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근길] "당신은 이제 사이버폭력의 피해자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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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적나라해서 무서운 '사이버폭력 백신' 앱 

#중학교 교사 김모씨(29·여)는 학교폭력 예방교육을 어떻게 할지 고민하다 ‘사이버폭력 백신’이라는 애플리케이션(앱)을 알게 됐다. 학생들 사이에서 벌어지는 사이버폭력의 심각성을 체험하게 해준다는 설명을 보고 수업에 적합할 거라 생각한 김씨. 그러나 앱을 실행해본 결과 교육에 활용해도 될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김씨가 수업에 사용하려던 앱은 지난해 4월 이노션이 ‘학교폭력피해자가족협의회’와 함께 제작한 ‘사이버폭력 백신’(이하 백신)이다. 학생 인터뷰와 언론 기사 등을 토대로 폭력실태를 재현했고 체험이 끝나면 학교폭력 근절을 위한 서명을 권유한다.

배포 직후 교육자료로 활용하겠다는 문의가 이어지며 호평받았고 지난 19일 기준 5만여명이 이 앱을 다운로드했다. 좋은 취지로 제작했고 성인이 체감하지 못하는 현실성을 반영해 높은 평가를 받았는데 왜 김씨는 교육에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을까. 기자가 직접 백신을 체험하고 일선 교사들에게 앱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대답 안해? 네 동생 OO중학교 다니지?"

백신을 실행하면 사이버폭력의 위험성을 경고하는 화면이 나온다. 화면을 넘기면 “당신은 이제 사이버폭력의 피해자가 됩니다”라는 문구와 함께 시작하기 버튼이 생긴다. 이름을 설정하고 다음 과정으로 진행하면 민지에게 전화가 걸려온다. 민지는 다짜고짜 욕설을 내뱉으며 전화 안 받느냐고 화를 낸다. 그리고 전화를 끊자마자 카카오톡 알림이 계속 울리는 ‘카카오톡 지옥’이 시작된다.

카톡에 들어가면 단체채팅방에 초대된 ‘나’를 발견한다. 이 방의 모든 채팅은 나를 향한 욕설과 인신공격이다. 방에서 나가려고 해도 소용없다. 뒤로가기를 누르는 순간 바로 다시 초대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어지는 괴롭힘. 이들은 ‘죽고 싶어서 이 방에서 나가냐’, ‘혼자 죽지 마라 우리가 죽여줄 테니’ 등의 폭언을 계속하다 얼굴에 온갖 음식물이 묻어 있는 피해자 사진을 보낸다. 

페이스북에 올리겠다는 협박을 남기고 가해학생들은 채팅방을 떠난다. 그제야 ‘나’도 채팅방을 나갈 수 있다. 채팅방을 나간 뒤 제일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아직 읽지 않은 엄마의 카톡. ‘왜 연락 안받니. 걱정된다.’

카톡을 종료하는 순간 페이스북 알림이 뜬다. 내가 태그된 동영상이 게시됐다는 것이다. 페이스북에 들어가면 ‘우리학교 찐따 밥먹는 모습’이라며 화장실에서 밥먹는 동영상이 올라와 있다. 스크롤을 아래로 내리면 모든 게시물이 나를 괴롭히는 사진과 영상이다. 우리학교 찐따 신상공개, 집주소, 혼자 밥먹는 영상, 무릎 꿇은 사진 등 모든 사진과 영상에는 ‘우리학교 찐따’라는 설명이 달려있다. 심지어 집주소를 남긴 뒤 “얘 남자 밝히니까 관심 있는 남자들 찾아가”라는 말까지 한다.

페이스북을 끄면 ‘너 남자 밝히다며 나는 어떠냐’는 성희롱 문자가 온다. 문자를 실행하면 다시 지옥이 열린다. 온갖 성희롱과 협박 사이로 엄마와 동생의 문자가 보인다. 엄마가 보낸 문자에 들어가니 ‘이번달 왜 이렇게 데이터요금이 많이 나왔어’, ‘왜 연락이 안 되니. 엄마 화낸다’, ‘연락 좀 받아봐. 걱정돼서 그래’ 같은 문자가 쌓여 있다. 그리고 걱정 가득한 동생의 문자. “누나 페북에 이거 뭐야? 전화 받아봐.” 그 위로 ‘대답 안하냐? 네 동생 어디 중학교지?’라는 협박문자가 있는 걸 본다. 

