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품설명서도 모르는데"… 수술대 올라간 '보험약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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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이 보험약관을 수술대에 올린다. 복잡하고 어려운 용어가 가득한 보험약관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순화해 약관 오해로 발생하는 민원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험업계의 반응은 미지근하다. 정작 민원과 약관은 큰 연관관계가 없다고 판단해서다. 오히려 상품설명서만 강조하는 현재의 영업풍토가 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보험약관 제도개선 점검 간담회. /사진제공=금융위원회
보험약관 제도개선 점검 간담회. /사진제공=금융위원회

◆60점짜리 약관 만드는 보험사

지난달 말 금융위원회는 내년부터 쉽고 착하게 만들어진 보험약관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치매보험, 즉시연금, 암보험 입원일당 등 각종 보험관련 분쟁이 불명확한 약관에서 기인했다고 여겨서다. 실제로 암보험금 미지급 분쟁은 약관에서 ‘암의 직접치료’ 부분이 문제가 돼 발생했다. 금융당국은 현재의 애매모호한 약관을 쉽게 수정해 소비자민원을 줄이겠다는 방침이다.

금융위는 우선 그림·표·그래프 등을 활용해 보험약관의 핵심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각화된 약관 요약서’를 마련해 내년 2·4분기 제공할 예정이다. 쉽게 말해 전체 약관을 시각화해 요약한 요약본을 제공하겠다는 뜻이다. 현재도 많은 소비자들이 약관 전체를 읽기 어려워하는 점을 고려했다. 또 ‘약관 이용 가이드북’ 신설과 함께 보험약관의 주요 내용을 동영상으로 제작하고 QR코드와도 연결해 스마트폰으로도 볼 수 있게 한다.

보험사의 보험약관은 내용이 어렵고 복잡한 편이다. 어려운 의학용어나 보험업과 관련된 문구들이 많아 일반인이 이해하기 쉽지 않다. 금융당국은 수년전부터 보험사들에게 약관을 쉽게 만들라고 권고했다. 이에 많은 보험사들이 약관에서 그래프나 상세설명을 추가하는 등 노력을 기울이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해외에서는 일찌감치 보험약관을 쉽게 만들도록 유도했다. 미국은 1978년, 생명보험과 의료보험 약관용어 간명화법이 도입돼 ‘보험약관 가독성 테스트’를 실시하고 있다. 문장이 짧으면서도 핵심내용을 전달하고 있는지, 글씨 크기나 줄 간격까지 체크하는 테스트다. 일본도 1980년대부터 약관에 만화형태의 설명자료를 첨부하고 있다. 보험사들의 약관개선 노력이 부족하자 금융당국은 아예 보험약관을 평가해 점수화하는 방식을 도입했다.

보험개발원은 금융위의 위임을 받아 2011년부터 ‘보험사 보험약관 이해도 평가’를 1년에 두번씩 실시한다. 보험사 약관 점수를 공개해 자극하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올 4월 실시된 제17차 평가결과에 따르면 생명·손해보험사의 약관이해도 점수는 3년 전 평가점수와 비교해 별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낮아졌다.

생보사 23곳의 정기·종신보험 평균 점수는 69.3점으로 2016년보다 0.3점 증가하는 데 그쳤다. 손보사 15곳의 장기보험상품의 약관 이해도는 평균 62.2점으로 2016년 63.8점에서 오히려 떨어졌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초기 평균 50점대에 비하면 보험사들의 약관개선 노력은 분명히 진행된 측면이 있다”면서도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정체된 느낌이다. 평균 60점대 약관을 만들어놓고 보험사들은 여전히 민원이 발생하면 소비자 탓만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상품설명서도 모르는데"… 수술대 올라간 '보험약관'

◆약관 중요성 모르는 소비자

현재 일부 보험사들은 이미 약관에 시각화된 그래프와 설명을 첨부하고 있다. 금융위는 보험사별로 일관성 있는 제작이 가능하도록 모범예시안을 마련해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세부항목별 디자인 파일을 제공해 보험사 부담을 줄여준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이미 시각화된 약관을 제공하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당국의 모범예시안처럼 수정해야하는 부담을 안게 될 수도 있다. 또한 시각화된 약관은 내용을 설명하는 글자에 비해 ‘해석의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한 보험사 관계자는 “명문화된 글에 비해 그래프나 그림은 확실히 보는 사람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도 있다”며 “현재도 약관이 100페이지가 넘는 상품이 수두룩하다. 시각화 요약본이 추가되면 관련 주석이 더 붙어 약관내용만 더 늘어날 것”이라고 부정적인 견해를 보였다.

보험업계 전문가들은 약관의 간소화를 논하기 전 상품설명서만으로 계약을 진행하는 현 보험영업 관행이 더 문제라고 지적한다. 보험영업과정에서 설계사들이 상품설명서만으로 내용을 설명해 보험소비자가 약관의 중요성을 인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온라인 계약 때도 보험소비자들은 상품설명서를 보고 주로 가입한다.

약관에는 보상하는 범위와 미보상 범위, 회사 면책사항 등이 기술돼 있다. 반면 상품설명서의 내용은 보험소비자가 받을 혜택 위주다. 소비자민원은 대부분 보상을 받지 못할 때 발생한다. 보험소비자 입장에서는 상품설명서보다 약관이 더 중요할 수 있다.

사실상 대부분의 보험설계사들은 영업현장에서 상품설명서를 활용해 가입을 권한다. 보험소비자가 직접 서명을 하는 서류도 청약서와 상품설명서다. 보험소비자들이 약관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어렵다. 보험사들이 보험계약자에게 약관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안내가 강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보험소비자가 계약 과정에서 약관을 확인하는 일이 별로 없다. 이에 약관의 중요성을 잘 인식하지 못한다”며 “약관을 쉽게 만들기 전에 보험소비자가 약관의 중요성을 인지하게 하는 것이 분쟁을 줄이는 더 좋은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보험사 노력도 중요하지만 보험소비자들 스스로 약관에 대해 더 관심을 기울여주길 당부했다. 금융위 관계자는 “대부분의 보험소비자는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약관을 찾는다”며 “보험가입 시부터 약관을 잘 챙기고 핵심내용을 파악해 분쟁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잠재적 리스크가 있는 보험약관 개선, 용어순화 및 표준약관 정비 등을 지속적으로 추진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17호(2019년 11월5~1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정훈
김정훈 kjhnpce1@mt.co.kr  | twitter facebook

보고, 듣고, 묻고 기사로 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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