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의 문사철 경국부민학 23] 긴급재난지원금 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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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8일부터 시작된 긴급재난지원금 현장 접수. /사진=머니투데이 DB
“지난 토요일에 온 가족이 한식당에 가서 쇠고기 갈비를 배 터지게 먹었다네…”
“요즘처럼 어려운 때에 소갈비를? 좋은 일 있나 보네, 로또라도 당첨됐남?”
“코로나19로 어려우니까 소갈비 뜯는 호사를 부릴 수 있는 거지.”
“코로나19 덕분이라니?”
“아~ 왜 이리 답답하실까, 긴급재난지원금 아직 안 받았남…”
“아, 그 말이군. 물론 지급하는 첫날에 받아 재래시장에 가서 이것저것 듬뿍 사서 코로나19로 텅 비었던 냉장고 가득 채웠다네…”

번뇌처럼 자란 머리를 자르러 미장원에 들른 나조국 씨는 미용사와 그의 친구가 나누는 정담을 들으며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긴급재난지원금 100만원이 지급됐으니 8월31일까지 사용하라’는 카드회사 안내 문자를 보고 어떻게 처리되는지 시험하기 위해 찾은 미장원이었다. 



자영업자 돈가뭄 해갈된 긴급재난지원금


“공돈이 생기니 돈 쓰는 맛이 생겨 좋기는 좋더군. 며칠 전 비 오는 날에는 구리에 사는 친구가 파전에 막걸리를 쏠 테니 오라고 전화해서 푸짐하게 먹고 왔다네…”
“그러게 말여, 재래시장에도 활기가 돌더라니까. 코로나19 때문에 외출을 삼가던 사람들이 긴급재난지원금 카드를 들고 몰려 와서 모처럼 아카시아 꽃 같은 미소도 피어나고…”
“근디, 이태원클럽에서 환자가 나온 게 또 병이네. 요 앞집 떡볶이집과 돈가스집이 며칠 동안 애들이 북적북적했는데 오늘은 썰렁하네…”
“나도 석달이나 끊겼던 일자리가 가까스로 생겼었는데 그놈의 이태원클럽 때문에 다시 끊겨 이렇게 여기서 한담하고 있는 처지라네.”

그네들의 얘기는 더 이어졌다. 하지만 얘기 듣는 사이에 벌써 머리가 다 깎였다. 평소 쓰던 신용카드를 내고 결제했더니 핸드폰으로 문자가 왔다. ‘정부 긴급재난지원금 사용: 1만5000P 잔여: 98만5000P.’ 훌륭했다. 바로 그 순간만은 ‘국민의 세금을 이렇게 펑펑 써도 되느냐?’며 핏대를 올렸던 일을 슬그머니 잊었다. 마치 ‘선택적 건망증’에 걸린 것처럼….

미장원을 나온 나조국씨는 가까운 재래시장을 갔다. 평소엔 자동차를 타고 대형할인점에 가서 2~4주 먹을 것과 생활용품을 샀지만, 오늘은 공돈 쓰는 즐거움을 더 느껴보기 위해서였다. 삼겹살과 등심 1kg씩 사고, 배추김치 총각김치 밑반찬 등을 한 아름 샀다. 



배고픈 사람에겐 물고기, 일고픈 사람에겐 고기 잡는 법을


긴급재난지원금은 빈사위기에 몰린 저소득층의 숨통을 터주는 단비다. 천수답에 때맞춰 비가 내려 모내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이것으로 문제가 모두 해결된 것은 아니다. 모내기만 해놓고 비가 내리지 않으면 힘들여 심은 모가 말라 크지 못한다. 가을에 벼 한 톨 수확하지 못하는 최악의 상황이 연출되기도 한다.

이런 비극을 막으려면 계곡을 막아 저수지를 만들거나 지하수를 파서 물을 대줘야 한다. 저수지와 지하수 개발은 많은 비용이 들어간다. 가뜩이나 어려운 살림에 혼자 힘으로는 거의 불가능하다. 농협이나 지자체에서 자금을 대주고(물론 이자를 받고)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야만 할 수 있다.

