마을이 아닐까 싶다. 

쌍산재는 조선시대 학자 집안이다. 고조부의 호 ‘쌍산’이 집의 이름이 됐고 지역에서 유력한 집안이었던 만큼 마을 사람들에게 베풀며 살아왔다. 안채의 뒤주는 종손의 자랑이다. 과거 춘궁기가 있던 시절 봄에는 보리, 가을에는 쌀을 채워 두고 식량이 부족한 이웃이 필요한 만큼 가져가게 하고 나중에 이곳에 다시 채워 넣도록 했다. 이자는 받지 않았고 채워진 곡식을 그 이듬해 같은 방법으로 사용했던 나눔의 뒤주다. 종손은 일제 강점기에도 창씨개명을 하지 않았던 선조를 자랑으로 여기며 이 큰 집을 묵묵히 관리하고 있다. 

쌍산재 앞에는 당몰샘이 있다. 이것은 고려시대 이전부터 있었던 샘으로 한때는 꽤 이름을 날렸다. 이 지역이 1980년대에 전국 최장수마을로 선정된 적이 있는데 이때 당몰샘 또한 전국 최상의 물로 선정됐다. 마을 사람들은 장수마을의 비결이 이 물에 있다고 말한다. 지금도 녹차 물로 쓰기 위해 물통을 가져 오는 사람이 있고, 7년 가뭄, 석달 장마에도 물의 양이 일정하다고 한다. 이 물을 마시면 80세까지 장수한다는데, 요즘은 100시대이니 새로운 슬로건이 필요해 보인다. 어쨌든 문 앞에 당몰샘과 연지까지 있는 쌍산재는 제대로 된 고택체험을 원하는 여행자에게 딱 맞는 장소다.  
 
봉성산.
봉성산 전망.

◆지리산을 마주하는 봉성산

봉성산은 구례읍 사람들이 ‘봉산’이란 부르는 뒷산이다. 구례 버스터미널을 이용할 여행자라면 산보 삼아 올라보길 추천한다. 오르는 길도 쉽고, 넉넉히 20분이면 전망대에 도착한다. 구례에서는 이곳을 봉성산공원으로 조성해 중간중간 운동기구를 설치했고 길도 편하게 정리했다. 

봉성루가 보이면 전망대 도착이다. 이곳에선 구례읍과 섬진강이 시원하게 내려다 보인다. 건너편에 보이는 것이 지리산, 오른쪽으로는 사성암이 있는 오산이다. 육안으로 화엄사와 노고단도 확인할 수 있다. 노력에 비해 풍경이 과하다. 구례 여행의 마지막으로 정하기 좋은 장소다. 이 광대한 파노라마를 눈에 담고 집으로 향한다. 


[여행 정보]

구례 천은사 가는 법
호남고속도로 – 익산포항고속도로 – 순천완주고속도로 – 용방교차로에서 ‘구례, 지리산 국립공원’ 방면으로 우측방향 – 용방삼거리에서 ‘천은사, 광의, 용방’ 방면으로 우측방향 – 용방삼거리에서 ‘천은사, 광의’ 방면으로 좌회전 – 선월길 – ‘노고단, 천은사, 구례군청’ 방면으로 우회전 – 구만제로 – ‘노고단, 천은사’ 방면으로 좌회전 – 광의초교길 – ‘천은사’ 방면으로 좌회전 

[대중교통]
구례공영버스터미널 – 터미널에서 (구례-노고단) 농어촌버스 탑승 – 천은사 정류장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천은사: 검색어 ‘천은사’ / 전라남도 구례군 광의면 방광리 70번지 
쌍산재: 검색어 ‘쌍산재’ / 전라남도 구례군 마산면 장수길 3-2 
봉성산: 검색어 ‘봉성산공원’ / 전라남도 구례군 구례읍 봉동리 

천은사
종무소(템플스테이 등 문의): 061-781-4800
문화재보존료: 1500원 (주차장 입구에서 징수) 

쌍산재
문의: 010-3635-7115   
http://www.ssangsanje.com
고택체험으로 숙소를 이용할 수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송세진 여행 칼럼니스트
송세진 여행 칼럼니스트 esjung@mt.co.kr

<머니S> 산업부장 정의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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