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멀쩡한 지구 흔드는 '종말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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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지구가 멸망한다는 것을 미리 알게 된다면 루터의 말처럼 한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사람은 드물 것 같다. 공포에 떨며 지내거나 갖고 있는 돈을 모조리 쓰겠다는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가족도 모두 사라지므로 굳이 재산을 남길 필요가 없어져서다. 미래를 위해 건강을 관리할 필요가 없어 평소 먹고 싶은 것, 마시고 싶은 것을 마음껏 먹고 즐기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을 차분하게 되돌아보며 정리하고 주변 사람에게 그동안 하지 못했던 말을 전하는 사람도 있겠다.

◆행성X 충돌… 어디까지 사실인가

최근 영국 일간지 메트로는 오는 10월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행성X: 2017년이 다가오고 있다>의 저자 데이비드 미드는 행성X가 지구와 충돌한다는 증거가 많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은 이렇다. 2006년 태양계 9번째 행성으로 간주되던 명왕성이 왜소행성으로 분류되면서 행성X로 불리는 니비루가 태양계 9번째 가상행성으로 이름을 올렸다. 데이비드 미드는 이 행성이 수백년 전 다른 행성의 궤도를 파손한 악성행성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또 오는 23일이 되면 처녀자리 자궁에 있던 목성이 처녀자리 발 아래로 빠져 나오면서 달이 처녀자리 밑으로 이동하고 달 반대편에 있는 해를 행성X가 가리는 완벽한 일식이 나타난다고 예측했다. 행성X로 인해 태풍의 세기가 커지고 지진이 계속 일어나는 이상현상이 나타나며 지표면에 싱크홀과 균열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구 전체와 달을 덮은 그림자는 보름달이 뜨는 10월5일 사라진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사업가 로버트 비시노는 데일리 스타와의 인터뷰에서 전세계 상류층 엘리트 일부가 다가올 행성 충돌로부터 살아남기 위한 개인 지하 벙커를 이미 만들어 놓았으며 그 외 살아남는 사람들은 방사능에 온몸이 타거나 심하게 다친 상태로 들쥐와 뒤엉켜 살아갈 것이라고 예언했다. 사회 혼란을 막기 위해 이 사실을 대중에게 일부러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행성X로 불리는 상상 속의 행성 니비루와의 충돌설을 전면 부인했다. 행성X가 실제로 존재하고 지구로 다가와 충돌이 예상됐다면 그동안 우주비행사들이 계속해서 추적했을 것이며 지금쯤 육안으로 보여야 하는데 그렇지 않다는 게 NASA의 설명이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NASA가 거짓말을 한다는 음모론을 제기한다.

지구 멸망설은 오랜 세월 꾸준히 제기됐다. 신약성서 마태복음서 24장에는 종말의 징조를 비롯해 세상의 종말에 관한 예수의 말씀이 나온다. 기독교 종말론의 핵심은 부활 승천한 예수 그리스도가 마지막 날에 다시 재림한다는 것이다.

90년대 들어 세기 말이 가까워지면서 종말론이 세계적으로 크게 부각됐다. 우리나라에서도 1992년 휴거설이 퍼졌다. 특정 종교집단은 하느님의 심판을 거론하는 신화적 종말론을 내세워 사람들을 현혹해 사회적 물의를 빚었다. 해외에서 40개 지부를 갖고 포교 활동을 하던 다미선교회가 1992년 10월28일 밤 자정을 휴거시점이라고 예고했다. 해당 교회 전국 8000여명 신도들은 울부짖으면서 예배를 올리며 자정을 맞았으나 휴거가 일어나지 않아 충격에 빠졌다. 경찰은 시한부 종말론으로 직장 사직 7명, 학업중단·가출 등 21명, 이혼 등 가정불화 24명, 자살 2명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집계했다.

2000년이 목전에 다가왔을 때에는 16세기 프랑스 점성술사 노스트라다무스가 내놓은 종말 예언이 퍼져나갔다. 그의 예언으로 종말론은 1999년 절정에 달했다. 컴퓨터가 발달한 과학 세상에서는 종말론과 연계한 새로운 Y2k(밀레니엄 버그) 공포가 등장했다. 연도의 두자리 수만 인식하는 컴퓨터에서 2000년을 1900년과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가 생겨나 전산망 마비, 금융 시스템 혼란, 원자력 발전소 오작동, 방사능 누출 사고, 전력 공급 중단, 첨단 군사무기의 오작동, 핵전쟁 발발 등의 재난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이러한 문제 대처에 기여하는 기업은 주식시장에서 밀레니엄버그(Y2K) 테마주로 부상해 주가가 초강세를 나타내고 상한가로 급등하기도 했다. 지구촌은 종말론을 뒤로 하고 무사히 2000년대를 맞아 축포를 쐈다.

