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규제 쓰나미가 몰려온다

[머니S리포트-재계 덮친 ‘공정경제 3법’ 공포] 당정, 기업 우려에도 공정경제3법 등 일방통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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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정부가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등 소위 ‘공정경제 3법’ 개정을 본격화하면서 재계의 반발이 거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경영이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을 옥죄는 법안이 통과될 경우 부담이 가중될 것이란 우려에서다. 재계는 공정경제 3법의 신중한 처리를 촉구하고 있지만 정치권 반응은 냉담하다. 공정경제 3법을 둘러싼 논란과 재계가 반발하는 이유를 살펴봤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2200억원으로 시총 7조 ‘씨젠’ 경영권 위협?… 상법 개정안의 함정


정부가 ‘공정경제 3법’(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의 핵심인 상법 개정안 처리에 속도를 내면서 재계에 비상등이 켜졌다.

총수일가 등 대주주의 전횡을 막아 기업 경영의 투명성을 제고하고 시장에 공정거래 생태계를 구축하기 위한 법안이지만 개정안 일부에 기업의 경영권을 외부에 노출시킬 수 있는 독소조항이 포함돼 있어서다. 정부가 마련한 원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국내 기업이 투기자본이나 적대세력의 놀이터가 될 것이란 위기감이 커진다.

◆기업 경영권 옥죄는 ‘3% 룰’

현재 국회에 제출된 상법 개정안은 ▲감사위원 분리선임 도입 및 대주주 의결권 3% 제한 ▲소수주주권 행사요건 완화 ▲다중대표소송제도 도입 등을 골자로 한다. 이 가운데 재계가 가장 크게 반발하는 내용은 감사위원 분리선임 및 대주주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하는 조항이다.

감사위원 분리선출은 대주주가 뽑은 이사 중에서 감사위원을 선출하지 않고 대주주로부터 독립적인 지위를 갖도록 한 명 이상의 감사위원을 별도로 선임하는 제도다. 기업경영을 감시해야 할 감사위원이 대주주의 거수기 노릇을 하지 못하도록 주주총회에서 별도의 인사를 선출해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자는 취지다. 특히 선출 과정에서 최대주주는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3%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제한했다.

지난 6월10일 서울 서초구 서울고검 의정관에서 고기영 법무부차관이 상법 개정안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이동해 기자
문제는 대주주의 의결권을 3% 이내로 제한할 경우 기업의 경영권이 외부에 무방비로 노출될 우려가 있다는 점이다. 일반주주도 3%까지만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하지만 일반주주는 서로 연합할 수 있다. 이 경우 투기자본이나 현 경영진에 반대하는 세력이 마음만 먹는다면 지분을 3%씩 쪼개는 방식으로 의결권을 행사해 자신들이 내세운 이사를 감사위원에 앉힐 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남매간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한진그룹의 경우 상법개정안 통과 시 조현아 전 부사장 측이 감사위원 분리선임제를 활용해 자신들이 내세운 인사를 감사에 앉힐 가능성이 커진다. 조원태 회장은 특수관계인을 포함해 지분율 28.93%를 보유하고 있지만 의결권을 인정받는 것은 3%뿐이다.

반면 조 전 부사장 측과 연합하고 있는 ‘KCGI’와 ‘반도건설’은 합산 지분 3% 제한을 받지 않기 때문에 유한회사를 설립해 보유지분을 3%씩 쪼개는 식으로 대부분의 의결권을 인정받을 수 있다. 조원태 회장 체제에 반대하는 진영에서 선임된 인사가 감사위원으로 선임될 경우 주요 경영현안에 대한 결정을 문제삼거나 반대하는 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가능성이 높다.

◆‘스파이 감사’에 기밀 노출 우려

대주주의 의결권이 제한될 경우 주요 기업에 경쟁사가 ‘스파이 감사’를 앉힐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 감사위원은 투자·사업계획뿐 아니라 회계장부 등 민감한 기밀정보를 열람할 수 있다.