굶주린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은 당연하다. 당장 죽게 생긴 사람에게 저수지를 만들라고 해봐야 들리지도 않고 그렇게 할 능력도 없다. 다만 당장 먹을 것으로는 생계가 해결되지 않는다. 스스로 먹거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하는 게 중요하다. 안정적인 소득을 얻을 수 있는 일자리가 바로 그것이다. 물고기를 주는 것보다 물고기 잡는 방법을 배우고 가르치는 게 올바른 해법이다.

문제는 일자리 만들기가 쉽지 않다는 불편한 진실이다. 5G 정보통신기술과 4차 산업혁명이 진행되면서 기존의 일자리가 마구 줄어든다. 인공지능을 탑재한 로봇에게 사람의 일자리를 뺏긴 지 오래다. 국가 경제 전체로는 성장하고 소득과 부(富)가 증가하더라도 일자리를 잃은 개인들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진다. 로봇에게 밀려나지 않도록 로봇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거나, 로봇도 할 수 있는 일을 로봇보다 더 잘할 수 있도록 능력을 향상시키는 수밖에 없다. 



기차 나왔는데 역마차 숫자 늘리는 건 공멸


‘창조적 파괴’라는 혁신으로 유명한 슘페터는 그의 저서 ‘경제발전론’에서 “우편마차를 아무리 연속적으로 배차하더라도 결코 철도를 얻을 수는 없을 것”이라고 갈파했다. 새로운 기술과 새 상품이 개발되고 등장하고 새로운 시장이 개척되는 전환기에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을 아무리 개선하려고 해도 문제 해결이 되지 못한다. 오로지 새로운 생각과 새로운 접근으로 남보다 앞서는 혁신을 만들어 내는 것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뜻이다.

혁신은 새로운 것(新)을 창조하는(創) 데서 만들어진다. 新은 나무(木)을 심고 키워(立) 거목이 된 뒤 도끼(斤)로 베어내는 것으로 이루어져 있다. 새로움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땅에서 불쑥 솟는 것이 아니라 봄에 씨를 뿌리고 여름에 땀 흘려 가꾸어야 가을에 열매를 거둔 뒤에야 얻을 수 있다는 의미다. 태양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 법이다. 創은 창고(倉)를 칼(刀)로 부순다는 뜻을 담고 있다. 결국 창신은 기존의 것을 열심히 연구하고 그 한계를 뚫고 나와야 가능한 어려운 과정이다. 아무나 할 수 없기에 창신을 이룬 사람은 영웅이란 명예를 누린다. 수많은 사람들을 먹여 살릴 수 있는 해법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처음부터 겁먹을 필요는 없다. 높은 산에 오른 사람은 반드시 낮은 곳부터 시작하고, 먼 곳에 가려면 반드시 가까운 데서 출발해야 한다.(중용 15장) 또 천하의 어려운 일은 반드시 쉬운 일에서 시작되고 큰일은 작은 일에서 만들어진다.(노자 63장) 모든 일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고 하고자 하는 사람은 반드시 일을 이룬다. 경험으로 배우고 끊임없이 문제 해결을 생각하면 어느 순간 창신하는 문이 열린다.

긴급재난지원금은 화수분이 아니다. 오랜만에 벌이는 온 가족 소갈비파티도 계속 이어질 수 없다. 우리 부모들이 쌓아 놓은 창고를 허물어 눈앞의 어려움을 극복한 뒤 자녀를 위해 창고를 다시 채워놓아야 한다. 창신과 혁신을 통해 일자리를 많이 만들고 새로운 일자리에서 일 할 수 있도록 스스로 준비하는 노력을 하는 것만이 사랑하는 자녀와 손자 손녀들에게 빚더미를 남겨주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부모세대가 분단을 남겨주었다고 자녀세대에게 빚더미란 멍에를 얹을 수는 없지 않은가. 

☞ 본 기사는 <머니S> 제646호(2020년 5월26일~6월1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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