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까지 간 ‘노동이사제’, 안하나 못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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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길 먼 ‘경영 선진화’] ③국내 도입은 시기상조… 왜?

노동이사제가 올 주주총회시즌에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노동이사제는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에 들어가 발언권과 의결권을 행사하는 제도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을 공약했고 정부는 ‘국정운영 5개년 계획’을 발표하며 공공기관의 노동이사제 도입을 추진 중이다. 지난해 서울시, 광주시 산하기관은 노동이사제를 도입했고 인천 등 지방자치단체들은 이를 적극 검토 중이다. 공공기관 대표격인 국민연금도 실무협의에 들어갔고 산업은행 등 국책은행도 노동이사제 도입에 팔을 걷었다.

하지만 반발도 만만찮다. 노동이사제는 국내 기업의 지배구조를 투명하게 개선해 경영선진화를 기대할 수 있다. 그러나 경영진의 의사결정이 늦어지고 투자가 위축될 수 있다는 주장이 첨예하게 맞선다.

◆청와대까지 간 노동이사제 바람

국회에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공운법)이 계류됐다. 공공기관이 노동이사제를 도입하려면 임원 임면을 담은 공운법 제25조와 제26조가 개정돼야 하지만 야당의 거센 반발에 차일피일 미뤄지고 있다. 일부 공공기관은 노동이사제 대신 참관제를 시범 도입했다. 의결권이 없는 노동자 대표가 이사회에 참여하는 방식이다.

관치에 노출된 금융권은 낙하산 인사를 막을 견제장치로 노동이사제를 끊임없이 시도하고 있다. 올해 KDB산업은행과 IBK기업은행 등 국책은행 노조가 주총에서 노동이사제 도입을 추진한다.

산업은행 노조는 이달 중 노사협의회에서 이를 안건으로 올려 사측과 논의할 계획이다. 산업은행은 이동걸 회장이 노조위원장 출신 최대현 전 비서실장을 기업금융부문 부행장으로 선임하면서 노조추천 사외이사 선임에 긍정적인 기류가 흐른다.


기업은행 노동자 추천 이사 선임촉구 기자회견. /사진제공=금융노조
기업은행 노동자 추천 이사 선임촉구 기자회견. /사진제공=금융노조

최근 기업은행 노조는 금융노조 출신 박창완 금융위원회 금융발전심의위원을 사외이사로 추천하고 청와대와 국회에 전방위로 협조를 구하고 있다. 금융노조는 청와대 이용선 시민사회수석과 면담하고 민병두 정무위원장을 만나 협조를 요청했다.

기업은행 사외이사는 정관에 따라 은행장이 제청하고 금융위원장이 임명한다. 노조가 추천한 사외이사를 선임하려면 중소기업은행법 일부를 변경해야 한다.

기업은행은 내부규범에 따라 신규 사외이사가 이사회 운영위원회의 관문을 넘지 못하면 은행장 제청과 금융위 임명 단계에 도달할 수 없다. 기업은행의 지분 50.9%를 보유한 기획재정부와 금융당국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앞서 KB국민은행은 세차례 노동이사제 도입을 추진했다. 올해 KB금융그룹 노동조합협의회(KB노협)는 백승헌 변호사를 사외이사로 추천했지만 지난 총파업을 기점으로 노조를 향한 여론이 싸늘해져 노동이사제 도입을 철회했다. 금융당국은 은행권의 노동이사제 도입에 미온적이다.


청와대까지 간 ‘노동이사제’, 안하나 못하나?
기업은행 노동자 추천 이사 선임촉구 기자회견. /사진제공=금융노조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노동이사제 취지는 대주주 전횡 방지와 근로자 권익보호”라며 “금융권은 임금이나 복지 등 근로여건이 다른 산업보다 양호하기 때문에 노동이사제 도입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반대했다.

국민연금의 노동이사제 도입도 난항이 예상된다. 당장 공운법 개정을 기대하기 어렵고 국민연금이 지분을 갖는 민간기업에 노동이사제 압박을 가해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국민연금이 5% 이상 지분을 보유한 기업은 지난해 12월 기준으로 303개다. 지분 5% 이상을 가진 주주면 이사회 구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획재정부 측은 “법 개정안이 상임위 소위에서 논의되고 있지만 아직 진척이 없다”며 “정부 국정과제에 포함된 만큼 노동이사제 추진에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청와대까지 간 ‘노동이사제’, 안하나 못하나?
기업은행 노동자 추천 이사 선임촉구 기자회견. /사진제공=금융노조
◆유럽 19개국 도입, ‘원조’ 독일도 달라

유럽노동조합연구소에 따르면 독일·네덜란드·아일랜드 등 유럽 19개국은 일찌감치 노동이사제를 도입했다. 그리스, 아일랜드, 스페인, 포르투갈 등 4개국은 공공부문에만 적용했고 독일은 500명 이상 근로자가 근무하는 사업장이면 공공과 민간을 불문하고 모두 근로자 이사를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국내에는 금호타이어가 노동법학자인 최홍엽 조선대 교수를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하지만 이는 채권단인 산업은행이 추천했으며 노조가 추천한 근로자를 사이외사로 선임한 사례는 전무하다.

정부는 국내 기업에 노동이사제를 도입해 민주적인 의사결정 구조가 구축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유럽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노동이사제를 국내에 도입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는 반박이 거세다.

노동이사제 원조격인 독일도 기업의 경쟁력 약화와 비효율성 문제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다. 글로벌 기업인 알리안츠그룹(금융), 바스프그룹(화학), 이온(에너지)은 노동이사제 도입 부작용으로 독일국적을 포기했다. 근로자의 경영참여가 늘어 주주의 압박이 심해지자 지배구조가 자유로운 유럽식 유한책임회사(SE)로 전환했다.

독일은 기업의 90% 이상이 유한회사로 운영되는 반면 우리나라는 90% 이상이 주식회사다. 주주의 가치제고를 최우선으로 하는 우리나라 주식회사 제도와 노동이사제가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본주의가 정착된 미국은 증권법에 노동이사제를 의무하는 조항이 전혀 없다. 일본은 정부가 회사법 개정 작업을 하면서 노사공동결정제도 도입을 검토했지만 노동법학자들과 경제계의 반대로 철회했다.

추광호 한국경제연구원 일자리전략실장은 “금융시스템, 자본조달, 회사형태 등이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작동하는 유럽의 노동이사제를 우리나라에 도입할 경우 사업구조조정, 해외사업 진출 등 전략적 의사결정 과정에서 주주의 이익이 침해받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노동이사제가 있는 독일도 경영 의사결정이 아닌 감사위원회에 참여하는 형태”라며 “공공기관 내부 이해관계자가 경영에 참여하면 정부·국민과 이해상충이 발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4호(2019년 3월19~2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이남의
이남의 namy85@mt.co.kr

안녕하세요. 머니S 금융팀 이남의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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