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어발 경제학] 중고차 파는 마트, 맥주 파는 뷰티숍… "돈 되는 건 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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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 먹힌다. 유통업계에서 숨 막히는 생존게임이 한창이다. 각 업태별로 새 영역을 개척하거나 매출 증대를 위한 총력전에 나서고 있는 것. 과거에는 단순 협업 상품 출시 수준에 그쳤다면 최근엔 아예 영역을 넘는 시도들이 계속되고 있다. 온라인 공룡들은 앞다퉈 사업 영역을 추가하고 오프라인 강자들은 만물상으로 진화한 것도 모자라 배달서비스까지 추가하는 형국이다. 문어발 경제학 속, 업(業)의 경계는 이미 허물어지고 있다. (편집자주)

[MoneyS Report] 문어발 경제학 ② 지금까지 이런 매장은 없었다
지난 10일 롯데슈퍼 델리카페 대치점에 직장인들이 모여 있는 모습. 매장의 절반은 슈퍼, 나머지 반은 식당처럼 운영되고 있다. /사진=김경은 기자
지난 10일 롯데슈퍼 델리카페 대치점에 직장인들이 모여 있는 모습. 매장의 절반은 슈퍼, 나머지 반은 식당처럼 운영되고 있다. /사진=김경은 기자

중고차를 파는 대형마트, 맥주를 판매하는 뷰티숍, 식사가 가능한 슈퍼마켓…. 유통업계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있다. 경기 침체와 각종 규제로 업황이 악화되자 저마다 생존을 위한 영역 파괴에 나선 것이다. 과연 이 같은 문어발 사업으로 업황 부진을 극복할 수 있을까. 이들의 ‘외도’ 현장을 직접 방문해 살펴봤다. 



이런 매장은 없었다… 슈퍼인가 식당인가 



지난 10일 오후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슈퍼마켓. 매장 안에는 사원증을 목에 건 직장인들이 가득했다. 대부분 두세명씩 모여 음료나 커피를 마시고 있었고 혼자 앉아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주부들의 아지트였던 슈퍼에 직장인들이 모여든 이유는 무엇일까. 

이곳의 정체는 기업형슈퍼마켓(SSM) 롯데슈퍼가 운영하는 ‘델리카페’다. 겉에서 보면 일반 롯데슈퍼와 똑같지만 내부는 조금 다르다. 이곳에선 슈퍼마켓 상품은 물론 식사와 커피까지 판매한다. 장보기와 식사가 동시에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실제로 이날 델리카페 매장에서도 식사를 하는 고객들이 눈에 띄었다. 초밥을 구매한 한 남성은 “사무실에서 일하다가 출출해서 나왔다”며 “맞은편 편의점에 비해 즉석식품 종류가 많고 취식 공간이 넓어서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롯데슈퍼 델리카페는 식사류를 즉석에서 조리해 제공한다. /사진=김경은 기자
롯데슈퍼 델리카페는 식사류를 즉석에서 조리해 제공한다. /사진=김경은 기자

델리카페 매장 입구에는 40여명을 수용 가능한 테이블이 배치돼 있었다. 매장 한켠에는 전자레인지와 정수기 등이 놓인 조리공간은 물론 주방까지 마련됐다. 슈퍼마켓이지만 매장의 절반 이상이 편의점 혹은 음식점과 유사한 형태로 운영되고 있는 것이다. 

식품 종류도 다양하다. 각종 샐러드와 과일, 삼각김밥, 도시락, 치킨, 피자 등 편의점이나 대형마트에서 판매하는 간편식품이 매장 진열대에 즐비했다. 이뿐만 아니다. 라면이나 볶음밥 등 간단한 식사류를 주문하면 주방에서 바로 조리해 제공된다. 

덕분에 점심시간이면 식사를 하려는 직장인들로 매장이 북적인다. 일반 슈퍼나 대형마트가 저녁 시간대에 고객 몰이를 하는 것과 대조적이다. 매장 관계자는 “점심이 제일 바쁘다”며 “테이블은 만석이 되고 즉석 조리하는 볶음밥만 50개씩 팔려 나간다”고 전했다.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델리카페 1호점도 마찬가지다. 1호점 관계자는 “주변에 직장인들이 많아 점심시간이면 식사류가 많이 팔린다”며 “볶음밥은 주방에서 미리 만들어 용기에 담아놓는데 점심시간 직후 2개밖에 안 남았다”고 말했다. 

홈플러스는 지난달부터 중고차 판매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진은 홈플러스 강서점 주차장에 판매용 중고차가 전시된 모습. 사진=김경은 기자
홈플러스는 지난달부터 중고차 판매 서비스를 시작했다. 사진은 홈플러스 강서점 주차장에 판매용 중고차가 전시된 모습. 사진=김경은 기자



유통업계 잇단 외도, 왜?


