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종교개혁 촉발한 '천국행 티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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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티칸 성베드로성당에서 바라본 로마시내. /사진=이미지투데이
바티칸 성베드로성당에서 바라본 로마시내. /사진=이미지투데이



돈을 내면 천국으로 가는 티켓을 살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중세교회에서 팔던 그 티켓으로 사람들이 정말 천국에 갔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1515년 알브레히트 폰 브란덴부르크 추기경은 가톨릭 수도사 요한 테첼을 면죄부(면벌부)를 파는 책임자로 임명했다. ‘베드로의 면죄’로 불린 면죄부 판매사업의 수입금은 성베드로성당 건립에 쓰일 것이라고 했다.

수도사 테첼은 “금화가 면죄부 헌금함에 떨어지면서 땡그랑 소리를 내는 순간 죽은 자의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갑니다. 면죄부는 하나님의 가장 고귀하고 소중한 선물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범하려는 죄도 이미 용서받을 수 있다는 내용이 담긴 문서를 드리려고 합니다. 이 면죄부가 사하지 못할 큰 죄는 없습니다. 면죄부를 사면 마리아를 범하는 죄라 할지라도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라고 전했다.

천국에 곧바로 가지 못하고 천국과 지옥 중간에 있는 연옥에서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카톨릭교회는 면죄부가 이 기간을 줄이거나 없앨 수 있다고 설파했다. 여러 도시에서 이 같은 설교가 행해지고 면죄부를 사기 위해 많은 사람이 몰려들었다. 귀를 솔깃하게 만드는 얘기를 사람들은 진심으로 믿었다. 면죄부가 성황리에 팔리면서 교황과 대주교의 금고에는 헌금이 차곡차곡 쌓였다.

면죄부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도 존재했다. 이슬람에 의해 잃어버린 성지를 회복하기 위한 전쟁에 군인을 동원하는 수단으로 면죄부가 발부됐다. 성전에서 죽은 사람은 하느님이 연옥 형벌을 탕감해준다면서 십자군 원정에 참여할 것을 독려한 것이다.

이 같은 홍보가 효과를 발휘해 수많은 사람이 면죄부를 얻기 위해 성전에 참여했다. 근래 일부 무슬림이 지하드(성전)에서 자폭테러를 감행하는 이유도 성전에서 죽으면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차 십자군 원정은 이스라엘을 수복하는 데 성공했지만 이후 약 200년에 걸친 수차례의 십자군 원정은 수많은 희생자를 내며 실패했다.

목숨이 위태로운 전쟁에 직접 참여하는 군인에게 면죄부를 발부하는 제도는 이해하더라도 십자군 참전을 대신해 헌금과 같은 기타 선행도 인정된다는 해석을 내놓으며 변질된 것이 문제다. 오랜 기간 이어진 전쟁에 들어가는 비용이 늘어남에 따라 돈 내놓는 사람까지도 면죄해 교황의 면죄권이 돈과 결부되기 시작한 것이다. 구원을 돈으로 사고팔 수 있다는 얘기는 성경에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헌금의 대가로 본인의 연옥 형벌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을 떠난 부모·형제·친척의 연옥 형벌까지 탕감해주는 면죄부가 발행됐다.

◆면죄부 장사한 가톨릭


LA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예배. /사진=뉴시스 DB
LA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예배. /사진=뉴시스 DB


중세교회가 팔던 천국행 티켓은 종교개혁을 촉발한 도화선이 됐다. 절대권력을 가진 교황이 면죄부 판매로 엄청난 돈을 축적하면서 교회는 부패하고 타락했다. 방탕하고 음란한 생활을 하는 로마 가톨릭 신부도 있었다.

체코의 저명한 신학자이자 가톨릭 사제인 얀 후스는 교회 권력을 향해 “면죄부를 파는 교황은 가롯 유다와 같다”고 말했다. 종교개혁의 선구자격인 후스가 화형에 처해진 후 약 100년이 지나 루터가 주도하는 역사적인 종교개혁이 일어났다. 종교개혁은 올해로 500주년을 맞았다.

비텐베르크대학의 성서학 교수 마틴 루터는 신부였다. 그는 고해할 신자들이 면죄부를 산 후 자신을 찾아오지 않자 1517년 10월31일 비텐베르크성의 교회 앞에 ‘95개조 반박문’을 붙였다. 연옥에 있는 영혼까지 들먹이며 교회가 면죄부를 판매하는 행위를 비판하는 내용이었다. 마인츠 대주교 알브레히트에게는 면죄부 개선을 요구하는 서신을 보냈다.
교황청의 세속화를 비판하는 논제를 교회 앞에 게시하는 것은 당시 학계의 일반적인 관례였다. 그러나 1518년 교황 레오 10세는 면죄부의 판매와 효력에 대해 교회에서 토론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며 거론할 경우 파문하겠다고 경고했다. 루터는 이단자로 기소돼 1521년 1월3일 공식 파문됐다.