◆사이비 과학 대부분 '허위'

한동안 잊혀진 종말론은 ‘2012년 종말론’을 시작으로 다시 수면위에 떠올랐다. 기원전 3114년 8월13일부터 시작되는 마야 달력의 마지막 날이 2012년 12월21일이라는 주장이다. 그날이 지나면 이 세상에 시간이 존재하지 않아 인류가 사라진다는 설이다.

영화 <2012>에서는 저명한 과학자들이 오랜 연구 끝에 고대 마야 문명에서부터 끊임없이 회자된 인류 멸망의 시기가 실제로 다가오고 있음을 감지하고 각국 정부에 이 사실을 알린다. 고대인의 예언대로 전세계 곳곳에 지진, 화산 폭발, 거대한 해일 등 자연재해가 발생해 누구도 막을 수 없는 최후의 순간이 도래한다.

<2012>에서 지구의 종말을 가져오는 대재앙의 근원은 태양의 흑점이 폭발하면서 튀어나온 중성미자가 지구의 핵을 뜨겁게 달구는 것으로 표현된다. 지구 내부가 끓어오르면서 지각 변동이 급속히 일어나 지구가 멸망한다는 물리학적 얘기는 사람들의 관심과 공포심을 불러왔다.

이처럼 종말론의 배경에는 예언이나 옛날 기록, 신화만이 아니라 과학적인 얘기도 등장한다. 과학이 들어가기 때문에 일부 사람들은 신뢰하며 귀를 기울이기도 한다. 그러나 가짜뉴스가 있고 사이비종교가 있듯이 과학에도 사이비과학이 있다.

예컨대 태양의 흑점 폭발은 지구에 약간의 영향을 미치지만 중성미자와는 관련이 적다. 설령 대량으로 중성미자가 방출되더라도 중성미자는 질량이 아주 작아 지구의 물질과 반응하지 않고 통과해버린다. 지구의 축인 N극과 S극이 갑자기 바뀌면서 지구를 보호하는 자기장에 변화가 나타나 종말이 온다는 설에 귀 기울이는 사람들도 있다. 실제로 아득히 먼 옛날 지구의 북극과 남극이 바뀌는 지구자기 역전 현상이 나타난 바 있다. 하지만 수천년에 걸쳐 천천히 진행된 변화였다. 짧은 기간 지구 자기장이 뒤바뀌어 충격이 나타날 수는 없다.

행성 직렬도 종말론의 소재였다. 행성이 직렬로 늘어서면 지구에 큰 힘이 작용해 홍수와 지진 등이 밀어닥친다는 것이다. 그러나 태양과 달이 아닌 행성은 지구에 미치는 힘이 워낙 작아 직렬이 되더라도 지구는 별 영향을 받지 않는다.

2000년 5월 수성, 금성, 화성, 목성, 토성이 거의 일직선상으로 늘어섰고 1999년 8월에는 지구를 중심으로 태양계 행성들이 십자가 모양으로 배열되기도 했다. 이때도 지구 종말론이 대두됐지만 별일 없이 지나갔다. 지난 2월1일에는 달, 화성, 금성이 일렬로 늘어서는 행성 직렬 현상이 나타났다. 흥미로운 천문현상은 망원경을 통해 관측하거나 맨눈으로 가능한 경우에는 하늘을 바라보면서 즐기면 된다.

소행성과의 충돌이 그나마 과학적 가능성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중생대에 공룡이 번창하다가 멸종한 이유로 흔히 거론되는 것이 6500만년 전쯤 멕시코 유카탄 반도 근처에 떨어졌다고 추정되는 대형 소행성이다. 태양계에는 수천개의 소행성이 있다. 그중 지구 근처로 다가오는 소행성이나 혜성도 많다. 크고 작은 이들 지구 근접물체는 때로는 위협적으로 지구를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NASA와 국제천문연맹(IAU)을 비롯해 전세계 여러 연구소에서 철저히 관측하고 감시하므로 음모론에서 제기되는 것처럼 비밀이 되지는 않는다. 지구와의 충돌 확률도 계산해 공개한다.

어쨌든 내 자신이나 내 자녀의 자녀의 자녀는 지구의 멸망으로 죽기보다 자연사로 죽을 확률이 훨씬 크다. 차라리 암이나 자동차 사고, 각종 성인병으로 죽지 않도록 안전관리와 건강관리에 신경 쓰는 것이 현명하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05호(2017년 9월13~1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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