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방위산업의 '족쇄'… 아날로그 '규제'와 '갑질'

[머니S리포트-K-방산 '비상의 날갯짓'②] '삼성'도 백기… 구조적 문제는?

 
 
기사공유
  • 카카오톡 공유
  • 카카오톡 공유
  • 네이버 블로그
  • 카카오스토리
  • 텔레그램 공유
  • url 공유
편집자주|K-방산이 비상의 날갯짓을 시작했다. 과거 조선·기계·철강·정유·화학이 누리던 영광이 이제 방위산업을 비추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다만 걸림돌도 함께 놓여있다. 정부 주도 하에 징벌적 제재가 따라붙는 현재 사업모델 탈피가 불가피하다. 내수를 키우고 수출 길도 열어줘야 한다. 주도적으로 변하지 않으면 K-방산의 미래도 없다. 기로에 놓인 방위산업의 현주소와 한계를 짚어본다.
# 고객사가 원하는 제품을 기획한다. 수량을 정하고 생산 원가도 직접 정해 공지한다. 이 고객사 주문을 서로 따내겠다며 제조사는 경쟁을 벌인다. 제조사는 고객사가 정한 원가보다 더 낮춰 적자를 보더라도 무조건 해야 한다. 어쩔 수 없다. 물건을 팔 곳은 이 고객사 한 곳뿐. 어렵게 주문을 따냈다고 해도 넘어야 할 산이 많다. 그중에서도 마감시간은 곧 돈이다. 고객사가 정한 날짜에 납기하지 못하면 하루 단위로 벌금이 쌓인다. 1년 정도 늦어졌다면 약 300억원의 벌금이 물린다. 억울함은 법정을 통해야만 일부 소명이 가능하다. 고객사의 다른 주문을 받았지만 1년 영업이익의 수십배에 달하는 벌금도 함께 쌓인 아이러니한 상황. 그런데도 고객사 눈치보기에 바쁘다. 찍히기라도 하면 앞으로 모든 입찰이 막힐 수 있다. 그야말로 ‘슈퍼갑’과 ‘슈퍼을’. 정부(고객사)와 방산업체(제조사) 이야기다.

미국방부 테스트를 통과한 국산유도로켓비궁/사진=뉴스1 DB
미국방부 테스트를 통과한 국산유도로켓비궁/사진=뉴스1 DB
“삼성도 포기한 데는 다 이유가 있지 않겠어요.” 방산업체 한 관계자의 말이다. 삼성은 2015년 7월 삼성테크윈(현 한화에어로스페이스)과 삼성탈레스(현 한화시스템)를 한화에 매각하면서 방위산업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

업계에선 삼성그룹이 방위산업을 포기한 이유도 이러한 구조적 문제와 무관치 않다고 입을 모은다. 업계 관계자는 “그동안 방위산업은 툭하면 비리 의혹, 걸핏하면 소송이었다”며 “삼성이 이런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사업을 지속할 수 없다는 빠른 판단을 내린 것 같다”고 말했다.



방산기업 87개로 줄어… 기형적 문제 만연



삼성만 철수한 게 아니다. 2016년 두산도 보병전투장갑차 등을 생산하는 두산 DST를 한화에 넘겼다. 그렇게 하나 둘 방산에 발을 담고 있던 기업이 사라지다 보니 2016년 100곳이던 정부 지정 방산업체는 올해 기준 87개(코오롱데크·풍산·현대로템·S&T모티브·대우조선해양·현대중공업·한화시스템·한국항공우주산업(KAI)·LIG넥스원 등)로 줄었다. ▲대기업 20개 ▲중견기업 14개 ▲중소기업 53개 회사다.

매출액은 상위 10개 업체가 전체 매출 77%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 77개사는 방산업으로 큰 이익을 내지 못하거나 명맥만 유지하는 경우가 다반사다. 매출 상위 업체들 역시 웃을 수만은 없다. 방위산업이 가진 특수성 때문이다.

