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의 문사철 경국부민학-1] 멀고도 가까웠던 마포대교 가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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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배신을 100세 시대 스승 삼았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사진=이미지투데이

정치의 기본은 富民이다. 국민이 잘 살아야 국방이 튼튼해진다. 외교문제도 술술 풀린다. 백성은 食을 하늘로 여긴다. 먹고 자고 입고 일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다. 국민을 부자로 만든 나라는 번성했다. 지도층이 탐욕에 빠져 백성이 배곯는 나라는 멸망했다. 역사와 철학을 아우르는 인문학으로 나라를 다스리고 국민을 부자 만드는 ‘경국부민학’을 모색해 본다.<편집자주>

여의도광장에서 마포대교까지 길은 가깝고도 멀었다.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낼 때는 자동차 타고 휙 지나치는 거리였다. 쌍둥이 빌딩인 트윈타워 앞 네거리에서 신호등에 걸리지 않으면 1분도 안 걸려 마포대교 건너 가든호텔 앞까지 갈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나조국에게 그 거리는 가도 가도 다다르지 않을 정도로 먼 길이었다.

‘저승길이 이렇게 멀까?’

눈을 뜨고 있어도 보이는 게 없고 귀가 열려 있어도 아무 것도 들리지 않던 나조국은 문득 떠오른 이 생각에 멈칫하고 발걸음을 멈췄다. 한강을 바쁘게 가로지른 초겨울 바람이 얼굴을 사정없이 때렸다. 정신차리고 자기랑 놀기를 기다렸다는 듯 쉬지 않고 부딪쳤다.

‘흐~흑…’

나조국은 잠에서 깨어나듯 잠꼬대 같은 비명을 들릴 듯 말 듯 토해냈다. 어깨를 잔뜩 웅크리고 주머니에 우겨넣었던 두 손을 빼내 얼굴을 쓰다듬었다. 손바닥에 전해 오는 촉감이 마치 거친 모래를 한 움큼 쥐고 비비는 것 같았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흘끗흘끗 쳐다봤다.

◆청춘 가족 다 바친 회사의 배신

“나조국 씨! 그동안 저희 회사를 위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유감스럽게도 회사는 어쩔 수 없이 나조국 씨와 함께 더 일할 수 없다는 결정을 내렸습니다. 앞으로 2시간 안에 사무실을 정리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는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잠결에 꿈을 꾸는 듯했다. 아침에 출근할 때까지만 해도 그는 새로 부임한 점령군 사장이 “나조국씨 어려운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회사를 위해 힘써 준 공로를 인정해 부사장으로 임명합니다. 앞으로도 함께 열심히 일해 봅시다”라고 말할 것이라는 것을 굳게 믿었다.

나조국의 그런 믿음이 근거 없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데는 2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따릉 따르릉 때르르릉’ 전화가 울었다. 경기하듯 소리쳤다. 그는 ‘쟤가 평소에도 저렇게 크게 울었나’라고 갸우뚱하며 조심스럽게 수화기를 들었다.

“사장실인데 잠시 올라오세요!”

점령군 사장과 함께 진주군으로 온 비서실장이었다. 아주 무뚝뚝하고 사무적인 어투였다. 나조국은 그 어투에서 일이 잘못되고 있음을 동물적으로 느꼈다. ‘밤새 판이 새로 짜인 것일까. 그렇지 않고서야 저놈의 말투가 저렇게 저승사자 같을 리야…’ 기분 나쁜 생각이 다 지나가지 않도록 그는 빠르게 머리를 흔들었다.

그는 동물적 직관보다 인간적 이성에 매달리려고 했다. 합리적 머리가 이해하고 설명하기 쉬웠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는지 모른다.

