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비오 신부 장례미사, 2000명 운집 "그의 삶 등불로"… '임을위한행진곡' 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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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비오 신부 장례미사. 23일 오후 광주 임동성당에서 조철현 비오(몬시뇰) 신부 장례미사가 열려 운구행렬이 영정을 따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비오 신부 장례미사. 23일 오후 광주 임동성당에서 조철현 비오(몬시뇰) 신부 장례미사가 열려 운구행렬이 영정을 따르고 있다. /사진=뉴시스

조비오 신부 장례미사가 거행됐다. 지난 21일 선종한 조비오 신부의 장례미시가 오늘(23일) 광주 북구 임동성당에서 집전됐다.

이날 조비오 신부 장례미사가 열린 임동성당에는 추모를 위해 모인 이들로 북적였다. 성당에 모인 2000여명은 성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를 부르며 고인을 추모했다. 이어 김희중 대주교의 주례와 정규완 신부 강론으로 장례미사 순서가 이어졌다.

정규완 신부는 강론에서 5·18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뒤 옥고를 치르면서도 민주화·통일 운동에 평생을 바친 조철현 비오 신부의 삶을 기렸다. 이어 추모사를 맡은 남재희 신부는 조비오 신부에 대해 "광주 시민이 공수부대에 의해 참혹하게 학살된 1980년 5·18 광주항쟁 현장에서도 양심적인 증인으로서, 맨 몸으로 학살에 맞섰다. 그는 정의와 화합 측면에서도 모범을 보였다. 그의 삶을 등불로 삼자"고 말했다.

장례미사가 끝난 뒤 고인의 영정을 앞세운 운구 차량은 광주 동구 5·18 민주광장으로 향했다. 오월단체 어머니들은 민주광장에서 흰 소복을 입고 운구 행렬을 맞이한 뒤 노제를 지냈다. 현장에서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 제창됐다. 고인은 평소 착용했던 장백의, 영대, 띠, 백색 제의를 입은 채로 전남 담양군 천주교 공원묘원에 안장된다.

조비오 신부는 1937년 4월1일 광주 광산구 본량면 출생으로 1969년 12월1일 사제 서품을 받았다. 이후 광주살레시오여고 지도신부(1971년), 레지오 마리애 광주 세나뚜스 지도신부(1977년) 등을 역임하며 사제의 길을 걸어왔다.

특히 조비오 신부는 사제 신분으로 1980년 5월 벌어진 광주항쟁에 가담하는 등 평생 민주화운동에 투신하는 삶을 살았다. 당시 시민수습위원으로 활동했던 조 신부는 신군부에 체포돼 고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조 신부는 이후 5·18기념재단 초대 이사장, 조선대 학교법인 이사장, 소화자매원 이사장과 광주·전남 우리민족서로돕기운동 상임대표, 아리랑 국제평화재단 이사장 등을 거치며 민주화·평화 운동에 꾸준히 참여했다.
 

장영락
장영락 ped19@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S 온라인팀 장영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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