롯데슈퍼 델리카페는 업종 파괴의 성공 사례다. 슈퍼와 음식점을 결합해 유사한 업태인 편의점 고객까지 끌어들인 셈이다. 델리카페 이외에도 롯데슈퍼는 다양한 상권 맞춤형 점포를 선보이고 있다. 이를 통해 고객들의 발길을 붙잡고 점포 출점을 가속화한다는 전략이다. 

이커머스에 고객을 빼앗긴 대형마트의 외도는 보다 파격적이다. 홈플러스는 지난달부터 중고차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일부 점포 주차장에 중고차를 전시하고 매장 내 상담데스크나 콜센터를 통해 판매를 진행한다. 고객은 단기 렌탈 방식으로 한달간 차량을 타보고 구매를 결정할 수 있다. 

홈플러스가 중고차사업에 손을 뻗친 건 오프라인 점포를 활용하기 위해서다. 온라인 쇼핑 확산으로 오프라인 점포 이용이 감소하는 상황에서 유휴 공간인 주차장을 또 다른 사업 모델로 활용한 것이다. 

같은 날 방문한 홈플러스 강서점 주차장에는 차량 두대가 전시돼 있었다. 전시 공간 앞에는 홍보 입간판이 설치됐고 차량 주변에는 조명이 비춰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기자가 머문 20여분간 차량에 눈길을 주는 고객은 단 한명에 불과했다.

이 남성 고객은 “입간판이 있길래 궁금해서 들여다봤다”며 “마트에서 중고차를 파는 게 재밌는 아이디어”라고 평가했다. 다만 구매 의사를 묻는 질문에는 “글쎄”라며 답변을 흐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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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종 매장의 등장, 문제없나 


영역 파괴를 시도했지만 흥행에 실패한 사례도 있다. GS리테일이 운영하는 헬스앤뷰티(H&B)스토어인 ‘랄라블라’ 이야기다. 랄라블라는 지난해 10월부터 우장산역점과 구로디지털단지점에서 삼각김밥과 도시락, 샌드위치 등 식품군을 팔기 시작했다. 이런 제품에 대한 고객들의 지속적인 요청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제 서울 강서구 랄라블라 우장산역점에 방문해보니 고객들의 수요를 느끼기 어려웠다. 매장에서 화장품을 구매하는 고객은 있었지만 식품을 찾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랄라블라 직원도 “매장 내 취식 공간이 있긴 하지만 실제로 식사를 하는 고객은 없다”고 전했다. 

식품 종류도 이전에 비해 대폭 줄었다. 매대에는 일부 냉동식품이 판매되고 있을 뿐 즉석식품은 전무했다. 이에 대해 GS리테일 관계자는 “일부 점포에서 식품 비중을 기존 5%에서 10%로 늘려 시범 운영했다”며 “하지만 그 결과 매출이 저조해 김밥과 주먹밥, 도시락 등을 매장에서 빼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에 편의점 제품을 파는 랄라블라 매장과 퍈의점 CU가 인접해 있다. /사진=김경은 기자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에 편의점 제품을 파는 랄라블라 매장과 퍈의점 CU가 인접해 있다. /사진=김경은 기자

GS리테일은 저매출을 이유로 들었지만 실제 랄라블라가 상품 구색을 축소한 데는 업계 반발도 영향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H&B스토어인 랄라블라가 편의점 제품을 취급하면서 ‘유사 편의점’, ‘변종 편의점’ 논란을 빚어왔기 때문이다. 편의점업계는 기존 매장 50m(농촌)~ 100m(도시) 이내에 신규 매장 출점을 자제한다는 자율 협약을 맺었으나 랄라블라가 이를 무력화시켰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랄라블라 우장산역점은 편의점 CU와 한 건물에 위치한다. 해당 편의점을 운영하는 점주 이강씨는 “지난해 말 랄라블라가 들어서면서 식품 폐기가 많아지고 매출이 떨어졌다”며 “랄라블라에 할인 행사가 많고 취급 품목도 다양하다보니 손님들이 몰리는 경향이 있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문제는 롯데슈퍼 델리카페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델리카페 1호점 인근 50m 이내에는 GS25와 CU가 위치해 있고 2호점은 세븐일레븐과 마주하고 있다. 업태가 다를 뿐 상품 구색이 유사하다는 점에서 델리카페 역시 ‘변종 편의점’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유통업계 업종파괴는 기업에 새로운 활로를, 소비자에게 보다 넓은 선택의 기회를 제공한다. 업계가 본업을 넘어 전후방산업으로 꾸준히 진출하는 이유다. 하지만 그만큼 출혈경쟁은 심화되고 중소·자영업자의 입지는 축소되고 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36호(2020년 3월17~2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김경은
김경은 silver@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S 산업팀 김경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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