이 모든 시달림이 끝나면 나의 편지가 나온다. “엄마, 아빠 미안해요. 제 걱정 많이 했죠.” 그리고 학교폭력을 견디지 못하고 자살한 13살 K학생의 유서라는 설명과 함께 모든 과정이 종료된다. 사이버폭력 체험이 끝나고 화면이 바뀌면 사이버폭력 근절을 위해 서명해달라며 ‘서명하기’, ‘상담하기’ 버튼이 나온다.

'사이버폭력 백신' 실행화면.

◆사이버폭력, 24시간 따라다니며 인격 붕괴시켜

학교폭력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날이 갈수록 가해방식이 교묘하고 잔혹하게 변하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 보급이 일반화되며 사이버공간에서의 폭력이 급증하고 있다.

교육부가 2016년 발표한 ‘학교폭력 및 조치 현황’을 보면 전체 학교폭력은 2012년 2만4709건에서 2015년 1만9968건으로 감소했지만 사이버폭력은 같은 기간 900건에서 1462건으로 62% 증가했다. 학교폭력 피해장소도 교실의 비중은 줄고 사이버공간의 비중이 늘고 있다. 

사이버공간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욕설문자 보내기, 헛소문 퍼뜨리기, 몰래 촬영하기, SNS에 사진 올리기, 악성댓글 달기 등인데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모든 활동이 가해에 이용된다. 사이버폭력은 오프라인폭력 못지않게 한사람의 삶을 황폐하게 만드는데, 미국 국립보건원이 학생 7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청소년들은 대면폭력보다 사이버폭력으로 소외감, 인간성 상실, 무력감 등을 더 많이 느끼는 것으로 나타났다(류성진, ‘청소년들의 사이버 폭력과 오프라인 폭력 경험에 관한 연구’).

사이버폭력은 오프라인폭력의 연장선이라는 점에서 더 끔찍하다. 학교를 떠나서도 끊임없이 괴롭히기 때문에 피해자는 언제, 어디서든 안식을 취할 수 없다. 학교에서 이뤄진 괴롭힘이 아무때나 SNS에 올라오면서 24시간 피해자를 따라다니는 것이다.

기자도 백신을 통해 간접적으로 겪었을 뿐이지만 사이버폭력의 폐해와 심각성을 느낄 수 있었다. 제작 취지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던 만큼 학교현장에서 활용해도 무방할 것으로 생각되는데 김씨는 왜 백신을 학교폭력 예방교육에 사용하는 걸 주저했을까. 

/사진=이미지투데이

◆취지 공감하나 모방범죄 우려… 학부모교육에 '적합'

김씨는 “아이들이 스스로 반성하는 게 아니라 잘못을 주입하는 느낌”이라고 설명했다. 현실에서 일어나는 학교폭력을 잘 담아냈지만 “사이버폭력은 문자나 SNS를 통해 심리적으로 사람을 궁지로 모는 행위인데 이미 체험앱인 걸 알고 하는 만큼 심리적인 압박감을 느끼지 못해 효과가 없을 것 같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는 무엇보다 모방범죄와 2차피해가 가장 걱정된다고 했다. 백신에서 피해자를 괴롭히는 방식을 보면 사람이 이렇게까지 집요하고 잔인해질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드는 만큼 악용될 소지가 있다는 것. 

더 큰 걱정은 학교폭력 피해학생이 백신을 접했을 경우다. 떠올리기 싫은 기억을 건드릴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는 “왕따피해 학생의 얘기를 들을 때 가슴이 너무 아픈 게 학생이 자기 이야기를 하며 부르르 떤다”면서 “그런 친구가 백신을 접하면 상처를 헤집는 느낌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다.

