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기업 배 불리는 사이… 국산화율 '뒷전', 진짜 문제는?

[머니S리포트-길잃은 '메이드 인 코리아'②] 대만 풍력과 중국 LNG선의 교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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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국내 산업계 전반에 외산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내수 경쟁력은 여전히 확보 못 한 상황에서 저가와 기술력으로 무장한 외산에 자리를 뺏기고 있어서다. 통신·게임 분야는 물론 소재·부품·장비와 신재생에너지에 이르기까지 외산이 잠식하고 있다는 소식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국산화율을 높이는 데 무관심한 정부와 ‘저가’·‘기술력’을 앞세워 무서운 속도로 밀려 들어오는 외산 사이에서 국내 기업의 미래는 불투명한 상황이다. 길을 잃은 KOREA 기업들. 무너지는 산업 생태계 속 이들이 가야 할 방향은 어디일까.
# 가까운 이웃 나라 대만. 2017년 대만 정부는 신재생 에너지 생산을 위한 장소로 뒤늦게 해안을 낙점했다. 섬나라인 대만은 태풍 발생지로 바람이 잘 불어 해상풍력의 최적 장소로 꼽힌다. 정부 주도 아래 대만의 풍력발전 정책은 빠르게 추진됐다. 다만 자국 풍력산업에 대한 기반은 갖추지 못해 자연스럽게 외산기업들이 진입하는 통로가 열렸다. 덴마크의 ‘오스테드’ 등 세계적인 풍력발전설비 기업이 들어오면서 외산주도 개발로 이어졌다. 그 결과 2018년 체결한 대만의 창화 해상풍력단지는 시장가 대비 30% 이상 높은 가격에 계약이 이뤄졌다.

# 2018년 6월 중국 국영조선사인 ‘후둥중화’가 건조한 LNG선 글래드스톤호가 호주 앞바다를 항해하다 엔진 고장으로 멈춰섰다. 즉각 수리를 진행했지만 후둥중화는 결국 선체 결함을 인정하고 폐선을 결정했다. 이 사건은 전세계 선주에게 저가를 앞세운 중국산 LNG선의 한계를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이후에도 중국 LNG선 관련 문제는 계속됐다. 선박 일정을 제때 맞추지 못하는 일도 있었다. ‘중국선박공업’(CSSC)이 프랑스 선사로부터 수주한 9척의 LNG추진 컨테이너선은 지난해 초 인도가 돼야 했지만 내부 문제로 내년까지 1년 이상 연기됐다.


중국 국영 중국선박공업그룹 후둥중화조선그룹이 지난 2008년 4월 인도된 중국 첫 LNG선 '다펑하오'./사진=뉴시스
중국 국영 중국선박공업그룹 후둥중화조선그룹이 지난 2008년 4월 인도된 중국 첫 LNG선 '다펑하오'./사진=뉴시스
대만의 풍력시장과 중국의 LNG선. 이들은 이후 어떻게 달라졌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자국 산업이 없던 채로 외산에 휘둘리던 대만은 당시를 교훈 삼아 풍력시장 새 강자로 떠올랐고 저가를 앞세워 LNG선 수주를 따낸 중국산 업체는 결국 기술력에 발목이 잡혀 시장에서 밀려났다. 외산화 국면에서 생존한 대만이나 중국 저가 수주의 현실 등을 통해 한국 정부와 기업의 태도부터 변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10년 늦은 대만 풍력… 사업성은 5년 빨라



먼저 대만의 풍력 시장을 들여다보자. 외산 기업이 가격 폭리를 취하는 등 후발주자로 꺾이는 듯했던 대만의 풍력 산업은 정부 정책 아래 반전의 계기를 맞는다. 업계에선 산업 발전 속도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한국보다 10년 늦은 후발주자인 대만이 현재는 사업성으론 5년 이상 앞서가고 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대만 정부는 우선 해상풍력 3단계 개발계획을 수립한 뒤 단계별 보급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4개 지역 16개 단지의 개발자를 확정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대만 정부가 ▲해상풍력 타워 ▲하부구조물 ▲육상 전력설비 ▲케이블 등의 현지조달을 의무화한 점이다. 해상풍력발전 증대를 통한 에너지 전환뿐 아니라 자국산업 역량을 동시에 키우기 위해서다.

