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거인은 안돼요 가족 데려오세요"… '비혼'이 어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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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비혼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사진은 직장동료로 만난 친구와 비혼 동거 중인 20대 손하연(가명)씨가 사는 집. /사진=손하연씨 제공
최근 비혼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사진은 직장동료로 만난 친구와 비혼 동거 중인 20대 손하연(가명)씨가 사는 집. /사진=손하연씨 제공
"비혼 동거하는 우리는 한배를 탄 사람이 아니라 각자가 탄 배의 선장이다."

비혼주의자 문아현(가명·여·30대)씨는 대학생 때부터 10년째 동거 중이다. '동거'하면 대체로 이성과 같이 사는 것을 떠올리지만 문씨의 동거인은 동성인 여성 친구다. 문씨는 동거인 친구와 단지 같이 사는 것뿐만 아니라 결혼하지 않는 삶인 '비혼' 이라는 방향성을 공유한다.

문씨와 친구는 4년 전쯤 비혼을 결심했다. 문씨는 "10년 동안 단 한번도 싸우지 않은 룸메이트와 함께 사는 비혼 라이프가 남자 룸메이트나 혼자 사는 비혼보다 더 큰 만족감을 준다"고 말한다.  

최근 문씨처럼 '비혼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결혼을 통해 전통적인 가족제도에 편입될 경우 새로 짊어져야 할 부담감이나 책임을 거부하는 흐름이다.

비혼 개념도 더욱 확장되고 있다. 결혼하지 않고 사는 연인끼리의 동거부터 혼자 사는 비혼, 마음이 맞는 하우스메이트와의 동거까지 다양한 방식의 비혼이 자리한다.



국민 절반 "결혼은 필수 아니다"… 비자발적 1인 가구 증가


'비혼'을 추구하는 사람이 늘면서 젊은층 사이에선 결혼 안 한 것을 이상하게 여기거나 결혼을 생애 주기에서 거쳐야 할 필수 단계로 보는 시각이 '옛것'이 되는 추세다.

통계청의 2020년 사회 조사에 따르면 13세 이상 인구 10명 중 6명은 남녀가 결혼하지 않더라도 같이 살 수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비율은 2010년 64.7%였지만 2020년엔 51.2%로 떨어졌다. 전체 응답자의 10명 중 3명은 '결혼하지 않고도 자녀를 가질 수 있다'고 답했다.

KB금융경영연구소의 '2020 한국 1인 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자발적 1인 가구의 수가 늘고 1인 생활을 장기간 지속하려는 경향이 높아졌다. /사진=KB금융경영연구소
KB금융경영연구소의 '2020 한국 1인 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자발적 1인 가구의 수가 늘고 1인 생활을 장기간 지속하려는 경향이 높아졌다. /사진=KB금융경영연구소

본인의 의지로 1인 생활을 시작하고 장기간 지속하려는 경향도 높아졌다. 직장과 학교 때문에 비자발적으로 혼자 사는 가구가 많았던 과거와 달리 최근 조사에서는 자발적 1인 가구가 크게 늘었다.

KB금융경영연구소의 '2020 한국 1인 가구 보고서'에 따르면 전체 1인 가구 중 앞으로 10년 이상 1인 생활을 지속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44%에 달했다. 특히 30대 남녀 1인 가구 다섯 중 하나는 결혼할 의향이 없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통적 가족 제도 거부하는 청년들


혼인하지 않은 사람을 '미혼' 혹은 '독신'으로만 여기던 과거와 달리 2030대 비혼인들은 '결혼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당당하게 드러낸다. '비혼'이라는 표현도 달라진 의식을 보여준다. 미혼(未婚)은 '아직 결혼하지 않았다'는 의미인 반면 비혼(非婚)은 '결혼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강하다. 결혼을 당연시 여기던 과거와 달리 현재는 선택의 문제로 보는 시각이 반영됐다.

'비혼주의자'임을 선언하며 자신만의 비혼 삶을 개척하는 사람부터 비혼을 고민하고 있지만 아직 '비혼주의'라고 밝히는 것이 어색하다는 사람까지 비혼의 형태와 이유는 천차만별이다.

