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칼럼] 시월을 대표하는 '잊혀진 계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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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10월 말이면 라디오를 비롯해 거의 모든 방송매체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있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시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졌지요. 그날의 쓸쓸했던 표정이, 그대의 진실인가요. 한마디 변명도 못하고, 잊혀야 하는 건가요.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불후의 명곡 ‘잊혀진 계절’이다.

10월 마지막 날 밤의 만남이 끝이 될 줄 몰랐는데 사랑하는 연인이 헤어짐에 대해 뚜렷한 언급도 하지 않고 사라진 후 다시는 볼 수 없게 되자 그리워하는 마음을 담은 노래다. 1980년대 대중음악계에서 수많은 히트곡을 만들어낸 작사가 박건호, 작곡가 이범희 콤비가 만든 곡을 가수 이용이 불러 대박을 냈다. 1982년 7월14일부터 8월11일까지 KBS <가요톱텐> 5주 연속 1위를 차지하다가 8월18일 조용필의 ‘못찾겠다 꾀꼬리’에 1위 자리를 내줬다.

‘국민 가수’, ‘국민 배우’, ‘국민 MC’ 등으로 불리는 사람은 많지만 ‘국민 작사가’로는 단연 박건호 선생이 꼽힌다. 그가 노랫말을 만든 곡은 ‘아, 대한민국’(정수라), ‘모닥불’(박인희), ‘단발머리’(조용필), ‘빙글빙글’(나미), ‘그대 모습은 장미’(민해경), ‘그녀에게 전해주오’(소방차), ‘당신도 울고 있네요’(김종찬), ‘우린 너무 쉽게 헤어졌어요’(최진희), ‘그대는 나의 인생’(한울타리), ‘이 거리를 생각하세요’(장은아), ‘내 곁에 있어주’(이수미), ‘빈 의자’(장재남) 등 무려 3000곡에 이르며 대중에 널리 알려진 곡이 무척 많다.

박건호 선생은 여러 권의 시집과 에세이집을 펴낸 시인이기도 하다. 시집 <영원의 디딤돌>에는 서정주 시인의 서문이 실릴 정도로 문학적 수준이 높은 작사가다. 그의 곡 중에는 ‘잊혀진 계절’처럼 감수성 넘치는 가사가 많다. 원주시 박건호공원에는 고 박건호 선생을 기리는 ‘노랫말 비’가 세워져 있다. 매년 열리는 박건호 가요제는 올해 9회(10월19일, 원주시 무실동 박건호공원 야외무대)를 맞았다.

/사진=클립아트
/사진=클립아트
◆10월 말이면 ‘이 노래’

가요계에 이름을 알린 지 1년이 안되는 신인 이용이 부른 ‘잊혀진 계절’은 조용필, 나훈아, 송골매 등 기라성 같은 기성가수를 압도하며 1982년 1년 동안 라디오방송에서 가장 많이 나온 가요 순위 1위를 차지했다. 당시 이 곡을 모르면 간첩이라고 할 정도였다. 서울예술대학 방송연예과 2학년 학생이던 이용은 그해 MBC가수왕에 올랐다. 당시는 MBC와 KBS의 남자 가수왕을 조용필이 독차지하던 시기다. 조용필은 이용이 등장한 1982년 한해를 제외하고 1980~1986년 MBC가수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또한 이용은 동아일보 ‘올해의 인물’로 선정됐으며 주한 외신기자 선정 ‘올해의 가수상’, 전국 프로덕션 연합회 주최 가수상 ‘가배상’ 등을 수상했다. 제2회 ‘가톨릭 가요 대상’까지 수상해 김수환 추기경으로부터 트로피와 상금을 받았다. 노래가 대박을 터뜨리자 이용과 중견배우 이혜숙을 주인공으로 하는 동명의 영화도 제작됐다. ‘국풍 81 젊은이 가요제’에서 금상을 수상한 이용의 ‘바람이려오’도 KBS <가요톱텐>에서 4주 연속 1위를 차지하며 빅히트를 쳤다. 이용의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첫번째 앨범부터 지난해 발표한 앨범에 이르기까지 총 13개 앨범에 수록된 그의 모든 노래를 무료로 들을 수 있다.