2단계 부품수주에 성공한 ▲LS산전(해저케이블 2000억원) ▲삼강엠엔티(하부구조물 2750억원) ▲현대스틸산업(하부구조물 1068억원) ▲씨에스윈드(해상풍력 타워 1895억원) 등 한국 기업도 대만기업과 기술제휴와 합작을 진행하고 있다. 씨에스윈드는 대만 장비제조사와 타워공장을 공동 설립하기도 했다.

베스타스사의 V112 3㎿ 풍력 터빈./사진= 뉴시스
베스타스사의 V112 3㎿ 풍력 터빈./사진= 뉴시스
대만은 가장 큰 골칫거리인 ‘주민 수용성’ 문제를 부처 간 협의체를 구성해 일괄 처리하는 방식으로 해결했다. 실증단지로부터 거리 기준을 설정하고 그에 따라 차등의 보상금을 지급하는 형태다.

업계 한 관계자는 “무조건 보상해달라는 우기기식 요구를 거부하고 확실한 기준을 정부에서 잡아줬기 때문에 한국 시장과 달리 수월하게 사업이 진행되는 것”이라며 “대만보다 10년이나 빠른 국내 풍력 시장도 수용성 문제를 안고 장기화할 게 아니라 대만 사례를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꼬집었다.

반면 중국 LNG선의 실패는 한국기업이 재기하는 기회가 됐다. 중국 LNG선의 고장 문제가 세계적 이슈가 되자 현대중공업(한국조선해양 산하 조선사)과 대우조선해양 및 삼성중공업 등 한국 조선 ‘빅3’는 기술력을 앞세워 중국의 LNG선 점유율을 위협해 갔다.

그 결과 지난 몇 년간 세계 LNG선 점유율은 한국업체가 80~90%가량을 유지하며 독식 중이다. 중국 조선사는 한국 빅3 업체를 따라 잡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기술적 한계는 넘을 수 없다는 분석이다.

국내 조선업계 한 관계자는 “당시 선주들 사이에서 중국업체 악명이 높아질수록 기술력이 월등한 한국기업이 손쉽게 물량을 확보해 나갔다”면서 “1척당 2000억~3000억원대를 투자하는 선주 입장에선 선박 운용 안정성을 담보할 기술력을 갖춘 조선소를 선별해 일감을 주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조선 3사는 이같은 시장 유동성이 LNG 운반선에 이어 LNG 추진선 시장까지 장악할 기회로 보고 있다.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LNG운반선/사진=뉴스1 DB
현대중공업이 건조한 LNG운반선/사진=뉴스1 DB


‘자국산업 보호 위한 룰’ 절실



업계에선 내수기업 경쟁력 확보를 위한 정부의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할 뿐 아니라 저가라는 이유로 국내 산업의 중국 의존도가 높아진다면 오히려 잃는 게 더 많을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내놓는다. 실제 국내 컨테이너 크레인산업은 중국업체 ‘ZPMC’사의 저가 공세에 무너졌다. 국내 기자재시장을 장악한 ZPMC는 2015년부터 기존 저가정책을 바꿔 납품가를 기존 대비 20~30% 올리는 등 본색을 드러냈다. 이러한 사례를 바탕으로 국내 산업도 반전의 계기를 맞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자국산업 보호를 위한 룰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1차적 책무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회 기업정책실장은 “훌륭한 인프라를 보유한 한국이 글로벌 외국기업의 놀이터가 되지 않으려면 관련 산업에 관한 제도 정비가 필수적”이라며 “업계 의견을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국부유출과 국내 고용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자국산업이 기반이 되지 않으면 글로벌 진출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재생에너지 기업 한 관계자는 “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에 있어서도 수요기관에서 국내시장 납품 실적을 요구하고 있다”며 “외산에게 국내시장을 빼앗기는 것은 해외시장 진출에도 큰 어려움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무조건적인 국산화보다 협력체계를 강화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국내 산업 발전에도 긍정적 영향을 줄 것이란 의견도 있다. 이홍배 동의대학교 교수는 “국내 산업은 그동안 글로벌 밸류체인 하에 다양한 부가가치를 창출했다”며 “무조건적인 국산화 정책은 기존에 없던 새로운 기회비용을 만들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의 효율성 측면을 고려한다면 협력방안을 찾는 게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 이 교수의 조언이다.
 

김설아
김설아 sasa7088@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S 산업1팀 재계 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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