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막았더니 전세금 올려서 또 '갭투자'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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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인 아파트 매매가 급등에 이어 최근엔 전셋값마저 폭등 수준을 보이고 있다. 매매가 대비 전세가비율(전세가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서울 강남 재건축아파트에선 한달도 안돼 보증금이 두배 이상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사진=머니S DB
비정상적인 아파트 매매가 급등에 이어 최근엔 전셋값마저 폭등 수준을 보이고 있다. 매매가 대비 전세가비율(전세가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서울 강남 재건축아파트에선 한달도 안돼 보증금이 두배 이상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사진=머니S DB

‘500조원’. 국내 전세시장에서 집주인이 세입자로부터 받은 보증금으로 추정되는 금액이다. 금융권의 추정치지만 전세금은 일종의 사금융 형태. 내년 6월 전·월세 신고제가 정식으로 시행되기 전까지 전세금의 정확한 규모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전세금은 제도권 전체 가계부채의 절반에 육박한다. 가계부채 957조9000억원 가운데 전세자금대출을 포함한 주택담보대출이 702조5000억원(73.3%)이다.

비정상적인 아파트 매매가 급등에 이어 최근엔 전셋값마저 폭등 수준을 보이고 있다. 매매가 대비 전세가비율(전세가율)이 상대적으로 낮은 서울 강남 재건축아파트에선 한달도 안돼 보증금이 두배 이상 급등하는 현상이 나타났다. 전세난 심화를 틈타 집주인들이 전세금을 마구잡이로 올리는 탓도 있지만 궁극적으론 정부가 집값 거품의 주범으로 ‘갭투자’(전세 세입자가 사는 집을 매매가-전세가 차액만 내고 매입)를 지목하며 주택담보대출을 막자 전셋값 인상으로 맞서는 양상이다.



전세 3억원 아파트, 한 달 새 7억원으로 급등


문제는 이처럼 전세금 인상으로 만들어진 자금이 또 다른 시드머니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 자금이 다시 부동산시장으로 유입돼 투기행위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불과 한두달 새 적게는 전세금이 수천만원에서 수억원씩 오르는 단지가 속출했다. 심지어 같은 달 각각 신고됐거나 매물로 나온 호가가 두배 넘게 차이를 보이는 전세 아파트도 있다.

부동산 중개업소를 중심으로 현장에선 지난 7월 말 국회 통과 후 즉시 시행된 주택임대차보호법 즉 임대차2법(계약갱신청구권제와 전·월세상한제) 영향으로 재계약이 늘고 세입자 보호가 강화돼 전세난에 기름을 붓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울 강남의 대표 재건축 추진단지인 대치동 은마 84㎡(이하 전용면적)의 경우 10월 초 실거래 신고 기준 전셋값은 5억2500만~7억원이었다. 하지만 10월 중순 이후 호가가 9억5000만원까지 치솟았다. 불과 한 달도 안돼 전셋값이 최대 4억원 이상 급등한 셈이다. 압구정동 현대아파트14차 84.98㎡ 전세는 8월 6억8250만~7억5000만원 사이에 실거래됐으나 현재 호가는 10억5000만원이다.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76㎡도 전세 호가가 7억원이다. 10월 신고가액인 3억~4억5000만원에 비해 최대 4억원 뛰었다. 한달도 안돼 전셋값이 두배 뛴 것이다. 서초구 잠원동 신반포4차 107㎡는 9월 전세 실거래가가 8억원이었지만 현재 호가는 9억5000만원이다. 지난 9월 9억4000만원선에서 전세거래가 체결됐던 잠원동 동아아파트 84.91㎡는 최근 호가가 10억7000만원이다.

전세 호가가 급등하며 다른 매물에도 영향을 미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그럼에도 현장에선 이 같은 전셋값 급등에 관해 특별한 이유를 설명하지 못하고 있다. 송파구 중개업소 관계자는 “전세매물이 귀하고 가격이 계속 오를 것이란 불안 심리가 팽배하다 보니 세입자들이 서둘러 계약에 나서는 분위기”라며 “집주인 입장에서 굳이 가격을 내릴 이유도 없다”고 했다.



