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람] 마을실험실? '혁신' 이름 딴 '수상한 마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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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혁신파크 미래청에서 만난 황인선 서울혁신센터장. /사진=박정웅 기자

황인선 서울혁신센터장 "사회혁신, 지역민에서 비롯"
앎·꿈·함… '3합'의 공간 '마을실험실'
"지역의 혁신 '날갯짓', 나비효과 거둘 것"

서울 하늘 아래 양파와 같은 마을이 있다. 캠퍼스 한쪽에 죽치고 앉아 한참을 지켜봤다. 오가는 이들과 공간의 정체를 딱 한마디로 정리할 수 없는 수상한 곳, 바로 서울혁신파크다. 이 수상한 마을은 어쩌면 양파보다는 러시아 인형인 마트료시카가 더 가까울 수 있겠다. 인형 안에 어떤 인형이, 그 인형에 또다른 어떤 인형이 숨겨져 있는지 알고싶어 안달이 나기 때문이다.

서울시 은평구 녹번동. 길목 좋은 통일로에 자리한 이 마을의 이장을 만났다. 새내기 이장인 황인선 서울혁신센터장(56)이다. 지난 7월8일 부임했으니 채 두달이 안 된 셈이다. 황 센터장은 춘천마임축제 총감독과 KT&G 미래팀장을 역임한 문화마케터다. 컨셉추얼리스트로서 마케팅과 스토리텔링, 도시 브랜딩에서 굵직한 획을 그었다. <꿈꾸는 독종> <동심경영> <생각 좀 하고 말해줄래> <컬처 파워> 등 핫한 다수의 저서도 냈다. 그런 그가 수상한 마을의 이장을 맡았다.

앞서 서울혁신파크의 정체가 궁금했다. ‘장님 코끼리 만지기’라고 힐난을 해도 어쩔 수 없다. 도통 그 정체를 헤아릴 수 없어서다. 또 ‘혁신’이라는 단어에 목이 탁 막혔다. 그럼에도 혁신에 방점을 찍은 곳이기 때문에 수십번을 곱씹었다. 그럴수록 ‘혁신’은 서울혁신파크 하늘의 뜬구름처럼 손가락 사이를 빠져나갔다.

한국사회 발전사에서 ‘혁신’이 이념지향성의 꼬리표를 달고 다닌 탓도 있겠다. 이념과 진영논리의 편향에서 선 강한 기의를 지녔기 때문이다. 다행이었다. 황 센터장 또한 비슷한 고민이었단다. 이노베이션, 차라리 익숙한 영어식 표현이 서울혁신파크의 정체를 설명하기에 낫겠다.

◆서울혁신파크의 현주소

내년 4월 서울혁신파크가 5주년을 맞이한다. 국립보건원과 질병관리본부가 있던 자리다. 현재 27개동에 입주한 단체는 250곳이 넘는다. 상주하는 이들을 합치면 1300명 수준. 여기다 출입하는 외부인을 더하면 일평균 2000여명이 서울혁신파크를 누빈다.

서울혁신파크는 마치 잘 조성된 대학 캠퍼스를 방불케 한다. 낮은 건물과 덩치 큰 나무가 어우러진 캠퍼스는 오랜 세월 수많은 얘기를 품은, 다정다감한 마을처럼 여겨진다. 취업과 스펙을 쫓는 요즘의 학원가와는 다른 ‘참대학’ 맛도 난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의 주체는 청년층에서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계층이 다양하다.

뿐이랴. 입주단체의 면모도 그렇다. 안티카, 이제, 깍두기단, 삼색불광파, 나우칼폴라니사회경제연구소, ㈜문예콘서트 등 정체가 미루어 짐작되거나 아니면 도통 알 수 없는 문패들이 즐비하다. 말 나온 김에 서울혁신파크의 현주소를 황 센터장에 들어봤다.

“과거 질병관리본부가 쓰던 건물들이라 노후했습니다. 그렇지만 그 자체가 히스토리며 시그니처 콘텐츠이기도 하죠. 그 공간을 당장 돈 되는 아파트로 개발하지 않고 혁신파크로 만든 것 자체가 이미 서울시의 혁신입니다. 서울혁신파크는 미국이나 유럽의 리빙랩(Living Lab)에 가깝다고 할 수 있어요. 리빙랩은 ‘살아있는 실험실’ ‘우리마을 실험실’로서 사용자(주체)가 직접 문제를 해결해가는 참여형 혁신공간인 것이죠. 청년허브, 사회적경제지원센터 등 다수의 중간지원 조직이 입주해 있습니다. 130여 입주사들은 서울혁신센터가 관리지원하는 미래청, 상상청, 팹랩, 맛동, 비전화공방 등을 사용합니다.”

