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논산에서 만나는 백제, 고려, 조선

송세진의 On the Road – 계백장군유적지, 명재고택, 관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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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산’하면 대부분 육군훈련소를 떠올리지만 역사 속 논산은 놀랍기만 하다. 황산벌과 계백장군, 국내 최대의 석불, 조선 소론의 영수 명재 고택이 있는 논산으로 떠난다. 이번 여행도 공간과 시간을 넘나드는 여정이다.

계백장군유적지.
계백장군유적지.
계백장군묘.
계백장군묘.

◆백제 - 계백장군유적지

황산벌, 그 싸움은 처음부터 이기기 어려운 전투였다. 화랑 관창의 패기 넘치는 죽음이 아니었어도 수적으로 백제가 5000명, 신라가 5만명이었으니 1대10의 싸움이었다. 오히려 어린 화랑이 죽어 돌아올 때까지 4개의 전투에서 판판이 졌던 신라 군사의 무능함이 허무할 뿐이다.

계백의 마음은 어땠을까. 나당 연합군이 몰려오는 전장으로 결사대 5000을 내준 왕에게 어떤 말을 해야 했을까. 이기기 힘든 싸움이고 설사 이긴다 하더라도 신라와 당은 더 단단히 뭉쳐 들어올 것이다. 나라의 운명이 기운 상황, 자기 혼자 전장에서 죽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남은 가족이 걱정이었다. 무엇이 장군다운 결정이었을까. 그는 출정길에 가족의 목숨을 모두 거둔다.

영화 <황산벌>에서 계백의 부인으로 분한 김선아가 ‘호랑이는 가죽 때문에 죽고 사람은 이름 때문에 죽는다’며 악을 쓰던 장면은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가슴이 찡했다. 패장의 아내이기에 이름조차 남지 않은 그녀의 말은 작가의 상상이 만든 허구일지언정 망국의 비극이 담겨있다. 가족이 노예가 돼 욕보는 꼴을 보기 싫어 자신의 손으로 목숨을 끝낸 계백은 죽음의 전쟁터로 나갔다. 음력 7월9일, 더위가 정점에 달해있던 날이었다.

계백의 결사대는 세갈래 길로 나뉘어 신라군과 네번 싸웠고 모두 이겼다. 그렇지만 끝내 수적 열세를 극복하지는 못했다. 황산벌은 피의 벌판이 됐고 계백장군도 전사한다. 백제의 찬란했던 역사에 마침표를 찍는 전투였다. 유민들은 장군의 시신을 이곳에 가매장했다. 이 지역을 ‘가장골’이라 불러온 것도 이곳이 계백을 가매장한 곳이어서다. 계백은 성충, 흥수와 함께 백제의 3충신 중 한명이 됐고 그와 5000결사대는 충절과 호국의 표상이 되었다.

계백장군유적지는 계백장군과 5000결사대의 뜻을 기리고 후손에게 호국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조성됐다. 12만8943㎡의 면적에 계백장군 묘소, 계백장군 사당인 충장사, 충혼공원, 황산루, 백제군사박물관과 기획전시실, 4D영상관 등이 있다.

박물관은 역사와 전쟁에 관한 많은 내용을 담았다. 제1전시실을 통해 백제의 역사를 한성시대부터 차분히 둘러보고 제2전시실에서는 전쟁의 역사를, 제3전시실에서는 논산의 역사를 살펴볼 수 있다. 특히 전쟁 역사 파트에는 아이들의 흥미를 모으는 전시물이 많다. 고대의 무기부터 삼국, 조선까지 다양한 무기뿐 아니라 병법과 전술, 성곽, 산성에 이르기까지 전쟁에 관한 여러 자료를 살펴볼 수 있다. 야외에서는 승마, 국궁, 전통놀이 등을 체험할 수 있고 교육프로그램으로 박물관대학이 운영된다.


관촉사.
관촉사.

◆고려 - 관촉사

관촉사는 고려 광종 19년(968년)에 공사를 시작해 목종 9년(1006년)에 완성된 고려 초기의 대표적인 사찰로 지금까지 귀한 보물을 전해온다. 입구를 지나면 전각으로 가는 길이 꽤 가파르다. 계단을 오르며 호흡을 가다듬고 독특한 석문인 해탈문을 지나면 관음전이 있다. 보통 사찰의 전각은 벽을 등지고 안정감 있게 서있기 마련인데 관음전은 경내 가운데쯤 어정쩡하게 서 있는 느낌이다. 그리고 관음전 안을 살펴보면 불상이 없다. 그 대신 전면에 길게 유리창을 두었다. 이 창을 통해 바깥쪽에 서있는 미륵불이 보인다. 바로 이 사찰의 대표격인 석조미륵보살입상이다.

‘은진미륵’이라 불리는 석조미륵보살입상은 보물 218호로 높이가 19m, 둘레가 9.2m고 귀 길이만 2.7m나 된다. 이는 국내 최대의 석불로 큰 돌이 솟아오른 것을 혜명 스님이 쪼아 불상을 만들었다는 전설이 있다. 이 돌이 솟아날 때 ‘내 온다, 내 나온다’ 하면서 솟았다고 하는 <신증동국여지승람>의 기록이 재미있다. 이밖에도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보고 미륵상을 완성할 수 있었다는 전설도 유명하고, 거란 침입 때 대군의 몰사와 함께 갓이 떨어져 나간 사연 등 불상과 관계된 이야기가 많다. 그만큼 사람들이 이 미륵상을 신묘하게 여겨서일 것이다.

