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반도체보다 배부른 ‘전자산업의 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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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산업의 쌀’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예전에는 ‘반도체’라는 대답이 나왔지만 요즘은 ‘MLCC’(Multi Layer Ceramic Capacitor)라는 답변도 나온다. 크기가 쌀알의 250분의1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작은 MLCC는 반도체 소자가 적절하게 작동하게끔 전력을 회로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는 역할을 한다. MLCC는 TV, 스마트폰, 전기차 등 반도체가 들어가는 제품에 반드시 있어야 하며 전류가 흐르는 거의 모든 제품에 들어간다. 최근에는 스마트폰의 고기능화, 자동차 전장부품 수요 확대로 판매량이 급증세다.

MLCC는 올 상반기 실적이 가장 좋았던 분야로 국내 업체는 삼성전기와 삼화콘덴서가 있다. 삼성전기는 전년동기 대비 매출액이 17% 증가하면서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각각 275%, 485% 증가했다. MLCC를 생산하는 컴포넌트사업부의 매출액 비중은 43%지만 영업이익은 전체의 119%에 달한다. 인쇄회로기판사업부 적자를 상쇄한 덕이다. 삼화콘덴서 역시 전년동기 대비 매출액이 28% 늘면서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각각 288%, 313% 증가했다.

삼성전기 주가는 연초부터 실적발표 전까지 최대 61% 올랐으며 삼화콘덴서는 150% 상승했다. 반면 반도체업체인 SK하이닉스 주가는 24% 상승에 그쳤고 삼성전자는 떨어졌다. 주식시장은 미래를 반영하는 곳이기에 반도체보다 MLCC가 더 유망하다고 볼 수 있다.

매출의 절반을 MLCC가 차지하는 대만 업체의 주가는 더 크게 올랐다. ‘야교’는 지난 1월2일부터 7월2일까지 6개월 동안 3.5배 올랐고 ‘왈신’도 같은 기간 동안 4.5배나 뛰었다. 일본의 MLCC 제조업체인 ‘무라타’와 ‘다이오유덴’의 주가는 각각 20.6%, 99.0% 상승했다. 글로벌 MLCC시장 점유율 2위인 삼성전기는 1위(무라타)와 점유율 격차를 좁히고 있다. 국내외적으로 이들 업체 주가는 상반기 실적 발표 후 이익실현 매물이 본격적으로 출회되고 주식시장의 전반적인 약세로 하락 조정받고 있다. 그러나 친환경시대, 4차 산업시대가 도래해 MLCC 수요가 계속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조정기간을 거친 후 주가 재상승을 기대해볼 만하다.

MLCC와 쌀. /사진제공=삼성전기
MLCC와 쌀. /사진제공=삼성전기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MLCC


MLCC는 ‘적층형 세라믹 콘덴서’로 번역된다. 콘덴서는 전기가 통하는 두 장의 도체판 사이에 전기를 차단하는 절연체(유전체)를 넣어서 전기(전하)가 모일 수 있게 한 것이라는 뜻에서 축전기라 불린다. 물탱크가 물을 저장했다가 내놓듯 콘덴서는 전기를 저장하고 공급하는 수단이다. 전원이 연결되면 두 전극판이 음(-)과 양(+)의 전극으로 대전돼 전하가 모인다. 전원의 회로가 끊어져도 극판은 대전상태를 유지해 전기가 저장된 충전상태가 된다. 두 극판 사이 간격은 좁을수록, 면적은 클수록 효과적이다, 극판 사이에 어떤 물질의 유전체를 사용하느냐에 따라 여러 종류의 콘덴서로 나뉜다.

알루미늄 전해콘덴서는 얇은 산화피막에 전해액을 접촉시켜 유전체로 사용한다. 전해콘덴서는 대용량, 저가격 및 빠른 충방전 특성이 있어 다양한 전력 변환장치에서 많이 사용된다. DC 에너지의 일시적 저장 및 전압 평활용으로 400~450V 제품이 주로 사용됐는데 근래 신재생에너지분야에서는 500V 이상의 전해콘덴서를 필요로 한다. 태양광 및 풍력발전은 일조량과 풍력에 따라 전력생산이 불규칙하므로 콘덴서는 태양열·풍력에너지의 저장용 장치로서 활용가치가 있다. 또한 소형에서도 큰 용량이 얻어지기에 컴퓨터 및 주변기기, 이동통신기기, 디지털가전, 오디오·비디오 등에도 광범위하게 사용된다. 국내에서 전해콘덴서를 제조하는 대표적인 업체가 삼화전기와 삼영전자공업이다. 두 회사 모두 올 상반기 실적이 상당히 좋았으며 주가도 크게 상승했다.

