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덫 유사수신-르포] 궤변에 넘어가는 노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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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오전 11시 서울 강남역 인근. ‘청담동 주식부자’ 이희진씨(30)를 3년간 추적해 검찰에 수사 의뢰한 금융감독원 불법사금융대응단 박인찬(가명) 반장과 유사수신업체 정보원 임한수씨(가명)를 만났다. 이들은 이날 찾아갈 유사수신업체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동선을 짜는 중이었다.

20여분쯤 지나 임씨의 핸드폰이 울렸다. 유사수신업체 직원으로부터 걸려온 전화였다. 강남역 인근 S빌딩 2층에서 이날 오후 2시에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기자와 박 반장은 바로 해당 장소로 이동했다. 그러나 그곳은 한 패스트푸드점이었고 사무실은 보이지 않았다. 임씨는 “이곳이 접선장소고 사무실은 따로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곳에서 여러차례 통화를 시도했으나 직원은 끝내 전화를 받지 않고 잠적했다. 첫 잠입취재는 실패로 돌아갔다.

◆회사설명 친절히… ‘전문·정당성’ 부여하기도

이날 낮 1시 봉천역 인근 J빌딩으로 이동했다. 임씨는 J빌딩 7층에 유사수신형태의 불법다단계업체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했다고 설명했다. 대로변에 위치한 빌딩인데 신기하게도 층별 안내판이 지상 6층까지만 표기돼 있었다. 엘리베이터도 6층까지만 운행했다. 일행은 6층에서 내려 7층까지 계단으로 올라갔다. 간판 없는 문을 열자 70~80대로 보이는 노인 열댓명이 4개 테이블에 삼삼오오 모여 있고 벽엔 업체를 소개하는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업체 직원으로 보이는 한 노인이 임씨에게 다가왔다. 임씨는 자연스럽게 자신이 어떻게 이곳에 왔는지를 설명했다. 직원은 그제야 안심하며 임씨를 반갑게 맞았다.

임씨와 박 반장, 기자는 사무실 안쪽의 3평 남짓한 방으로 안내받았다. 방안 구석 컴퓨터 두대 앞에 70대 남성 1명과 60세 전후로 보이는 여성 1명이 앉아 있었다. 70대 남성은 자신을 ‘센터장’이라고 소개했다.

이어 80세 전후로 보이는 또 다른 인물 A씨가 테이블 주변에 앉으라고 안내했다. A씨는 미국에 본사가 있다는 이 업체를 ‘F파이낸셜’(가칭)이라고 소개했다. 이 업체는 금융업으로 인식될 수 있는 ‘파이낸셜’을 회사명으로 사용하면 안된다는 유사수신행위 규제에 관한 법률을 어긴 셈이다.

/사진=서대웅 기자
/사진=서대웅 기자

“파이낸셜은 금융이라는 뜻이에요. 본사가 쇼핑몰과 멤버십사업도 하는데 그거(쇼핑몰) 하려면 금융이 따라가야 해요. 멤버십은 유저를 모집하기 위해서고. 페이스북 들어보셨죠? 큰 회사들은 이런 거 다 같이 하거든요.”

쇼핑몰과 멤버십, 페이스북이 어떤 연관성이 있는지 정리가 되지 않았지만 다시 질문하지는 못했다. 또 이곳에 모인 사람 대다수가 노인이라는 점을 악용해 일부러 영어를 섞어 쓰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는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가며 이해하기 힘든 엉뚱한 설명을 계속 이어갔다.

“우리 회장님 이름이 아서 킴(가명)이에요. 아서 킴은 대단한 사람이에요. 원래 한국분인데 서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본사에서 회장을 하고 있어. 나이도 45세야. (F파이낸셜) 한국지사장은 73센데 김풍월씨(가명)라고 하더라고요. 아서 킴이 이분 양아들이에요. 그래서 그런지 우리가 굉장히 가족적인 분위기야. 얼마 전엔 대학교수도 다녀갔어요. 보면 알겠지만 여기 대단한 곳이야.”

말이 안되지만 불법 다단계형태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었다. 명문대학을 졸업한 고학력자가 회사를 설립했고 사회에서 인정받는 인사가 이 업체를 이용하고 있다는 식이다. 한국지사장 김풍월씨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요구하자 “나도 자세히 몰라. 그분이 워낙 바쁘거든”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그럴듯한 보상플랜… 알고 보면 ‘궤변’

보상플랜 설명은 40여분간 이어졌다. 이해하기가 굉장히 어려웠다. 중간중간 질문을 했지만 A씨는 “일단 들어봐라. 다 들으면 이해가 된다”고 말했다. 회사설명 시 ‘파이낸셜’ 등의 용어를 풀이까지 해준 A씨는 보상플랜 설명을 일방적으로 이어갔다. 보상플랜은 얼핏 전문적으로 보였지만 궤변에 불과했다. A씨가 말하는 이 업체의 보상플랜은 다음과 같다.

구좌 1개는 7만원이다. 구좌는 무한대로 개설할 수 있다. 보상은 고객 2명을 소개해야 나온다. 이 두명이 본인을 기준으로 ‘1대’라고 부른다. 이들이 각각 2명씩 소개해오면 그 4명은 ‘2대’가 된다. 이렇게 3대, 4대 등 피라미드형식의 조직이 무한대로 뻗어나간다. ‘추천매칭 수당’은 여기서 나온다. 1대의 구좌에서 10%, 2·3대와 4·5대 구좌에선 각각 8%, 6%를 받는다. 본인의 조직원 구좌가 1000구좌(7200만원)에 이르면 ‘다이아몬드’ 직급이 주어진다. 센터를 차릴 수 있다. 이때 직급수당, 센터비용, 글로벌보너스 등이 추가로 나온다.

