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 안하면 이렇게 된다고요?"… '배달 노동자'의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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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달앱과 배달대행의 등장이 ‘짜장면 배달’로 대표되던 전통적 배달의 개념을 바꿔놨다. 이제 배달이 안되는 곳을 찾기 힘들며 먹거리도 진화하는 모양새다. <머니S>가 배달천국이 된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조명했다. 점점 커지는 배달앱, 배달대행시장이 낳는 장·단점과 배달료 인상 가능성도 살펴봤다. 또 현장을 누비는 배달기사의 목소리와 대행업체가 보는 배달서비스시장의 전망 등을 들어봤다. <편집자주>

[배달전쟁-⑤·끝] '현장의 소리'를 듣다


# 30도를 웃도는 날씨. 긴팔 티셔츠와 두툼한 청바지에 조끼까지 껴입은 배달노동자가 헬멧을 벗어 오토바이 손잡이에 걸어둔다. 잠시 벤치에 앉아 음료로 목을 축이던 그는 휴대전화를 한번 확인하더니 손잡이에 걸어둔 헬멧을 다시 쓰고 서둘러 오토바이 시동을 건다. 하루에 보통 60~70건을 배달해야 한다는 그는 아직 절반밖에 하지 못했다며 오토바이에 올랐다. 신호등의 빨간불은 그에게 차마 멈추라고 하지 못하는 듯하다.

최근 배달대행업체수가 급증하고 이에 따른 배달대행기사(배달노동자)수도 크게 늘었다. 하지만 적절한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빠르게 덩치만 커진 탓에 배달노동자는 아직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다. 배달노동자 간 콜경쟁까지 치열해지면서 사건·사고 소식도 끊이질 않는다.

이런 가운데 고용노동부의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마저 논란이 되자 제도권에서 소외됐던 배달노동자들이 드디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머니S>는 현직 배달노동자들이 모여 만든 단체 라이더유니온의 구성원들을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박정훈 라이더유이온 위원장이 ‘라이더를 리스펙’이라는 문구가 담긴 머플러를 들고 있다. /사진=라이더유니온 공식페이스북 캡처
박정훈 라이더유이온 위원장이 ‘라이더를 리스펙’이라는 문구가 담긴 머플러를 들고 있다. /사진=라이더유니온 공식페이스북 캡처

◆정직한 직업, 배달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배달천국'이다. 정확한 주소가 없어도 배달이 가능하다. 캐나다에서 여행을 온 마크 맥코맥씨(34)는 “한국인 친구들이 한강공원에서 자연스럽게 배달음식을 시켜 먹는 걸 보고 놀랐다”며 “정확한 위치를 알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찾아오는 걸 보고 신기했다”고 말했다.

과거 1990년대 한 휴대전화 광고에서는 중국집 배달노동자가 마라도에서 시킨 음식을 가져다주기 위해 철가방을 들고 “짜장면 시키신 분”을 외친다. 당시 한 통신사의 우수한 통화품질을 부각시키기 위해서였지만 우리나라 특유의 배달문화가 녹아든 광고였다.

그러나 이런 배달문화가 배달노동자들의 권리는 철저히 외면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기자가 만난 라이더유니온 소속 A씨는 배달문화, 정확히는 배달노동자에 대한 사회적 인식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A씨는 “배달도 나름 수익성이 있어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했던 인력이 대거 유입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배달대행산업이 크게 발전했다고 하지만 일반인의 배달노동자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차별적”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배달 도중 엘리베이터에서 만난 아주머니와의 에피소드를 꺼냈다. A씨는 “엘리베이터에 탄 아주머니가 저를 힐끔 보더니 들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데리고 있던 자녀에게 ‘너도 공부 안하면 저렇게 고생하는 거야’라고 조그맣게 말하더라”며 “그 말을 듣고 내릴 때 이 일을 하면서 빚도 갚고 집도 샀다고 쏘아붙였다. 배달하는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이 보통 그렇다”고 토로했다.

