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고 돌아온 VR·AR, 2025년 30조원 값할까?

[머니S리포트-우리가 꿈꾸던 가상·증강현실, 언제쯤 현실로 다가올까①] 콘텐츠·디바이스 없어 이어진 악순환… 코로나에 5G 타고 재도약 노린다

 
 
기사공유
  • 카카오톡 공유
  • 카카오톡 공유
  • 네이버 블로그
  • 카카오스토리
  • 텔레그램 공유
  • url 공유
편집자주|“스마트폰을 내려다보는 이 자세가 바로 프로젝트 글라스를 시작한 이유 중 하나입니다.” 구글 공동창업자인 세르게이 브린이 2013년 세계적 지식 컨퍼런스인 테드(TED) 강연에서 증강현실(AR) 글라스를 선보이며 한 말이다. 스마트폰 화면에 묶여 우리 스스로 소통과 단절을 불러일으킨다는 뜻이다. 이듬해 페이스북은 유명 가상현실(VR) 스타트업 ‘오큘러스’를 23억달러(약 2조5000억원)에 인수했다. 당시 오큘러스 VR헤드셋은 전차 승무원이 외부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용도로 노르웨이군에도 도입된 바 있다. 전세계 VR·AR 업계는 이 실리콘밸리 신성들의 진격을 보며 장밋빛 미래를 꿈꿨다. 2021년 우리가 VR·AR에 대해 체감하는 현실은 과거 그렸던 모습과 차이를 보인다. 정보기술(IT) 발전에 따라 기기 성능이 점점 좋아졌고 활용하는 곳도 갈수록 늘어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속도가 너무 더디다. 국내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VR/AR 산업은 기대치에 못 미치는 성장세를 보이며 여전히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 이런 흐름에 지난해부터 조금씩 변화가 감지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과 5세대 이동통신(5G) 보급에 따라 VR·AR 시장이 조금씩 깨어나기 시작했다. 정부와 이동통신3사도 또다시 VR·AR 키우기에 의욕적으로 나선다. 이번엔 다를까.
정부가 2025년까지 가상융합기술을 통한 경제적 파급효과 30조원 달성, 세계 5대 가상융합경제 선도국 진입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픽=김민준 기자
정부가 2025년까지 가상융합기술을 통한 경제적 파급효과 30조원 달성, 세계 5대 가상융합경제 선도국 진입을 목표로 삼았다. /그래픽=김민준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은 우리의 일상과 업무 환경을 바꿔놨다. 사람과 사람 사이 거리는 멀어지고 사람과 화면의 거리는 가까워졌다. 콘텐츠에 대한 수요가 그 어느 때보다 높아지고 있다. PC·모바일 게임과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뿐 아니라 만년 유망주에게도 다시 관심을 가진다. 바로 VR·AR이다.



코로나19 ‘집콕’에 VR·AR도 잠에서 깨다


시장조사업체 IDC(인터내셔널데이터코퍼레이션)에 따르면 스마트폰과 같이 VR·AR 기기 시장도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지난해 전 세계 출하량이 감소했다. 하지만 기업과 소비자가 ‘뉴노멀’에 익숙해지면서 소비심리가 회복돼 그 어느 분야 못잖은 반등이 예상된다. 올해 전 세계 VR·AR 기기 출하량은 전년(470만대) 대비 82.3% 증가한 860만대에 이를 전망이다. 2020년부터 62.3%의 연평균 성장률(CAGR)을 기록해 2025년에는 5290만대 규모까지 시장이 커질 것으로 예측됐다.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가 미국 소비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설문조사에서도 VR·AR 수요가 나타났다. 코로나19 락다운 이후 구매했거나 구매를 계획 중인 IT기기로 VR·AR기기가 첫손에 꼽혔다. 게임 콘솔이나 스마트워치를 포함한 30개 이상 품목 중 최상위를 차지했다. SA는 VR이 게임 용도 위주에서 탈피해 원격 교육·훈련 중심으로 활용처가 늘어나고 AR의 경우 신제품 출시에 따라 올 하반기부터 시장이 점차 개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VR·AR 지각 이유는?


