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배 특파원의 뉴욕리포트] ‘코로나 시대’ 미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아남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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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코로나19가 급격히 확산돼 자구책 구실로 총기 수요가 덩달아 증가한다. 사진=로이터
뉴욕도 때이른 벚꽃에 물들기 시작했다. 아직 남은 목련과 새로 핀 벚꽃이 한데 어우러져 거리 곳곳이 파스텔톤이다. 평소 주말이라면 공원마다 가족 단위로 꽃구경 나온 이들로 가득 했겠지만 올해는 다르다. 따스한 봄 햇살이 내리쬐는 날에도 거리는 유령도시의 을씨년스러움을 털어내지 못한다.

세계 최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감염국이 된 미국에선 현재까지 뉴욕, 캘리포니아, 뉴저지주 등 최소 16개주가 외출금지령을 발동하고 비(非)필수 인력의 출근을 금지했다. 의약품 및 식료품 구매, 주변 산책 등의 경우를 제외하곤 집 밖으로 나갈 수 없다. 코로나19 사태로 미국 인구 3억3000여만명 가운데 약 절반이 사실상 ‘가택연금’ 상태에 놓였다.

여기에 한국인을 포함한 동양인들은 인종차별적 증오 범죄의 타깃이 되면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주뉴욕총영사관이 인근 교민들에게 “코로나19 관련 인종차별과 증오범죄 사례가 발생하고 있으니 피해를 당하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하라”고 공지하고 있을 정도다.

실제로 최근 뉴욕 지하철역에서 마스크를 쓴 아시안 여성이 한 남성에게, 맨해튼 한인타운에선 마스크를 쓰지 않은 동양계 여성이 다른 여성에게 폭행을 당했다. 폭행 직전 가해 여성은 피해자에게 “네 마스크 어디 있냐”고 추궁했다. 마스크를 쓰면 썼다고 맞고 안 쓰면 안 썼다고 맞는 지경이다.

얼마 전엔 뉴욕 지하철에서 한 남성이 아시아계 남성을 향해 “저리 꺼져”라며 향균 스프레이를 뿌렸다. 단지 자신 앞에 서 있다는 이유였다. 최근 미국 내 아시아인에 대한 혐오범죄가 급증하자 A3PCON(아시아태평양 정책기획위원회)이란 단체에서 아시아인 혐오·차별 사례를 고발하는 전용 사이트까지 만들었다.




미국인 눈엔 모두 ‘중국인’


‘아시아인=코로나19 보균자’라는 인식이 인종차별적 증오범죄로 이어진다. 여기에 코로나19 사태로 피해를 입은 이들의 중국인에 대한 원망도 한몫한다.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서양인들의 눈엔 그냥 모두 ‘중국인’일 뿐이다.

역병에 대한 공포가 이민족에 대한 분노로 표출되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14세기 페스트(흑사병)가 유럽 대륙을 휩쓸던 당시엔 유대인이 표적이 됐다. 유대인들이 페스트를 퍼트렸다는 음모설이 돌면서 약 2000명의 유대인이 학살당했다. 서유럽에 살던 유대인들이 상대적으로 박해가 덜한 동유럽으로 대거 옮겨간 것도 이때쯤이다.

동양인들에 대한 미국인들의 적대는 아시안들에 대한 뿌리 깊은 공포와 혐오, 이른바 ‘황화론’(黃禍·yellow peril)과도 무관치 않다. 칭기즈칸의 유럽을 침략한 이후 황인종이 백인을 위협한다는 ‘황화론’이 백인들의 머릿속에 각인됐다.

1877년 백인들이 샌프란시스코 차이나타운의 중국인들을 습격한 이른바 ‘샌프란시스코 폭동’도 이런 맥락에서 발생했다. 영화 ‘엽문4’에 등장하는 CCBA(중국인통합자선협회)란 단체는 이 샌프란시스코 폭동 이후 중국인들이 백인들로부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해 만든 자경단이다.

문제는 이런 차별을 막아야 할 국가지도자가 오히려 편견과 증오를 부추기다는 점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WHO(세계보건기구)의 만류에도 수시로 코로나19를 ‘중국 바이러스’라고 부른다. 초기 대응에 실패한 자신의 책임을 덮으려 화살을 중국으로 돌리는 것이다. 미군이 우한에 바이러스를 가져왔을 수 있다는 중국 외교부 대변인의 트윗도 빌미가 됐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도 대선을 앞두고 아시안계 표심은 걱정이 됐는지 지난달 23일엔 갑자기 “아시아계 미국인들을 보호해야 한다”는 트윗을 날렸다. 병 주고 약 주는 꼴이다.



100년 전 스페인 독감은 ‘미국 독감’


만약 질병 이름에 반드시 발원지의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약 100년 전 전세계적으로 2500만~5000만명의 목숨을 앗아간 ‘스페인 독감’은 사실 ‘미국 독감’이라고 불러야 한다.

스페인 독감은 1918년 3월 미국 시카고 부근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이게 미국의 제1차 세계대전 참전을 계기로 유럽으로 퍼졌다. 스페인 독감으로 불린 건 전쟁 당시 중립국이던 스페인 언론들이 미군 병영내 발병 사실을 집중 보도했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사태 초기 발병 사실을 숨기고 앞장서 한국에 빗장을 건 중국에 서운함이 없다면 거짓말이다. 하지만 전세계적으로 반(反)중국 정서가 강해질 때 가장 위험에 처하는 건 외국인 눈에 중국인과 구분이 안되는 재외 한국인이다. 상대적으로 교민 사회가 발달한 중국인이나 재외국민 보호에 적극적인 일본인은 그나마 상황이 낫다.

최근 캘리포니아주에선 1992년 LA(로스앤젤레스) 폭동을 경험한 일부 한인들이 총기와 탄약 사재기에 나섰다고 한다. 코로나19 사태로 실업자가 쏟아지고 생필품이 부족해질 경우 약탈이 재현될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이런 판국에 코로나19가 아시아에서 왔다고 계속 떠들어내면 누가 범죄의 타깃이 될까. 이래저래 미국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기 힘겨운 시절이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39호(2020년 4월7~13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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