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돌에 새긴 고대인과 화랑의 흔적

송세진의 On the Road / 울산 대곡천 암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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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이한 선사시대 그림이 상상력을 자극한다. 제사를 관장하는 족장이 그렸을까. 사냥 능력이 없어 천대 받던 ‘사냥포기자’가 그렸을까. 고래를 잡았다니 여기는 바다였을까. 신라 화랑들은 이곳에서 무엇을 했을까. 고대인의 이야기를 완성하는 건 여행자의 몫이다. 수천년 전 과거로 환상여행을 떠나본다.


[여행] 돌에 새긴 고대인과 화랑의 흔적

◆울산암각화박물관

울산암각화박물관을 하늘에서 보면 커다란 고래다. 고래는 특이한 생명체다. 푸른 바다를 누비며 사는 걸 알지만 일상에서 접하기는 쉽지 않다. ‘고래의 꿈’,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 글 속에서나 가끔 접할 뿐 현실적이지 않은 존재다. 그런데 고대인들은 상상의 동물 같은 고래를 맨손으로 잡았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담은 박물관이 울산암각화박물관이다.

박물관은 반구대 암각화와 천전리각석의 중간 지점에 자리했다. 대곡천 상류와 하류에 있는 두 유적을 합쳐 ‘대곡천 암각화’라 부른다. 박물관에 가면 실물 그대로 묘사된 두개의 바위 그림을 볼 수 있다. 반구대 암각화의 경우 빛의 방향에 따라 잘 보이지 않는 시간이 많지만 이곳에선 코앞에서 그림 하나하나를 짚어가며 자세히 관찰할 수 있다.

 

반구대암각화.
반구대암각화.

반구대 암각화에는 선사시대 조상들이 사냥했던 모든 동물이 등장한다. 너비 약 8m, 높이 약 5m의 돌로 만든 캔버스에 고래, 거북, 물개, 물새, 상어, 물고기 등의 바다 동물과 호랑이, 표범, 멧돼지, 사슴, 늑대, 여우, 너구리 등 20여 종의 육지 동물이 그려져 있다. 뿐만 아니라 배, 작살, 부구, 그물 같은 수렵 어구와 사람의 전신상, 얼굴 등을 포함한 300여점의 그림을 볼 수 있다.

이 중 눈에 띄는 것은 단연 고래다. 새끼를 업고 가는 귀신고래, 물을 뿜는 북방긴수염고래, 혹등고래, 향고래 등 종류도 다양하다. 특히 작살에 맞은 고래 그림과 해체 장면은 사실적으로 그려져서 당시의 고래잡이 교과서를 보는 듯하다. 작살을 사슴 뼈로 제작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고래 해체 부위도 해부도 마냥 자세하다.

이 그림 덕분에 반구대 암각화는 지구상에서 가장 오래된 포경 유적으로 인정받는다. 제작연대는 약 7000~3500년 전 신석기시대다. 이 그림이 발견되면서 청동기시대부터 고래를 잡았다는 이전의 학설이 깨지고 신석기시대에 이미 고래를 사냥한 사실이 입증됐다. 최초의 고래사냥이 한반도에서 이뤄졌다는 사실도 드러났다. 역시 우리 조상님들은 기가 세고 당차다.

이밖에도 박물관에선 우리나라 여러 지역의 암각화를 볼 수 있다. 울산은 물론 여수, 고령, 안동, 경주, 포항 등 다양한 지역에 암각화가 있었다. 그림을 보다 보면 아주 오래전 한반도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이 자연스레 그려진다.

대곡천 암각화를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영상과 다양한 선사시대 유물 및 전시자료, 울산 자연사와 관련된 자료들도 볼 수 있다. 고대인들의 언어를 이해하고 싶다면 해설 프로그램 이용을 추천한다. 설명을 들으며 암각화를 대하면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는 것처럼 빠져들게 될 것이다.


집청정.
집청정.

◆집청정과 반구대팜스테이

울산암각화박물관 옆에는 집청정이라는 300년 된 집이 하나 있다. 반구대 암각화를 처음 발견한 한학자 최경환 선생의 생가다.

‘반구대’하면 암각화가 즉각적으로 떠오르지만 사실 이곳은 예부터 많은 문인과 선비가 모여들던 곳이다. 반구산 줄기와 대곡천이 만나 절경을 이루고 반고서원과 집청정, 반구암이 깊고 푸른 계곡에 고즈넉히 안겨 있다. 포은 정몽주 선생이 다녀갔다 하여 ‘포은대’라 하고 조선의 대표 화가 겸재 정선이 ‘반구’라는 그림을 남겼다.

천전리각석에 신라 화랑과 왕족의 낙서가 남아있는 것만 봐도 이곳이 예부터 명소였음을 알 수 있다. 조선후기부터 구한말까지 284명의 시인이 400여편의 시를 남겼고 집청정은 반구대를 찾는 이들의 사랑방으로 활용됐다고 한다. 선사시대엔 바위에 그림을 그렸고 신라인들은 글씨를 새겼으며 조선의 문인은 시를 남겼으니 이곳에만 오면 기록의 욕구가 샘솟나 보다.