◆앎·꿈·함 ‘3합’의 공간, 마을실험실

서울혁신파크를 압축하면 사회를 변화시키는 ‘우리마을 실험실’ 쯤 되겠다. ‘사회의 변화’는 ‘마을의 변화’에서 비롯하니 그것이 곧 ‘혁신’ 되시겠다. 주체로부터, 주체들이 엮인 마을공동체의 변화, 그리고 마을주민의 변화, 공동체의 복원, 다시 사회의 변화…. 혁신을 지향하는 입주사와 주체들의 작은 날갯짓이 잠정(?)의 나비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 그것이 바로 황 센터장이 서울혁신파크를 새롭게 정의한 ‘앎, 꿈, 함’ 3합의 공간 아니겠나 싶다.

서울혁신센터의 심장이랄 수 있는 미래청의 간판을 보면 이곳의 정체를 확인할 수 있다. ‘상상이 현실과 만나는 수천가지 이야기’라는 어깨에 ‘변화를 이끄는 사람들의 사회혁신 실험실’이라는 날개를 달은 것. 입주사들의 다양한 면모에서 알 수 있듯 ‘실험’의 대상은 사회의 모든 분야에 걸쳐 있다. 자신 만의 강점을 깊게 하는 동시에 영역을 가리지 않는 협업까지 자연스레 이뤄진다. 따라서 이곳 주체들의 시너지는 클 수밖에 없다.

새내기 이장이고 사회혁신 분야와는 결이 다른 문화마케터지만 황 센터장은 실은 서울혁신파크와 인연이 있다. 2017년 ‘앎, 꿈, 함’ 3합의 공간을 앞세운 서울혁신파크의 슬로건을 제시했다. 건강한 사회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회혁신에 대한 관심이 많았다는 방증이다. 황 센터장은 앞으로 ‘사회혁신’이라는 용어가 친숙해질 거라는 기대감도 내비쳤다.

“서울혁신파크는 한국의 사회혁신을 이끈다는 평입니다. 다른 도시에도 서울혁신파크를 공부한 혁신파크들이 생기고 있죠. 2017년 사회혁신이 국가의 주요의제로 등장했는데 청와대 조직의 사회혁신수석실만 봐도 사회혁신의 중요성은 확인되죠. 또 정부조직인 행안부에 사회혁신과가 신설됐고 산업부도 혁신파크 모델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전국에 동시다발적으로 혁신파크를 꾸리겠다는 구상 속에서 올해는 군산과 창원이 선정됐고 전주, 춘천, 대전, 제주도 가동 가시권에 들어왔습니다. 다만 한국사회에서 사회혁신의 경험치를 고려할 때 신중한 접근이 필요합니다.”

서울혁신파크는 기초부터 틀을 단단히 다지고 있다. 입주사들의 보다 단단한 엑셀러레이팅을 위해 큰 틀에서 차분하면서도 진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다. 현재 서울혁신파크는 총 3단계의 마스터플랜 중 내년 4월 5주년을 맞아 2단계로 나아가고 있는 것. 황 센터장은 “3만3000평의 너른 공간에 1단계만 조성됐고 곧 2단계가 완료된다. 경과적으로 조성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주 서울혁신파크에서 열린 적정기술공방의 서울시 '집수리 아카데미 현장실습'. 서울혁신파크는 열린 공간을 지향한다. /사진=박정웅 기자

◆'혁신'기업, 세상을 바꾸다

서울혁신파크의 성과는 무엇일까. 성급한 질문일 수도 있었다. 사회적경제를 지향하는 사회혁신 분야에서 일반 스타트업처럼 입주사들의 성과를 묻는 것 자체가 무리일 수 있어서다. 이에 대해 황 센터장은 “성공 포인트를 어디에 둬야 하는지 냉정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본과 영업익을 중시하는 일반적인 스타트업의 성공 포인트와 다르다는 것. 그러면서 사회로 진출해 혁신의 ‘꿈’을 펼치고 있는 ‘함’의 사례를 소개했다.

