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거부" vs "개인신념"…'의사 낙태거부권' 뒷짐 진 정부

여성계 "낙태도 의료행위, 환자의 의료권 보장해야" 의료계 "'태아도 생명' 의사 개인 신념 지켜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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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의 페미니즘 소속 '낙태죄는 역사속으로 TF팀'이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현대백화점 유플렉스 신촌점 앞 광장에서 열린 '마지막 경고: 낙태죄 전면 폐지 집회'에서 행진에 앞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0.11.15/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모두의 페미니즘 소속 '낙태죄는 역사속으로 TF팀'이 1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현대백화점 유플렉스 신촌점 앞 광장에서 열린 '마지막 경고: 낙태죄 전면 폐지 집회'에서 행진에 앞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2020.11.15/뉴스1 © News1 이재명 기자

(서울=뉴스1) 박종홍 기자 = 정부가 최근 국무회의에서 통과시킨 낙태 관련 개정안을 둘러싼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형법상 낙태죄가 유지되는 것이 주된 논란이지만, 개정안에 의사의 낙태 거부권이 포함된 것도 쟁점의 대상이다.

여성계는 의사의 낙태 거부권이 독소조항이라는 입장이지만, 의료계에서는 이마저도 의사 개인의 신념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주장이 나와 입법까지는 당분간 진통이 계속될 전망이다.

정부는 지난 10월 초 낙태에 관한 형법 및 모자보건법 일부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뒤 11월 24일 정세균 국무총리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통과시켰다.

정부안은 낙태에 관여한 여성과 의사에 대한 처벌조항은 그대로 유지하되, 임신 14주까지의 낙태를 처벌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담았다. 또한 24주까지의 임신에 대해서는 사회·경제적 어려움이 인정될 경우 상담과 숙려기간을 거쳤을 때에 한해 허용한다는 조항을 추가했다.

개정안에는 의사의 낙태 거부권을 보장하는 내용도 들어갔다. 합법적 범주의 낙태라 하더라도 의사가 개인의 신념에 따라 거부할 수 있다고 규정한 것이다. 거부할 경우 낙태를 위해 찾아온 여성에게 긴급전화나 상담기관에 대한 정보를 안내해야 한다. 의료법상 의사는 정당한 사유 없이 환자의 진료를 거부할 수 없지만, 개정 정부안이 일종의 정당성을 부여한 셈이다.

정부는 "의사의 개인 신념에 따른 인공임신중절 진료 거부를 예외적으로 인정하고, 인공임신중절 수락 또는 거부로 인한 불합리한 처우를 금지하도록 규정"한다며 해당 안에 대한 입법 취지를 밝혔다.

© News1 최수아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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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계 "진료거부는 여성 건강권 침해"…의료계 "낙태 거부는 개인 양심"

여성계는 의사의 진료거부권이 독소조항에 해당한다며 우려를 표한다. 처벌규정도 남아 있는 상황에서 반복적으로 거부를 당하게 되면 임신중지 결정에서 오는 심리적 부담감이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박은주 한국여성단체연합 활동가는 "의료행위는 전문 영역이고 전문가의 권위가 많이 부여되는 영역인 만큼, 낙태에 대한 의사의 진료거부가 부작용을 낳을 수 있다"며 "한국 사회에서 의사가 찾아온 환자를 거부하지 않는 만큼 임신중지도 환자의 의료권 접근 차원에서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한 법률 개정을 통해 약물을 통한 낙태가 허용되면 낙태 수술에 대한 의사의 부담도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계속된 진료거부로 상담 과정이 반복되면 낙태 시기가 미뤄지면서 위험성이 높아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서울처럼 병원이 많아 접근성이 좋은 곳에서는 문제가 적을 수 있지만, 지방은 분만 시설이 있는 병원 숫자가 적어 시술을 받기까지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될 수 있다"며 "청소년이나 휴가를 내기 어려운 노동자의 경우도 문제"라고 설명했다.