미륵불 앞으로는 보물 232호인 석등이 마주하고 있다. 은진미륵이 고려시대 불상 특유의 투박하고 강인한 인상이라면 석등은 섬세하고 화려하다. 석등 앞으로 석탑이 있고 그 아래 배례석이 놓여 있다. 이는 충남유형문화재 제53호로 아름다운 연꽃문양과 꽃잎 아래의 버섯구름 문양이 사실적으로 양각됐다.

관촉사는 큰 절은 아니다. 경내가 한눈에 다 들어오는 것 같지만 보물마다 오래 보게 돼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절의 창건부터 석불, 석등, 석탑까지 사연도 많아서 게시판 하나씩 읽으며 이것저것 상상하는 것도 재미있다. 경내에는 언제나 데이트를 즐기는 훈련병 커플이 한쌍은 있다. 오랜만에 꿀 같은 시간을 보내는 그들의 모습이 미륵 아래 평화롭기만 하다.

  

명재고택.
명재고택.

◆조선 - 명재고택


이곳은 숙종 때 소론의 지도자였던 명재 윤증 선생의 고택이다. 숙종은 노론과 소론을 쥐락펴락하며 서로 경쟁하게 했다. 이때 정권을 잡은 서인이 다시 노론과 소론으로 분리됐고 후에 장희빈의 아들인 경종을 지지했던 소론은 영조 즉위 이후 몰락한다. 흔히 송시열의 노론, 윤증의 소론이라 하였으니 비록 몰락한 계파지만 윤증은 소론의 영수였다. 그는 20대 후반부터 명망을 얻었고 효종 때 세자익위사와 세자시강원에 천거되기도 하였다. 그런데도 그는 한번도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 사람들은 이런 덕행을 칭송하며 그를 ‘백의정승’이라 불렀다. 선생은 평생 벼슬을 하지 않고 충청도 일대에 머물렀고 명재고택은 1709년에 아들과 제자들이 힘을 합쳐 지은 것이라고 한다.

명재고택은 잠시 들러 고요를 즐기기 좋다. 국가민속문화재 제190호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사랑채 앞의 축대, 샘, 연못과 나무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것이 누가 봐도 학자, 선비의 집이라는 느낌이 든다. 명재고택의 백미는 담장 밖까지 늘어선 장독대다. 바깥사람이 강직하다면 안사람은 정갈한 부인이었나 보다. 늘어선 장독대는 햇빛을 받아 반짝인다.

옆에는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 있는데 이곳에 아름드리 보호수가 늘어졌다. 이 길을 시작으로 ‘사색의 길’을 걸을 수 있다. 1코스 735m, 2코스 1.2㎞로 20~40분 정도의 부담스럽지 않은 원점회귀 코스다. 옛 선비들처럼 천천히 걸어보는 것도 좋겠다. 떠나는 길도 결국은 돌아오기 위한 여정이니 짧은 사색일지라도 이 정도면 충분하겠다.

[여행 정보]

[대중교통으로 여행지 가는 법]

계백장군유적지: 논산역에서 307번 버스 승차 - 계백장군유적지 정류장 하차

[주요 스팟 내비게이션 정보]
계백장군유적지: 검색어 ‘계백장군유적지’ / 충청남도 논산시 부적면 신풍리 14
관촉사: 검색어 ‘관촉사’ / 충청남도 논산시 관촉로1번길 25
명재고택: 검색어 ‘명재고택’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

계백장군유적지
문의: 041-746-8432

백제군사박물관
문의: 041-746-8431
http://museum.nonsan.go.kr/
개장시간: 오전 9시 ~ 오후 6시

관촉사
문의: 041-736-5700
http://gwanchoksa.modoo.at
개장시간: 오전 6시 ~ 오후 8시
입장료: 어른 1500원 / 청소년, 군인 1200원 / 어린이 800원

명재고택
041-735-1215
http://www.myeongjae.com
관람시간: (4월~10월) 오전 10시 ~ 오후 5시 / (11월~3월) 오전 10시 ~ 오후 4시

음식
논산화지중앙시장: 전통시장과 청년시장을 함께 볼 수 있는 곳이다. 재래시장 구역에서는 만두, 순대국, 치킨 등 먹거리와 근처 베트남음식점 ‘퍼베트’도 유명하다. 청년10구역의 딸기찐빵도 시장의 명물이고, 밀크티, 호박식혜, 커리 등 골목골목 다니며 맛보는 재미가 있다.
041-735-3311 / 충청남도 논산시 대화로 78
퍼베트(베트남음식점): 041-980-3508 / 충청남도 논산시 해월로 168번길 6-1

숙소
명재고택: 사랑방 3개와 건넌방, 초가에서 한옥스테이를 할 수 있고, 도서관에서 단체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 있다. 다례체험, 보자기 만들기 등 10인 이상 단체를 위한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예약문의: 041-735-1215 / 충청남도 논산시 노성면 노성산성길 50

☞ 본 기사는 <머니S> 제503호(2017년 8월30일~9월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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