“세눈컴퍼니는 피폐한 탄광촌에 활력을 불어넣었습니다. 강원도 정선의 고한 골목박물관이 그것인데 2~3년 걸친 노력 끝에 마을에 생기가 돌 게 한 거죠. 근사한 여행지로 재탄생한 데는 세눈컴퍼니의 역할이 컸습니다. 시소는 15미터 이상의 교목(큰 나무)에 집중해요. 보존가치가 있는 나무를 찾아서 건강한 숲을 만들겠다는 것이죠. 궁극적으로는 미세먼지를 줄이는 데까지 나아갑니다. 교육과 놀이터로서 숲을 새롭게 해석합니다. 또 있어요. 공간만세는 공정여행사인데 입주할 때는 단 한명만 들어왔던 곳이 지금은 한국에 4개 지부를 두고 있습니다. 일본에도 지부가 있고요. 사회혁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모아서 사회혁신 투어를 하는 곳입니다. 한해 6000여명이 투어에 나섰는데 이중 2000여명이 서울혁신파크를 다녀왔습니다.”

서울혁신파크는 이제 한국을 넘어 해외서도 공부하러 오는 곳이 됐다. 홍콩과 대만의 사회혁신가들이 방문한 뒤 현지에 혁신파크를 연 것. 일본도 서울혁신파크의 모델에 상당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황 센터장은 팹랩을 주목했다. 그에 따르면 팹랩은 제작실험실의 약자로 디지털기기, 소프트웨어, 3D프린터와 같은 실험 생산장비를 구비해 예비창업자, 중소기업가 등이 기술적 아이디어를 실험하고 구현해보는 공간이다. 크리스 앤더슨이 말한 메이커스와 연결돼 지역사회 차원의 풀뿌리 과학기술혁신 활동을 한다.

“팹랩 같은 경우도 글로벌 사회에서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습니다. 팹랩아시아네트워크를 유치한 것은 큰 성과입니다. 서울시 팹시티 2054는 생산과 소비를 도시에서 70% 이상 한다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앞서 서울혁신파크는 지난달 ‘더 큰 연결’(Preparations for Greater Connection)을 주제로 ‘2019 혁신파크포럼’을 개최했다. 국내외 사회혁신 기관들이 참가한 글로벌 포럼이었다. 이 포럼에서 서울혁신파크를 중심으로 ‘아시아 사회혁신기관 네트워크의 허브’로 성장한다는 계획도 밝혔다. 서울혁신파크가 한국을 넘어 아시아의 사회혁신 ‘심장’으로 기능하겠다는 선언이다. 포럼에는 대만의 타이중 사회혁신 실험기지, 네덜란드 옥상단체이면서 유럽옥상네트워크를 운영하는 로에프 등이 참가했다.

◆혁신은 지역에서… 지역민 '1명'에 집중하는 이유

2단계 경과적 조성에 따라 사회혁신 캠퍼스로서의 서울혁신파크의 면모가 기대된다. 황 센터장은 “특히 은평구민이 꿈에 그리던 공간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왜 그럴까.

“1대 8대 25대 81,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으나 이 수치에는 울림이 큽니다. 해외의 지역관광 데이터와 관련된 것인데 지역에 사는 사람 1명의 가치를 환산하면 1년에 1250만원입니다. 이 사람이 마을을 떠날 경우 그 가치를 메우려면 박을 기준해 해외관광객이 8명이 와야 한다는 뜻입니다. 또 내국인 관광객은 25명이 와야 1250만원의 가치가 생긴다는 겁니다. 당일치기의 경우는 내국인 관광객 81명에 해당합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사회혁신은 지역민 ‘1명’을 떠나지 않게 하는 겁니다. 주체의 삶이 변화해 지역에 계속 머무는, 우리의 사회혁신은 이 ‘1’에 집중합니다.”

2단계 조성 공간인 상상청 한쪽에는 파쿠르 체험시설이 눈에 띈다. 방과후 시간이나 주말 지역의 많은 청소년들이 서울혁신파크를 찾는다는 것. 문득 훈습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놀고 즐김으로써 ‘혁신’은 그들의 몸에 자연스레 스며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서다. 그들이 곧 ‘1’이 아니겠는가.
 

박정웅 parkjo@mt.co.kr  | twitter facebook

자전거와 걷기여행을 좋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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