법으로 보장된 거부권으로 인해 의사가 책임을 회피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의사들이 개인의 양심에 따라 판단하지 않고 '법률에 따라 거부한 것'이라고 한다면 시술을 받을 권리에 제약이 생길 수 밖에 없다"고 했다. 또한 "종교적 신념 등으로 낙태 시술을 거부하는 것이 의사 한 명으로 그치지 않고 병원·의사회 등 조직 차원의 '권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의료계에서는 개정안이 보장한 의사의 낙태 거부권도 충분하지 않다는 주장이 나온다. 상담기관 안내나 약물 처방 같은 소극적 진료도 낙태 과정에 참여하는 것인 만큼, 태아의 생명도 보호해야 한다는 의사 개인의 신념에 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한산부인과학회 낙태법특별위원회 관계자는 "낙태를 거부하는 의사 입장에서는 수술 뿐만 아니라 절차 전반에 대한 참여를 다 거부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약물 처방이나 상담기관 안내 같은 비교적 가벼운 행위도 낙태 과정에 참여하는 것이므로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낙태에 대한 여성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의사 개인이 아닌 정부의 책임이라고도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낙태에 대해 안내하는 것은 국가의 의무"라고 주장했다.

또한 "응급상황 같은 의학적 사유가 아닌 사회·경제적 이유의 낙태를 의사가 무조건 해야 한다고 볼 수는 없다"며 "비의학적인 원인으로 인한 낙태에 대해 낙태를 거부하는 의사가 책임지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

© News1 이지원 디자이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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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선 방향도 "낙태 가능 병원에 안내", "상담기관 자격 강화"로 엇갈려

양측의 입장은 개선 방향을 두고도 엇갈린다. 김정혜 부연구위원은 "의사의 진료거부권을 꼭 보장해야 한다면 상담기관 안내가 아니라 보다 실질적 연계를 강제해야 한다"며 "임신중절시술이 가능한 다른 병원으로 곧바로 연계할 수 있도록 규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본인에게 찾아온 환자는 곧바로 의료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의사의 의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반면 낙태법특별위원회 관계자는 "개정안에는 상담 기관의 목적과 상담원 자격에 대한 규정이 명확하지 않다"며 "의사가 상담기관에 안내하도록 의무화하려면 기관이 (낙태가 아닌) 임신유지와 출산 지원을 목표로 한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오히려 갈등을 조장했다는 지적도 나왔다. 윤김지영 교수는 "임신중절 외에 진료거부의 정당한 사유를 법으로 규정한 사례를 찾기 어렵다"며 "정부가 굳이 명시적으로 허용 조항을 넣어 여성계와 의료계의 대립으로 낙태 문제를 축소시켰다"고 비판했다.

이처럼 낙태에 대한 진료거부권을 두고 양측의 입장이 엇갈리는 데다 낙태 문제 자체도 사회적 대립이 오래 이어진 문제인 만큼, 낙태 관련 법 개정과 진료거부권을 둘러싼 진통은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달 24일 정부의 개정안에 대해 "낙태한 여성에 대한 처벌 규정의 존치는 낙태를 범죄화함으로써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건강권, 생명권, 재생산권을 침해할 수 있다"며 '낙태 비범죄화' 의견을 국회의장에게 표명하기로 의결했다. 사실상 정부 개정안에 반대 의견을 낸 것으로 풀이된다.

국회에는 정부 개정안 외 여야 의원들이 각각 발의한 낙태 관련 개정안도 있지만 이마저도 대립하는 모양새다. 권인숙·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나 이은주 정의당 의원은 형법상 낙태죄를 전면적으로 폐지하는 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반면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은 정부안보다 낙태 허용범위를 좁혀 최대 10주까지의 낙태만 허용하도록 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지난 2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낙태죄 개정관련 형법 개정안을 심사하기에 앞서 여야가 추천한 전문가 의견을 청취하고자 한다"며 오는 8일부터 낙태죄 개정을 위한 공청회를 열기로 의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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