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기의 걷는 자의 기쁨] 한강의 등을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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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정기 다시 일으켜 세운 남산
응봉산 개나리 꽃사태, 가슴 설레는 봄


매봉산 팔각정에서 바라본 한강 동쪽 풍경. 멀리 롯데월드타워가 보인다.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매일 남산을 지나 출근을 한다. 가까이에 있기에 자주 들를 법도 하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코로나19가 새해 들뜬 기분에 찬물을 끼얹었다. 마음을 다잡을 겸 눈으로만 담던 남산을 찬찬히 둘러본다. 이어 매봉산을 지나 서울숲까지 이정표를 잡았다.

남산(南山)은 조선의 정궁인 경복궁의 남쪽에 있는 산이다. 고려의 개경에도, 신라의 서라벌에도 남산이 있는데 모두 같은 이치다. 조선은 도읍을 정할 때 경복궁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네 방위에 있는 산을 둘러 한양도성을 쌓았다.

백범광장 오른편 성곽에서 바라본 남산과 N서울타워.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동쪽은 청룡의 낙산, 서쪽은 백호의 인왕산, 북쪽에는 현무의 북악산, 그리고 주작에 해당하는 남산을 연결해 한양도성을 축성했다. 남산은 여러 이름이 있는데 개경에서 경사스러움을 끌고 왔다고 해 인경산(引慶山), 또 목멱신사를 모신 산이라 해서 목멱산(木覓山), 달리는 말의 형상이라 해서 마뫼 등으로도 불린다.

◆백범광장과 한양도성

지하철 4호선 회현역에서 출발해 남산 백범광장으로 들어선다. 권문세도가들이 모여 살던 북촌(北村)에 반해 회현동은 ‘남산골 샌님’, ‘남산골 딸깍발이’라 놀림을 받던 가난한 선비들이 모여 살던 동네다. 다른 말로 남촌(南村)이라 불렸다.

한양도성 남산구간. 내려가면 장충체육관이다.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오른쪽 깨끗이 단장한 한양도성 성곽을 따라 언덕을 오른다. 성곽은 백범광장을 끼고 멀리 남산타워(N서울타워)로 향한다. 성곽은 최근 새로 축성된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고연(古然)한 색을 낼 터인데 아직 세월의 더께가 얹히지 않았다.

한양도성의 성곽은 조선 태조 때 낙산과 인왕산, 북악산, 남산을 이어서 최초 축성된 이후 계속해서 유지·보수됐다. 하지만 일제강점기 때 훼손돼 많은 구간이 유실됐다. 성곽은 여느 집의 담장이 되기도 했다. 이제 옛 모습대로 면모를 찾아가고 있다.

반얀트리 호텔 앞 성곽길. 성곽이 유실된 부분을 만난다.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백범광장에는 백범 김구 선생과 성재 이시영 선생의 동상이 서 있다. 또 안중근 의사의 동상과 기념관이 같이 있어 독립운동에 한몸을 바쳤던 선인들에 고개를 숙이게 한다. 이분들을 이곳에 모신 이유는 일제가 우리 민족의 맥을 끊고자 세운 일본신사가 있던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들을 딛고 우리 민족의 정기를 다시 세운다는 뜻이다. 신사가 있던 자리는 건립 중인 한양도성유적박물관이 대신한다. 올해 완공되면 우리 성곽의 역사를 조망할 박물관이 탄생하는 것이다.

◆남산 남쪽 둘레길

N서울타워 쪽으로 오르다 보면 남산둘레길 남산구간을 만난다. 남산의 북쪽 둘레길은 길이 평탄하고 차도 다닐 수 있는 포장도로이지만 남쪽 둘레길은 숲길이다. 숲길을 들어서자 남산의 소나무가 반긴다. 쭉쭉 뻗은 소나무는 애국가의 소절을 떠올리게 한다.

