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호사 울리는 '태움'… 사람이 죽어도 끝나지 않는 이유 [줌인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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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2월 서울아산병원의 간호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일이 보도된 뒤 ‘태움’이라는 단어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했다. ‘영혼을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뜻의 이 은어는 선배 간호사가 신규 간호사를 혹독하게 가르치는 행위를 말한다. ‘태움’은 한때 강도 높은 병원업무에 빨리 적응하게 만드는 교육방식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이제는 폭력적인 문화로 지목되며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이에 정부는 대한간호협회 산하에 인권센터를 세우고 병원 내 가혹행위가 적발될 경우 간호사·의사 면허를 취소하겠다고 밝히는 등 태움 방지대책을 마련했다. 간호계는 정부가 간호사의 문제에 관심을 가져준 것에 우선 환영의사를 표했다. 정부가 개선 의지를 보인 지 어언 1년, 일선 간호사들은 현장에 별다른 변화가 없다고 말한다. 보다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간호계의 생각을 들어봤다.

/그래픽=머니투데이
/그래픽=머니투데이

◆변화 없다는 현장… 왜?

최근 간호사를 그만둔 A씨(28)는 "그만두면 될 걸 왜 극단적 선택을 해"라는 반응도 있다면서 “현장에 변화는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병원은 방관할 뿐이라며 태움이 발생하는 이유로 강한 업무강도를 꼽았다. 생명과 직결된 일이라 늘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는 것도 큰 스트레스인데 의사, 환자, 보호자의 눈치도 봐야 한다는 것이다. 나아가 인수인계를 통해 업무를 진행하기 때문에 퇴근한 후에도 긴장을 놓을 수 없다. A씨는 “이로 인해 누적된 피로감을 그릇된 방식으로 풀어내면서 (태움이) 발생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형병원에서 근무하는 5년차 간호사 B씨(29)도 지난해 태움 사태가 터진 뒤 “전체 인계 때 ‘태우지 맙시다’ 한마디로 끝났다”며 “언론보도가 나와도 일주일 정도 쉬쉬할 뿐… 변한 건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간호사 세계에 ‘내리사랑’ 대신 ‘내리갈굼’이 흐른다며 “올드(연차가 높은 간호사)들은 예전에는 의사까지 동원해 태웠는데 지금 신규들은 쉽게 일한다고 생각해 억울해한다”고 주장했다. 

2년차 간호사인 C씨(26)는 “태움과 업무적 질타는 전혀 다른데 이를 혼동하는 사람이 많다”며 “정부가 대책을 내놓아도 단기간에 사라질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다. 

간호사들은 무지막지한 업무강도와 구시대적 인식 때문에 태움이 사라지지 않는다고 입을 모았다. 그렇다면 ‘태움’은 어떤 식으로 이뤄질까. B씨는 “간호사는 입사한 첫날부터 눈치껏 일해야 한다. 수습기간이 있는데 말만 수습이지 배우는 것도 없다. 입사 첫날부터 눈치껏 일해야 (태움) 타깃에서 벗어난다”고 토로했다.

자료사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사진=뉴스1
자료사진. 사진은 기사 내용과 무관./사진=뉴스1

◆근본적인 원인은 인력부족으로 인한 과다업무

대학의 이론교육과 현장실습으로는 병원 현장업무를 따라가기 힘들기 때문에 병원에서는 프리셉터(경력 간호사)와 프리셉티(신규 간호사)를 지정해 교육을 진행한다. 그러나 간호사의 높은 업무강도는 제대로 된 교육을 할 수 없게 만든다.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우리나라 간호사가 1인당 맡는 환자 수는 평균 13명으로 업무가 몰릴 때는 20명에 달한다. 반면 미국 간호사가 1인당 맡는 환자 수는 5.4명이며 캐나다는 4명, 일본은 7명 이하로 법제화됐다. 

이로 인해 교육은 ‘눈치껏 배우고 눈치껏 잘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일이 된다. 신입 간호사는 경력 간호사 옆에서 업무를 관찰하며 능동적으로 배워야 하는데 이마저도 용이하지 않다. 교육이 일대일로 진행되지 않는 데다 프리셉터-프리셉티의 근무시간대가 동일하지 않은 경우도 다반사기 때문이다. 