방산계약은 통상 방위사업청(정부)이 필요한 무기를 대기업(방산업체)에 요구하면 방산업체가 여러 중소기업과 협력해 개발하고 이를 정부나 군에 납품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고객이 정부와 군으로 제한되는 것이다. 이들은 고객사임과 동시에 방산업체의 1차 감독기관이기도 하다. 이 과정에서 금전적 손해와 기술탈취 등 기형적 문제가 만연하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방산 생태계 재단하는… 규제 또 규제



방산업체들은 정부의 아날로그적 규제를 가장 큰 문제로 꼽는다. 산업 특수성이 전혀 고려되지 않은 채 일반적인 정부 상용품과 같은 규제를 받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다는 지적이다.

지체상금(납품 지연 배상금)이 대표적이다. 지체상금은 납품이 지연되면 방산업체가 정부에 지체 일수만큼 물어야 하는 벌금이다. 하루에 계약액의 0.075%가 부과된다. 연구개발(R&D) 또는 생산 차질 등의 이유로 늦어졌거나 심지어 정부의 지시로 납품이 지연된 경우에도 예외 없이 부과된다.

국가대표 방위산업의 '족쇄'… 아날로그 '규제'와 '갑질'
방사청이 지난 10년간 방산업체에 부과해 온 지체상금은 1조원대에 이른다. K2전차 체계개발업체인 현대로템은 2016년 방사청이 파워팩 국산화를 위해 선택한 지정업체의 변속기 문제로 납품이 지연되면서 1100억원의 지체상금을 떠안았다. LIG넥스원은 한화 대전사업장 폭발사고로 인한 납품 차질 문제로 80억원의 지체상금을 부과받았고 총기제작업체인 S&T모티브는 정부의 설계 변경 탓에 납품이 늦어졌는데도 30억원의 지체상금을 부과받았다. 

방산업체 한 관계자는 “개발되지 않은 무기체계의 개발은 특성상 요구조건과 규격 등을 지속적으로 최적화하는 프로세스가 요구돼 일정·비용이 계속해서 변경될 수 있다”면서 “현 방식 하에서는 업체가 막대한 투자를 하면서 무기 개발에 나섰다가 자칫 큰 손해를 입을 수 있기 때문에 도전적 개발 의욕이 꺾일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아무리 납품이 늦어져도 지체상금이 사업비 10%에 그치는 수입 무기와의 역차별 논란도 거세게 일고 있다.



방사청 ‘법정행’… 매년 100건 넘어



‘부정당업자 제재’도 방위산업 특성과 맞지 않는 과잉 규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는 특정 부정행위 업체에게 불이익을 주는 제도로 이 처분을 받으면 ▲입찰 제한 ▲부당이득·가산금 환수 ▲이윤 감액 ▲입찰 감점 등 중복 제재를 받을 수 있다.

문제는 제재 사유를 뚜렷한 귀책사유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방사청이 2012년~2020년 부정당업자를 제재한 총 876건 가운데 절반이 넘는 473건은 ▲담합 ▲허위서류 제출 ▲뇌물공여 등 단순 계약 불이행 건이었다. 일례로 이오시스템은 2016년 방사청의 부정당업자로 지정돼 3개월간 입찰이 제한됐는데 당시 제재 사유였던 원가부정이 착오에 의한 것으로 확인되면서 법원으로부터 제재 취소 판결을 받았다.

국가대표 방위산업의 '족쇄'… 아날로그 '규제'와 '갑질'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방사청의 법정행은 날로 증가 추세다. 방위사업청의 최근 5년간 소송 현황에 따르면 2015년 84건에서 2018년 128건으로 크게 증가했다. 지난해 116건으로 줄었지만 올해는 벌써 8월 기준으로 114건을 넘어섰다. 방산업체와 방사청의 유례없는 소송으로 “방산업이 로펌 먹여 살리다 날 샌다”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중소업체 영업률 1%… 갑질에 휘둘려



방산업체가 발주처인 정부 규제로 신음한다면 협력업체인 중소기업은 심각한 경영난과 기술탈취 문제 등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내수시장 의존도가 높은 중소 방산업체의 영업이익률은 대기업보다 낮은 1%에 그치는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큰 배경으론 불합리한 계약구조가 꼽힌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하청을 주는 과정에서 정해진 계약조건 없이 불합리한 거래가 횡행한다는 것이다. 한 중소 방산업체 관계자는 “대기업이 개발업체를 선정할 때 개발에 필요한 일체의 막대한 비용을 중소기업에게 자체적으로 내게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일련의 계약이 대부분 구두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 개발에서 양산, 납품 과정까지 암묵적으로 이뤄지는 비리는 이루 말할 수가 없다다”고 귀띔했다.

