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S커버] 미·중 싸움, 반도체업계의 복잡한 셈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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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화웨이 제품에 들어가는 반도체에 대한 제재를 발표했다 /사진=로이터
‘美·中 갈등 2라운드’… 반도체업계 생존전략
- 미래먹거리 ‘5G’ 두고 미국의 화웨이 흔들기

지난해 말 이후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던 미국과 중국의 힘겨루기가 2라운드에 돌입했다. 양국은 관세와 환율 등을 넘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의 책임론까지 들먹이며 서로 공방을 쏟아내고 있어 그 여파가 어디까지 미칠지 예측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트럼프정권은 중국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를 비롯해 연관업체까지 직접 겨냥하는 등 선제 포격에 나섰고 이에 시진핑 주석이 미국의 애플, 퀄컴 등을 언급하며 전면전을 예고했다. 아직 구체적인 제재방안을 내놓지 않은 채 ‘블러핑’(자신의 패가 좋지 않을 때 상대를 속이기 위해 떠는 허풍)을 하는 수준이란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한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의 관련기업들은 예상 시나리오를 통한 대책마련에 나섰다.



미국 선전포고… 중국 반격



5월15일(현지시간) 미 상무부는 미국의 기술과 소프트웨어를 이용한 외국 반도체 제조업체는 미국의 허가 없이 화웨이에 반도체를 공급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의 수출 규정을 개정한다고 밝혔다. 화웨이 등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협이 된다고 판단되는 중국업체의 통신장비 사용을 제한하는 내용의 행정명령도 내년 5월까지로 1년 연장했다.
미국이 화웨이를 표적으로 삼은 건 중국의 대표적인 통신기기 제조업체여서다. 트럼프정부는 화웨이가 사실상 중국 정부 소유이며 화웨이 장비로 스파이 활동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런 점을 들어 화웨이에 부품을 납품할 때도 승인을 받으라는 것이다.

화웨이가 반도체를 자체 생산할 능력이 없다는 점도 작용했다. 스마트폰의 여러 기능을 구현하는 칩을 한데 모은 ‘시스템 반도체’는 대만의 TSMC 등에 생산을 맡겼고 저장을 담당하는 ‘메모리 반도체’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으로부터 공급받는다. 미국은 이런 약점을 파고들었다. 핵심부품을 공급받지 못하면 스마트폰을 비롯한 주력 장비를 만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중국 반도체 생산업체인 SMIC가 화웨이 자회사인 하이실리콘의 시스템 반도체를 위탁생산하는 방법이 거론되지만 반도체업계에선 대만이나 한국업체와 기술력 차이가 커서 단기간에 고품질 제품을 대량생산하는 건 어렵다고 본다. 현재 TSMC와 삼성전자를 제외하면 7nm(나노미터· 1미터의 십억분의1) 공정 파운드리(반도체 생산 전문기업) 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곳은 없다.
상하이의 애플스토어 앞 화웨이 광고 /사진=로이터

미국의 엄포에도 중국은 당당히 맞섰다. IT(정보통신)를 비롯한 대부분 산업이 중국과 연관된 만큼 자신감을 드러낸 것. 애플, 퀄컴, 보잉 등 미국의 글로벌기업들도 큰 타격을 볼 것이라고 으름장을 놨다. 비록 타격은 입을지언정 맞불을 놓겠다는 의도다. 화웨이도 “미국의 이런 행동이 전세계 산업을 죽이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IT업계에선 미국의 이런 행동을 두고 4차 산업혁명을 관통하는 ‘5G’ 통신사업의 패권을 쥐려는 것으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이다. 표면적으론 안보문제를 거론하며 제재가 합당함을 내세우지만 그 이면엔 세계 1위 5G 통신장비업체인 화웨이를 흔들어 통신 표준이 중국의 의도대로 흘러가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란 분석이다.

영국의 시장조사회사 IHS마킷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5G 통신장비 점유율은 화웨이가 26.18%로 1위다. 이어 스웨덴의 통신장비 제조사인 에릭슨이 23.41%의 점유율로 2위이고 3위엔 23.33%의 삼성전자가 자리한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인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글로벌 5G 스마트폰 점유율 집계에선 중국이 46%를 차지했다. 이 가운데 화웨이의 비중이 74%다. 그만큼 화웨이를 흔들면 중국이 타격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미래 먹거리로 불리는 자율주행 자동차나 인공지능, 빅데이터 등의 관련산업은 매우 빠른 통신이 핵심기술 중 하나로 꼽힌다. 5G 네트워크 패권을 쥐면 이를 통해 구현되는 새로운 산업도 따라올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미국이 안보를 내세웠지만 속셈은 따로 있었음을 보여준다.
미국과 중국의 공방이 범위를 넓혀가는 중이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한국기업들 영향은



미·중 갈등이 본격화되면서 한국기업들도 손익계산에 한창이다. 삼성전자는 5G 통신장비와 단말기사업에서 화웨이와 경쟁관계다. 카운터포인트리서치의 올 1분기 스마트폰 세계시장 점유율 집계를 살펴보면 삼성전자가 20%로 1위, 화웨이가 17%로 2위다. 3위에는 14%의 애플이 올라있다.

반도체사업은 입장이 다소 다르다. 중국시장 1위 업체인 화웨이가 매우 중요한 ‘고객’이다. 이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모두 마찬가지여서 두 회사는 극도로 말을 아끼며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이 같은 흐름이 국내업체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반도체업계에선 단기적으로는 악영향이 우려되지만 장기적으로는 큰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본다. 한국기업은 주로 메모리반도체를 생산한다. 메모리는 규격품이고 범용이어서 제재대상에 포함되지 않을 것이란 게 업계의 시각이다. 만약 메모리 반도체도 제재할 경우 이 시장의 3위 기업인 미국 마이크론도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화웨이는 지난해부터 부품조달에 집중했다. 최근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도 손을 벌린 것으로 알려졌다. 9월부터 제재가 본격화되는 만큼 미리 물량을 비축하려는 움직임이 아니냐란 분석이다.

미국과 중국이 서로 줄을 세우는 가운데 중국은 지난 5월28일 반 정부 세력과 외국의 간섭을 막기 위한 홍콩 국가보안법 초안을 통과시켰다. 미국은 중국 정부에 홍콩의 특별지위를 발탁하겠다고 압박했다. 홍콩의 자치권을 전제에 둔 홍콩법(1992년 제정) 때문에 비자 발급부터 투자 유치, 법 집행 등에서 본토와 달리 특별대우한 점을 고려한 것. 홍콩이 아시아 대표 금융·물류 허브로 성장하는 데 큰 역할을 한 만큼 중국으로선 고민거리가 될 수 있다. 홍콩을 경유해 다른 나라와 거래하던 기업도 굳이 이곳을 이용할 필요가 없어진다. 

거대한 ‘고래’ 사이에서 등 터진 ‘새우’가 되지 않으려는 국내 반도체업계는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장기전을 준비하는 분위기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메모리 반도체는 규격품이고 범용이어서 대체가 가능하다”며 “분쟁 장기화에 대비해 모바일용 제품 생산라인을 서버용으로 바꾸거나 새로운 수요를 찾고 있다”고 귀띔했다. 이어 “무엇보다 지금은 양쪽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 본 기사는 <머니S> 제647호(2020년 6월3~9일)에 실린 기사입니다.
 

박찬규 star@mt.co.kr  | twitter facebook

산업부 박찬규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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