전세 올려서 결국 ‘갭투자’?


강남 재건축 아파트는 지은 지 40년이 넘어 벽에 금이 가고 수도관이 노후돼 내부 리모델링을 해야 거주할 수 있을 정도다. 하지만 학군과 인프라가 좋은 데다 신축단지에 비해 전셋값이 낮아 전세수요가 적지 않다. 전세 호가를 비정상적으로 올려도 보증금이 낮다는 인식이 자리하고 있다.

문제는 이처럼 전세금을 올려 마련한 자금이 시드머니가 돼 다시 ‘갭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주택담보대출 규제 효과가 떨어진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박상혁 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김포을)이 국토교통부의 ‘2018년 이후 갭투자 현황’을 공개한 데 따르면 올 8월 고가주택이 몰린 서울 강남2구(강남·서초)의 갭투자 비율이 60~70%에 달했다.

박 의원은 주택을 매수할 때 제출하는 자금조달계획서에 임대차 보증금 승계 조건이 기재된 경우를 ‘갭투자’로 분류했다. 구역별로는 ▲서초구 225건 중 163건(72.4%) ▲강남구 164건 중 102건(62.2%) ▲송파구 211건 중 107건(50.7%)으로 나타났다. 박 의원은 “갭투자는 내집마련 목적이 아닌 투기를 위한 거래”라며 “정부가 갭투자 방지 대책을 시행했음에도 실효성이 낮다”고 지적했다.

정부가 시세 15억원 초과 고가주택에 대한 주택담보대출을 금지했지만 15억원 이상 고가 아파트가 많은 강남권에선 높은 전세금을 이용해 주택을 다시 매수하는 갭투자가 성행할 가능성이 여전히 존재한다. 초저금리와 박스권에 갇힌 주식시장 등이 결국 투자금의 부동산 쏠림현상을 부추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집값 거품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매매를 대체하는 전세수요가 폭증하며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전세가율)도 무서운 속도로 상승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집값 거품에 대한 우려가 현실화되고 매매를 대체하는 전세수요가 폭증하며 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전세가율)도 무서운 속도로 상승했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미국 대선 이후 통화정책 변화로 금리가 오를 경우 하우스푸어의 이자비용이 증가하고 집을 팔아도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소위 ‘깡통주택’이 늘어날 수 있다. 정치권에선 전세금을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포함시켜 규제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 경우 전세금을 이미 다른 부동산에 투자해 여유자금이 없는 집주인은 세입자에겐 폭탄이 될 수밖에 없다. 전세금 DSR 규제는 현실화가 쉽지 않지만 금융당국은 검토할 만한 과제라는 입장이다.



‘갭투자’ 대출규제 무용지물


# 얼마 전 전셋집을 계약한 A씨는 전세자금대출을 신청하기 위해 시중은행에 방문했다. 은행원은 계약서에 기재된 주소의 집에 약 2억원의 근저당이 설정돼 있다고 안내했다. A씨는 해당 주택은 담보대출이 안 된다는 사실을 알고 당황했다. 알고 보니 집값에서 전세금을 빼도 차액이 발생하는 경우 근저당을 설정한 신용대출이나 마이너스통장 신청이 가능했다. 해당 집주인은 30채 정도 보유한 다주택자로 다른 전셋집의 공실이 발생할 경우 전세금 반환을 위한 긴급자금으로 사용하기 위해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었다고 해명했다.

‘갭투자자’(세입자가 사는 집을 매매가-전세가 차액만 내고 매수)가 주택담보대출이나 전세자금대출을 받아 추가 주택 구입을 못하도록 정부가 규제하고 있지만 현실적으로 이를 막기가 쉽지 않다. 세입자가 사는 집을 담보로 주택담보대출을 받는 것은 금지됐지만 신용대출을 받거나 아니면 전세금을 올려 새로운 ‘시드머니’를 만들어내는 수법이 기승을 부리는 것으로 보인다. 전세금을 마구잡이로 올리는 게 가능한 건 최근 폭증하는 전세수요 때문이다.