세라믹 콘덴서는 전극 간 유전체로 티탄산바륨 같은 유전율이 큰 세라믹 박막을 사용한다. 전해콘덴서와 달리 코일의 성질(인덕턴스)이 적어 고주파 특성이 양호하며 용량은 적으면서 정밀도가 높다. 전기가 통하는 니켈 전극층과 전기가 통하지 않는 세라믹 유전체층을 교대로 쌓아 만든 것이 MLCC다. 적층수를 늘려야 용량이 커지는데 동시에 크기는 작아야 스마트기기를 얇게 만들 수 있다. 크기는 소형화하면서 용량을 높이는 게 핵심기술이다. 수백층 이상 정밀하게 쌓기 위해서는 강도도 중요하다. 작은 칩 모양의 세라믹 콘덴서는 집적회로에 부착해 사용할 수 있어 전자기기 내부 초록색 기판 위에 수많은 칩을 볼 수 있다.

와인 잔에 담긴 삼성전기 MLCC의 가치는 약 3억원에 달한다. /사진제공=삼성전기
MLCC와 쌀. /사진제공=삼성전기
◆신규 수요 확대에 따른 반등


국내 유일의 콘덴서 종합 메이커인 삼화콘덴서는 관계사인 삼화전기가 생산하는 전해콘덴서를 제외한 거의 모든 콘덴서, 즉 ▲단층세라믹콘덴서 ▲적층형콘덴서(MLCC) ▲전력용콘덴서(FILM) 등을 생산한다. 삼화콘덴서는 세라믹 소재를 이용한 전기차 인버터용 전력변환콘덴서를 개발했다. 세계 TV 생산량이 줄고 전기차가 양산됨에 따라 주요 공급업체를 전기차용으로 변화시키면서 MLCC 이익 중심으로 영업구조를 개편했다. 과거에 MLCC 수요는 휴대폰이 보급되고 전자제품이 디지털화되는 시기에 크게 늘어났는데 일본과 대만 업체가 수요 증가보다 더 빠른 속도로 시설을 늘리면서 공급과잉현상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MLCC 가격이 2002년부터 수년간 크게 떨어졌는데 지난해부터 전기차 등 신규수요 확대로 반등하면서 관련업체의 수익성이 크게 좋아졌다.

현재 세계 MLCC시장은 상위 3개 업체(일본의 무라타, 한국의 삼성전기, 일본의 다이요 유덴)가 80%를 점유한 과점 구조다. 고도의 기술이 요구되고 기술적으로 양산이 어려운 분야로 중국 등 후발주자의 진입장벽이 높아 기존 업체의 독과점 형태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기가 필리핀, 중국 등 해외 신공장에서 생산성을 높이고 무라타는 2년간 1000억엔을 투자해 전장용 MLCC 라인을 증설하는데 수요는 그 이상 늘고 있다. 과점 업체들이 생산능력(CAPA)을 적정선에서 조절하면서 공급자 우위 시장이 유지된다면 장기호황 국면이 이어질 수 있다.

◆IT용 제품 MLCC 공급 부족

산업의 변화, 기술의 진화, 제품의 고성능화는 MLCC의 중요성을 더욱 높인다. 갤럭시S 초기 모델엔 MLCC가 200~300개 탑재됐는데 스마트폰 갤럭시S9 시리즈에는 1000개 정도 들어간다. 애플의 아이폰에도 1000개 이상이 탑재된다. 자동차의 전장화도 MLCC 수요 확대에 기여한다. 자동차에는 3000여개, 전기차에는 12000여개가 들어간다. 테슬라의 전기자동차는 15000개 이상의 MLCC가 탑재된다. 전기차 1대당 MLCC 탑재량이 2020년에 2만~3만개에 이를 거라는 전망도 있다.

가격도 자동차 전장용이 스마트폰용보다 4배 정도 비싸다. 자율주행차는 MLCC시장의 성장성을 굳건하게 해줄 것이다. 첨단운전자보조시스템(ADAS)용 미세전자제어기술(MEMS) 센서, 전자제어장치(ECU) 등에는 초소형이면서 고용량인 MLCC가 필요하다. 세계 MLCC시장의 70%를 점유한 일본의 3개 업체는 MLCC 생산능력을 스마트카(전장)용으로 대폭 전환하고 있으며 삼성전기는 부산의 IT용 MLCC 생산라인 일부를 자동차용 전용라인으로 새로 구축한다.

MLCC 생산설비가 미래 자동차시장으로 대폭 전환하면서 IT용 제품에서 MLCC 공급이 부족해질 가능성도 있다. 스마트폰에는 듀얼카메라, 지문인식, 생체인식 기능이 들어가면서 더욱 고용량을 필요로 한다. 프리미엄 노트북도 기능이 강화되고 사용량이 증가하면서 고용량 제품 비중이 커지고 있다. 5세대(5G) 통신서비스는 기지국용 MLCC 수요 증가를 불러오고 동시에 스마트폰당 탑재수도 늘어나게 한다. 4차 산업혁명시대에 사물인터넷(IoT), 스마트공장, 로봇시장이 확대되고 VR(가상현실)과 AR(증강현실)시장은 2021년까지 1000억달러가 넘을 전망이라 MLCC 수요는 지속적으로 늘어날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55호(2018년 8월29일~9월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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