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의 문사철 경국부민학 21] 좋은 의도와 착한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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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으로 쓰다듬으면 사람 냄새가 아기 사슴에 배어들어 어미가 아기를 인식할 수 없다. 알아보지 못하니 돌보지 않아 아기 사슴은 외로움 속에 굶어 죽는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미국 국립공원에서 아기 사슴을 만난 적이 있는가. 눈이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아기 사슴이 귀여워 쓰다듬고 싶어지는가. 그럴 때는 나가려는 손목을 다른 손으로 꽉 잡아라. 아기 사슴이 귀엽다고 쓰다듬으면, 당신은 그 아기 사슴의 원치 않는 죽음을 가져올 수 있다. 어미 사슴은 아기 사슴이 태어난 지 몇주 동안 오직 냄새로 자기가 낳은 사슴을 알아본다. 손으로 쓰다듬으면 사람 냄새가 아기 사슴에 배어들어 어미가 아기를 인식할 수 없다. 알아보지 못하니 돌보지 않아 아기 사슴은 외로움 속에 굶어 죽는다.

좋은 의도를 갖고 한 나의 행동이 전혀 뜻하지 않게 행동 대상에게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오는 것을 ‘밤비 신드롬’이라고 한다. 오스트리아의 작가 펠릭스 잘텐의 소설 ‘밤비’의 주인공 아기 사슴, 밤비를 따서 만든 말이다. 밤비는 월트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으로도 만들어 인기를 끌어 밤비 신드롬을 ‘월트디즈니 신드롬’이라고도 부른다.



좋은 의도가 부른 참사…“거북에게 물어보라”


밤비 신드롬은 미국의 여권 운동가인 글로리아 스타이넘을 소개한 ‘뉴요커’의 기사 중에도 재미있는 일화로 소개됐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는 ‘궁핍한 시대의 시인’에서 그 사연을 다음과 같이 전한다. 대학교 1학년 지질학 시간 때 그의 반 학생들은 어느 계곡으로 현지답사를 갔다. 스타이넘은 길에서 아스팔트로 기어 올라온 거북을 보았다. 고생하고 있는 거북이 불쌍해 보여 손으로 집어 강물에 밀어 넣어주었다. 이를 본 인솔 교수가 깜짝 놀라 말했다. “이제 막 뭍에 올라와서 알을 낳으려는 것을 물에 밀어 넣었으니 몇달이 더 있어야 알을 낳게 되겠군…”

그날 이후 스타이넘은 “거북에게 물어보라”는 말을 항상 되뇌며 살았다. 여러 사회운동을 하면서 문제에 부딪친 사람들을 만나면 “그 일을 살아 본 당신이 이야기하세요. 당신이 전문갑니다”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본인의 일이라도 본인이 잘 모르고 전문가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본인의 이야기 없이 전문가의 진단만으로는 문제본질에 이를 수 없어 해결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밤비 신드롬과 “거북에게 물어보라”는 교훈은 사람 잣대로 동물과 식물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람 사이에서도 내 경험과 내 잣대로 상대방을 재려고 하는 것은 아무리 의도가 좋다고 해도 상대방이 원하지 않거나 경우에 따라선 아주 나쁜 결과를 가져오는 경우도 많다.



정책 의도가 좋다고 결과가 좋은 건 아니다


정부 정책을 보면 밤비 신드롬을 확인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 서민들을 위한다는 정책이 도리어 서민들의 살림살이를 더욱 어렵게 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강남 집값을 잡겠다며 의욕적으로 내놓은 ‘부동산 안정대책’을 비웃기나 하듯 강남 집값은 천정부지로 치솟는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대출받아 강남에 내 집을 살 수 있었지만 지금은 불가능하다. 소득은 제자리걸음인데 집값은 뜀박질하고 있는 탓이다. 강남 집값이 오르는 근본적인 이유는 수험생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는 수능과 교육제도에 있는데 근본은 전혀 손대지 않고 세금으로만 집값을 잡으려고 하니 서민들만 더욱 힘들어진다.

