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성관의 세계인문여행] 고려 나전합과 나폴레옹의 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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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나전국화넝쿨무니합. 문화재청 제공

(서울=뉴스1) 조성관 작가 =
"전 세계 단 3점, 900년 만에 돌아온 '고려 꽃무늬 나전합'

국내에 없던 '귀물 중의 귀물' 일본서 환수

청자·불화와 함께 고려미술 정수, 길이 10㎝, 무게 50g의 盒

1㎜ 자개 조각 이어 붙은 명품, 외국 왕실에 보내던 호화 선물

깨지기 쉬워 극소수만 남아, 일본 사찰서 적극 수입해 보존"

지난 7월초 국립고궁박물관이 언론에 공개한 '고려 나전국화넝쿨무늬합'(이하 나전합) 조선일보 기사 제목이다. 전날 TV 뉴스로 '나전합' 보도를 보았던 터라 다음날 신문 문화면 톱으로 실린 이 기사를 꼼꼼히 읽었다. 나는 글과 사진을 번갈아 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신문에 실린 사진을 줄자로 재어보며 극정교(極精巧) 나전합을 실감하려 했다. 정말 믿기 힘들 정도였다. 12세기 고려에서 이런 나전합을 만들었다니!

이 기사에서 놀란 또 다른 것은 국내에는 나전합이 한 점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을 일본이 지켜왔다는 사실이다. 국외소재문화재단이 이 나전합이 일본에 있는 것을 알고는 교섭을 통해 일본의 개인 컬렉터(수집가)로부터 구입한 것이다. 기사는 유홍준 명지대 석좌교수의 말을 이렇게 인용했다.

"당시 일본 사찰이 적극 고려에서 수입해서, '귀물 중의 귀물'로 소중히 간직해왔다. 국내에서 사라진 나전칠기가 일본 사찰을 통해 오늘날까지 남아 있다는 게 역설이다."

우리가 간직하지 못한 귀물(貴物)을 일본이 지켜줬다! 이 기사를 몇 번씩 읽는데 몇 장면이 스쳤다.

탈레반, 1500년 문화유산을 폭파

가장 먼저 떠오른 장면은 아프가니스탄 남부 칸다하르 바미얀 석불이다. 바미얀 계곡은 고대 동서양의 교역로인 비단길의 핵심 루트 중의 하나다. 이곳은 간다라 미술이 발달한 고대 인도 북서부 지방과도 멀지 않다. 간다라 미술은 그리스·로마풍에 불교미술이 융합되어 나타난 독특한 예술양식을 일컫는다. 바미얀 계곡은 간다라 미술의 영향권에 있었고, 그 살아있는 유산이 바미얀 석불이다. 신라 사람 혜초가 쓴 '왕오천축국전'에도 언급되었다. 이런 연유로 유네스코(UNESCO)는 바미얀 석불을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2001년 3월2일이었다.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은 바미얀 석불두 개를 파괴했다. 바미얀 절벽에 조각된 불상 하나는 38m, 다른 하나는 53m. 두 개 모두 6세기에 제작된 불상이었다. 세계의 언론은 바미얀 석불이 폭파 해체되는 고층빌딩처럼 "쿠르르릉~" 먼지를 일으키는 장면을 대대적으로 보도했다.

바미얀 석불 2001년 파괴 이전과 이후. 위키피디아 제공

세계인은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특히 불교 신자들에게는 결코 잊을 수 없는 참극이었다.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 같은 이슬람 국가들도 탈레반 정권의 만행을 비난했다.

이에 앞서 탈레반 정권은 반(反)이슬람적인 유산과 이미지를 모두 파괴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바미얀 석불을 파괴할 것이라고 예고한 것이다. 이것이 알려지자 유네스코는 특사를 파견해 석불 파괴를 만류했고, 미국 뉴욕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요구하는 돈을 지불하고 불상을 사서 옮기겠다고 제안하기에 이르렀다. 간다라미술 문화유적이 많은 파키스탄 정부 역시 탈레반 정권에 중단을 요청했다. 불교 국가 중 가장 부자 나라인 일본은 불상 보존 비용을 지불할 테니 파괴하지 말라고 요청했다. '이렇게까지 했는데 설마…'라고 문명 세계는 기대했지만 탈레반 정권에게는 아무 소용이 없었다.

수니파 과격 무장단체 탈레반은 1997년부터 2001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을 지배했다. '애꾸눈의 지도자'로 불린 물라 오마르의 탈레반 시대는 불과 4년으로 끝이 났다. 하지만 이들은 1500년 된 세계문화 유산을 파괴해버렸다.

이제는 바미얀 계곡에 가도 더는 간다라 불교미술 유적을 느낄 수가 없게 되었다. 문명 세계의 간절한 바람에도 1500년을 견뎌온 석불은 한순간에 흙덩이로 변해버렸다. 도대체 탈레반 정권은 무슨 생각으로, 무엇을 목적으로 석불을 파괴했을까.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지만 여전히 의문 덩어리다.