막대한 빚을 떠안고 사업을 접는 중소업체도 나타나고 있다. 한 중소 방산업체는 대기업에게 원가산정 공개를 빌미로 회사 정보를 제공했다 결국 사업을 접었다. 원가를 공개하는 과정에서 중소기업의 영업정보와 협력업체 정보 일체가 고스란히 노출된 게 화근이었다. 이를 악용한 대기업이 다른 중소기업 협력사와 직접 거래를 진행했고 해당 업체는 개발한 기술만 협력사에 넘긴 채 계약에서 배제됐다.

이 업체 대표는 “4년에 걸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 남 좋은 일만 시킨 뒤 회사는 무너졌다”며 “방산업계에선 중소기업 기술탈취 문제가 종종 일어나는데 대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한다고해도 계약서 등 증거될 만한 자료를 입증하는 게 쉽지않다”고 털어놨다.

이어 이 대표는 “당장 생계걱정을 해야하는 데 소송비용과 기약없는 시간 싸움을 버틸 재간이 없어 제 풀어 지쳐 포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더 큰 문제는 대기업이 중소기업의 이러한 한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이를 악용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전문가들 역시 대기업과 중소기업을 아울러 현 방위산업 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한목소리를 낸다. 김용환 박사(KIST 자문위원)는 한국국가전략연구원(KRINS)이 주관한 국방정책토론회에서 “미국·이스라엘은 아이디어를 낸 사람에게 시제품 개발 권한을 주고 예산을 지원하는데, 우리는 시제품 개발을 경쟁시켜 아이디어를 낸 사람이 아이디어를 도둑맞는 경우도 생긴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가계약법에 모든 계약은 경쟁 입찰을 하도록 돼 있어서 생기는 문제”라면서 “이런 문제를 개선하려면 국가계약법에 ‘국방 연구개발의 경우 시제품 개발은 아이디어 제공자에게 개발 우선권을 줄 수 있다’는 단서조항만 넣으면 해결된다”고 조언했다.

 
어깨제목: 한화디펜스-현대로템은 왜 ‘기술탈취범’이 됐나
제목: 대기업에 “눈뜨고도 당했다”? 

한화디펜스(옛 두산DST)와 현대로템. 국내 대표 방산업체인 두 곳이 ‘기술탈취범’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이들이 하청업체이던 ‘삼명공조’와 ‘썬에어로시스’의 핵심기술을 탈취해 방위사업청에 납품하거나 해외 수출을 앞두고 있다는 주장. 어떻게 된 일일까.

#. 최근 한화디펜스가 인도에서 재평가받은 ‘비호복합’ 대공 무기체계. 사업 수출규모만 3조원대에 달하는 이 사업에 한화디펜스가 러시아 방산업체를 제치고 가격협상대상자로 선정되면서 세계 2위 무기 수입국인 인도 시장 공략에 한 발 다가섰다.

방위사업청에서 제출한 사실조회자료 회신서/사진=삼명공조
방위사업청에서 제출한 사실조회자료 회신서/사진=삼명공조
비호복합의 냉방장치 개발 업체였던 삼명공조는 현재 한화디펜스의 비호복합 핵심 기술이 자사가 개발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한화디펜스에 인수되기 전인 2011년 두산DST가 냉방장치 개발에 대한 재료비만 지급하고 개발비는 지급하지 않은 채 무단으로 자사의 기술을 탈취했다는 것이다. 삼명공조가 이 문제를 법정에서 따지기로 하면서 두산 DST를 인수한 한화디펜스가 재판 당사자가 됐다.

