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재시대-하] '아재'라 불리고 '꼰대'로 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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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저씨의 비하 의미로 쓰이던 ‘아재’가 최근 트렌드 키워드로 급부상하고 있다. 썰렁한 개그에 ‘썩소’를 짓던 사람들이 센스 넘치는 ‘아재개그’에 ‘빵’ 터진다. 심지어 아재파탈, 아재슈머 등이 유통가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아재들은 어떻게 ‘폄하’의 대상에서 ‘친숙’의 대명사로 떠올랐을까. <머니S>가 정유년 핫 키워드로 ‘아재’를 선정, 경제와 사회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영향을 끼치는 ‘아재문화’를 분석했다.<편집자주>

최근 불어닥친 ‘아재 열풍’의 주인공은 주로 30대 후반~50대다. 매스미디어가 ‘아재’라고 분류하는 사람들이 모두 이 연령대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재가 지칭하는 상징적인 대상은 지금은 '586'이 된 '386' 세대와 1990년대 대학을 다닌 1970년대생들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아재는 요즘 젊은층에게 ‘꼰대’로 여겨진다. 급격한 성장사회 속에서 자라 젊은 사람들이 호소하는 고통을 알지도 못한 채 ‘노오력 부족’만을 탓하는 기성세대다. 다른 한편으론 젊은이보다 불투명한 미래 속에 사는 사람이기도 하다. 두명의 '아재'를 만나 이들이 살아온 그리고 살아갈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뉴시스 김진아 기자

◆ '꼰대' 되기 무서운 아재들

1968년생 A씨는 국내 한 대기업 영업팀 부장으로 재직 중이다. 그는 매스미디어에서 언급되는 ‘아재열풍’이 자신과는 관계없는 일이라고 여긴다. 이른바 ‘아재개그’를 즐기지만 그리 재미있다고는 생각지 않는다. 젊은 직원들과의 소통은 점점 어렵게 느껴진다. 그는 “조금만 참고 견디면 될 것을 견디지 못한다”고 말한다. 거래처 사람을 대하는 태도부터 하나하나 지적하고 싶지만 꾹 참는다.

물론 젊은 직원들의 자질과 능력을 의심하는 건 아니다. A씨는 현재 자신이 근무하는 회사의 채용과정을 보며 “자신이 현재 취업준비생이었다면 절대 지금의 회사에 입사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A씨는 서울의 한 4년제 대학교 영문과에 87학번으로 입학해 1994년에 졸업했다. 4학년에일 때 학과사무실에서 입사추천서를 받았고 3개 기업에 지원했다. 별도의 필기시험 없이 면접이 진행됐고 2개 기업에 합격했다. A씨는 “현재 다니는 기업에 합격 소식을 듣고는 술을 진탕 마시고 다른 기업 면접을 봤는데 합격해 놀랐다”고 회상했다. 평균 학점이 3점에 미치지 못했지만 면접에서 이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당시에는 학점이 너무 높으면 고리타분한 사람으로 여겨 기업이 꺼려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토익점수, 어학연수 경험도 전무했다. 영문과를 졸업했음에도 영어 한마디 할 줄 몰랐던 자신과 달리 지금은 이공계를 나온 친구들도 실무면접과정에서 영어 인터뷰를 해야 한다. 그는 “과거의 나를 현재로 데려온다면 무엇부터 준비해야 할지 까마득하다”며 “내가 취업할 당시 저 정도로 영어를 할 수 있었다면 우리 회사는 쳐다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뛰어난 스펙을 가진 사원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한숨이 나온다. 업무시간에 주식을 쳐다보기만 하고, 지금 회사에 만족하지 못하고 항상 다른 회사로 옮길 생각만 하는 것 같다. 그러면서 불평은 많다. 외제차 끌고다니면서 월급이 적어 언제 집을 사냐며 투덜거린다. A씨는 “술자리에서 이런 얘기를 하면 ‘아재’가 아닌 ‘꼰대’가 될까봐 꾹 참는다”고 토로했다.

◆ 잘난 아재만 있을까

40·50대 아재들은 20~30여년간 이 시대의 ‘주인공’이었다. 6월 민주항쟁을 주도한 대학생이 보수정치인이 되기까지, 가출청소년의 마음을 노래하던 아이돌 스타가 기획사 사장이 되기까지 정치·경제·문화의 중심에 있던 세대다.

1975년생인 B씨 역시 대기업 부장이다. 입사 당시에는 그리 큰 회사가 아니었지만 몇차례 M&A(인수합병)를 거쳐 국내 내로라하는 그룹의 핵심계열사가 됐고 대우도 눈에 띄게 좋아졌다. B씨 역시 현재 자신이 구직자라면 지금의 회사에 절대 입사하지 못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학점은 3점을 겨우 넘었고 토익점수는 700점대였다. 현재 회사의 입사지원 자격에 겨우 턱걸이하는 수준이다. 대학시절 한 것이라곤 아르바이트와 연애, 약간의 전공공부가 전부다. IMF 외환위기 당시 아버지가 퇴직해 등록금 부담은 컸지만 대학졸업 직후 바로 취직해 가정에 보탬이 됐다.

B씨는 “현재의 20·30대와 비교하면 내가 속한 세대 역시 기회가 많았던 것은 확실하다”며 “서울에 있는 4년제 대학교를 나온 남성의 경우 이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 세대가 전부 자신과 같은 유형이라고 볼 순 없다고 주장했다.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 학업을 포기한 사람의 경우 일자리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은 마찬가지였고 창업 붐에 휩쓸렸다가 평생 빚을 갚으며 살아가는 사람도 많다. 또 여성의 경우 현재보다 불공정한 대우 속에서 사회생활을 하며 어려움을 겪었다.

그는 “매스미디어에 비치는 잘생기고 풍족한 아재들만 있는 것은 아니다”며 “사회로부터 소외받아온 아재와 아줌마가 함께 속한 세대라는 것을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사진=머니S DB

◆내일이 두려운 아재들

하지만 이들 세대가 인생의 절정기로 여겨지는 40·50대에 도달한 순간 위기가 다가왔다. 저성장의 여파는 청년층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성장기 몸집을 불리던 기업들도 다이어트에 여념이 없다. 가장 먼저 내몰리는 것은 ‘부·차장급’ 아재 세대다.

실제로 통계청 ‘가구주 연령별 가구소득 증가추이’에 따르면 가계동향 조사가 시작된 이후 단 한번도 줄지 않았던 40대 가구의 소득이 2016년 3분기 처음으로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경기 악화와 실업 등이 반영된 결과인데 아재 세대의 위기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회사에서 물러난 아재들은 자영업에 도전하지만 쉽지 않다. 통계청의 가구주 연령별 가구당 월평균 가계수지에 따르면 40대 자영업자의 3분기 사업소득이 97만8479원에 그쳤다.

A씨와 B씨 역시 미래가 낙관적이지 않다. A씨는 “젊은 시절엔 뭐라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지만 지금은 회사에서 불안감을 안고 정년까지 버티는 게 인생의 목표가 돼 버렸다”고 말했다.

B씨는 “돌아보면 우리 세대는 기회는 많았지만 노후에 대해 고민할 겨를조차 없이 달려왔던 세대”라며 “다시 이력서를 써야 할 일이 생길 것 같아 두려운 마음이 크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68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최윤신 chldbstls@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S 산업 2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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