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리포트] '인종차별 분노'는 결국 트럼프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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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0일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롤리에 위치한 경찰서 앞에서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최루 가스를 통해 진압하는 경찰에 직면하고있다./ 사진=로이터

6월20일(현지시간) 오후 3시,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노스캐롤라이나주 롤리. 기자가 찾아간 주의회 의사당 앞에선 경찰들이 시위대를 막기 위한 은색 펜스를 설치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의사당 앞 '남부연방군 어머니' 동상은 전날 시위대에 의해 이미 끌어내려진 뒤였다. 남겨진 표지석엔 붉은 색 스프레이로 쓴 '인종차별주의자'(Racist)란 글귀가 덧씌워져 있었다.

약 100m 떨어진 곳에 시위대 백여명이 운집했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 Lives Matter)라고 적힌 깃발들이 나부꼈다. 흑인들 뿐 아니라 마스크를 쓴 젊은 백인들도 다수 시위에 동참했다.

같은 날 오클라호마주 털사.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유세장인 뱅크 오브 오클라호마 센터 앞에는 붉은 모자를 쓴 백인들이 몰렸다. 하지만 2만명 가까이 들어간다는 관중석은 약 절반 밖에 차지 않았다. 20만명이 몰릴 것이라던 주최 측의 예상은 턱없이 빗나갔다.

K팝 팬들이 의도적으로 입장권을 신청한 뒤 보이콧한 탓이라곤 하지만, 그것만으론 설명이 안 된다. 당초 트럼프 대통령은 표를 못 구해 입장하지 못한 지지자들을 위해 밖에서 한번 더 유세를 할 계획이었지만 결국 취소했다. 입장권 문제와 상관없이 기대 만큼 군중이 많이 오지 않았다는 얘기다.




지지율 급락하는 트럼프


미국의 대선 판도가 심상치 않다. 불과 넉달 전까진 주변의 누구도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4년 전 트럼프 대통령을 당선시킨 세력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논리다. 미국 동부 엘리트들의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PC) 타령에 지친 저소득층 백인들이 표를 줄 곳은 트럼프 대통령 뿐이다.

브루킹스연구소에 따르면 2007년 이후 10년간 미국에서 태어난 아이들 가운데 백인은 절반도 안 된다. 미국 공원에 가보면 영어보다 중남미에서 쓰는 스페인어가 더 많이 들릴 때도 많다. 앞으로 자신들이 소수인종으로 전락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 미국 백인들에게 '소수인종 포용' 따위의 정치적 올바름은 사치가 됐다.

그들 가운데 상당수가 트럼프 대통령을 위해 난생 처음 투표장에 나갔다. 이들의 출현이 미국의 정치지형을 완전히 바꿔놨다. 코로나19(COVID-19) 사태와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이 있기 전까진 말이다.

코로나19로 인한 셧다운(봉쇄)과 함께 트럼프 대통령이 최대 치적으로 내세워온 경기호황과 완전고용은 거품처럼 사라졌다. 트럼프 대통령의 반복되는 비과학적 망언에 공화당 지지자들마저 등을 돌렸다.
그래픽=김민준 기자

결정타는 미 전역에서 벌어진 인종차별 항의시위에 대한 대응이었다. 플로이드 사건으로 촉발된 시위지만 사실상 백인우월주의자들의 영웅인 현직 대통령에 대한 분노다. 여기에 유혈진압을 촉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약탈이 시작되면 총격이 시작된다"는 트윗은 미국인들의 역린을 건드렸다.

총기 소유의 권리를 보장하는 미국 수정헌법 제2조는 범죄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라고 만든 게 아니다. 연방정부로부터 저항할 수 있는 힘을 가지라고 둔 거다. 독립전쟁을 거쳐 영국의 폭정에서 벗어난 미국인들이 과거 영국과 같은 국가권력의 전횡으로부터 자유를 지킬 수 있도록 개인의 무장과 민병대 조직을 허용한 게 수정헌법 제2조다.