남산둘레길에서 만난 연못.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N서울타워가 바로 머리 위를 지나듯 가깝다. 정상 가까이 남쪽 둘레길을 이어가다 밑으로 내려간다. 남산야외식물원과 이끼공원, 야생화공원, 그리고 팔도의 소나무를 모아놓은 소나무공원을 지난다.

소나무 숲을 지나 국립극장 방향으로 가벼운 오르막을 오른다. 아침에 쌀쌀하던 기온은 기분 좋은 봄의 기운을 품고 귀밑을 간지럽힌다. 입춘이 지났으니 이제 봄이 멀지 않았다. 나무의 잔가지가 흔들려 눈을 돌리니 되새 한마리가 연신 열매를 쪼고 있다.

남산둘레길의 소나무단지.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국립극장을 건너 반얀트리 호텔 맞은편으로 도성길이 이어진다. 골프연습장을 지나 동대문으로 이어지는 도성길과 매봉산 가는 길이 나눠진다. 도성길을 뒤로하고 우회전해 버티고개를 지나 매봉산으로 향했다.

◆매봉산을 향하다

버티고개는 약수동에서 한남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다. 예전에는 길이 좁고 다니는 사람이 없어서 도둑이 많았던 모양이다. 순라꾼들이 밤중에 길을 돌면서 ‘번도’하며 소리를 쳐 도둑을 물리쳤다 한다. 이 말이 변해 ‘버티’가 되어 고개는 버티고개가 되었단다. 버티고개를 지나 매봉산으로 향한다. 매봉산은 왕이 이곳에 매를 풀어놓아 꿩사냥을 했다 해 붙여진 지명이다.

매봉산에서 바라본 남산.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매봉산 팔각정에 올랐다. 사방으로 서울의 조망이 한눈에 들어온다. 특히 한강 동쪽으로 펼쳐진 풍경은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일출 때 다시 오기로 했다. 이곳은 서울의 일출 명소 중 한곳이다. 한강 위로 붉은 태양의 향연을 볼 수 있을 거란 생각에 벌써 가슴이 뛴다.

방송고등학교를 지나 금호터널 옆으로 내려 금남시장을 걸었다. 금호사거리에서 우회전을 해 한강변으로 빠지는 지하보도를 건넜다. 강바람이 차서 옷깃을 여미고는 서울숲을 향해 계속 강변을 걷는다. 물가에는 잔뜩 수염을 단 갈대가 강바람에 하늘거린다.

한강과 갈대. /사진=박성기 여행 칼럼니스트
곧 개나리로 노랗게 물들 응봉산이 바로 곁이다. 개나리 필 때면 세상 어느 산보다 아름다운 곳이다. 중랑천을 넘으면 서울숲이다. 세종 때의 문인 정이오의 남산팔영(南山八詠)이 떠오른다. 시제만으로 남산의 옛 모습을 갈음해볼 수 있어서다. 남산에서 바라보는 경치를 읊은 8수의 시제(詩題)인데 수마다 한가지씩 시를 지어 읊었다.

남산팔영(南山八詠)-정이오

북쪽 산기슭의 구름은 궁궐을 은은하게 비끼어 퍼지는구나(雲橫北闕·운횡북궐)
물결은 남쪽 강에 가득 넘실거리네(水漲南江·수창남강)
남산 바위 밑에선 그윽하게 꽃이 피어오른다(巖底幽花·암저유화)
산 위에는 무성한 소나무가 높도다(嶺上長松·영상장송)
춘삼월 남산 기슭에 파릇파릇 돋아나는 봄나들이하는 사람들이 붐빈다(三春踏靑·삼춘답청)
중양절(음 9월9일)에 남산에 올라 벗과 함께 나누는 주흥과 시흥이 도도하다(九日登高·구일등고)
남산에서 올라 밤중의 연등행사를 구경하네(陟巘觀燈·척헌관등)
선비들이 계곡 맑은 물에 갓끈을 씻는구나(沿溪濯纓·연계탁영)


☞ 본 기사는 <머니S> 제633호(2020년 2월25일~3월2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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