대기업에 재직 중인 임정희씨(가명·여·29세)는 자신을 '비혼 지향자'라고 소개한다. 임씨는 고등학생 때는 가정을 이루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지만 취업 준비를 하면서 다른 사람을 책임지는 결혼이 버겁게 다가왔다.

그는 대기업에 취업해 상대적으로 많은 연봉을 받고 일하는 지금도 그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스스로 일 욕심이 많다고 자부하는 임씨는 "결혼이라는 제도에 묶이는 순간 내 기회를 빼앗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회사에서도 여성 기혼자 선배들은 '연애를 하라. 그런데 연애'만' 하라. 결혼식장에 드레스 입고 들어가지만 마라'라고 조언한다"며 "가까운 인생 선배들이 이렇게 충고하니 더더욱 결혼이 필수가 아니라고 느낀다"고 말했다. 임씨는 "저는 안락한 가정의 딸, 커리어를 쌓고 있는 직업인이라는 두 가지 이름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만족해했다.

청년들 사이에서는 결혼이 선택이라는 생각이 확대되고 있다. 비혼인들은 "비혼은 미완성의 상태가 아니라 또 다른 삶의 형태"라고 말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청년들 사이에서는 결혼이 선택이라는 생각이 확대되고 있다. 비혼인들은 "비혼은 미완성의 상태가 아니라 또 다른 삶의 형태"라고 말한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책 '비혼수업'의 공동저자 강한별씨(여·32세)는 결혼을 어른이 되는 길이라고 말하는 사회에 의문을 던진다.

강씨는 "주위 어른들께 비혼으로 살겠다고 밝히면 '결혼을 해야 진짜 어른이지 혼자 살면 외로워서 어떡하냐'고 걱정한다"며 "하지만 외로움은 결혼이라는 하나의 사건으로 한번에 해결되지 않는다. 오히려 상대가 내 옆에 항상 있어줄 것이란 기대가 사람을 더 외롭게 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강씨에게 비혼은 개인적인 삶에서 끝나는 문제가 아니었다. 그는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함께 비혼을 망설이는 사람들을 위한 길잡이 역할에 나섰다. 현재 강씨는 여성 비혼인을 위한 소통 커뮤니티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온·오프라인상에서 실제 비혼여성들의 경험담을 나누는 행사를 열어 비혼에 대한 편견을 걷어내고 풍요로운 비혼 문화를 만드는 활동을 펼치고 있다.

직장인 손하연씨(가명·여·27세)도 이 같은 삶을 추구한다. 그는 최근 34세인 직장 동료가 사는 집으로 들어갔다. 손씨는 "결혼을 '꼭 해야 한다'는 틀을 만들어 놓으면 그 틀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은 소외된다"며 "미혼모·미혼부 가정, 한부모가정, 비혼 등 세상에는 결혼을 하지 않고도 살아가는 다양한 모습의 삶이 있다.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완전한 삶을 살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세상이 좀 더 살기 좋은 공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같이 사는 우리가 '가족'… "부부 아니어도 일상은 보장돼야"


비혼을 추구하는 이들에게도 걱정은 있다. 비혼을 선택한 이들은 결혼 여부와 관계없이 평범한 일상을 유지할 수 있는 사회적 방안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위급 시 혈연·혼인 관계가 아닌 동반자와 서로를 지킬 수 있도록 하는 것이나 생활을 영위할 안정적인 거주공간을 얻을 기회를 갖는 것 등이다.

안정적인 거주 공간은 비혼인들에게도 중요하다. 비혼을 선택한 사람들은 지속가능한 비혼인들의 삶까지도 고민하는 주거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진은 종로구 창신동 일대 아파트 밀집 지역. /사진=뉴스1
안정적인 거주 공간은 비혼인들에게도 중요하다. 비혼을 선택한 사람들은 지속가능한 비혼인들의 삶까지도 고민하는 주거 제도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사진은 종로구 창신동 일대 아파트 밀집 지역. /사진=뉴스1
손씨는 "아플 때 결혼을 하지 않은 사람은 서로 대리인으로 나설 수 없다. 급박한 상황에서도 동거인에겐 자격이 없고 멀리 있는 가족을 불러야 한다. 다양한 모습의 가족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제도는 아직도 부모와 자식으로 구성된 정상 가족만 포괄한다는 생각이 든다"고 꼬집었다.

