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00억이면 시총 7조 ‘씨젠’ 경영권 위협?… 상법 개정안의 함정

[머니S리포트-재계 덮친 ‘공정경제 3법’ 공포①] 감사 선임 시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등 독소조항… 기업 부담 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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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정부가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등 소위 ‘공정경제 3법’ 개정을 본격화하면서 재계의 반발이 거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을 옥죄는 법안이 통과될 경우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재계는 공정경제 3법의 신중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지만 정치권 반응은 냉담하다. 공정경제 3법을 둘러싼 논란과 재계가 반발하는 이유를 살펴봤다.
지난 9월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박용만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을 접견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신웅수 기자
정부가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의 핵심인 상법 개정안 처리에 속도를 내면서 재계에 비상등이 켜졌다.

총수일가 등 대주주의 전횡을 막아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시장에 공정거래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법안이지만 개정안 일부에 기업의 경영권을 외부에 노출시킬 수 있는 독소조항이 포함돼 있어서다. 정부가 마련한 원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국내 기업이 투기자본이나 적대세력의 놀이터가 될 것이란 위기감이 커진다.



기업 경영권 옥죄는 ‘3% 룰’



현재 국회에 제출된 상법 개정안은 ▲감사위원 분리선임 도입 및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소수주주권 행사요건 완화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 등을 골자로 한다. 이 가운데 재계가 가장 크게 반발하는 내용은 감사위원 분리선임 및 대주주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하는 조항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대주주가 뽑은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출하지 않고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갖도록 한 명 이상의 감사위원을 별도로 선임하는 제도다. 기업경영을 감시해야 할 감사위원이 대주주의 거수기 노릇을 하지 못하도록 주주총회에서 별도의 인사를 선출해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특히 선출 과정에서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3%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문제는 대주주의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할 경우 기업의 경영권이 외부에 무방비로 노출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일반주주도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일반주주는 서로 연합할 수 있다. 이 경우 투기자본이나 현 경영진에 반대하는 세력이 마음만 먹는다면 지분을 3%씩 쪼개는 방식으로 의결권을 행사해 자신들이 내세운 이사를 감사위원에 앉힐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남매간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한진그룹의 경우 상법개정안 통과 시 조현아 전 부사장 측이 감사위원 분리선임제를 활용해 자신들이 내세운 인사를 감사에 앉힐 가능성이 커진다. 조원태 회장은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지분율 28.93%를 보유하고 있지만 의결권을 인정받는 것은 3%뿐이다.

반면 조 전 부사장 측과 연합하고 있는 ‘KCGI’와 ‘반도건설’은 합산 지분 3%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유한회사를 설립해 보유지분을 3%씩 쪼개는 식으로 대부분의 의결권을 인정받을 수 있다. 조원태 회장 체제에 반대하는 진영에서 선임된 인사가 감사위원으로 선임될 경우 주요 경영현안에 대한 결정을 문제삼거나 반대하는 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스파이 감사’에 기밀 노출 우려



대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될 경우 주요 기업에 경쟁사가 ‘스파이 감사’를 앉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감사위원은 투자·사업계획뿐 아니라 회계장부 등 민감한 기밀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지난해 미국계 사모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에 해외 경쟁사 임원을 감사·이사로 앉히려고 시도하다 무산된 바 있다. 만약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상황에서 엘리엇이 이 같은 시도를 했다면 현대차의 영업기밀이 경쟁사에 고스란히 노출됐을 공산이 크다.

송원근 연세대학교 객원교수는 “감사위원 분리선임은 권리 보호 대상인 소수주주가 아닌 기업의 잠재적 경쟁자와 경영 인수 가능성이 있는 주요 주주와 해외 거대 금융자본 배경 펀드 등이 남용할 수 있다”며 “특히 대주주 의결권 제한은 재산권 침해로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수주주권 행사요건 완화도 재계의 고민을 키우는 요소다. 현재는 소수주주가 주주제안 권한을 행사하려면 상장사 기준 0.01~1.50% 지분을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한다. 하지만 개정안은 지분율 3%만 확보하면 보유기간과 상관없이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주식 매입부터 주주 명의가 변경되는 사흘만 기다리면 곧바로 ▲임시주주총회 소집 ▲이사·감사 해임 청구 ▲회계장부 열람 청구 등으로 경영권 공격이 가능한 셈이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단키트를 개발하며 전세계에 ‘K-방역’의 위상을 알린 국내 대표 분자진단업체 ‘씨젠’(시가총액 7조3377억원)을 예로 들어보자. 특정세력이 2200억원 가량만 모으면 경영권을 넘볼 수 있게 된다.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3% 확보에 필요한 금액이 적어지기 때문에 경영권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국감 이후 논의 본격화



다중대표소송제도 또한 문제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의 이사가 자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일정 비율 이상 지분을 보유한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비상장기업 지분율 1% ▲상장기업 지분율 0.01% 및 6개월 이상 보유 조건을 만족하면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롯데그룹을 예로 들면 롯데지주 지분 0.01%에 해당하는 약 3억원만 있으면 연결자산총액 16조원에 달하는 14개 자회사에 소송이 가능하다.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제소 가능 금액은 더 낮아진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낮은 가액의 상장회사 주식을 매집 후 소속 자회사에 대한 빈번한 소송을 제기한 뒤 소송 취하를 빌미로 회사에 부당한 요구를 하는 등의 폐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은 “상법 개정안 정부안의 다중대표소송제도는 모회사 주주의 이익이 자회사 주주의 이익과 일치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 출발 선상에서부터 문제가 있다”며 “이 제도로 지주회사 체제로 운영되는 국내 기업집단의 소송리스크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재계는 상법 개정안의 신중한 처리를 호소하고 있다. 입법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투기자본의 이사회 진출 등 경영권 위협 시도에 한해 대주주 의결권 3% 제한을 적용하지 않는 등의 보완책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불공정거래를 바로잡고 대주주의 전횡을 막겠다는 입법 취지는 잘 이해한다”면서도 “규범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해결하고 법 제정은 신중했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국회는 올해 정기 국정감사가 끝난 이후 본격적으로 상법 개정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일각에선 법안 완화 가능성을 점치고 있지만 상법 개정안을 심사하게 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의 소위원장을 맡고 있는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재로선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입장이다. 백 의원은 “아직 법안이 1소위에 상정되지 않은 상태라 국감 이후에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논의 시작 전이어서 법안 완화 여부를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한듬 mumford@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S 산업팀 기자입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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