소득주도성장과 최저임금의 가파른 인상도 마찬가지다. 우리 국민은 누구나 국민으로서 최소한의 삶을 영위할 권리가 있고 국가와 이를 보장할 의무가 있다. 기본생활과 행복추구는 헌법에 규정돼 있다. 대통령은 이를 실현할 책무가 있다. 하지만 정책이 기대한 효과를 발휘하려면 현실을 냉정하게 분석하고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한다. 최저임금이 많이 오르면 자영업자가 어려워지고 일자리를 얻으려는 사람들의 구직이 힘들어진다. 소득주도성장 논리에 빠져 과도하게 추진하면 국가채무는 늘어나는 반면 국민 소득증가와 성장률 상승은 이루지 못할 수 있다. 지난 3년 동안의 경제성과를 객관적으로 평가한 뒤 보완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는 이유다.

저소득층을 비롯한 모두에게 공평한 교육기회를 주겠다고 도입한 중·고등학교 평준화와 수능을 중심으로 한 대학정시확대도 결과적으로 교육 불평등을 확대, 심화시키고 있다. 평준화와 본고사 시절에는 시골에서 어려운 경제여건 속에서 공부한 학생도 이른바 일류대학에 들어가 개천에서 용 나는 사례가 많았다. 지방 국립대학도 서울 사립명문대 못지않은 명문이었다. 평준화 40여년이 지난 지금, 교육은 ‘돈 놓고 돈 먹는 돈 판’이 된 지 오래다. ‘서울본대 ’(원래 서울대)와 ‘서울대 ’(서울에 있는 대학) ‘서울약대’(서울에서 약간 떨어진 대학) ‘서울상대’(서울에서 상당히 떨어진 대학)가 유행어가 되고 있다. 신분은 갈수록 고착화, 세습화되고 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출세하는 것은 ‘전설의 고향’에나 나오게 됐다.



“돕는다는 것은 비를 함께 맞는 것”


정책을 평가할 때 의도가 좋으냐 좋지 않으냐는 물론 효과가 있느냐 없느냐를 반드시 포함해야 한다. 의도가 좋고 효과도 좋은 정책은 금상첨화다. 하지만 의도는 좋지만 효과가 나지 않는 정책은 바람직하지 않다. 의도하지 않은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데 의도가 좋다고 계속 추진하는 것은 서민들을 속이는 것이고 끝내는 더욱 어렵게 만들 뿐이다.

SNS에 떠도는 비극적인 글이 하나 있다. 수억원 되는 고급 자동차를 샀는데 사랑하는 아들이 못으로 차에다 무엇인가를 쓰고 있었다. 그걸 본 아버지는 순간적으로 화가 불처럼 솟아올라 아들의 손목을 내리쳐 뼈가 부러졌다. 아들의 놀람과 고통으로 울부짖는 소리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들이 쓴 것은 “아빠 사랑해!!!”라는 글이었다. 아이의 참뜻을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고급자동차를 손상시킨다고만 여긴 자신의 욕심을 탓했지만 이미 늦은 일이었다.

고 신영복 선생이 쓴 글 중에 ‘함께 맞는 비’라는 휘호가 인상적이다. 비 내리는 모습과 접은 우산을 함께 그린 뒤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는 것입니다”라는 설명글이 붙어 있는 작품이다. 그의 설명이 좀 더 있다. “함께 비를 맞지 않는 위로는 따뜻하지 않습니다. 위로는 위로를 받는 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가 위로의 대상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기 때문입니다.” 내가 일방적으로 베푼다는 우월의식이 아니라 상대방의 처지와 함께 한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닫게 하는 말이다.

가정의 달 5월이다. 경자년 들어 우리 생활을 짓눌렀던 코로나19도 거의 마무리되고 있는 양상이다. 아직도 대량감염의 위험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안정화단계로 접어들면서 정상적 생활로 돌아가고 있다. 5월에는 21대 국회가 원 구성(국회의장 선출과 상임위원회 구성)을 한다. 앞으로 2년, 길게는 4년 동안 서민들을 위한 효과적인 정치가 펼쳐질 수 있는 터를 잘 닦기를 기원한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4호(2020년 5월12~18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홍찬선 전 머니투데이편집국장 soonn@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S> 산업1팀 IT담당 박흥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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