담당 시간대가 바쁘거나 환자의 상태가 안 좋을 때는 경력 간호사가 신규 간호사를 전혀 신경 써줄 수 없다. 위중한 환자가 많은 호흡기내과는 업무강도가 매우 높고 진행할 검사가 많은 소화기내과의 경우 물 마실 시간도 없다. 이런 상황에서 누군가를 가르치기란 요원한 일이며 업무에 도움이 되지 않는 신규 간호사는 화풀이대상으로 전락하기 쉬운 것이다. 

대한간호협회는 이처럼 간호사의 높은 업무강도가 태움 등의 부적절한 조직문화를 만들었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높은 업무강도는 인력부족에서 기인한다는 것이다. 인력이 부족하니 업무강도가 높을 수밖에 없고 과중한 업무는 높은 이직·퇴직으로 이어진다. 병원간호사회에서 조사한 2017년 신규간호사 이직률은 38.1%에 달한다. 이로 인해 다시 인력부족이 발생, 악순환이 반복된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간호대학 정원은 10년 사이 2배 이상 증가해 매년 2만여명의 신규 간호사가 나오고 있다. 간호사 면허소지자도 OECD 평균인 12.8명보다 높은 18.4명이다. 간호사 인력부족 문제를 단순한 인력부족으로 보기 어려운 이유다. 

/그래픽=뉴스1
/그래픽=뉴스1

◆면허소지자 절반만 활동… 근무환경 개선해야

대한간호협회에 따르면 간호사 면허소지자 중 현장에서 활동하는 사람(49.6%)은 절반도 되지 않는다. 협회는 열악한 근무여건이 만성적인 인력부족을 낳는다고 지적하며 환경개선이 태움 등 폭력적인 문화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앞서 말한 것처럼 우리나라 간호사의 1인당 환자 수는 13명으로 요양병원을 제외한 병원급 이상 의료기관 1800여개 중 87%가 간호사 인력 법정기준(환자 5명당 간호사 2명)을 준수하지 않고 있다. 나아가 낮은 봉급과 간호사의 노동가치가 제대로 보상되지 않는 수가체계도 문제다. 간호사의 고유 업무에 대한 의료비 지급은 당연한 일임에도 간호행위에 기반을 둔 독립된 간호수가 자체가 책정되지 않은 것이다. 

병원이 간호사를 뽑지 않는 문제도 있다. 간호계 관계자는 “병원에서 간호인력을 뽑지 않는 것은 비용이 보전되지 않기 때문”이라며 “(병원이 간호사를) 돈이 되지 않는 인력, 숙달이 필요없는 인력쯤으로 치부한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대한간호협회는 인력문제를 해결하려면 정부의 보상체계가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상체계가 마련되지 않으면 병원도 채용을 안 할 테고 간호사 면허소지자도 취업을 생각하지 않을 거라는 얘기다. 결국 정부지원이 있어야 인력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인력부족이 해소돼야 조직문화도 차츰 나아질 거라는 주장이다.

/그래픽=머니투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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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움과 근무여건은 다른 문제… 인식개선 필요

그러나 일선에서 일하는 간호사들은 근무여건 개선과 태움은 또 다른 문제라고 선을 그었다. 간호사 D씨(30)는 인력부족이 하나의 원인일 수는 있어도 전부는 아니라고 말하면서 자신이 경험한 것은 ‘태움 문화’라고 설명했다. 인원이 부족하지 않은 곳에도 태움은 있다는 것이다.

D씨는 “병원은 실수하면 안되는 곳이므로 긴장감을 줘야 한다. 그래야 실수를 안 하니까 그러는 것이다. 다 너네 잘되라고 그러는 것이다라는 식의 논리가 깊게 뿌리내렸다”며 “태움은 이미 하나의 문화로 자리잡았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배 간호사들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병원은 어느 정도의 긴장감은 필요한 곳이지만 사람을 괴롭히고 인격을 모욕하는 것만이 방법은 아니다”며 “내가 태움을 받으면서 일했으니 후배들도 그래야 한다는 인식이 바뀌지 않으면 인력이 보충되고 근무환경이 개선돼도 태움은 계속될 거라 생각된다”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오는 4월부터 국공립병원을 대상으로 교육전담간호사 배치와 간호사 1인당 환자수 제한 등의 시범사업에 들어간다. 간호협회 관계자는 “보건복지부가 간호사의 열악한 근무환경에 관심을 가져줬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이제 막 예산이 투입된 만큼 정책 실효성은 지켜봐야 한다”고 말했다.

 

강영신
강영신 lebenskunst@mt.co.kr  | twitter facebook

안녕하세요 머니S 강영신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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