구글 플레이스토어에도 김씨와 비슷한 걱정을 하는 댓글이 달렸다. “사이버폭력, 왕따 경험 있는 분들이라면 다운 조심하세요. 수박겉핥기처럼 조금이지만 다시 생각나고 힘들 정도로 리얼해요. 피해자분들은 다운 안하셨으면 좋겠어요. 잊으려던 것들까지 생각나더라구요….”

중학교 교사 박모씨(28·여)도 모방범죄에 대한 우려와 함께 백신은 학교폭력 가해자 교육에만 활용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그리고 학생이 교육내용을 충분히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을 때 백신을 사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이미 학교폭력 교육을 많이 받아서 학생 대다수가 아는 내용”이라며 “하지만 말로 듣는 것과 체험하는 건 다르므로 학교폭력 예방·처분프로그램에서 1회성으로 활용하기는 좋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가해학생의 동의가 있어야 이 같은 교육을 진행할 수 있는 만큼 학생이 이런 체험을 수용할 자세가 됐을 때 진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고등학교 교사 이모씨(31·여)는 “학생들한테는 직접적인 게 더 효과적일 때가 있어서 도움이 될 수도 있다”며 “저렇게까지 안했던 애들이 모방해서 할 수도 있으니 반반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취지에는 공감하나 이씨도 모방범죄에 대한 우려를 드러낸 것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의 반응은 어떨까. 현재 고등학교 3학년인 이모군(18·남)은 “아무도 안할 것 같다”며 “취지는 좋지만 목표 연령대의 반응을 예상하지 않은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다른 학생들도 “몰입이 안 된다”, “유치하다”, “요즘에는 카톡 안하고 페메(페이스북메시지) 한다” 등의 답변을 내놨다.

이에 비해 성인들은 백신의 취지에 공감하고 충분히 효과가 있다는 입장이다. 대학생 강모씨(24·여)는 “사람을 이렇게 만신창이로 만들 수가 있나. 학교폭력은 늘 문제라고 생각했지만 막상 앱으로나마 겪어보니 정말 처참한 기분이다”고 울분을 터뜨렸다. 

직장인 백모씨(32·남)도 “처음에는 뭐 이런 앱이 있나 생각했지만 막상 해보니 분노가 솟구친다”며 “무슨 일이 있어도 근절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바로 서명했다”고 말했다.

영화배우 김보성 씨가 지난해 6월30일 학교 폭력 예방 캠페인 '교실에서 찾은 희망' 우수학급인 서울 성북구 숭곡초등학교 5학년 4반 교실을 찾아 아이들과 '학교 폭력을 이긴다'는 의미를 담은 의리 팔씨름 대회를 하고 있다. /사진=뉴스1

중학교 교사 정모씨(31·여)는 중학생과 백신을 함께 체험했지만 교육효과가 큰 것 같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가해학생의 학부모 교육에 쓰기에 최적의 앱으로 보인다며 활용방안을 제시했다. 정씨는 "학생들에게는 백신이 진지하게 와닿지 않는 것 같다"며 "대화가 연기처럼 느껴지는지 중간중간 오히려 웃기도 한다"고 전했다. 다만 “학교폭력을 행사한 학생의 부모 가운데 역지사지를 전혀 모르는 분도 있는데 아직도 ‘애들끼리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가진 분에게 꼭 권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지난해 자녀의 학교폭력 때문에 특별교육을 받은 보호자는 2만4000명에 달한다. 이 중 교육을 제대로 이수하지 못한 인원은 1000명이나 된다. 이들이 교육에 불참하는 건 별다른 처벌규정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입법예고된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 시행령'에 따르면 앞으로 교육을 이수하지 못하면 과태료 300만원이 부과된다.

한편 학교폭력 가해학생 때문에 특별교육을 받은 보호자는 2016년 1만8343명에서 지난해 2만4129명으로 급증했다. 아울러 교육을 제대로 받지 않는 보호자도 증가세다. 2016년에는 1029명이 불참했고 지난해에는 1158명이 교육을 받지 않았다.
 

강영신 lebenskunst@mt.co.kr  | twitter facebook

안녕하세요 머니S 강영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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