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선의 문사철 경국부민학 27] 파랑새가 된 우렁각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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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기사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음. /자료사진=이미지투데이
재인폭포는 경기도 연천군 고문리 21에 있다. 평지가 움푹 내려앉아 생긴 폭포로 사시사철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한탄강 지류의 지장산 아래에 있는 재인폭포에는 가슴 아픈 전설이 전해온다. 줄타기를 아주 잘 하는 재인(才人)에게 매우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다. 이 고을 수령이 그 부인을 탐해 재인을 죽이고 부인을 취하려고 했다. 부인은 수령의 코를 물고 폭포로 뛰어내려 자결했다. 그 뒤 폭포는 재인이라 불렸고 이 고을 이름은 코문리(고문리, 古文리)가 됐다.   



“유극량 이 천한 놈아, 참으로 비겁한 놈이로다”


재인폭포의 아픈 전설은 임진왜란 때 임진강 전투에서 전사한 유극량(劉克良, ?~1592) 장군에게도 되풀이됐다. 유 장군의 어머니는 재상을 지낸 홍섬(洪暹, 1504~1585)의 노비였다. 도망쳐 숨어 살면서 유극량을 낳은 어머니는 자신이 노비라는 사실을 숨겼다. 유극량은 독학으로 공부해 과거 무과에 급제했다. 급제한 뒤 자신이 노비임을 안 그는 홍섬에게 찾아가 노비가 되겠다고 했다. 홍섬은 유극량의 사람됨을 알아보고 노비문서를 불살랐다. 면천(免賤)되고 승진한 뒤에도 유극량은 홍섬을 상전의 예로 모셨다. 부하들에게도 솔선수범을 보이며 겸손하고 따뜻하게 대했다. 그러는 사이 유극량이 천출(賤出)이라는 사실이 드러나 동료들보다 진급이 늦었고 요직에도 앉지 못했다.

두터운 신분의 벽은 임진왜란이라는 위기 상황에서도 비극을 만들었다. 신립 장군이 탄금대에서 어이없는 배수진으로 전멸당한 뒤 유극량은 방어사 신할(1548~1592)의 부장이 돼 임진강에서 왜군과 대적했다. 왜군이 임진강 남쪽에 이른 뒤 주저하면서 강을 건너지 않자 신할 등이 강을 건너 적을 치자고 했다. 유극량은 “적이 우리를 유인하고 있으니 함부로 움직이지 말고 5~6일 힘을 길러 사기를 높인 뒤 치자”고 건의했다. 적의 매복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적절한 의견 제시였다. 이때 경기감사 권징(權徵, 1538~1598)이 나섰다.

“극량 이 천한 놈아. 임금으로부터 크나큰 은혜를 입고서도 네놈이 그 잘난 몸 하나 보전하려고 진격하지 않는단 말이냐? 참으로 비겁한 놈이로다.”

이 말을 들은 유극량은 하늘을 우러르며 탄식했다. “결국 이렇게 지고 마는구나. 나를 따르다가 불귀의 혼이 될 아까운 우리 병사들은 어찌할꼬…”

유극량은 말을 타고 신할과 함께 앞장서서 강을 건너 갈대밭으로 달려갔다. 우려했던 대로 그곳은 왜군이 매복해 있었고 그는 전사하고 말았다. 그가 죽은 뒤 병조참판에 추증됐다. 개성의 숭절사(崇節詞)에 제향됐고 무의(武毅)라는 시호를 받았다.    



파랑새가 된 착한 노총각과 우렁각시


임진강 전투에서 신할이 유극량의 건의를 받아들였다면 전세는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병법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권징은 유극량이 노비출신이라는 것을 꼬투리 잡아 사지로 몰아넣었다. 제대로 싸울 줄 아는 유능한 장군을 허무하게 잃었다. 그의 시신은 연천군 백학면 노곡리, 임진강 옆에 묻혔다. 노비출신이라서 그랬을까. 그의 무덤은 거의 방치됐다. 어느 해 큰물 졌을 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병조판서 추증과 무의라는 시호와 숭절사 제향은 비겁하게 살아남은 자들의 자위행위에 불과했다.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혀 옳고 그름을 가리지 못해 일을 그르친 사례는 수없이 많다. 어렸을 때 가슴 졸이고 손에 땀을 쥐며 읽었던 ‘우렁각시’도 그런 비극을 동화 형태로 알려준다. 나이 서른이 되도록 장가 가지 못한 마음씨 고운 농부 노총각이 있었다. 하루는 논에서 일하다 “이 농사 지어서 누구랑 먹고 사나?”라고 혼잣말을 했다. 뼈 빠지도록 농사 지어봤자 구실아치가 반 넘게 걷어가니 살림이 갈수록 쪼그라드는 것에 대한 신세한탄이었다.

