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이미지투데이

금융권 노동자의 정년을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정년연장’이 화두로 떠올랐다. 이달부터 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올해 임금 및 단체협약(임단협)에서 금융권의 정년을 현행 60세에서 65세로 연장하는 방안을 마련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가 노동가동연한을 60세에서 65세로 상향한 데 따른 것이다. 금융노조는 법정정년 60세 시대가 되면서 정년보장형의 임금피크제도 60세로 늦추는 안건도 내걸었다.

금융노조와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는 다음 달부터 본격적인 교섭에 들어갈 예정이다. 금융노사가 금융권 근로자 10만여명의 정년 결정에 어떤 합의안를 내놓을지 관심이 쏠린다.

60세 정년 “노후 수입공백 우려”현행 금융권의 정년은 60세다. 임금피크제는 은행별로 55~57세부터 적용한다. 금융노조는 국민연금 수령시기가 65세인 점을 고려하면 은퇴 후 5년가량 소득이 없는 ‘소득 크레바스’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하나금융그룹 100년 행복연구센터가 발표한 생애금융보고서에 따르면 퇴직자 중 36.4%는 ‘일을 그만두면 1년 이내에 형편이 어려워질 수 있다’고 답했다. 이들은 ‘앞으로 늘어날 의료비’(71.7%)와 ‘노후자금 부족’(62.0%), ‘자녀의 결혼비용’(56.2%) 등이 가장 큰 경제적 고민거리라고 밝혔다.

사용자 측에선 난색을 표한다. 정년연장에 따른 ‘인건비 폭탄’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금융노조의 주장대로 정년이 65세로 늘어나면 정년 잔존 연수에 따라 자연스럽게 직원 1인당 받는 퇴직금도 늘어난다.

현재 은행 희망퇴직자 가운데 퇴직금과 위로금을 합해 9억원 이상 받은 직원들도 있다. 평균 은행 희망퇴직자들은 개별퇴직금만 3억~5억원으로 중간정산을 받지 않았을 경우 7억~8억원 정도를 받는다.

지난해 60세 정년 기준으로 은행 희망퇴직자 중 5억원 이상의 보수를 받은 직원들의 평균 퇴직급여는 ▲하나은행 9억5600만원 ▲국민은행 8억800만원 ▲우리은행 7억6400만원 ▲신한은행 7억5400만원 등이다.

정년이 5년 더 연장되면 인건비 부담은 더욱 가중될 전망이다. 시중은행의 일반관리비는 대규모 희망퇴직 바람이 불기 시작한 2015년 이후 높은 상승률을 나타내고 있다. 5대 은행의 지난해 일반관리비는 11조1901억원으로 전년(10조5137억원)보다 6.4% 증가했다.

반면 당기순이익은 쪼그라들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 1분기 은행의 당기순이익은 17.8% 급감했다. 핵심 수익성 지표로 꼽히는 순이자마진(NIM)은 1.46%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사진=머니S

올해는 ‘강성’으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금융노조와 시중은행 노조위원장으로 당선되면서 임단협에 진통이 예상된다. 박홍배 금융노조위원장과 류제강 KB국민은행 노조위원장은 국민은행 총파업을 주도한 바 있다.

은행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가계부채 규제와 고위험군 펀드 판매 제한과 여기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까지 불거져 은행의 수익 하락이 불가피하다”며 “각 은행이 노사 간 보충 협약을 맺는 방식으로 세부 조건을 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쯤 열린 채용문, 신규채용 효과 미미
정년연장은 청년실업이라는 사회문제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일각에선 은행권이 정년연장에 합의하면 고용이 축소될 우려가 제기된다.

1989년 대법원이 노동자의 육체가동연한을 ‘60세’로 규정한 뒤 2013년 의무조항으로 바꾸는 데 24년이 걸렸다. 이마저도 기업규모별 적용 시기가 달라 300인 미만 사업장에는 2017년부터 적용되기 시작됐다.

그 사이에 은행권의 몸집 줄이기는 가속화됐다.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하나 등 4대 시중은행의 영업점 수는 올 1분기에 72개가 줄었다. 지난해 12월 말 3525개에서 지난 3월 말 3453개가 됐다. 이 기간 신설된 영업점은 8개에 불과하다.  

4대 은행과 한국씨티은행, SC제일은행을 포함한 6개 시중은행의 영업점 수는 2014년 말 4419개에서 ▲2015년 말 4311개 ▲2016년 말 4144개 ▲2017년 말 3858개 ▲2018년 말 3834개로 지속적인 감소세를 보였다.

채용시장도 얼어붙었다. 지난해 상반기 1000여명을 신규 채용한 은행권은 올해 뒤늦게 채용공고를 냈지만 코로나19 감염 우려 등으로 대규모 공채보다 수시 채용 위주로 인력을 선발하고 있다.

우리은행은 이달 중순부터 신입 행원 채용을 진행한다. 기업은행도 상반기 250명의 신입 은행원을 채용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평년보다 2개월가량 늦어졌다. NH농협은행도 3개월 만에 필기시험 합격자를 대상으로 면접을 진행한다.

노동전문가들은 금융권의 정년연장에 사회·경제적인 종합적인 고려와 충분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고령자 복지 등 사회 안전망이 확충되지 않은 상황에서 근로기간만 늘리면 정년연장의 실효성이 떨어져서다. 대안으론 정년연장이 아닌 임금체계를 개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남재량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년연장이 고용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은 젊어선 적게 받고 정년에 가까울수록 생산성보다 높은 임금을 받는 임금체계 때문”이라며 “능력과 성과위주로 임금체질을 개선하고 정년은 1년에 한 살씩 또는 2~3년에 한 살씩 여러 해에 걸쳐 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학계에선 장기적으로 정년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정년 60세가 법적으로 보장된 채 임금을 조정하는 것은 설득력이 없다는 얘기다.

선진국에선 노동시장의 활력을 유지하고 재정부담을 완화하고자 근로자의 정년을 연장하거나 폐지해 인구 고령화에 대응하고 있다. 독일, 스페인 등 유럽국가들은 정년을 65세에서 67세로 상향조정했고 미국과 영국은 아예 정년을 폐지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년연장은 일할 의지와 능력이 있는 사람에게 생산성 있는 일자리를 주는 것”이라며 “단순히 나이와 정년으로 접근하지 말고 기업과 장년층 근로자 모두 윈윈할 수 있는 제도적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5호(2020년 5월19~25일)에 실린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