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사제 유럽은 활발, 국내 도입 조건은?

[머니S리포트-군불 때는 노동이사제②] 독일 등 노동자 경영참여 보편화… 한국, 적대적 노사관계가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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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노동이사제’ 도입을 둘러싼 찬반 논쟁이 재점화됐다. 정부와 여당은 노사 공동결정 체계가 자리 잡으면 기업경영의 투명성이 제고될 것이라며 노동이사제 도입을 밀어붙인다. 반면 재계는 노사관계가 대립적이고 힘의 균형이 노동계에 치우친 상황에서 이 제도가 도입될 경우 경영권이 흔들릴 것이라고 반발한다. 평행선을 달리는 논쟁에 과연 해답은 있을까.
지멘스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를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로 이원화해 감독이사회 20명 중 절반을 노동자 대표로 채웠다. 사진은 독일 베를린 지멘스 건물. / 사진=로이터
지멘스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를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로 이원화해 감독이사회 20명 중 절반을 노동자 대표로 채웠다. 사진은 독일 베를린 지멘스 건물. / 사진=로이터
#1 독일의 대표 전자기업 지멘스는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이사회를 경영이사회와 감독이사회로 이원화했다. 경영이사회는 투자결정 등 경영상 중요한 의사결정을 하며 감독이사회는 경영이사회의 의사결정을 감시한다. 특히 감독이사회는 전체인원(20명)의 절반을 노동자 대표로 채워져 노동자의 이익훼손 행위 등을 철저히 감시할 수 있도록 했다.

#2 스웨덴 자동차업체 볼보는 이사회 구성인원 14명 가운데 3명을 노동자 조직에서 지명된 노동이사로 선임한다. 노동이사 후보 2명을 별도로 둬 기존 노동이사가 이사회에 참여할 수 없을 경우 역할을 대체할 수 있도록 했다. 이들 노동이사는 공동결정법에 따라 경영합리화·경영발전·인력개발·노동감독 등에 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다른 이사와 동등한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

노동자가 선출한 이사를 이사회에 참여시키는 노동이사제는 유럽에선 31개국 가운데 19개국이 도입한 보편적인 제도다. 1951년 독일을 시작으로 프랑스·핀란드 등 유럽 주요국가의 공공·민간 기업에 광범위하게 안착했다. 한국도 노동이사제의 국내도입 명분으로 이 같은 유럽의 성공모델을 내세운다. 하지만 반대진영에서는 유럽과 국내 환경이 다른 만큼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반론한다.



노동이사제 도입 걸림돌은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근로이사제를 시행 중인 유럽국가에는 주식회사보다는 유한회사가 많다. 기업이 주주뿐 아니라 자금을 빌려주는 은행, 행정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 노동력을 제공하는 노동자 등 기업과 관련된 이해관계자 전체의 이익을 존중해서다. 독일의 경우 전체 법인의 90% 이상이 유한회사 형태로 운영되며 주식회사는 1% 수준에 불과하다.

반면 국내는 대부분이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되고 있으며 주식회사는 기본적으로 주주의 이익 극대화가 최우선 목표다. 따라서 노동이사가 이사회에 참석할 경우 주주의 이해관계와 충돌하는 의견을 개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재계의 입장이다.

무엇보다 한국은 대립적·투쟁적인 노·사관계가 가장 큰 걸림돌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세계경제포럼(WEF)에서 발표한 한국의 노·사협력 순위는 지난해 기준 141개국 중 130위로 최하위 수준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소속 36개국 회원국 중 노·사 협력은 꼴찌였다. 노동시장 유연성 경쟁력은 141개국 중 97위로 중하위권에 속한다.

노·사 협상 과정에서 노조의 파업으로 인한 손실도 높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0년 이후 2017년까지 한국의 임금근로자 1000명당 근로손실일수는 평균 43.13일로 미국 5.20일, 영국 18.06일, 일본 0.23일 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런 상황에서 근로이사제가 도입될 경우 내부 감독기능 강화 등 긍정적인 영향보다는 경영효율성 저하, 노·사갈등 심화 등 부작용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상법상 근로이사제 도입의 문제점’ 보고서에서 “그간 노조의 활동과 성향에 비춰볼 때 노동이사제도가 경영효율성을 제고하기보단 효율성을 갉아먹는 제도가 될 개연성이 크다”며 “노·사분쟁이 빈발하고 극한투쟁으로 결말짓는 한국에서 고통분담 차원의 개혁에서 노동이사가 노동조합의 동의를 이끌어 낼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 자체가 비현실적”이라고 꼬집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그래픽=김은옥 기자


협력적 노·사관계 전환 필요


노동자가 뽑는 노동이사가 전문성을 갖추기보단 정치적인 목적에 따라 결정될 우려도 있다. 경총 관계자는 “노동조합이나 노동자의 지지를 받는 자가 노동이사로 선임될 가능성이 높아 전문성보다는 정치력이 우선시 될 여지가 있다”며 “생산적 경영감시를 위한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이사 역할보다는 이익 대변 쪽으로 편중될 가능성을 내재한다”고 밝혔다.

전문가들은 노동이사제를 성급하게 도입하기보다는 국내 노·사관계 개선을 비롯해 노동이사의 자격, 권한 등을 구체화하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한다. 추광호 한경연 경제정책실장은 “노·사관계가 대립적인 우리나라 현실을 고려하면 노·사 및 사회갈등을 유발하는 노동이사제를 무리하게 추진할 필요는 없다”며 “노·사협의회 등 기존의 제도를 활성화해서 노·사 간 현안을 토의하면서 신뢰를 쌓는 과정을 먼저 거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한 성균관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순히 유럽의 성공사례만을 명분으로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겠다고 관련법 개정을 추진하기보다는 한국의 현실에 맞게 분명하고 구체적인 목표와 방법을 찾아야 한다”며 “노동이사에게 어떤 권한을 얼마나 줄 것인지, 어떤 방법으로 어느 정도 범위까지 노동자의 권익을 대변하게 할 것인지 등 세부적인 부분에서 구체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제도 도입 논의를 비롯해 주요 내용이나 앞으로의 운용 등 전반적인 과정을 정부가 주도하기보다는 노·사를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노동이사제의 중심은 정부나 국회가 아니라 노·사이기 때문이다.

박태주 고려대 교수는 “노동이사제는 시혜에 의한 참여가 아니라 참여에 의한 합의로 도입돼야 한다”며 “노동이사제의 내용을 노·사가 합의하는 것은 물론 도입과정에서도 노·사를 주체로 세워야 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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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한듬
이한듬 mumford@mt.co.kr  | twitter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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