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리포트] '머우치중'은 다시 설까

원종태 특파원의 China Repo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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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대 초중반 중국 경제가 개혁·개방 열기로 달아오를 때 '콩쇼우타오바이랑'(空手套白狼)이라는 신조어가 유행했다. 빈손으로 흰 늑대에게 올가미를 씌운다는 뜻이다.

자신은 투자하지 않고 다른 사람이 투자하도록 한 뒤 거기서 나온 이득을 공동으로 나눠 갖거나 아예 자신이 독점하는 것을 말한다.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채 늑대를 시켜 이익을 챙기는 이런 비범한 능력은 특히 사업가라면 누구나 탐낼 법하다.

지난달 27일 일출이 막 끝난 이른 아침. 허베이성의 악명 높은 홍산형무소 문이 열리고 76세 노인이 쏟아지는 햇살을 받으며 세상 밖으로 나왔다. 1995년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최대 부호, 난더그룹 머우치중 전 회장이다. 한때 중국 민간 기업가 1호로 명성을 날렸던 그였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중국 최대 부호 vs 희대의 사기꾼

한 때 그는 추종을 불허하는 콩쇼우타오바이랑 능력으로 중국 경제 성장의 상징으로 통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는 희대의 사기꾼이라는 악평도 들어야 했다. 황당무계한 말로 듣는 사람의 혼을 빼놓기 때문이다. 한 때 중국을 뒤흔드는 부호이자 기업가로 이름을 떨쳤지만 감옥 밖에서 그를 기다리던 사람은 법적 대리인인 샤종웨이가 유일했다.

도대체 16년 전 그에게 어떤 일이 있었던 걸까. 그는 왜 중국 최대 부호에서 16년 수감자로 전락해야 했을까. 시계를 더 앞으로 돌려 1989년으로 가보자. 1989년 쓰촨성 동부의 완셴을 출발한 기차는 베이징을 향해 달리고 있었다. 1984년 창업한 머우 회장도 죽공예품 판로 개척을 위해 이 기차에 타고 있었다. 대륙을 서남에서 북동으로 가로지르는 멀고 먼 여행길에 머우 회장은 운명적으로 화남인(황하 이남의 중국인) 남성 한 명과 친해진다. 머우 회장은 그로부터 소련이 해체 위기에 직면했고,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TU-154라는 대형 여객기를 팔려 한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살 사람이 마땅치 않다는 소식도 함께 듣게 된다. 순간 머우 회장은 직감적으로 '내가 이 여객기를 사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다.

베이징의 외곽에 방을 마련한 머우 회장은 죽공예품 판로 개척 따위에는 관심도 없게 됐다. 어떻게 하면 이 여객기를 손에 넣을까 궁리만 하게 된다. 그러나 당시 TU-154 여객기는 대당 5000만~6000만 위안에 달했다. 일개 자영업자인 그의 재력으로는 여객기 구입은 터무니 없는 거래였다.

◆통조림과 러시아 여객기를 맞바꾼 사나이

그러나 머우 회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어느날 머우 회장은 1988년 창립한 쓰촨항공에서 여객기 구입 계획이 있다는 정보를 얻는다. 그리고 당시 이 여객기를 매각하려는 러시아가 생필품이 크게 부족하다는 사실도 알게 된다. 머우 회장은 쓰촨항공이 생필품을 구입해 TU-154 여객기와 맞바꾸는 방식으로 거래가 가능할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러시아의 반응은 예상보다 더 호의적이었다.

머우 회장은 자신감을 갖고 꾀를 더 냈다. 자신이 확보한 생필품을 쓰촨항공이 사주고, 이를 다시 러시아 쪽에 넘기도록 한 것이다. 이렇게 산둥성과 허베이성, 허난성, 충칭시, 쓰촨성 등 7개 지역을 돌며 신발과 양말, 통조림 같은 생필품을 화물 트럭 500대에 가득 실었다. TU-154 여객기 1대 값인 4억2000만 스위스 프랑 어치다.

머우 회장은 이 생필품들을 4년에 걸쳐 4대의 TU-154 여객기와 보란 듯이 맞바꿨다. 이제껏 중국 기업이 해외 기업과 한 단일 거래 중 가장 큰 규모라는 이야기까지 들렸다.

머우 회장은 이 한번의 거래로 1억위안이 넘는 돈을 거머쥔 것으로 알려졌다. 통조림과 비행기를 맞바꾼 이 초유의 물물교환은 ‘머우치중 식 경영’이라는 신조어까지 낳았다. 이 여객기 4대는 이후 쓰촨항공을 일으켜 세우는 중요 기초자산이 됐다. 머우 회장의 이 거래는 당시 중국 국가계획위원회와 민항총국으로부터 엄연히 허가를 받아 이뤄졌다. 흰 늑대에게 올가미를 씌운 거래였지만 머우 회장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난 적은 없었다.

◆인공위성 사업, 내륙의 홍콩 개발… 튀는 아이디어

1993년 머우 회장은 또 한번 사고(?)를 친다. 당시 머우 회장은 내몽고 만저우리 시정부와 합작 계약을 맺고 국제고속도로와 항구를 짓는 1억3800만위안 투자를 약속한다. 머우 회장은 만저우리를 내륙의 홍콩처럼 개발하겠다는 복안이었다. 만저우리는 러시아는 물론 몽골과도 국경이 맞닿아 있는 천혜의 도시였다. 후룬호라는 거대 호수가 있어 뱃길로도 몽골과 연결할 수 있다.

