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권 도전' 이해찬은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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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뉴스1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사진=뉴스1

20일 더불어민주당 당대표 출마를 선언한 이해찬 의원은 친노(친노무현)·친문(친문재인)의 좌장으로 불리는 7선 의원이다.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서는 교육부 장관과 국무총리를 역임했다. 국무총리 재임시절에는 '실세총리'로 불리기도 했다.

이 의원은 1952년 충남 청양에서 태어나 용산고등학교와 서울대 사회학과를 졸업했다. 1972년 10월 유신이 선포되자 학생운동에 뛰어들었고 1974년에는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으로 투옥, 11개월 만에 석방됐다.

책을 좋아했던 이 의원은 ‘광장서적’을 개업하고 출판사 한마당, 돌베개 등을 설립하기도 했다. 이후 민주화운동청년연합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민주통일민중운동연합 총무국장 등을 맡아 일했으며 1987년 6월항쟁 때는 민주쟁취운동본부에서 활동했다.

1988년 평화민주당 소속으로 총선에 출마해 13대 국회의원(서울 관악을)으로 당선됐다. 이후 20대까지 18대 국회를 제외하고 7번 국회의원을 지냈다.

초선의원 시절에는 광주민주화운동특별위원회 간사로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을 밝히는 데 힘썼으며 노동위원회에서 노무현, 이상수 의원과 함께 활동하며 큰 활약을 펼쳤다.

국정운영 경험도 풍부하다. 김대중 정권 때인 1998년부터 다음해 5월까지 교육부 장관을 지냈다. '한 가지만 잘 해도 대학간다'는 구호로 대학입시제도의 변혁을 이끌며 '이해찬 세대'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4년에는 두 번째 국무총리로 취임해 국정에 큰 영향을 끼쳤다. 정책 전반을 조율하며 '실세총리'란 별명도 생겼다. 대정부질문 당시 야당 의원들의 파상공세 속에서도 탄탄한 배경지식을 통해 반박, 화제가 됐다.

당직도 두루 거쳤다. 평민당 원내부총무(1988년)를 시작으로 민주당 당무기획실장(1992년), 새정치국민회의 총선기획단장(1996년), 새천년민주당 최고의원(2000년) 등으로 일찍부터 활약했다.

2002년 대선에서 이긴 뒤 국민참여통합신당 창당기획단장을 맡아 열린우리당의 설계도를 만들었다. 이후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을 거쳐 2012년 같은 당 대표를 역임했다. 현재는 더불어민주당 세종특별자치시당 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 의원이 민주당 대표로 선출되면 청와대로 기운 당청의 균형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이 많다. 정권 실세로서 무게감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대통령과의 안정적인 관계를 통해 정권 후반기 개혁 동력에 힘을 실을 것이란 해석이다.
 

강영신
강영신 lebenskunst@mt.co.kr  | twitter facebook

안녕하세요 머니S 강영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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