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의 6년5개월, 이건희의 삼성과 무엇이 달랐나

4세 경영포기·무노조경영 철폐 선언… CJ그룹과 관계 개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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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6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에서 열린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기자회견에서 4세 승계 포기와 무노조경영 철폐 등의 약속이 발표됐다. / 사진=임한별 기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별세하면서 아들인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하는 삼성의 새로운 시대가 본격화됐다.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이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져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2014년5월부터 6년5개월 동안 사실상 회사의 경영을 진두지휘해 왔다. 2018년에는 공정거래위원회의 동일인 지정에 따라 공식적인 삼성의 ‘총수’로서 책임경영을 강화해 선대와는 다른 ‘뉴 삼성’을 만드는 데 속도를 내고 있다.



‘관행’ 부수고 ‘준법’ 장전



이 부회장 체제에서 삼성에 나타난 가장 큰 변화는 경영세습과 무노조 경영을 폐지한 것이다. 경영세습은 삼성 총수일가를 사법리스크에 발목 잡히게 한 아킬레스건이다. 이병철 삼성 창업주에서 3대 경영인인 이 부회장으로 경영권이 이양되는 과정에서 여러 불법·편법 논란이 불거졌고 이건희 회장과 이 부회장이 구속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올해 초 출범한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도 삼성그룹이 과거에 겪은 불미스러운 일들이 대체로 ‘승계’와 관련이 있다고 판단하고 이 부회장의 반성과 사과 및 앞으로의 경영권 행사 및 승계 과정에서 준법의무를 위반하지 않겠다는 점을 국민에게 공표할 것을 권고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이 부회장은 5월6일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다목적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승계 문제를 사과하면서 4세로의 경영권 이양 포기를 선언했다. 당시 이 부회장은 “저와 삼성을 둘러싸고 제기된 많은 논란은 근본적으로 이 문제(승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인정하면서 “이제는 경영권 승계로 논란이 생기지 않게 하겠다. 법을 어기는 일을 결코 하지 않고 편법에 기대거나 윤리적으로 지탄받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특히 “제 아이들에게 절대 회사 경영권 물려주지 않겠다”며 “성별·학번·국적을 불문하고 훌륭한 인재를 모셔 그 인재가 주인의식과 사명감을 갖고 치열하게 일하면서 저보다 중요한 위치에서 사업을 이끌어가도록 하는 게 저에게 부여된 책임이자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창업주 시절부터 82년 동안 이어져 온 무노조 경영도 완전히 폐지됐다. 삼성은 창업 이후 무노조 경영 기조를 고수해왔다. 노조를 조직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도록 임직원의 권익과 복리 증진을 적극적으로 보장한다는 취지에서다. 반면 노동계와 정치권에서는 글로벌 초일류 기업인 삼성이 시대에 역행해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무시한다고 비판해 왔다.

이와 관련 이 부회장은 “더 이상 삼성에서 무노조경영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하겠다”며 “앞으로 노사 법령 철저히 준수하고 노동3권을 확실히 보장하겠다”고 약속했다. 삼성전자와 삼성물산 등 계열사가 자체적으로 노조 문제에 사과한 적은 있지만 이 부회장이 총수 자격으로 공식석상에서 사과한 것은 처음이다. 앞으로 삼성에 건전한 노사문화가 정착될 것이란 기대가 높아진다.



선대의 앙금, 후대에서 푼다


선대에서 ‘앙숙’이었던 CJ그룹과의 관계도 이 부회장 체제에서 해빙 무드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삼성과 CJ그룹은 이병철 삼성 창업주의 장남인 고 이맹희 전 CJ그룹 명예회장과 삼남인 이건희 회장의 다툼으로 극심한 갈등을 빚어왔다. 과거 이건희 회장에게 경영권을 내주고 후계구도에서 밀려난 이맹희 전 회장이 2012년 2월 선친의 차명재산에 대한 상속권을 주장하며 이건희 회장에게 1조원대의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이재현 CJ그룹 회장. / 사진=뉴스1 구윤성 기자
이맹희 전 회장과 이건희 회장의 소송은 삼성과 CJ그룹의 갈등으로 비화됐다. 소송 과정에서 양사의 미행의혹·창업주 선영 출입문 사용 문제 등 불미스러운 일이 연달아 불거졌기 때문이다. 소송은 이건희 회장의 승리로 끝나긴 했지만 삼성과 CJ는 갈등의 골이 깊어지며 형제 기업에서 남보다 못한 사이가 됐다.

하지만 후대로 세대교체가 이뤄지면서 관계개선의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된다. 2014년 이맹희 전 회장의 아들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횡령과 배임 혐의로 구속되자 이재용 부회장 등 ‘범 삼성가’는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이듬해 이맹희 전 회장이 별세하자 이재용 부회장은 가족과 함께 공식 조문이 시작되기도 전에 빈소를 찾아 이재현 회장을 위로한 바 있다. 2018년에는 삼성 출신인 박근희 삼성생명 고문이 CJ대한통운 부회장으로 영입됐는데 이 과정에서 이재현 회장이 이재용 부회장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건희 회장이 별세한 10월25일에도 가장 먼저 빈소로 달려온 인물도 이재현 회장이다. 부인인 김희재 여사와 자녀 이경후 CJ ENM상무·이선호 CJ부장 내외 등과 함께 장례식장을 찾은 이재현 회장은 1시간30분 가량 머물며 고인의 넋을 기리고 이재용 부회장 등 유족을 위로했다.

이재현 회장은 특히 이건희 회장에 대해 “국가 경제에 큰 업적을 남기신 위대한 분”이라며 “가족을 무척 사랑하셨고 큰 집안을 잘 이끌어주신 저에게는 자랑스러운 작은 아버지”라고 추켜세웠다. 또한 “일찍 영면에 드셔서 황망하고 너무 슬프고 안타까울 따름”이라며 “하늘나라에서 편히 쉬시길 기도한다”고 애도를 표했다.

재계 관계자는 “선대의 일은 과거로 마무리 짓고 후대에서 다시 관계를 회복하려는 의지로 읽힌다”며 “사실상 삼성과 CJ의 갈등이 봉합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한듬 mumford@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S 산업팀 기자입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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