문씨는 "비혼으로 평생 살다가 가족도 없이 사망하면 무연고자 시신으로 분류된다. 혈연·혼인 관계가 아니라도 상주가 될 수 있게 법적으로 인정해 주는 장치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주거 문제 역시 비혼인들에게 중요한 화두다. 손씨는 주택 청약을 넣어볼까 싶어 공부해봤지만 실망만 안고 돌아섰다고 토로한다. 주변의 기혼 친구들은 신혼부부 특별공급 전형, 생애 최초 주택구입 전형으로 청약을 넣어보는 시도라도 하는데 비혼인들은 청약 특별공급에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는 "사회가 '결혼 안한 젊은 사람들은 청약은 꿈도 꾸지 마라'라고 선언하는 것 같아 속상했다"고 털어놨다.



사실혼, 비혼 출생자… 다양한 가족 형태 인정되나


혼인·혈연 관계만을 정상적인 가족으로 보는 기존 제도가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이미지투데이
혼인·혈연 관계만을 정상적인 가족으로 보는 기존 제도가 다양한 가족 형태를 포괄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다양한 가족 형태를 제도 안으로 편입시켜야 한다는 시각이 갑작스럽게 등장한 건 아니다. 2004년 건강가정기본법이 제정된 직후 2005년 국가인권위원회는 "다양한 가족 및 가정의 형태를 수용할 수 있도록 가족 및 가정의 정의를 수정하고 이에 적합하게 법률을 정비할 것"과 "'건강하지 않은 가정'이라는 개념을 도출시키는 법률명을 중립적인 법률명으로 수정할 것"을 권고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달 24일 민법과 건강가정기본법상 가족 조항을 삭제하고 사실혼과 비혼 동거인 등을 가족으로 인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안'을 발표했다. 직계가족 외에도 사실혼 관계나 동거인을 연고자로 보고 장례를 치를 수 있도록 하는 구상도 포함됐다. 비혼 출생자 차별을 방지하기 위해 '혼인 중 자녀'와 '혼인 외 자녀'의 출생신고를 구별하는 항목을 삭제하고 비혼 출산자에 대해서도 난임 시술비 등을 지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가족구성권연구소 등은 최근 공동성명을 내고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은 아주 오래 유예된 변화를 받아들이는 첫 발걸음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서로를 돌보고 삶을 살아가는 다양한 사회적 관계들을 지원하고 사회적인 안전망을 확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비혼인들은 부부와 자녀로 이뤄진 '정상 가족'만이 사회를 구성하는 건 아니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비혼의 삶을 선택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흐름 속에서 비혼과 다양한 가족 형태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윤상철 한신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는 비혼주의와 다양한 가족 관계가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것에 대해 사회 전반적으로 가족과 소속에 대한 로열티가 약해지고 개인주의가 강화되고 있다고 짚었다. 윤 교수는 "개인이 자신의 삶에서 온전한 주체가 되고자 하는 변화"라며 "젊은층은 결혼하면 겪게 될 책임과 부담에 대해 거부반응을 보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윤 교수는 전통적인 가족의 의미를 해체하는 제도 변화는 피할 수 없는 것이라는 점도 강조한다. 그는 "전통적인 가족 체계가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은 분명하다"며 "앞으로 사회를 꾸려나갈 청년들이 바뀌고 있으니 제도는 따라가는 것이 맞다"고 주장했다. 이어 "'결혼하지 않겠다', '이 가족 개념으로는 안된다'고 하면 사회가 개인적인 부담을 풀어주며 사회적 재생산을 지속해나가도록 도와야한다"고 덧붙였다.  
 

강은경
강은경 eunkyung505@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s 라이브콘텐츠팀 강은경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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