지난해 미국계 사모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현대자동차와 현대모비스에 해외 경쟁사 임원을 감사·이사로 앉히려고 시도하다 무산된 바 있다. 만약 상법 개정안이 통과된 상황에서 엘리엇이 이 같은 시도를 했다면 현대차의 영업기밀이 경쟁사에 고스란히 노출됐을 공산이 크다.

송원근 연세대학교 객원교수는 “감사위원 분리선임은 권리 보호 대상인 소수주주가 아닌 기업의 잠재적 경쟁자와 경영 인수 가능성이 있는 주요 주주와 해외 거대 금융자본 배경 펀드 등이 남용할 수 있다”며 “특히 대주주 의결권 제한은 재산권 침해로 위헌 소지가 있다”고 지적했다.

소수주주권 행사요건 완화도 재계의 고민을 키우는 요소다. 현재는 소수주주가 주주제안 권한을 행사하려면 상장사 기준 0.01~1.50% 지분을 6개월 이상 보유해야 한다. 하지만 개정안은 지분율 3%만 확보하면 보유기간과 상관없이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했다. 주식 매입부터 주주 명의가 변경되는 사흘만 기다리면 곧바로 ▲임시주주총회 소집 ▲이사·감사 해임 청구 ▲회계장부 열람 청구 등으로 경영권 공격이 가능한 셈이다.

올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진단키트를 개발하며 전세계에 ‘K-방역’의 위상을 알린 국내 대표 분자진단업체 ‘씨젠’(시가총액 7조3377억원)을 예로 들어보자. 특정세력이 2200억원 가량만 모으면 경영권을 넘볼 수 있게 된다.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3% 확보에 필요한 금액이 적어지기 때문에 경영권 위협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국감 이후 논의 본격화

다중대표소송제도 또한 문제다. 다중대표소송제는 자회사의 이사가 자회사에 손해를 발생시킨 경우 일정 비율 이상 지분을 보유한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대표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한 제도다. ▲비상장기업 지분율 1% ▲상장기업 지분율 0.01% 및 6개월 이상 보유 조건을 만족하면 모회사 주주가 자회사 이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롯데그룹을 예로 들면 롯데지주 지분 0.01%에 해당하는 약 3억원만 있으면 연결자산총액 16조원에 달하는 14개 자회사에 소송이 가능하다.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제소 가능 금액은 더 낮아진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낮은 가액의 상장회사 주식을 매집 후 소속 자회사에 대한 빈번한 소송을 제기한 뒤 소송 취하를 빌미로 회사에 부당한 요구를 하는 등의 폐해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권재열 경희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장은 “상법 개정안 정부안의 다중대표소송제도는 모회사 주주의 이익이 자회사 주주의 이익과 일치한다는 것을 전제로 해 출발 선상에서부터 문제가 있다”며 “이 제도로 지주회사 체제로 운영되는 국내 기업집단의 소송리스크 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꼬집었다.

재계는 상법 개정안의 신중한 처리를 호소하고 있다. 입법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지만 투기자본의 이사회 진출 등 경영권 위협 시도에 한해 대주주 의결권 3% 제한을 적용하지 않는 등의 보완책을 마련해 달라는 것이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불공정거래를 바로잡고 대주주의 전횡을 막겠다는 입법 취지는 잘 이해한다”면서도 “규범으로 해결할 수 있는 건 해결하고 법 제정은 신중했으면 하는 생각”이라고 밝혔다.