집청정에서는 ‘반구대 팜스테이’라는 체험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암각화를 그렸던 선사시대 사람이 되어보는 프로그램이다. 나무와 짚을 모아 움집을 짓고 불을 피워 음식도 만들어 먹으며 모포 하나를 덮고 잠을 잔다. 너무 힘들지 않을까 싶지만 참여하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석기시대 사람들이 맨손으로 고래 잡는 그림을 보았으니 용기백배 돼 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천전리각석.
천전리각석.
공룡발자국.
공룡발자국.

◆천전리각석과 공룡발자국

박물관에서 20분쯤 걸으면 천전리각석과 공룡발자국이 있다. 바위에 쿵쿵 파인 공룡발자국은 알려주지 않으면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너무나 평범해서다. 오히려 눈에 띄는 것은 평평한 바위다. 단층과 너럭바위가 소풍 오기 딱 좋았을 것 같다. 이래서 신라 화랑과 왕족들이 여기에 자주 왔나 보다. 온 김에 벽에 낙서하고 시를 쓰고 그림을 그렸나 보다.

천전리각석은 1970년 12월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발견된 암각화 유적이다. 반구대 암각화는 그 이듬해 발견됐다. 천전리각석에는 선사시대에서 삼국시대후기까지 다양한 이야기가 담겼다.

윗부분은 청동기시대 벽화로 동물문양과 함께 동심원, 나선형, 마름모 등 추상적인 문양이 반복적으로 새겨져 있다. 해와 땅 등 풍요와 다산을 비는 상징이라는 설명도 있고 종교적 상징으로 보는 해석도 있다.

아래쪽에는 신라시대 화랑의 낙서와 왕의 명문이 새겨져 있다. 이 시대의 그림은 날카로운 금속 도구를 이용했는지 선이 더 가늘고 섬세하다. 말을 끌거나 타는 인물상, 돛을 단 배 등을 찾아 볼 수 있고 한자로 쓴 명문도 있다. 예나 지금이나 유적에 자기 이름 새기는 낙서는 똑같은데 유난히 화랑의 ‘랑’(郞)자가 많다. 신라시대 꽃청년들의 필수 방문코스였나 보다.

바위 중간 아래쪽에는 ‘을사명’과 ‘기미명’이 있다. 이를 통해 신라 왕족이 이곳에 다녀갔음을 알 수 있다. 을사명에는 갈문왕이 다녀갔다고 나온다. 갈문왕은 왕의 동생에게 주어진 직위로 을사년(525년) 6월18일 새벽에 천전리로 놀러와 새긴 것이다. 기미명은 사부지갈문왕의 부인 지몰시혜가 남편이 죽은 후 그리움을 달래러 천전리 계곡에 왔다가 새긴 것이다. 이때 함께 온 어린 아들이 신라 제24대 진흥왕이 된다.

천전리각석은 국보 제147호다. 이 중 을사명은 1988년 울진 봉평리의 신라비가 발견되기 전까지 가장 오래된 신라시대 명문이었다. 놀라운 건 보존상태가 꽤 양호하다는 점이다. 가로 10m, 세로 3m의 커다란 바위벽인데 윗부분이 15도쯤 기울어져 자연스럽게 그늘을 만들며 풍상을 크게 겪지 않았다. 신라시대에 다녀간 청년들도 오래된 기하학 무늬가 신기했을 것이고 옛 유적을 찾은 기분이 남달랐을 것이다. 지금 이곳을 찾는 여행자는 어떠한가. 조상과, 조상의 조상을 대하는 감격이 오묘하고 신비롭다.

[여행 정보]

[대중교통으로 여행지 가는 법]
울산암각화박물관: 울산역에서 버스 304번 승차 – 울산암각화박물관 정류장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울산암각화박물관: 검색어 ‘울산암각화박물관’ /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반구대안길 254
천전리각석: 검색어 ‘천전리각석’ /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동면 천전리 산 210

울산암각화박물관
문의: 052-229-6678
http://bangudae.ulsan.go.kr
관람시간: 오전 9시 ~ 오후 6시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무료

천전리각석
문의: 052-229-7637

울산시티투어
문의: 052-700-0052
순환형 코스(대왕암 코스, 태화강 코스): 오전 9시30분 ~ 오후 5시 / 배차시간: 1시간
순환형 코스 요금: 성인 1만원 / 소인(36개월~고등학생) 8000원
할인 및 테마형 코스 정보는 홈페이지 참고

음식
공원불고기: 언양불고기 맛집으로 유명하다. 우시장에서 직접 고기를 가져와 채 썰고, 비법 양념으로 재우는 석쇠불고기와 육회가 대표음식이다.
석쇠불고기 1만9000원 / 육회 3만원 / 양념갈비 2만4000원
052-262-0421 /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헌양길 32

숙박
반구대 팜스테이: 반구대 암각화를 처음 발견한 한학자 최경환 선생의 생가다. 300년 된 전통 한옥 집청정에서 황토방 숙박을 할 수 있고, 한복체험, 전통놀이 등 체험프로그램이 준비돼 있다.
예약 문의: 052-263-6425 /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반구대안길 285


☞ 본 기사는 <머니S>(www.moneys.news) 제494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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