삼명공조는 또 당시 제3의 회사인 ‘케이에스씨’에 자사 기술을 전달해 제품 양산에 나선 것은 ‘부정경제방지법’을 저촉한 행위라고 주장했다. 제품 이원화를 위한 추진이었다고 하지만 모든 영업 정보가 케이에스씨로 이전되는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삼명공조 관계자는 “자사가 개발한 자료를 방사청에 합의 없이 넘겨 규격화했다”며 “중소기업 기술 유출에 해당되며 두산DST(현 한화디펜스)가 중소기업의 기술과 영업기밀을 타 업체(케이에스씨)로 넘긴 사례”라고 주장했다.

군 전술훈련 소프트웨어 업체인 썬에어로시스도 현대자동차그룹 계열사인 현대로템으로부터 기술탈취를 당했다고 주장한다. 2007년 현대로템 측이 계약서 작성 없이 12개월간 기술개발을 시키고 핵심기술을 탈취해 방위사업청에 납품했다는 것이다. 이 사건은 시민단체에 의해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되는가 하면 국회 국정감사에서도 자주 거론되고 있다. 

박선태 썬에어로시스 대표는 수 년째 현대로템과 이 문제로 갈등을 겪고 있다. 지난 2018년 시민단체의 힘을 빌려 공정거래위원회에 현대로템을 신고하는가 하면 지난 10월 국회 국정감사에도 출석해 관련 건에 대한 억울함을 호소했다.

박 대표는 “당시 현대로템이 최소한의 품질검사와 유지 관리 목적 범위 내에서 사용한다는 명분 아래 제품 핵심인 소스코드 제출을 요구했다”며 “‘소스코드를 제출하지 않으면 방위사업청에 제품 납품이 불가하다’는 통보까지 받아 어쩔 수 없이 요구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방사청이 발주한 사업에서 관련 소프트웨어 분야는 포함되지 않았다. 방사청이 요구하지 않은 자료를 현대로템 측에서 요구했다는 게 박 대표의 주장이다. 이후 혐대로템이 직접 해당 기술을 타목적으로 사용하고, 심지어 썬에어로시스의 경쟁업체에게도 배포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는 설명이다. 

중소기업 기술탈취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수년 전 사건이 현재까지 거론될 정도로 지지부진하거나 종결이 안 되는 문제를 안고 있다. 때론 중소기업 측의 무리한 요구와 주장이 있기도 하지만 기술탈취 입증 자체가 어렵다는 구조적 한계도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기술탈취 분쟁 특성상 탈취 입증 책임은 피해 기업에 있어 왔다”며 “피해 입은 사실을 직접 입증해야 하는데 연구 인력이 부족한 중소기업이 우리 것을 베꼈음을 입증하기도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만 한화디펜스는 억울한 입장이다. 한화가 인수하기 10여년 전 두산DST와 중소기업간 거래관계에서 발생된 문제를 떠안은 셈이기 때문이다. 한화디펜스 관계자는 “당시 두 회사(삼명공조-두산 DTS)가 체결한 양산 계약 관련 양사의 지불부분 입장이 달라 삼명공조가 소송을 제기한 것”이라며 “거론되는 계약 체결과정 문제들은 공지되고 협의된 부분으로 1심 재판부도 과정이 적법했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1심 재판부는 한화디펜스의 손을 들어줬다. 삼명공조 측의 주장을 인정하지 않고 당시 두산DST가 적법하게 기술료를 제공했다고 본 것이다. 삼명공조는 즉각 항소했고 조만간 2심 법정다툼이 이어질 예정이다.


 

김설아
김설아 sasa7088@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S 산업1팀 재계 담당 기자.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 0%
  • 0%
  • 코스피 : 3092.66상승 78.7318:03 01/19
  • 코스닥 : 957.75상승 13.0818:03 01/19
  • 원달러 : 1102.90하락 118:03 01/19
  • 두바이유 : 54.75하락 0.3518:03 01/19
  • 금 : 54.19하락 1.218:03 01/19
  • [머니S포토] 2021 중소기업인 신년인사회
  • [머니S포토] 안철수 "국민의힘 입당은 불가, 개방형 경선 제안"
  • [머니S포토] 온택트 정책워크숍, 손인사하는 주호영
  • [머니S포토] 보고 또 보고, 공용 편의용품 살피는 우상호 의원
  • [머니S포토] 2021 중소기업인 신년인사회

커버스토리

정기구독신청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