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품 사는 10대, 백화점 VIP 된 20대… ‘영리치’가 온다

 
 
기사공유
[‘영리치’가 온다-상] 불황에도 명품시장은 ‘훨훨’ 

/사진=이미지투데이

#. 지난 3월 서울의 한 특급호텔 32층. 150여명의 20~30대가 한자리에 모였다. 이들 앞에는 버버리·보테가베네타·오프화이트·몽클레어·셀린느 등 유명 럭셔리 브랜드 신상품이 펼쳐졌다. 이 행사의 명칭은 ‘영앤리치 패션쇼’. 말 그대로 젊은 부자를 대상으로 한 패션쇼다. 롯데백화점은 자사 점포에서 연간 1억원 이상 쓰는 20~30대 VIP 회원들을 초청, 이 같은 행사를 진행했다. 왜 20~30대일까.

최근 명품시장을 이끄는 이들은 다름 아닌 ‘밀레니얼 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세대). 20~30대 젊은 부자, 즉 ‘영리치’(Young Rich)가 명품업계 큰손으로 떠오른 것이다. 백화점과 명품업체들은 VIP 진입장벽을 낮추거나 젊은 브랜드와 협업하는 등 영리치 모시기에 적극적이다.

◆백화점 “영리치 모십니다”

롯데백화점은 지난 3월 영앤리치 패션쇼에 이어 4월에는 1박2일 요트 투어를 실시했다. 롯데백화점 부산 본점 내 ‘루이비통 맨즈’ 매장 개점을 기념해 젊은 남성 VIP를 대상으로 상품을 선공개하고 별도로 구매할 수 있게 했다.

신세계백화점은 20~30대 젊은 VIP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진입장벽을 낮췄다. 기존 5단계였던 VIP 등급을 6단계로 확대해 최하위 ‘레드’ 등급을 추가했다. ▲연간 400만원 이상 구매 ▲3개월간 6회 방문 100만원 이상 구매 ▲3개월간 1회 방문 200만원 이상 구매 등 선정 구간을 다양화해 VIP 자격을 부여했다.

그 결과 ‘레드’ 고객수는 2년새 79% 늘어났고 이 중 20~30대 고객수는 약 65%에 달했다. 이들이 백화점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0%까지 뛰어올랐다. 현재의 구매력은 비교적 약하지만 미래의 큰손이 될 수 있는 영리치를 위해 VIP 문턱을 낮춘 전략이 결실을 맺은 것이다.

업계가 이처럼 ‘영리치 모시기’에 분주한 이유는 소비력 때문이다. 백화점은 상위 20%의 고객이 매출의 80%를 올려주는 ‘파레토 법칙’이 가장 잘 나타나는 곳이다. 구매력이 큰 VIP, 그중에서도 점차 명품 소비를 확대하고 있는 20~30대 확보에 사활을 거는 이유다.

실제로 명품 구매 연령대는 낮아지는 추세다. 롯데백화점에서 연간 1억원 이상 쓰는 20대 VIP 고객 수는 2016년 이후 매년 전년 대비 30% 이상 상승세다. 신세계백화점에선 10~20대 명품 매출 신장률이 매년 20%대를 기록하고 있다.

이성환 신세계백화점 영업전략담당은 “젊은 VIP 고객들의 경우 구매력이 높아지는 40~50대가 돼서도 기존 혜택으로 익숙한 동일 백화점에서 쇼핑을 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며 “2030 럭셔리 고객 선점은 곧 현재와 미래의 매출을 동시에 확보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백화점 고객이 해외명품을 둘러보는 모습. /사진=롯데쇼핑

◆젊어지는 ‘명품시장’

명품업계에서도 영리치 공략에 분주하다. 젊은 층이 선호하는 디자인을 적극 도입하고 젊은 브랜드와 협업하는 등 밀레니얼 세대의 가치관에 맞게 명품이 변하고 있다. 

시작은 구찌였다. 구찌는 2015년 디자이너를 교체하며 젊은 브랜드로 탈바꿈했다. 그 결과 2014년 35억유로(약 4조5000억원)였던 매출은 지난해 80억유로(약 10조2900억원)으로 급증했다. 전체 매출의 65%는 밀레니얼 세대 몫이다.