국회는 올해 정기 국정감사가 끝난 이후 본격적으로 상법 개정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일각에선 법안 완화 가능성을 점치고 있지만 상법 개정안을 심사하게 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안심사제1소위원회의 소위원장을 맡고 있는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현재로선 정해진 게 아무것도 없다는 입장이다. 백 의원은 “아직 법안이 1소위에 상정되지 않은 상태라 국감 이후에 논의가 본격화될 것으로 보인다”며 “논의 시작 전이어서 법안 완화 여부를 말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한듬 기자 mumford@mt.co.kr


당정이 공정경제3법을 비롯한 기업 규제 입법을 추진하고 있다. / 사진=뉴스1 이종덕 기자


속도 붙은 재벌개혁 드라이브, 재계 좌불안석


정부가 재벌개혁에 본격적인 드라이브를 걸면서 재계의 한숨이 깊어진다. 상법·공정거래법·금융그룹감독법 등 소위 ‘공정거래 3법’ 개정안에 이어 노동법 개정·집단소송제·징벌적 손해배상제까지 다양한 규제 입법이 쓰나미처럼 몰아치고 있어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경제위기가 심화된 상황에서 규제 입법 추진이 강행될 경우 기업의 경영활동이 크게 위축돼 성장 동력을 상실할 것이란 위기감이 팽배하다. 주요 경제단체는 연일 국회의 문턱을 넘나들며 신중한 법안 처리를 읍소하고 있지만 당정은 이번 정기국회 내에 관련 입법을 마무리짓겠다며 귀를 닫은 모양새다.

◆잇단 규제에 투자동력 상실 우려

정부가 추진하는 공정경제 3법은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과 공정한 시장질서 확립을 목표로 한다. 대주주의 전횡을 막고 소수주주의 권익을 보호하는 등 기업의 불투명한 의사결정 구조를 개선하고 ▲공정거래법 집행체계 합리화 ▲대기업집단 경제력남용 근절 ▲혁신성장 뒷받침 등 공정경쟁질서를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재계는 제도 도입의 취지에는 공감한다면서도 지나친 규제로 인해 기업의 경영부담이 가중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감사위원 분리선출 및 대주주 의결권 3% 제한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의 경우 기업 이사회에 외국금융투기자본과 투기세력의 참여를 허용해 기술과 영업기밀을 노출시킬 위험성이 높다며 투기자본의 이사회 진입 시에는 해당 규정을 적용하지 말 것을 촉구하고 있다.

공정거래법 개정안은 ▲전속고발제 폐지·사인의 금지청구제 도입 등 법 집행 체계 개편 ▲지주회사 지분율 요건 강화 등 기업집단 규율 법제 개선의 내용을 담았다. 전속고발권은 공정거래위원회의 고발 없이는 검찰이 기소할 수 없도록 한 제도다. 이 제도가 폐지되면 검찰 자체 판단으로도 고발이 가능하다. 공정위 조사와는 별도로 검찰의 개별 수사가 동시에 진행될 수 있다는 얘기다. 지주회사의 자회사 보유 지분 기준도 ▲상장회사 20%→30% ▲비상장회사 40%→50%로 높아진다.

/그래픽=김은옥 기자
재계는 전속고발권 폐지 시 경쟁 사업자에 의한 무분별한 고발과 공정위·검찰의 중복조사 등으로 기업의 소송관리 리스크가 증가할 것이라고 반발한다. 특히 자회사 의무지분율이 강화되면 지분매입 비용이 증가해 기업이 투자 여력을 잃고 일자리가 사라지는 등 연쇄 부작용을 낳게 된다는 입장이다.

4전국경제인연합회 관계자는 “지난해 기준 34개 상출제기업집단 가운데 16개 비지주회사 기업집단의 지주회사 전환 가정 시 지분 확보에 약 30조9000억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며 “이 비용을 투자한다고 가정할 경우 24만여명의 고용창출이 가능한데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되면 그만큼의 고용창출 효과가 증발하는 셈”이라고 주장했다.

