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개발’ 험한 길 대신 ‘벤처투자’ 쉬운 길 택한다

[머니S리포트②] 정부 지원 확대 절실… 개발 기초체력 키워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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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국내 제약·바이오 생태계가 바뀌고 있다. 그동안 다국적제약사의 오리지널 약물을 복제한 ‘제네릭’ 사업에 집중했지만 최근 제약사 오너 3·4세 경영자들은 바이오 벤처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투자 성과가 본격화되자 일각에서는 제약·바이오기업이 신약개발(R&D)·국민보건향상 등 본업에 치중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투자 이익 회수로 ‘돈 벌기’에 급급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당장 연구개발에 뛰어들기보다 유망 회사에 투자해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전략이 최근 업계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제약·바이오업계의 벤처 투자, 어떻게 봐야 할까.
한미약품 연구원이 신약개발(R&D)에 몰두하고 있다. /사진제공=한미약품
제약·바이오업계가 ‘벤처투자’라는 히든카드를 꺼내 들었다. 연구개발(R&D) 비용 부담을 줄이고 신성장 동력을 위한 자본금 확보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전에도 일부 제약사가 바이오 벤처에 대한 투자를 단행해왔지만 최근 벤처캐피탈을 설립해 투자를 확대하는 점이 눈에 띈다.

2019년 매출 1500억원 이상 주요 제약사./사진=금융감독원



연구 대신 투자사 설립에 ‘돈벌이’ 지적도



지난 7월 바이오기업 비보존은 잠재 가능성이 큰 K-바이오 신약개발 시장을 견인하기 위해 벤처캐피털 ‘이후인베스트먼트’의 지분 100%를 인수해 자회사로 편입했다. 이후인베스트먼트는 2014년 설립돼 약 650억 규모의 투자조합을 운영해 온 투자사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단키트로 이름을 알린 랩지노믹스와 올리패스, 리메드, 레이언스 등에 투자를 단행한 바 있다.

광동제약도 지난해 자본금 200억원을 출자해 벤처캐피탈 ‘케이디인베스트먼트’를 설립해 자회사로 편입하며 투자 사업을 진행 중이다. 광동제약 관계자는 “케이디인베스트먼트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이 접목된 차세대 성장산업, 바이오 벤처 투자 등을 도맡아 신성장 동력을 확보하겠다”고 설명했다. 광동제약은 투자 사업으로 인한 이익을 국내 제약·바이오산업에 재투자하기 위한 시스템을 구축, 제약사 중 연구개발 최하위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다. 광동제약은 2019년 기준 매출 대비 연구개발 비중은 1.3%로 연매출 1500억원 이상 제약업계 가운데 최하위였다.

때문일까. 일각에서는 투자사를 설립한 제약·바이오기업의 행보를 두고 신약개발·국민보건향상 등 본업에 치중하지 않는다고 꼬집는다. 자체신약 연구개발(R&D)보다 투자로 ‘돈 벌기’에 급급하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당장 연구개발에 뛰어들기보다 유망 회사에 투자해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전략이 최근 업계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신약개발 과정./사진=과기부



신약 실패하면 일단 비난… 숨통 트여야



신약개발은 연 매출 1조원 이상의 대형 제약·바이오기업에게도 부담스럽다는 게 업계 반응이다. 연구개발 도중 후보물질이 실패할 경우 회사 전체의 부실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 업계에 따르면 신약 1개가 개발되기 위해서 최소 10억 달러(약 1조2000억원)가 소요되고 기간도 최소 15년이 걸린다. 그럼에도 후보물질 중 신약으로 성공할 확률은 0.01~0.02%에 불과하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후보물질 1만개 중 하나를 신약으로 탄생시키면 아주 성공적인 수준이라는 얘기”라며 “연구 전문성은 기본이고 임원진의 흔들림 없는 의지와 경영드라이브가 바탕이 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최근 제약·바이오업계에 집중된 이목과 투자 열풍 때문에 신약개발 성과를 당장 내지 못하면 둑이 터지듯 비난이 쏟아질 가능성이 커 업계의 우려가 적잖다. 신약개발에 뛰어들기보다는 유망 바이오벤처에 투자하고 신약개발 기술을 확보하는 움직임이 많아지는 이유다.

이정규 브릿지바이오 대표는 “다국적 제약사만큼 대규모 임상 인프라를 갖추지 않았다면 신약개발은 그야말로 ‘전쟁’”이라며 “실패할 위험이 큰 프로젝트를 죽을 때까지 시도해야 하는 개발자의 입장에서 실패했다고 관련업계에 돌을 던지고 싶지는 않다. (만약 돌을 맞아야 한다면) 개발자는 신약이 성공하기 전에 돌에 맞아 죽을 확률이 99.9%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정진 셀트리온그룹 회장도 “모든 투자는 리스크가 있으며 리스크가 없는 것은 사업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K-제약·바이오 연구비, 화이자의 20%도 안 돼



신약개발 생태계를 구축하려면 정부의 육성 전략이 반드시 선행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정부 지원금과 전체 제약·바이오기업의 연구개발 비용을 다 합쳐도 2조원에 못 미친다. 반면 글로벌 연매출 1위 미국계 다국적제약사 ‘화이자’의 연구개발 비용은 약 5~10조원이다. 코로나19 진단키트로 전세계에 알려진 K-바이오의 명성을 유지하려면 맞춤형 지원전략이 필요하다는 게 전문가의 충고다.

유승준 한국바이오경제연구센터장은 “한국의 바이오·헬스 산업이 세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수년째 2%를 밑돈다”며 “혁신적인 신생기업 육성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국적 제약사와 공동연구하는 국내업체에게 세제 혜택이나 인센티브를 줘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원희목 한국제약바이오협회장은 “국내 기업 간 기술거래에 적용 중인 세제 혜택을 다국적 제약사와의 계약에도 확대하면 글로벌 혁신 신약이 탄생할 가능성이 커진다”며 “신약개발에 지속적으로 투자 가능한 기초체력을 키울 수 있게끔 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제약·바이오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김진수 IBS 유전체교정연구단장은 “한국은 규제가 너무 많고 복잡해 ‘규제 선진국’이라는 별명이 있다”며 “후발주자가 신약 개발 등에 나서기 위해서는 정부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한아름 arhan@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투데이 주간지 머니S 산업2팀 기자. 제약·바이오·헬스케어 등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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