구찌가 쏘아올린 공은 명품업계 전반으로 퍼졌다. 경쟁사인 루이비통은 2017년 미국 스트리트 브랜드 ‘슈프림’과 협업에 나섰다. 같은 해 발렌시아가는 스트리트 패션의 전유물이던 어글리 슈즈 ‘트리플S’를 출시해 젊은 층으로부터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

마케팅 방식도 확 바꿨다. 명품은 소수의 상위층에게만 열려있다는 고정관념을 탈피하고 누구나 쉽게 진입할 수 있도록 백화점 1층에 팝업스토어를 연 것. 샤넬·펜디·보테가베테나·로저비비에·디올·발렌티노 등 유명 럭셔리 브랜드들은 롯데백화점 본점과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잇따라 팝업스토어를 마련했다. 명품 소비층이 10대까지 넓어지면서 명품이 직접 고객을 찾아나서기 시작한 셈이다.

이 같은 변화는 세계적 흐름이다. 지난해 세계 명품시장 매출 2600억유로(약 334조4200억원) 중 33%(858억유로·약 110조3600억원)가 밀레니얼 세대로부터 창출됐다. 미국의 컨설팅 기업인 베인앤드컴퍼니는 최근 보고서를 통해 “세계 명품시장의 핵심 성장 동력은 밀레니얼 세대”라며 “이들은 2025년 전 세계 명품시장의 55%를 차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세계백화점 강남점에 열린 루이비통 팝업스토어. /사진=신세계백화점

◆“집은 못사도 명품은 사고 싶어”

영리치가 명품 소비 주체로 떠오른 원인은 무엇일까. 연예인이나 유튜버, 벤처사업가 등 실제로 젊은 부자가 늘어난 영향도 있겠지만 전문가들은 밀레니얼 세대의 특징에서 그 이유를 찾는다. 밀레니얼 세대는 ‘가심비’, 즉 가격대비 마음의 만족을 추구하는 소비 형태를 지향한다. 가격이 비싸더라도 자신의 만족감을 위해 명품에 기꺼이 지갑을 여는 것이다.

때문에 이들에게 명품은 과시 수단이라기보다는 자기 만족에 가깝다. 실제로 대학내일20대연구소가 15~35세 소비자를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76.6%가 “명품은 내 만족을 위해 사는 것”이라고 답했다. 특히 나이가 어릴수록 이 같은 설문에 우호적인 답변을 내놨다.

신지연 대학내일20대연구소 연구원은 “스트리트 패션과의 컬래버레이션,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마케팅 등 정통 명품 브랜드의 발 빠른 변화와 힙합 가수들의 소유물을 자랑하는 문화가 밀레니얼 세대의 명품 선호도를 높인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다만 명품 소비를 부추기는 사회 분위기에 대한 우려의 시각도 나온다. 10대 사이에서 부는 ‘플렉스’ 열풍이 대표적이다. 플렉스는 부나 귀중품을 과시하는 힙합 문화를 일컫는다. 최근 이 문화가 퍼지면서 10대가 플렉스를 위해 돈을 모으거나 용돈을 받아 명품을 소비하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허경옥 성신여대 소비자생활문화산업학과 교수는 “밀레니얼 세대는 미래보다 현재에 투자하는 경향이 짙다. N포세대라는 말처럼 결혼을 하고 집을 사는 일을 포기했기 때문에 당장의 만족을 주는 명품 소비가 늘어나는 것”이라면서도 “개인의 생애주기 재무설계 측면에서 과도한 명품소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20호(2019년 11월26일~12월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경은 silver@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S 산업팀 김경은입니다.

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 100%
  • 0%
  • 코스피 : 1728.20상승 3.3411:21 04/03
  • 코스닥 : 573.62상승 5.9211:21 04/03
  • 원달러 : 1228.60상승 0.311:21 04/03
  • 두바이유 : 29.94상승 5.211:21 04/03
  • 금 : 21.55상승 0.3211:21 04/03
  • image
  • image
  • image
  • image
  • image

커버스토리

정기구독신청 독자의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