‘잊혀진 계절’은 발표된 후 35년이 흐른 지난해 10월31일 음원사이트 멜론 급상승 차트에서 329계단 뛰어 오른 71위에 랭크됐다. 이처럼 매년 10월 마지막 날이면 방송의 필수 선곡이 되는 현상이 언제까지 지속될지 궁금하다. 대중적으로 친근한 일부 가곡이나 동요처럼 세월과 무관하게 영원히 들리는 곡이 될지도 모르겠다. 이용은 이 곡 덕에 한해 장사 대부분을 10월에 한다고 말한 바 있다. 10월 한달은 으레 스케줄이 꽉 차 있으며 특히 10월 마지막 날에는 7~8곳의 무대에 선다고 한다. 2012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잊혀진 계절’을 무대에서 6000번은 불렀을 것이라고 했으니 앞으로 활동할 수 있는 햇수를 감안하면 1만번 돌파도 가능해 보인다.

‘잊혀진 계절’을 리메이크한 가수가 매우 많은 점도 한 시절을 풍미한 노래로 지나갈 곡이 아님을 보여 준다. 조영남은 영어 가사로 바꿔 취입했으며 동방신기(영웅재중), 국카스텐, 김범수, 서영은, 박강성, 최백호, 나훈아, 문주란, 패티김과 김도향 듀엣, 남경주, 레이나, 신용재, 산들(B1A4), VOS, 화요비 등이 나름의 색깔로 다시 불렀다. 김범수의 곡은 펑키 스타일의 편곡이, 국카스텐의 곡은 록 스타일의 편곡이 돋보인다. 아이유는 KBS 드라마 <최고다 이순신> 속 오디션을 보는 장면에서 불러 화제를 모았다.

◆노래에 담긴 에피소드

‘잊혀진 계절’에는 몇가지 에피소드가 있다. 우선 ‘잊혀진’이 문법적으로 틀린 말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사람이 즐겨듣는 노래가 되면서 올바른 표현인 ‘잊힌’이나 ‘잊어진’보다는 ‘잊혀진’이란 표현을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게 됐다.

‘먹다’가 주어의 ‘먹는 행위’를 말하고 ‘먹히다’는 먹는 행위의 대상이 된다는 것은 사람들이 잘 안다. 마찬가지로 ‘잊다’는 ‘잊는 행위’를 말하고 ‘잊히다’는 그 행위의 대상이 되는 것으로 ‘잊음을 당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지다’를 단어 뒤에 붙이면 피동의 의미로 바뀐다. 이를테면 ‘막다’에 ‘~지다’를 붙이면 ‘막아지다’가 되면서 피동의 의미가 된다. 따라서 ‘잊다’를 피동의 의미로 바꾼 ‘잊히다’에 ‘~지다’를 붙일 경우 피동형의 피동형은 능동형이 되는 셈이니 틀린 말이다.

최근 9월21일에 방영된 KBS 드라마 스페셜도 잘못된 표현인 ‘잊혀진 계절’을 제목으로 사용했다. 일부 사람은 피동을 강조하기 위해 이중 피동으로 표현하는 경우가 있는데 학교 국어시간에도 ‘이중 피동’은 잘못된 표현이라고 가르친다. 한글 워드프로세스에서 맞춤법 검사를 해도 ‘잊혀진’은 ‘잊힌’으로 교정하도록 나온다.

두번째 에피소드는 비 내리는 처량한 9월의 마지막 밤에 한 여자와 헤어진 박건호 작사가의 실제 이별 이야기라는 점이다. 그래서 가사가 원래 ‘9월의 마지막 밤’이었는데 발매 시기가 늦춰지면서 ‘10월의 마지막 밤’으로 바뀌었다. 만약 원래대로 9월의 마지막 밤으로 노랫말이 만들어졌다면 10월 말이 아닌 9월 말에 많이 나오는 곡이 될 뻔했다. 노래에서 풍기는 쓸쓸한 분위기가 9월 말보다 낙엽이 떨어지는 시기인 10월 말에 더 적합하니 차라리 잘된 것 같다.

세번째 에피소드는 ‘잊혀진 계절’이 원래 조영남에게 주려던 곡이었는데 거절해 이용에게 간 것이라고 한다. 조영남이 그 시절 경쾌한 분위기의 노래와 파워 있는 노래를 주로 불렀기에 슬픈 분위기의 느린 템포 곡이라 부르지 않은 것 같다. 그러나 다른 가수가 불러 불후의 명곡이 되는 것을 보고 거절했던 것을 아쉬워했다. 이용은 모 방송 인터뷰에서 조영남에게 갔더라도 정말 좋았을 거라며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이제 한류스타가 부르는 노래의 열기가 뜨거운 시대지만 ‘잊혀진 계절’처럼 슬프도록 아름다우면서 서정성 넘치는 곡도 많이 나와 사랑을 받는다면 메말라가는 사람들의 감성이 촉촉해질 것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62호(2018년 10월17~2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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