명문대 출신인 A씨는 과거 요식업을 하다가 수천만원대의 빚을 져 이 일을 시작했다. 배달노동자 5년차에 접어든 그는 이미 빚을 다 갚았고 서울시내에 20~30평대 집을 마련해 여자친구와의 결혼을 준비 중이다. A씨는 “빚이 있는 상황에서 평범한 직장생활을 했다면 결혼도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일은 좀 고되지만 그만큼 보수가 나오기 때문에 매우 정직한 직업”이라고 설명했다.


라이더유니온 깃발. /사진=라이더유니온 공식페이스북 캡처
박정훈 라이더유이온 위원장이 ‘라이더를 리스펙’이라는 문구가 담긴 머플러를 들고 있다. /사진=라이더유니온 공식페이스북 캡처

◆배달천국? 배달지옥!

배달노동자 근무여건과 수익은 과거보다 많이 나아졌다. 배달대행업체 B사에 소속된 C씨의 경우 건당 약 3000원을 받고 하루에 보통 50~60건을 처리한다. 하루에 15만~18만원, 주 6일 근무 시 월평균 430만원 정도다. 업체에서 가져가는 수수료 등을 제하더라도 매달 350만~400만원을 번다는 게 C씨의 설명이다.

다만 어디까지나 절대적인 수치일 뿐이고 제도적인 보호나 시스템이 갖춰지지 않기 때문에 개선해야 할 사항은 여전히 많다. 배달대행기사 모집절차부터 문제다. 현재 배달대행업체와 배달노동자 간의 근로계약서는 존재하지 않는다. 배달노동자는 특수형태근로종사자(특수고용직)로 형식상 사업주로 분류돼 근로기준법·노동조합법을 적용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보험료, 안전장비, 정비 등에 필요한 비용은 고스란히 배달노동자 몫이다.

하지만 이들은 회사가 정한 보수·서비스 수수료를 적용받는 사실상 근로자다. 특히 배달노동자들은 출퇴근, 휴무뿐만 아니라 일정량의 배달건(강제배정)에 대해서도 업체로부터 일방적인 요구를 받는다.

C씨는 “얼마 전 고용노동부 산재예방정책과와의 간담회에서 기관 관계자가 배달노동자는 배달건을 선택할 수 있어 비교적 자유롭지 않느냐고 물었다”며 “강제배정시스템을 보여주자 관계자 역시 ‘이런 시스템이라면 근로자’라며 인정했다”고 말했다.

◆정부는 여전히 '탁상행정'

정부의 배달현장에 대한 인식부족은 고용노동부가 입법예고한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 논란에서 찾을 수 있다. 고용노동부는 지난 4월 배달노동자 사고를 막기 위해 주행 중 콜받기를 금지하는 내용이 담긴 산업안전보건기준에 관한 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배달노동자들의 안전을 앞세운 이 개정안이 정작 배달노동자들의 현실을 외면했다는 지적이다.

배달노동자 D씨는 “정부가 현장 실태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며 “간담회를 통해 개정안이 배달현장에 대한 이해도가 부족하다는 의견을 전달하자 관계자들도 이 점을 인정하고 검토해보겠다는 의견을 줬다”고 말했다.
박정훈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은 개정안에 대해 배달노동자의 개별행위 규제가 아닌 제도적 개선을 촉구했다. 박 위원장은 “주행 중 콜 금지는 배달노동자 개별행위에 초점이 맞춰졌다”며 “배달노동자의 안전을 위해서는 배달료를 올리고 배달보험료·보장범위 현실화가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륜차 운전자 보험은 ▲출퇴근용 ▲유상운송용 ▲무상운송용 등으로 구분된다. 배달노동자는 유상운송용에 가입하며 연령·운전경력·보상비율에 따라 보험료가 차이가 크다. 유상운송용 책임보험은 연간 500만원 수준이다.

기승도 보험연구원 수석연구원은 “보험료를 현실화하려면 유상운송 사고율을 줄이는 제도적·사회적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595호(2019년 6월4~10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홍승우
홍승우 hongkey86@mt.co.kr

머니S 증권팀 홍승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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