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웅의 여행톡] 100년 전 '촛불광장의 효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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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의 첫 발자국, 되살아나는 삼일대로
되살아나는 100년 전 '그날'


천도교 중앙대교당(왼쪽)과 인사동. 인사동 골목에는 1919년 3월1일 당시 수많은 학생들이 '오후 2시'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사진=박정웅 기자
천도교 중앙대교당(왼쪽)과 인사동. 인사동 골목에는 1919년 3월1일 당시 수많은 학생들이 '오후 2시'를 위해 대기하고 있었다. /사진=박정웅 기자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朝鮮(아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민족대표 33인이 1919년 3·1운동 당시 조선의 독립을 주창한 <선언서>(기미독립선언문)의 첫 문장이다. 우리는 선언서를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다. 한때 전문을 다 외우지 못하면 매질을 당하기 일쑤였다. 국어시험과 대입시험(당시 학력고사)의 단골 문제로 출제된 까닭이다. 한자까지 달달 외워야 했으니 연습장에 구멍이 나도록 필사는 기본이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세월이 흘러 기억하는 건 첫 문장뿐. 하지만 첫 문장이라도 온전하게 건졌으니 그나마 주입식 교육의 성과일 터다.

2019년 3월1일, 3·1운동 100주년이다. 포털사이트를 뒤적여 독립선언서를 다시 읽는다. '우리는 이에 우리 조선이 독립한 나라임과 조선사람이 자주적인 민족임을 선언한다. 이로써 세계 만국에 알려 인류 평등에 큰 도의를 분명히 하는 바이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깨우쳐 일러 민족의 자주적 생존에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려 갖게 하는 바이다. … 먼 조상의 신령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우리를 돕고 온 세계의 기운이 밖에서 우리를 보호하고 있으니 시작이 곧 성공이다. 다만 앞길의 광명을 향해 힘차게 곧장 나아갈 뿐이다.'

◆되살아나는 삼일 정신

안국역 5번 출구 앞에 조성된 3·1운동 타임라인. /사진=박정웅 기자
안국역 5번 출구 앞에 조성된 3·1운동 타임라인. /사진=박정웅 기자
일제에 의한 병탄 10여년이 지난 당시 우리 민중은 기 한번 펴보지 못한 세월을 살았다. 각종 신조어가 범람하는 요즘, 민족의 결기를 담은 100년 전 선언서는 매우 낯설어 보일 수 있겠다. 그럼에도 분명한 건 선언서는 조선이 근대 자주국가임을 대내외에 알린 신호탄이었다. 또 수많은 민족대표가 머리를 맞댔으며 훗날 친일의 길을 걸었으나 글 꽤나 쓴다는 최남선이 지은 역작으로 꼽힌다. 더구나 '정의'와 '인도'에 입각한 행동 지침서 격인 <공약 삼장>은 오늘날에도 되새길 경구다.

지난해 4월 서울시는 2019년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한 '삼일대로 시민공간 조성사업'을 발표했다. 민족 최초의 거족적이고 자발적인 시민운동의 시발점이 된 3·1운동의 발상지인 삼일대로 일대(안국역-탑골공원)를 역사적 상징가로로 조성한다는 계획이다. 당시 7개 거점을 발표했는데 안국역(3·1운동 테마역사), 독립선언서 배부터(독립선언문 보관), 천도교 중앙대교(민족종교 집회장), 서북학회터(민족계몽운동의 산실), 태화관터(독립선언문 낭독), 탑골공원 후문광장(만세물결 시작), 삼일전망대(가칭)(낙원상가 옥상) 등이었다.

태화관 터 인근의 승동교회. 이곳에서도 항일운동이 일어났다. /사진=박정웅 기자
태화관 터 인근의 승동교회. 이곳에서도 항일운동이 일어났다. /사진=박정웅 기자
3월1일 삼일대로를 비롯한 서울시 곳곳에서 100주년 기념 행사가 열린다. 앞서 서울시가 1년 전 발표한 거점을 찾았다. 모두가 바쁜 일상을 핑계삼아 지나치기 쉬운 곳들이다. 독립선언서를 기억한다 한들 '그날'의 함성은 갖은 상상력을 동원해야 되살아난다. 안내문이나 표석으로 100년 전 그날을 잊지 않으려 애썼지만 시간의 흐름을 온전히 되돌릴 순 없다. 거점에서 이따금 학생단위 답사객이 눈에 띈다. 화석처럼 굳어버린 100년의 세월, 어쩌면 100주년이라도 챙기려는 그들의 여정을 속으로 응원했다.

◆안국역·수운회관·서북학회터

수운회관 천도교 중앙대교당. /사진=박정웅 기자
수운회관 천도교 중앙대교당. /사진=박정웅 기자
운현궁은 고종이 왕위에 오를 때까지 기거한 잠저다. 이곳에서 고종은 명성황후와 혼례를 치렀다. 고종은 1919년 1월21일 승하했다. 당시 일제에 의한 독살설이 파다했고 민중의 항일 감정은 극에 달한다. 3·1운동은 고종의 장례일(3월3일)에 맞춘 것이다. 공교롭게도 삼일대로의 기점인 안국역(5번출구)과 운현궁 사이엔 1971년부터 자리를 튼 일본문화원이 있다. 일본문화원에서 그들이 어떻게 일본을 알리는지 둘러봐도 좋겠다.