금융그룹감독법 제정안은 ▲자산 5조원 이상 등의 요건을 갖춘 비지주 금융그룹을 감독대상으로 지정 ▲위험관리 체계 구축과 자본적정성 점검 등 금융그룹 감독방안 마련을 골자로 한다. 이 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금융당국은 삼성·한화·미래에셋·교보·현대차·DB 등 6개 금융그룹의 위험관리실태와 자본적정성 등을 점검해야 한다. 보험·카드·금융투자업으로 나뉜 업권별 금융감독과 별개로 금융 계열사가 속한 그룹사까지 규제를 받는다는 점에서 이중규제나 다름없다는 지적이다.

◆재계 우려에도 추가 규제 ‘우르르’

더 큰 문제는 공정경제 3법 외에도 재계의 부담을 높이는 입법이 줄줄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당정은 국제노동기구(ILO) 협약 비준을 위해 ▲실업자 ▲해고자 ▲퇴직 공무원과 교원 ▲소방 공무원 ▲대학 교원 ▲5급 이상 공무원 등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는 내용의 노동조합법 개정 절차를 밟고 있다.

박재근 대한상공회의소 산업조사본부장은 “정부의 노조법 개정안은 노동권만을 강화하고 있어 노사관계에서 힘의 불균형과 산업현장의 갈등을 증폭시킬 우려가 크다”며 “노사 대등성과 노동시장 경쟁력이 보장될 수 있도록 균형 있는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단소송제와 징벌적 손해배상제 확대 도입도 재계의 고민을 키우는 요소다. 법무부는 최근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확대 도입하는 집단소송법 제정안과 상법 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법안이 시행되면 집단소송제도를 피해자가 50인 이상인 모든 분야로 넓히고 위법행위를 한 기업은 실제 손해보다 최대 5배까지 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

가습기 살균제 등 피해 규모가 큰 사건의 피해자에게 실질적인 손해배상 길을 열어준 것이지만 재계는 블랙컨슈머나 특정 목적을 가진 법률브로커 등이 해당 법안을 악용해 소송을 남발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관계자는 “현재도 제조물책임법·자동차관리법 등 분야별 20여 개 법률에서 상거래에 의한 피해 당사자인 소비자·거래업자 등의 보호는 높은 수준으로 보장한다”며 “해당 제도의 도입 문제는 중장기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 6일 서울 마포구 경총회관에서 열린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간담회에서 공정경제 3법의 연기를 요청했다. / 사진=장동규 기자

잇달아 규제법안이 쏟아지자 주요 경제단체는 연일 국회를 드나들며 경제계의 우려를 전달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해 경제위기가 엄중한 상황임을 고려해 처리시기를 연기하거나 법안 논의 과정에서 경제계 입장을 최대한 반영해 달라는 절박함에서다.

박용만 대한상의 회장은 최근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차례로 예방해 공정경제 3법에 대한 경제계의 의견을 듣는 절차를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이 자리에서 박 회장은 “기업은 기업대로 생사가 갈리는 어려운 지경에 처해있는데 기업을 옥죄는 법안이 늘어나고 있어 걱정이 크다”며 “지금은 한 템포 늦춰서 문제점을 자세히 들여다봤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토로했다.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도 지난 6일 이낙연 대표를 만나 “지금은 코로나19에 따른 경제·고용위기를 극복하는 한편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 기업의 활력을 살리고 경쟁력을 높여야 할 시기”라며 법안 처리 연기를 요청했다.

하지만 당·정은 단호한 입장이다. 이낙연 대표는 경제계의 입장은 충분히 듣겠다면서도 “공정경제 3법의 입법방향을 바꾸거나 시기를 늦추기는 어렵다”며 이번 정기국회 내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분명히 했다. 김종인 위원장도 “어떤 제도가 수립되고 기업이 그 범위 내에서 경제활동을 하면 별 문제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재계의 우려를 일축했다. 이번 정기국회는 12월9일 종료된다. 현재 진행 중인 국정감사가 26일 끝나면 각 상임위별로 본격적인 법안 논의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한듬 mumford@mt.co.kr  | twitter faceboo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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