"프랑스는 과학과 예술의 빛을 이집트에 퍼트렸다"

또 다른 장면은 1789년 여름의 이집트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탄생한 제1공화정 정부는 이탈리아 원정을 비롯한 여러 전투에서 혁혁한 승전고를 울린 전쟁의 천재 나폴레옹을 두려워했다. 국민적 인기가 높은 나폴레옹이 개선장군으로 파리에 들어와 만에 하나 쿠데타를 일으킨다면? 그래서 권력은 그럴싸한 명분을 붙여 '이집트 원정'을 명령하기에 이른다.

나폴레옹은 함대를 꾸리면서 대포와 병력 외에도 고고학자, 판화가, 예술가 등 2000여명을 동승시켰다. 전쟁의 관점에서 보면 이집트 원정은 실패했다. 그러나 세계 문화사의 관점에서 보면 이집트 원정은 정신문명의 위대한 승리로 기록된다.

이집트문명은 황하문명, 인더스문명, 메소포타미아문명과 함께 고대 4대 문명이다. BC 3000년경부터 나일강 하류의 비옥한 토지를 배경으로 발달한 이집트 문명은 사막과 바다로 둘러싸인 지리적 이점으로 인해 2000년간 독자적인 문명을 유지했다.

사막 기후라는 악조건 속에서 전쟁을 치르면서 나폴레옹은 학자들과 예술가들에게 중요한 임무를 맡겼다. 무인(武人) 나폴레옹은 지력(知力)에서도 비상한 사람이었다. 원정(遠征) 중에도 진중(陣中) 도서관을 운영하며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탐독한 사람이 나폴레옹 아니었던가.

루브르박물관의 스핑크스 사자상. 조성관 작가.

2000년 이상 사막의 모래 바람 속에 방치된 이집트문명의 비밀을 위대한 프랑스인의 두뇌로 풀어보자. 사후세계와 부활을 믿었다는 고대문명의 신비 속으로 프랑스가 가장 먼저 들어가 보자. 나폴레옹의 학자들과 예술가들은 수많은 보물과 유물을 싣고 다시 지중해를 건너 프랑스로 왔다. 분명한 '약탈'이다. 서구침략의 시초로 볼 수도 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은 단순한 약탈과는 차원이 달랐다. 원정을 다녀온 20년 뒤인 1809년 프랑스 파리에서 '이집트지(誌)'가 출간된다. 세계 최초로 출간된 일종의 이집트 백과사전이다. '이집트지'가 나온 이후 프랑스에서는 이집트 공부하기가 유행했다. 나폴레옹 시대인 1800년대 초반에 나온 '이집트지'는 지금 다시 봐도 경이로움의 연속이다.

19세기 문명국이 5000년 전 고대문명을 마침내 해독한 것이다. 나폴레옹의 학자들 덕분에 건축술?기하학?천문학 등이 발달한 잊힌 이집트문명이 조명되기 시작했다. 기독교 세계는 비로소 이집트문명과 소통을 하게 되었다. 저명한 민족주의 지도자 무스타파 카멜의 1895년 연설은 지금 읽어도 울림이 크다.

"이집트를 깊은 잠으로부터 깨어나게 만든 관대한 프랑스, 이 프랑스가 과학과 예술의 빛을 이집트에 퍼뜨렸고, 그것들로 프랑스는 동양적인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프랑스는 한결같이 우리를 그들의 소중한 아들들로 생각했고, 우리 모두의 가슴과 영혼에 승리감을 안겨주었다."

코로나19로 100일 넘게 닫혀있던 루브르박물관이 얼마 전 재개관했다. 루브르박물관에 가면 미라, 목관, 석관, 스핑크스와 같은 고대 이집트 문화유산들이 수백점 전시되어 있다. 세계인들은 굳이 이집트를 가지 않고서도 잘 보존된 고대 이집트문명과 교감을 나누며 무언의 대화를 할 수도 있다.


테베 메디네 하부. 신전 회랑의 남쪽 복도에 조각된 색을 입힌 저부조. 출판사 '아테네'에서 출간된 이집트지(고대) 속 사진

조상들이 아무리 뛰어난 문화유산을 남겨주면 뭐 하나. 후세가 계승·발전시킬 능력이 있어야 한다. 문화유산도 인재와 비슷하다. 그 진가를 알아봐 주는 사람과 환경을 만나야 오래도록 생명력을 얻는다.

문득 지난해 작고한 14대 심수관의 말이 생각난다. 일본 이름 오사코 게이키치(大迫惠吉). 알려진 대로, 그는 1598년 정유재란 때 일본에 끌려간 조선 도공(陶工)의 후예다.

"사쓰마 도자기는 불행한 시대의 바람에 아버지인 한국의 종자가 어머니인 일본의 대지에서 싹을 틔우고 꽃을 피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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