삼일대로는 3·1운동이 시작된 길이다. 북촌을 비롯한 이 일대에는 조선 지식인 다수가 거주했다. 북촌은 일본인 집단거주지인 남산의 남촌과 대조를 이뤘다. 경성고보, 중앙고보 등 학교도 모여 있었는데 이곳 학생들은 오후 2시를 기준해 탑골공원에 속속 집결했다.

안국역 100년의 기둥. /사진=박정웅 기자
안국역 100년의 기둥. /사진=박정웅 기자
안국역에는 기미독립선언서가 새겨진 '100년 계단'과 '100년의 기둥' 등이 조성됐다. 4번 출구 앞에는 3·1운동의 전개 상황을 정리한 타임 라인이 보도석으로 조성돼 있다. 4번 출구를 나와 걸으면 천도교 수운회관이다. 이곳에서 독립선언서 2만여장을 전국에 배포했다. 사료에 따르면 인쇄는 보성사를 운영한 이종일 선생의 집에서 했다. 이 선생은 배포까지 독립선언서를 집안에 꼭꼭 숨겼다고 한다. 수운회관 안쪽에는 손병희 선생 등 천도교도들의 집회가 열린 중앙대교당이다. 수운회관서 좀더 내려가면 서북학회터 표지석이 보인다. 서북학회는 안창호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이 설립한 애국계몽운동의 산실이다.

◆태화관·탑골공원의 의미

태화관터를 알리는 표석과 조형물. /사진=박정웅 기자
태화관터를 알리는 표석과 조형물. /사진=박정웅 기자
인사동에는 태화빌딩이 있다. 민족대표들이 1919년 3월1일 오후 2시 독립선언서를 낭독하고 만세를 부른 태화관이 있던 자리다. 기념비와 선언서 조형물이 100년 전 그날을 알린다. 낭독 당일 민족대표 33인 중 29명이 모였다 한다. 4명은 지방(해외)에 거주한다는 이유로 빠졌기 때문이다.

이날 민족대표들은 독립선언서를 낭독하지 않고 경무총감부에 붙들려갔다고 한다. 선언서를 배포하던 즈음에 종로경찰서에 독립선언서를 보냈는데 일제 경찰에 자신들의 위치를 알린 것이다. 이들은 경찰이 보낸 차량에 나눠타 총감부로 이송됐다. 

선언서는 본래 오후 2시 탑골공원에서 낭독하는 걸로 돼 있었다. 인사동 일대에서 '오후 2시'를 기다리던 학생들은 태화관에 몰려와 민족대표에게 장소변경을 항의했다. 장소변경을 주도한 이는 손병희 선생이었다는 얘기가 있다. 탑골공원에는 학생들이 많이 모이기 때문에 분노한 학생들의 유혈사태를 우려했다는 것이다. '가녀린' 식민지 지식인의 애환이랄까. 태화관 변경에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다.

태화관은 당시 요정 명월관의 인사동 지점이었다. 음식점으로 쓰이기 전 매국노 이완용의 거처(별장)였다. 그런 곳에서 조선이 자주국가임을 대내외에 선포했다. 태화관의 아이러니다.

학생들과 시민들이 선언서를 낭독한 탑골공원 팔각정. /사진=박정웅 기자
학생들과 시민들이 선언서를 낭독한 탑골공원 팔각정. /사진=박정웅 기자
이날 오후 2시 탑골공원에는 학생과 시민 등 수많은 군중이 운집했다. 2시30분, 팔각정에 오른 정재용(鄭在鎔) 선생이 선언서를 낭독했다. 고종 독살설로 분노가 치민 학생과 시민들은 종로와 동대문 일대를 훑으면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탑골공원은 우리의 '광장 민주주의' 뿌리 역할을 했다. 삼일대로 시민공간 조성사업을 맡은 서울시 관계자는 "진정한 의미에서 광장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학생을 중심으로 평범한 사람들이 이곳에 모여 한국의 자주독립을 부르짖었다"고 설명했다.

탑골공원의 손병희 선생 동상, 선언서와 3·1운동 조형물. /사진=박정웅 기자
탑골공원의 손병희 선생 동상, 선언서와 3·1운동 조형물. /사진=박정웅 기자
서울시는 3월1일 3·1운동 100주년을 맞아 다양한 기념행사를 연다. '꽃을 기다립니다', '3·1운동 100주년 기념 콘서트', '서울시합창단 유관순 오페라 칸타타', '서울과 평양의 3·1운동', 태화관길 거리공연 등 문화공연과 독립운동가 추모전시, 현대미술 전시 같은 문화행사도 개최한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1호(2018년 2월26일~3월4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정웅
박정웅 parkjo@mt.co.kr  | twitter facebook

자전거와 걷기여행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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