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신이 아니다"… 거리로 나선 의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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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의사들이 또 다시 의료현장이 아닌 거리로 나섰다. 서울 덕수궁 대한문 광장에 전국 의사 1만2000여명(주최 측 추산)이 모여 오진을 이유로 의사를 구속한 사법부의 결정에 비판하는 목소리를 높인 것. 100여명 이상의 의사들이 모여 집회를 연 것은 올해 들어 4번째다.

앞서 의사들은 이대목동병원 의료진 구속 규탄(4월), 문제인케어 반대 제2차 전국의사총궐기대회(5월), 의료기관 내 의료인 폭행사건에 대한 경찰의 미온적 태도규탄(7월)을 내세워 거리로 나선 바 있다.

◆오진=구속, 의사는 신인가?

특히 이번 집회는 앞선 집회보다 더 절박한 분위기가 여실히 묻어났다. 희귀한 증례에 대한 오진으로 의사 3명이 구속되자 자신도 그렇게 되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는 데 공감했기 때문이다.

“의사는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진료하는 분야에서 최대한 신처럼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인간”이라는 이들의 주장은 긴 여운의 울림을 주기도 했다.

지난 11일 전국에서 모인 의사들이 서울 대한문 광장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의협
지난 11일 전국에서 모인 의사들이 서울 대한문 광장 앞에서 집회를 열고 있다. /사진=의협
이번 집회는 지난달 2일 수원지방법원 성남지원이 복부 통증으로 병원을 찾은 8세 어린이를 변비로 오진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업무상과실치사)로 성남 한 병원의 응급의학과장 A씨에게 금고 1년형, 소아과장인 B씨에게 금고 1년6개월형, 가정의학과 전공의 C씨에게 금고 1년형을 선고하자 의사들이 들고 일어선 것이다.

이철호 의협 대의원회 의장은 집회 현장에서 “앞으로 환자를 진료하다 조금이라도 잘못되면 교도소 담장을 넘어 바로 잡혀 들어갈 선후배 동료 의사들의 비극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우리들이 모였다”며 “재판은 3심제로 수시로 결과가 뒤바뀌기도 하는데 1심 재판은 의사를 사망하게 만든 부적절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이 의장은 이어 “응급실에 배 아프다고 온 환아 측에서 다쳤다는 얘기가 없는데 어느 의사가 횡격막 탈장을 진단할 수 있겠는가”라며 “이런 식이면 한국의 모든 의사가 구속되고 말 것이다. 의사가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라 진료하는 분야에서 최대한 신처럼 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인간”이라고 강조했다.

김동석 대한개원의협의회 회장도 3명의 의사가 진료에 정확한 진단을 못했다는 점에 비춰볼 때 어떤 의사였어도 상황이 다르지 않았을 것이라 주장했다.

김 회장은 “진단을 못했다는 이유로 의사가 구속되면 어떤 의사가 진료를 제대로 하겠는가”라며 “교도소에 가지 않기 위해 무조건 방어진료를 해야 할 것이다. 전문의를 포함한 3명의 의료진이 최소 5회 이상 진료했음에도 정확히 진단이 안됐다면 그만큼 진단하기 힘든 상황이었다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사건으로 구속된 의사들과 같은 분과인 의사들은 사법부의 부당한 판결을 비판하고 향후 상급심에서 상식적 판결이 나올 것을 촉구했다.

이경원 대한응급의학회 섭외이사는 “응급의학은 외상과 질병의 급성 악화에 대해 환자 평가와 응급처치를 신속히 병행하며 활력 징후를 안정시키고 수술, 입원, 중환자실 입원과 같은 최종 치료가 지연되지 않게 하는 역할을 한다”며 “1시간 남짓 진료하며 증상이 완화돼 퇴원과 외래 추적을 지시한 응급의학과 의사에게 매우 드문 질환에 대한 진단을 하지 못했다고 오진의 멍에를 씌우고 형사적 책임을 묻는 것은 해도 해도 너무한 조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이사는 이어 “사법부에는 법과 양심에 따라 올바른 판결을 내리는 양식 있고 존경받는 법관이 많다고 생각한다”며 “상급심을 통해 의료의 특성을 이해하는 올바른 판결이 내려지기를 강력히 촉구한다”고 말했다.

/사진=의협
/사진=의협
이덕철 대한가정의학회 이사장은 “안타까운 사건이 재발되지 않고 의료인이 양심과 소신에 따라 최선의 진료할 수 있도록 의료시스템의 개혁과 함께 의료분쟁특례법을 하루 속히 법제화하고 시행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며 “대한가정의학회 차원에서 이 사건의 재판과정을 예의주시하며 적극적으로 대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의료분쟁특례법 도입 촉구

이승우 대한전공의협의회 회장은 “전공의들은 지금껏 떠나보낸 환자들과 유가족들의 아픔을 잊지 못하고 자괴감과 무력감에 빠지기도 하지만 같은 시행착오를 겪지 않기 위해, 곁에 남겨진 또 다른 환자들을 지켜내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수련과정을 밟고 있다”며 “전국의 전공의들에게 이번 실형선고와 법정구속 조치는 너무나 큰 짐이다. 한국은 전공의가 수련하기에 위험한 곳이 됐다”고 토로했다.

최대집 대한의사협회 회장은 “의사들은 그동안 매우 열악한 의료환경 속에서도 국민건강을 책임져야 한다는 무거운 사명감 하나로 온갖 희생을 묵묵히 감수해 왔다”며 “그러나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는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의사들이 최선의 진료를 해도 결과가 좋지 않으면 감옥에 갈 수밖에 없는 대한민국 의료제도를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허주열
허주열 sense83@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S> 산업1팀에서 유통·제약·의료분야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취재원, 독자와 신의를 지키는 기자가 되겠습니다. 많은 제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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