이 플랜대로라면 1구좌(7만원)만 개설해도 사람을 소개할 경우 막대한 고수익이 보장된다. 전형적인 유사수신형태다. 이를테면 기자가 1구좌(7만원)를 개설했다. 2명을 소개해 이들로 하여금 각각 10구좌(70만원)씩 넣게 했다. 기자는 바로 14만원(140만원의 10%)을 얻는다. 수익률은 200%다.

문제는 이 플랜이 전형적인 ‘돌려막기’ 구조라는 점이다. 합법적인 다단계금융업에서 제공할 수 있는 최대수익률은 35%다. 또 기자가 받는 14만원은 기자의 1대가 개설한 20구좌(140만원)에서 나온 것뿐이다. 별도의 판매업무도 없다. 소개가 없으면 수익은 없다. 투자자들의 소개가 뜸해지면 업체는 지금껏 받은 돈을 갖고 잠적한다.

A씨의 설명을 듣던 중 몇몇 노인이 방으로 들어와 컴퓨터 앞에 앉아있는 센터장을 통해 구좌를 개설했다. 한 노인은 30구좌(210만원), 또 다른 노인은 25구좌(175만원)를 넣었다. B씨는 “이 업체가 설립된 지 3년이 됐다”며 “회원이 11만명 정도”라고 말했다.

[검은덫 유사수신-르포] 궤변에 넘어가는 노인들

◆당국 인허가 받아도 위법행위 시 ‘유사수신’

같은 날 오후 5시 선릉역 인근. 기자와 박 반장, 정보원 임씨는 한 건물을 찾는 데 30분이나 걸렸다. 임씨가 확보한 업체의 위치는 역 주변의 채소가게 근처 오피스텔이었는데 업체 소개원이 건물명을 말해주지 않아 한참 헤맨 탓이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가장 눈에 띈 것은 천정의 폐쇄회로(CC)TV였다. 앞서 다른 층에 잠시 섰을 때 보지 못한 것이었다. 건물에 달린 CCTV라기엔 굉장히 어색했고 무엇보다 카메라 위치가 업체의 사무실을 향하고 있었다.

이 업체는 ‘엔틱 코인’(Antique Coin)을 이용한 유사수신업체였다. 길게는 200여년 된 주화를 경매장에서 사고팔며 차익금을 노리는 방식이다. 박 반장에 따르면 이 업체가 금감원으로부터 인허가를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인허가를 받았더라도 위법행위를 하는 곳은 유사수신업체로 볼 수 있어서다.

이들이 옛 주화보관소라고 설명한 이곳 자체가 말이 안되는 장소다. 이들의 사업설명에 따르면 미국, 유럽, 홍콩 등지에서 옛 주화를 사온다. 고객이 그 주화를 매입하면 이 업체는 다시 외국으로 건너가 경매를 통해 더 비싼 가격으로 팔아 그 차익을 고객에게 건넨다. 또는 고객이 직접 홍콩으로 가져가 홍콩달러를 현금으로 바꿀 수도 있다. 외환거래법상 해외로 갖고 나갈 수 있는 현금이 1000만원까지지만 주화 하나를 주머니에 넣고 가면 아무도 모른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보통의 경우 고객이 70~80대 노인이어서 주화를 이곳 주화보관소에 보관한다고 말했다.

주화보관소가 어디에 있냐는 기자의 질문에 직원은 유리로 둘러싸인 보관함을 가리켰다. 각종 옛 주화가 놓여 있는 진열대가 보관소라는 것이다. 비싼 경우 수천만원이라는 주화를 이처럼 부실하게 보관한다는 것이 이해되지 않았다. 직원은 기자에게 1930년대 미국 주화를 보여주며 2700만원이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당 주화는 바인더에 허술하게 꽂혀 있었다.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힘든 보관법이다.

이 주화가 진품인지도 분별하기 힘들다. 업체는 미국의 국제화폐등급업체인 PCGS사 웹사이트를 보여주며 주화의 생김새 등을 비교했다. 웹사이트에는 주화의 사진은 물론 지름 3.1cm, 무게 10.5g, 은 70% 등의 정보와 주화의 일련번호가 적혀있다. 직원은 자로 대략 3cm라는 것만 보여줬다. 하지만 웹사이트 상의 주화와 달리 이곳의 주화는 지나치게 하얀색이었다. 박 반장은 “주화는 화학반응을 일으키기 때문에 치약 등 화학약품으로 세척할 수 없다”고 말했다. 새로 제작한 가짜 주화라는 얘기다.

정보원 임씨는 “이런 곳은 보통 소개로 알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노인들에게 이런 곳이 불법인지 아닌지의 여부는 중요하지 않다. 수익이 나는 것만 믿고 찾는 것”이라며 “가족을 소개하는 경우도 다반사”라고 덧붙였다.

박 반장은 “이렇게 찾았다고 해서 섣불리 수사당국에 넘길 수 없다”고 말했다. 이곳이 ‘머리’인지 ‘꼬리’인지 확인해야 하는데 통상 꼬리라는 설명이다. 박 반장은 이어 “연간 100여개 업체를 잡아내지만 국내 유사수신업체의 1%도 안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권의 ‘음지’인 유사수신. 그러나 기자가 이날 찾은 유사수신업체는 시민의 왕래가 잦은 곳에 위치해 있었다. 고객 대부분이 70대 이상 노인층이었으며 대부분 허름한 옷차림이었다. 인터넷에서도 찾기 어려운 이곳 정보를 노인들은 어떻게 알고 찾아왔을까. 투자과정은 비논리적이었지만 노인들은 단지 ‘돈을 번다’는 거짓결과에만 귀를 기울였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1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서대웅
서대웅 mdw1009@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S> 금융팀 서대웅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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