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내년 주총엔 '도장깨기' 가능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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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이변은 있었다. 국내 최대기금인 국민연금이 행동에 나섰고 건국이례 최초로 대기업 재벌 총수가 대표이사 연임에 실패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상장사 정기 주주총회에서 사모펀드부터 국민연금까지 다양한 세력이 주주가치 제고라는 대의명분을 내세웠음에도 뜻을 관철시키는 데 실패했다. 우리나라 재계의 근간인 기업지배력, 즉 의결권에 대한 견제시도는 작은 의의를 남긴 채 ‘찻잔 속의 태풍’에 그쳤다.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삼성전자 제50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입장을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사진=뉴시스 이영환 기자
지난 20일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삼성전자 제50기 정기 주주총회’에서 주주들이 입장을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사진=뉴시스 이영환 기자

◆삼성·현대차·한진 주총, 이변 無

올해 정기주주총회는 이례적으로 이슈가 많았다. KCGI(일명 강성부펀드)가 한진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는 한진칼에 사외이사를 추천하며 주목받은 것을 시작으로 현대차그룹에는 외국계 행동주의 펀드인 엘리엇이 배당 확대와 사외이사 추천을 주주제안으로 주총 안건에 올렸다. 삼성전자와 몇몇 대기업에는 국민연금이 일부 안건에 반대표를 던져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대한항공이다. 대한항공의 2대 주주인 국민연금이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연임을 반대하면서 결국 주총 표대결에서 승리한 것. 조 회장은 대한민국 건국 이래 최초로 등기이사 연임에 실패한 대기업 총수로 낙인 찍혔다.

그러나 이외의 안건들은 대부분 부결됐다. 한진그룹의 경우 고등법원이 KCGI의 주주제안을 할 자격이 없다고 판단하면서 주총안건에 오르지 못했다. 지난달 21일 서울고등법원은 한진칼 제6기 정기 주주총회의 의안으로 KCGI측의 특수목적회사인 유한회사 그레이스홀딩스의 주주제안 안건을 상정하라는 서울중앙지방법원의 결정을 뒤집고 한진칼의 항고를 인용했다. 
 
지난 1월31일 주주제안에 나서면서 “한진칼의 고질적 문제인 지배주주 일가의 전횡을 방지하고 낙후된 지배구조 문제를 개선해 회사의 기업가치를 증대하고자 한다”고 입장을 밝혔다.

해당 판결에 대해 KCGI는 “국내 토종펀드로 한진그룹 지배구조개선이라는 염원을 가지고 지금까지 왔으나 거대 재벌의 힘 앞에서 주주제안조차도 할 수 없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 무력감을 느낀다”며 “한진그룹의 신속한 지배구조개선을 통한 정상화를 기대하셨던 주주, 직원 및 고객들의 뜻에 KCGI가 부응하지 못하게 된 점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한다”고 했다.
 
한진칼 오너일가는 이번 판결로 경영권 위협을 넘겼으나 논란은 남았다. 이후 경향신문이 해당 판결에 대해 ‘재판부가 대법원 윤리규정을 위반했다’는 취지의 보도를 한 것이다. 이 신문은 법조계 관계자를 인용해 해당 재판부가 사실상 판사의 남편이 일하는 로펌 사건을 처리했다고 지적했다.

한진칼은 지난달 29일 열린 주주총회가 시작되기도 전에 찝찝한 ‘부전승’을 올린 반면 현대차그룹은 ‘완승’을 거뒀다.

지난달 22일 열린 현대차 주총에서 엘리엇과 현대차의 표대결이 이뤄진 의안은 현금배당과 사외이사 선임건이다. 현대차는 보통주 1주당 3000원의 현금배당을, 엘리엇은 보통주 1주당 2만1967원의 현금배당을 제안했다. 결과는 현대차가 내놓은 안건이 86%의 찬성을 얻어 압승했다. 이는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와 글래스 루이스 등이 엘리엇의 제안에 반대를 권고해 예견된 결과라는 평가다. 사외이사 선임에서도 현대차가 추천한 사외이사 3명이 80% 안팎의 찬성표를 받아 선임됐다. 이외 안건은 모두 원안대로 승인됐다.

삼성전자의 경우 사외이사 선임건으로 주목을 받았다. 사외이사 후보 중 박재완 전 기획재정부 장관과 안규리 서울대 교수의 과거 이력이 재조명돼 중립성 논란이 일었다. 일부 기관이 반대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최대 ‘큰손’인 국민연금이 이를 모두 찬성하며 이견없이 넘어갔다.

지난달 16일 열린 현대자동차 제50기 정기주주총회. /사진=뉴시스 추상철 기자
지난달 16일 열린 현대자동차 제50기 정기주주총회. /사진=뉴시스 추상철 기자

목소리 낸 국민연금, 내년엔 더 세질까

이번 주총시즌에서 상장사에 대한 견제시도가 성공한 사례는 나오지 않았지만 의의는 있다. ‘거수기’라는 비판을 들었던 국민연금이 본격적으로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 삼성전자 주총에서 비판의 여지가 있는 찬성표를 던졌다는 점과 반대표에 대한 상장사의 반발도 나왔지만 주주권익 보호와 국민의 연금 사수라는 거시적 목표를 봤을 때 진일보한 모습이란 평가가 나온다.

국민연금은 이례적으로 의결권 행사 방향을 사전 공개했다. 지난달 27일 기준으로 공개된 내용을 살펴보면 14개 상장사에 대해 1건 이상 의안에서 반대표를 던졌다. 국민연금은 한글과컴퓨터, 키움증권, 대상, 한국단자공업, 하나투어, SBS콘텐츠허브 등 6개 상장사에서 이사 선임과 관련해 반대 의견을 냈다. 나머지 8개사는 경영성과 대비 과다한 이사보수 한도 승인에 반대했다.

이런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는 수익성 재고를 위해 꼭 필요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특히 글로벌 경기 둔화 우려로 수익성에 '빨간 불'이 켜진 국민연금 입자에서는 좀더 적극적인 의결권 행사가 필요해 보인다. 앞서 신성환 홍익대 교수는 한 세미나에서 국민연금의 투자수익률을 연간 3.5% 끌어올릴 수 있다면 보험료를 올릴 필요가 없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상장회사를 대표하는 한국상장회사협의회는 국민연금이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 및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의결권 행사’가 필요하다고 반발했다. 스튜어드십 코드 채택 후 처음 맞는 3월 주총에서 국민연금이 과도하게 경영진 견제에만 치우치지 말고 장기적 기업가치 제고 관점에서 의사결정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우용 상장사협의회 전무는 지난달 25일 “국민연금이 의결권 행사 사전공시를 통해 반대의사표시를 한 14개사의 의안분석 결과 대부분 ‘이사·감사 선임’과 ‘이사보수한도 상향’에 반대한 것으로 나타났다”며 “특히 확정된 범죄가 아닌 혐의만을 받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경영진 선임 반대를 결정하는 것은 불합리하고 경영자도 헌법상 권리인 죄형법정주의와 무죄추정 원칙의 보호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최근 주요 회사의 경영진 선임에 반대한 국민연금의 의사결정에 대해 상당수 상장기업들이 우려를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86호(2019년 4월2~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기영
박기영 pgyshine@mt.co.kr

머니S 증권팀 박기영입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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