VR·AR 분야는 일찍이 2010년대 초반에 미래산업으로 주목받았으나 이후 성장세가 기대치에 못 미치는 모습을 보였다. 업계 전문가들은 그동안 관련 산업 생태계의 상호 유기적 성장이 이뤄지지 못했다고 입을 모은다. ▲사용자들이 찾을 콘텐츠(C) ▲이를 유통할 플랫폼(P) ▲기반이 되는 네트워크(N) ▲접근 가능한 디바이스(D) 중 어느 하나라도 뒷받침되지 않으면 난관에 봉착한다는 것이다.

한국가상증강현실산업협회(KoVRA) 관계자는 “C-P-N-D 생태계의 상호 유기적 성장이 중요한데 디바이스 보급에서 병목 현상이 발생했다”며 “대중화 한계를 극복하려면 생산·유통·소비·투자의 선순환 가치사슬 구축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8K(양안 4K)를 지원하면서 가격도 40만원대로 낮춘 페이스북 MR헤드셋 '오큘러스 퀘스트2'. 국내 파트너사 SK텔레콤이 이달 국내 출시해 1차 물량이 3일 만에 완판됐다. /사진=페이스북
8K(양안 4K)를 지원하면서 가격도 40만원대로 낮춘 페이스북 MR헤드셋 '오큘러스 퀘스트2'. 국내 파트너사 SK텔레콤이 이달 국내 출시해 1차 물량이 3일 만에 완판됐다. /사진=페이스북

전 세계적으로 지적받는 것은 콘텐츠 부족 문제다. 국가별·플랫폼별로 다소 차이가 있지만 사용자가 다른 IT 기기를 두고 VR·AR 전용기기를 찾을 유인이 부족하다는 점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콘텐츠 부족이 디바이스 보급 문제와 무관하지 않다고 설명한다. 기기의 가격과 성능이 모두 문제를 야기했다. 100만원대에 육박하는 고가 기기는 접근성이 떨어졌고 염가형 기기는 소비자들에게 품질에서 실망을 안겼다.

김성광 한국VR·AR콘텐츠진흥협회(KOVACA) 사무총장은 “시장이 기대만큼 커지지 않으니 콘텐츠 업체도 위험을 감수하고 뛰어들기 쉽지 않다. VR·AR 전문 인력 상당수는 게임과 영상 분야 고급인력이기도 하다”며 “콘텐츠 부족과 디바이스 보급 문제는 결국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문제다. 두 가지를 함께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초장부터 풍파에 휘말린 국내 VR·AR 업계


IT강국답게 국내 관련 업계의 VR·AR 분야 준비 시작이 늦진 않았다. 이미 박근혜정부 때 VR·AR은 새로운 먹거리로 낙점된 바 있다. 하지만 그동안 세계적으로 성장이 더뎠다는 점을 고려해도 국내 업계 상황은 그보다 어려운 상태다.

한국콘텐츠진흥원(콘진원)이 지난해 발표한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2020년 2월 기준으로 전체 VR·AR 사업체 수는 839개에 달했으나 실제 매출이 발생한 비율은 58.7%에 불과했다. 2016년 이후 설립된 업체가 40.4%, 종사자 수 10명 미만인 곳이 56.2%를 차지한다. 폐업률도 15.6%로 ICT벤처기업(9.1%)보다 높다.

이강훈 콘진원 실감콘텐츠팀 차장은 “국내 시장이 영세기업 중심이다 보니 킬러콘텐츠가 부족하다는 평가가 있다. 글로벌 시장도 충분하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세계적으로 VR 분야에서 B2B에 비해 B2C 성장이 예상보다 정체된 것은 사실이다. HMD(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 같은 VR기기가 필수라 소비자가 가격·편의적인 측면에서 아직까진 접근하기 쉽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1월 국내 상륙한 MS MR헤드셋 '홀로렌즈2'. 간단한 손동작만으로 산업 현장 협업과 운영 효율성 개선을 위한 다양한 솔루션을 체험해볼 수 있었다. 기업용(B2B) 제품이라지만 500만원에 달하는 가격과 3시간가량의 배터리 지속시간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사진=팽동현 기자
지난해 11월 국내 상륙한 MS MR헤드셋 '홀로렌즈2'. 간단한 손동작만으로 산업 현장 협업과 운영 효율성 개선을 위한 다양한 솔루션을 체험해볼 수 있었다. 기업용(B2B) 제품이라지만 500만원에 달하는 가격과 3시간가량의 배터리 지속시간이 아쉬움으로 남았다. /사진=팽동현 기자

정부 지원은 꾸준히 이뤄졌으나 체계적·효율적이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체험 위주로 저변을 넓혀나갔지만 ‘C-P-N-D’ 관련 복합적인 문제로 인해 수요로 이어지지 않았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문화체육관광부를 비롯해 산하 여러 기관에서 업무를 분담하면서 정책과 규제도 복잡하게 진행된 측면이 있다.