억울했다.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럴 수는 없는 일이었다. 아주 큰 배반을 당한 것이다. 모든 것을 바쳤는데, 회사 경비가 모자라 피 같은 월급을 헐어가면서까지 일했는데 샛별 보며 출근해서 개밥바라기별 보고도 퇴근하지 못했는데 빨간 날도 없이 일에 매달렸는데 내가 잘못한 것이라고는 가족도 제대로 돌보지 못하고 오로지 회사를 위해서만 존재해온 회사바라기였는데….

◆“짤렸는데 대학생 둘, 늦둥이 중학생 어떻게…”

하늘이 무너진다는 게 이런 것이었다. 두 딸이 아직 대학생이고 늦둥이 아들은 이제 겨우 중학교 1학년인데 앞으로 어떻게 산단 말인가. 집에 알리지도 않았다. 아니 알릴 수 없었다. 무엇이라고 말한단 말인가.

여자의 직감은 무서웠다. 내색하지 않으려고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평소 퇴근하는 것처럼 현관에 들어섰다. 아내는 조용히 마중 나와 다정스럽게 껴안아주었다.

“오전까지만 해도 부사장 되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오후에 한방에 짤렸네…”
“짤리긴요. 떠날 때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 거지요.”
“그놈들이 나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자기들도 고민이 없지는 않았겠지요.”
“대학생 딸들도 그렇고 중학생 아들 얼굴을 어떻게 보아야 하나…”
“뭐가 문젠데요. 당신은 아무런 잘못이 없잖아요. 있는 그대로 얘기해요. 애들도 아빠를 잘 이해해줄 것이에요.”

차라리 아내가 억울함에 대해 맞장을 쳐주었으면 했다. 아내와 함께 자신을 짜른 회사를 욕하고, 새로 진주한 점령군 사장을 안주 삼았으면 했다. 아내는 그동안 너무 고생했으니 여행 다니면서 쉰 뒤 생각해 보자고 했다. 석달을 휴식 기간으로 삼았다.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유럽여행을 갔다. 루브르미술관에 가서 피카소를 마음껏 봤다. 베니스에 가서 곤돌라도 탔다.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에서 멋진 공연도 감상했다. 하지만 보이지도 들리지도 느끼지도 못했다. 눈 뜨고서도 보지 못했고 귀 열고도 듣지 못했고 가슴 있어도 차디찬 바람이 불었다. 비록 몸은 떠나왔지만 마음은 여의도 사무실 주위를 끝없이 맴돌았다. 억울함과 원망이 떠나지 않았다.

◆“그때 짤린 게 다행이었다”

“그때 중학교 1학년이던 철부지 막둥이는 아빠가 짤렸다는 소리를 듣고 생활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32명이던 반에서 23, 24등 하던 애가 2학년 때는 4,5등으로 오르더니 3학년 때는 거의 1등을 놓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대학 졸업하고 직장 잡았지요. 딸 둘은 모두 결혼했고요. 돌이켜보니 그때 짤린 것이 인생에서 더 좋은 계기로 작용한 것 같네요.”

그해 첫눈이 폴폴 날리던 날, 넋을 잃고 마포대교를 향했던 나조국 씨는 밝은 얼굴로 당시 상황을 얘기했다. 이제는 말할 수 있다’는 것처럼 목소리는 커피 향기를 타고 잔잔히 흘렀다.

“저도 처음에는 쉽지 않았습니다. 오죽했으면 마포대교로 가려 했겠습니까. 집사람과 애들과 함께 얘기를 나누고 시간 날 때마다 걸으면서 화를 다스렸습니다.”

“요즘 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특히 현역 때 잘 나가다가 자의반 타의반으로 은퇴한 뒤 모든 만남을 끊고 집에 틀어박혀 있는 선후배들을 만납니다. 그들은 과거에 묶여 있습니다. 그렇게 묶여 있다 보면 우울증에 빠지게 되고 어느 순간 예기치 못한 불상사로 이어지는 경우가 있지요. 잘못된 생각하는 건 순식간이잖아요….”

☞ 본 기사는 <머니S> 제623호(2019년 12월17~2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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