당시 머우 회장은 만저우리 시정부로부터 전폭적인 지지를 약속받고 10㎢의 토지도 싼 값에 넘겨 받았다. 그러나 중국의 홍콩을 만들겠다는 꿈은 1998년 3월 갑작스레 중단됐다. 만저우리 시정부가 난더그룹에 제공했던 토지를 모두 회수한 것이다.

같은 해 11월 우여곡절 끝에 만저우리 국제고속도로와 항구도 완공됐다. 그러나 이 사업의 핵심 투자자인 머우 회장은 해당 행사에 얼굴도 내밀지 못했다. 당시 상황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만저우리 시정부가 머우 회장 프로젝트가 지나치게 막대한 예산이 소요되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았다는 설도 있고, 중앙 정부에서 머우 회장을 멀리하라는 압력이 있었을 것이라는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머우 회장의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는 꺾이지 않는다. 1996년 2월 머우 회장은 또 한번 당시로서는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한 사업에 나선다.

러시아와 영국의 위성기업들과 협약을 맺고 민간 위성을 운영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이에 앞서 머우 회장은 러시아가 폐기 예정이었던 대륙간 탄도미사일 SS19를 활용해 1993년과 1994년 항샹 1·2호 위성 발사에 성공한다.

당시 러시아는 미국과 전략병기 감축조약 일환으로 SS19를 없애기로 했는데 이를 활용한 위성은 로켓 위성보다 비용을 30% 정도 줄일 수 있었다. 머우 회장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업으로 만든 것이다.

머우 회장은 대만의 한 TV와 위성 임대 계약을 맺으며 5년간 575만 달러의 순이익이 가능하다는 평가도 받았다. 그러나 이 위성 사업도 당시 복잡한 중국 안팎의 정세 때문에 끝내 머우 회장은 손을 떼야 했다.

◆신용장 사기로 16년 수감 후 만기 출소

위성사업과 만저우리 개발이 본 궤도에 오르지 못하며 머우 회장을 바라보는 시선도 갈수록 차가워졌다. 특히 1997년~1998년 아시아 외환위기가 터지자 중국 외환 시장은 극도로 예민해졌다. 외환 정책도 개혁·개방이후 처음 맞는 대혼란에 어쩔 줄을 몰랐다.

러시아 등 해외 국가들과 종횡무진 거래를 하던 머우 회장의 난더그룹도 심각한 자금난에 처했다. 급기야 1999년 1월 신용장(LC)을 위조해 중국은행으로부터 7500만 달러(830억원)를 불법대출 받았다는 혐의로 머우 회장은 출근길에 체포당한다.

그는 공안 조사 과정에서 두 아들을 포함한 가족들을 먼저 미국으로 보냈고, 그 과정에서 거액을 돈세탁해 달러로 빼돌린 사실도 드러났다. 은행 대출을 더 받기 위해 영문판 뉴스레터를 발행해 자신의 자수성가 배경과 사업가로서의 능력을 과대 홍보했다는 혐의도 받았다.

머우 회장은 2000년 초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다. 하지만 복역 중 수차례 감형이 이뤄지며 16년을 복역한 뒤 이번에 만기 출소했다.

이제 중국 경제계의 시선은 중국 ‘최대 부호’와 ‘희대 사기꾼’이라는 엇갈린 평가를 받는 머우 회장이 과연 재기에 성공할 수 있느냐 여부에 쏠린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어차피 맨손 창업, 재기 노리는 76세의 기업가

그의 법적 대리인인 샤오종웨이는 머우 회장이 출소한 지난달 27일 웨이신과 웨이보 등 중국 SNS를 통해 ‘머우치종 선생의 형 만기 석방에 대한 성명’을 발표했다. 이 성명은 그를 시종일관 난더그룹 총재(회장)로 호칭하고 있다. 성명 자체도 난더그룹 이사회 명의다. 머우 회장이 출소 이후 난더그룹을 다시 부활시킬 것임을 강하게 암시하는 대목이다.

성명은 특히 머우 회장이 이번에 3번째 만기 출소라는 점도 빼놓지 않았다. 머우 회장은 지금까지 3차례 수감되며 무려 23년을 감옥에서 보냈다고도 한다. 머우 회장은 1974년 다른 작가들과 함께 펴낸 책 ‘중국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의 내용 때문에 4년4개월 수감 생활을 했다. 1983년 9월에는 투기로 폭리를 취했다는 혐의로 11개월간 수감되기도 했다. 그가 당시 중국 최고 지도자에게 편지 한 통과 공산당 가입 원서를 보낸 뒤 풀려났다는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신용장 사기죄도 원래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지만 이후 16년으로 감형됐다.

머우 회장은 이른바 ‘난더 프로젝트’로 불리는 경영 활동으로 재기를 노리고 있다. 성명은 머우 회장이 이전에도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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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두 차례나 창업한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 프로젝트가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고 덧붙이기도 했다. 충칭시의 가난한 농민공 출신으로 단돈 300위안(4만9000원)으로 창업에 뛰어든 중국 1세대 기업가 머우치중. 그가 16년 감옥에서의 공백을 딛고 어떤 방식으로 재기할 지 지켜볼 일이다. 그동안 중국도 변해 이제 머우 회장 식 ‘대중창업, 만중창신’ 정신은 중국 최대 경제 정책이 된 지 오래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56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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