이런 시드머니가 반드시 부동산 투자에 사용됐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상당 부분 부동산시장 자금으로 흘러가고 있다는 정황을 확인할 수 있다. 취업포털 인크루트가 알바콜과 공동으로 10월7일과 8일 이틀 간 주부·직장인·자영업자 등이 포함된 사이트 회원 753명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올해 빚을 내 투자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7.9%로 이중 신용대출과 마이너스통장이 절반 이상인 51.6%에 달했다. 평균 대출금액은 ▲담보대출 8882만원 ▲신용대출 2296만원인데 이중 3분의1이 부동산 투자(33.3%)로 쏠렸다.



전세가율 98%, 갭투자 ‘부채 뇌관’


수도권 일부에선 전셋값이 급등해 1000만원도 안되는 돈으로 갭투자가 가능한 사례가 발견됐다. 전세가율 급상승으로 갭투자의 문턱이 낮아진 탓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에 따르면 경기 남양주시 진건읍 ‘진건세아’ 아파트 58㎡(이하 전용면적)는 9월22일 1억5280만원(18층)에 매매계약이 체결됐는데 약 20일 후인 10월12일 1억5000만원(18층)에 전세계약이 됐다. 단돈 280만원으로 수도권 아파트를 사들일 수 있게 된 셈.

남양주 와부읍 ‘덕소주공3단지’ 59㎡는 9월22일 3억7000만원(9층)에 매매됐는데 한달 후인 10월23일 같은 면적 전세 실거래가가 3억원(4층)이었다. 매매가와 전셋값 차이가 7000만원밖에 안됐다.

3기신도시 건설 예정인 경기 남양주·하남 등은 추후 무주택자 자격으로 분양받기 위해 대기하는 전세수요가 증가하며 이런 전세난이 심화되고 있다. 2~3년 후 전세시장이 정상화되면 전세금 미반환 위험이 커진다. 한국은행이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 따르면 전셋값이 10.0% 하락할 경우 집주인이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경우가 3만2000가구에 달할 것으로 추정됐다.



전세금 DSR 포함 현실화 가능성은?


전세금이 부채 뇌관이란 우려가 커짐에 따라 국정감사에서도 관련 대책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홍기원 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 평택갑)에 따르면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주지 못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와 SGI서울보증이 대위변제한 전세금은 해마다 급증해 2016~2020년 5년 동안 7654억원을 기록했다. 보증기관이 집을 경매 처분해 회수한 금액은 350억원(4.6%)에 불과했다.

HUG와 SGI가 판매하는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보험은 세입자가 보험료를 내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이처럼 미반환 사고가 발생했을 땐 다주택자가 부담해야 하는 손실을 공사가 떠안게 돼 국민 혈세 낭비로 이어진다는 지적이다. 홍 의원은 “DSR 산정에 전세금을 포함시켜 깡통전세 사고를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금융당국 역시 DSR 규제 강화의 필요성에 수긍하는 분위기다. DSR 기준은 금융감독원장이 은행업 감독규정 시행세칙을 통해 변경할 수 있다.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무이자 사금융 형태인 전세금을 제도권 내에서 규제해야 하는 필요성에 공감한다”고 전제하며 “신용대출이나 전세금 인상분이 반드시 부동산에 투자된다고 단정할 수 없다. 갑작스럽게 발생하는 병원비나 긴급 생활비 등으로 사용해야 하는 경우 이런 규제의 피해사례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주택구매 시 집값에 상관없는 자금조달계획서를 제출하도록 했고 세부적인 용도와 증빙자료도 들여다보기 때문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노향·김창성
김노향·김창성 merry@mt.co.kr

안녕하세요. 머니S 산업2팀 김노향 기자입니다. 부동산·건설과 관련한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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