“나랑 먹고 살지.” 노총각은 깜짝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아무도 없었다. 다시 “이 농사 지어서 누구랑 먹고 사나?”라고 하자 “나랑 같이 먹고 살지”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소리 나는 쪽으로 가서 자세히 살펴보니 커다란 우렁이 한 마리가 있었다. 노총각은 우렁이를 잡아 집으로 가서 장롱 안에 모셔두었다. 이튿날 논일을 하고 점심 먹으러 집에 오자 감칠맛 나는 밥상이 풍성하게 차려져 있었다. 그 이튿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다음날 일하러 가는 척하고 돌아와 살펴보니 우렁이가 어여쁜 각시가 돼 점심상을 차렸다. 노총각은 각시 손을 잡고 “우렁이 껍질 속으로 들어가지 말고 나랑 살자”고 사정했다.

“저는 하늘에서 죄를 짓고 우렁이가 되는 벌을 받았습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니 얼마 동안만 참아주세요. 때가 차지 않았는데 같이 살면 반드시 슬픈 이별이 있을 것입니다.”

각시의 간절한 말에도 불구하고 노총각은 잡은 손을 놓지 않고 계속 우겨 그날부터 함께 살았다. 행복하게 살던 어느 날 남편은 논일을 하러 갔다가 점심때가 지나서도 돌아오지 않았다. 각시가 점심을 이고 가는데 원님 행차와 마주쳤다. 수령이 반해서 억지로 각시를 끌고 갔다. 각시가 잡혀간 것을 안 남편은 날마다 관아 밖에 와서 아내를 부르며 통곡하다 결국 죽어 파랑새가 됐다. 각시도 곡기를 끊고 얼마 안 있어 죽어 파랑새가 됐다.



더 이상 파랑새를 만들지 마라


파랑새는 몸길이 29.5cm로 몸은 선명한 청록색이며 머리와 꽁지는 검은색을 띤다. 부리와 다리는 산호색을 띤 붉은색이다. 우리나라 전역에 걸쳐 번식하기는 하지만 쉽게 찾아보기는 힘든 여름새다. 그래서인지 파랑새는 이룰 수 없는 꿈이나 희망 등을 가리킨다. 동학농민전쟁에서 전봉준을 은유한 전래 민요도 파랑새를 노래하고 있다. “새야 새야 파랑새야/녹두밭에 앉지 마라/녹두꽃이 떨어지면/청포장수 울고 간다.”

재인과 유극량과 우렁각시는 원하지 않은 파랑새가 됐다. “이 풍진 세상을 만나” 배고픔과 세금과 탐관오리들의 토색질을 참지 못하고 한 많은 파랑새가 돼 날아간 사람들이 수없이 많다. 파랑새는 지금도 끊임없이 만들어진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가파르게 오르는 집값에 신음하는 무주택자들, 적절한 생업이 없어 가족은 물론 스스로도 먹고 살기 힘들어 결혼을 포기하는 젊은이들, 가난한 사람들의 기초연금마저 높은 월세로 뜯어 떵떵거리며 사는 ‘빈곤 사업자’들 때문에 사람답게 살지 못하는 쪽방촌 사람들….

국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이 안전하고 평화롭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일자리를 갖고 먹고 자고 입는 것에 불안을 느끼지 않도록 하는 것이 필수적인 책무다. 국민은 살기가 힘든데 공무원들은 힘든 줄 모른다. 젊은이들이 공무원 되는 시험에 목메는 이유다. 공무원보다 국민들이 가슴 펴고 사는 나라가 돼야 억울한 파랑새는 줄어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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