루터가 제시한 95개조 논제는 독일 전지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다. 루터의 글이 빠르게 퍼진 데는 그 당시 발전한 인쇄술이 큰 역할을 했다. 학문을 토론하기 위해 작은 도시에서 생긴 조그만 불씨가 유럽 전역으로 번지는 커다란 불길의 개혁운동으로 확대된 것이다.

교황청으로부터 추방명령을 받은 루터는 선제후의 도움으로 바르트부르크성에 숨어 지내면서 독일어판 신약성서를 펴냈다. 인쇄술이 나오기 전에는 양피지나 파피루스에 손으로 일일이 필사할 수밖에 없어 책 한권을 필사하는 데 두달씩 걸렸지만 15세기에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한 이후 지식의 전파가 급속도로 빨라졌다.

취리히에서는 민족주의적인 요소가 강한 츠빙글리, 제네바에서는 그의 후배인 칼뱅이 각각 종교개혁운동을 주도했다. 훗날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 베버는 루터와 칼뱅을 비교해 ‘루터주의’가 퍼진 곳에서는 사회민주주의와 사회보장제도가, ‘칼뱅주의’를 표방한 곳에서는 자본주의가 발전했다고 해석했다.

◆지금도 계속되는 죄 마케팅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루터는 크리스천이면 누구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직접 교통할 수 있으므로 종래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격인 성직자 계급을 거부한다면서 ‘만인사제설’(萬人司祭說)을 주장했다.

종교개혁은 예배와 성례전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사제만 부르던 찬송가를 성도들이 함께 부르고 성찬식의 떡과 포도주에도 성도들이 참여했다. 직업도 이전에는 영적 직무만이 하나님의 거룩한 소명(Berufung)이었는데 루터는 세속적인 직업들도 이웃을 섬기고 사랑을 실천하면 성직이라고 했다.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경계선을 무너뜨린 직업의 소명화는 근대사회를 성숙시켰다.

하지만 루터의 활동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봉건적 착취로 피폐해진 농민들이 불공평한 사회개혁을 주장하며 항쟁에 나섰을 때 루터가 이들을 비난하고 귀족 편에 섰기 때문이다. 그는 과다한 소작료와 세금에 시달리며 사회적 모순이 개선되길 기대한 농민들을 지지하기는커녕 폭도로 간주하고 ‘기독교도가 아닌 자들’이라고 규탄했다.

심지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폭동을 진압하라고 촉구했다. 가난한 소작농들은 빈약한 무기에 군사훈련도 받지 않아 영주들에 의해 10만여명이나 학살됐다. 농민군을 이끈 토마스 뮌처가 처형되면서 독일 농민전쟁은 진압됐다. 로마 가톨릭 권력에 저항한 루터를 믿고 혁명에 나선 농민들에게 “인간은 신 앞에서 평등하다”는 말은 “현실은 그렇지 않다”는 의미로 다가왔다. 또 루터는 당대 잘못된 인식을 답습해 반유대인적 자세를 견지했다. 유대인 삶의 기반을 박탈하고 추방하려 했다.

이처럼 종교개혁이 사회적 정의감이 아니라 신학적 체계를 바탕으로 출발해 주로 종교적 관점에 머문 한계가 있었지만 점차 신학적 영역을 넘어 사회학·심리학·철학·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에 영향을 끼쳤다. 나아가 음악·미술 등 예술분야와 근대과학이 발전하는 원동력이 됐다. 궁극적으로는 인문주의 운동과 함께 중세사회를 근대사회로 탈바꿈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500년 전 발생한 종교개혁은 오늘날에도 영향을 준다. 다만 종교개혁의 바람직한 정신이 잘 이어지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500년 전처럼 지금도 일부 목회자는 ‘죄’를 강조하는 마케팅에 의존하고 있다.

“면죄부를 사면 구원받는다”는 중세 때 주장과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주장이 상통한다는 지적도 있다. 예수 가르침의 본질을 깨닫고 이를 실천하지 않은 채 ‘천국으로 가는 티켓’만 손쉽게 얻으려는 건 아닌지 스스로 돌아보길 바란다. 독일영화 <루터>(2003년)가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국내에서 지난 10월18일 재개봉했다. 포스터에는 이렇게 쓰여 있다. ‘다시 개혁이 시작된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18호(2017년 12월13일~1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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