이처럼 연방정부를 불신하는 미국인들의 눈에 시민을 향한 발포를 요구하는 대통령이 어떻게 보였을까. 지난달말 이 트윗 이후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율이 급전직하한 건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최근 뉴욕타임스(NYT)가 조사한 바이든 전 부통령의 지지율은 50%에 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6%에 그쳤다. 지난 50년 동안 이 수준의 지지율로 재선에 성공한 미국 대통령은 단 한명도 없다.

대선을 약 5개월 남겨둔 시점에 40% 이하의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재집권한 미국 대통령은 1948년 해리 트루먼이 마지막이었다. 이후 지미 카터와 '아버지 부시'로 불리는 조지 H. W. 부시 등 대선 5개월 전 지지율이 40%에 못 미친 역대 대통령들은 모두 재선에 실패하고 단임 대통령에 머물렀다.

이번 대선의 승패를 가를 플로리다, 미시간, 펜실베니아, 위스콘신, 노스캐롤라이나, 애리조나 등 6개 경합주 모두 바이든 전 부통령에게로 기울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바이든 전 부통령이 확실한 우위에 섰다"고 단언했다.

4년 전 대선에서 보듯 설문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 지지 사실을 숨기는 '샤이 트럼프'들이 있지 않느냐고? 예전에 약 10% 정도의 샤이 트럼프가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트럼프 집권기 동안 극우파가 득세하고 정치가 양극화되면서 샤이 트럼프는 거의 사라졌다는 게 워싱턴의 대체적 시각이다.



샤이 트럼프도 떠났다


그동안 미국 여론조사에선 '지금 나라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느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에 약 13~16%포인트를 더한 숫자가 통상 '현직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응답의 비율이었다. 대통령의 국정기조에 찬성하진 않지만 현직 국가원수이니 일단은 지지한다는 미국인이 13~16% 정도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집권초 트럼프 대통령은 그 차이가 6~7%포인트 밖에 안 됐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도 그의 배타적이고 분열적인 성향 탓에 비난 받을까봐 이를 숨기려고 한 이들이 최대 10% 정도 있었단 뜻이다. 이들이 바로 '샤이 트럼프'로 추정되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올들어선 상황이 달라졌다. 과거 6~7%포인트에 그쳤던 차이가 역대 대통령들의 수준인 13~16%포인트로 늘었다. 대체로 '지금 나라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답한 비율은 낮아지고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한다는 비율은 높아졌다. '샤이 트럼프'들이 지지층에서 이탈하거나 트럼프 지지자라고 커밍아웃하면서 사라졌다는 뜻이다.

측근들도 하나씩 트럼프 대통령의 곁을 떠나고 있다. 케빈 해싯 경제 선임보좌관을 비롯해 최근 몇달 사이 앤드류 올먼 국가경제위원회(NEC) 부위원장, 조 그로건 국내정책위원장, 에릭 우랜드 의회담당관 등이 앞다퉈 백악관에서 빠져나갔다.

한동안 북미 대화에 매달리던 북한이 최근 돌변해 험한 말을 내뱉는 건 트럼프 대통령의 재선에 빨간불이 켜진 것과 과연 무관할까. 만약 바이든 전 부통령이 오바마 행정부의 기조를 그대로 따른다면 당분간 북미 정상외교는 기대하기 어렵다.

우리는 어떤가. 곧 백악관의 새 주인이 될지도 모를 바이든 전 부통령 캠프에 우리 정부는 얼마나 많은 인맥을 갖고 있나. 핵심 공약인 법인세 인상에 우리 기업과 투자자들은 얼마나 준비돼 있나. 불현듯 닥칠지 모를 미국 정권교체에 대비할 때다.
 

이상배 뉴욕특파원 kjhnpce1@mt.co.kr  | twitter facebook

안녕하세요. <머니S> 김정훈입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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