신현국 정보통신산업진흥원(NIPA) 디지털콘텐츠전략팀 수석은 “국내 VR·AR산업은 여전히 콘텐츠 체험 중심으로, 경제·산업적 수요 확대에 선제 대응하기에는 부족한 상황”이라며 “규정·제도 부재나 여러 산업(부처)에 해당하는 복합규제 등 법·제도 이슈로 인해 신산업 창출이 미진했다”고 분석했다.

국내 VR·AR업계는 대외적인 이슈로도 풍파를 겪어야 했다. 전 정권에서 일어났던 이른바 ‘국정농단 사태’에 엮이면서 이후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된 적이 있다. 공공지원사업 담당자가 뇌물 수수로 구속되면서 심사 기준이 엄격해지는 등 불똥이 튀기도 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지원금을 받아놓고서 성과를 내지 않고 ‘먹튀’하는 업체도 적지 않았다”고 귀띔했다. 열심히 개발·제작에 임했던 업체들은 그만큼 고충을 겪은 셈이다.



5G와 함께… 이제 다시 시작이다


업계에서는 VR과 AR이 장차 MR(혼합현실)로 융합될 것으로 전망한다. 이건복 마이크로소프트(MS) IoT&MR 아태지역 기술총괄 팀장은 “AR은 사용자와 상호작용이 제한적이고 VR은 현실과 분리된다는 한계점이 있다”며 “MR은 현장 작업자 또는 사용자 친화적으로 상호작용할 수 있는 효과적인 장치로 활용되고 있다”고 말했다.

애플이 이르면 내년 1분기 선보일 MR헤드셋 예상도. 두 개의 8K 디스플레이와 12개 이상 카메라가 탑재될 전망이다. /사진=디인포메이션
애플이 이르면 내년 1분기 선보일 MR헤드셋 예상도. 두 개의 8K 디스플레이와 12개 이상 카메라가 탑재될 전망이다. /사진=디인포메이션

정부는 지난해 8월 ‘가상·증강현실 규제혁신 로드맵’을 내놓고 12월에는 관계부처 합동으로 ‘가상융합경제 발전전략’을 발표했다. VR·AR·MR을 아우르는 가상융합기술(XR)을 집중 육성해 2025년에는 XR을 통한 경제효과를 30조원 규모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다. 과기부에 따르면 이 수치는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PwC)에서 예측한 글로벌 경제적 파급효과(약 500조원)의 6%에 해당한다.

눈에 띄는 것은 제조·의료·건설·교육·유통·국방 등 6대 핵심산업을 대상으로 하는 ‘XR 플래그십 프로젝트’다. 이를 포함한 진흥책 전반이 B2B 분야에 좀 더 무게를 싣는 모습이다. 과기부 관계자는 “B2C 분야도 물론 지원하고 있고 모두 중요하게 여긴다. 다만 B2B 분야가 성장 폭과 경제적·사회적 파급효과가 클 전망이라 계획 수립 시 이를 반영했다”고 말했다.

올해 과기부는 디지털콘텐츠 지원사업에 총 2024억을 투입한다. 업계 관계자는 “매년 지원사업에 수천억원을 쓰느니 그 돈으로 VR헤드셋을 뿌리는 게 더 도움될 것이라는 우스갯소리도 있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정부 정책이 점점 정교해지고 발전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사실”이라며 “각 부처의 여러 지원사업을 합치면 5000억원 규모로 추산된다. 개별 지원액수 등에서 모두가 만족할 수는 없겠지만 업계 현황을 고려하면 충분한 수준으로 본다”고 밝혔다.

최근 유출된 '삼성 글래스 라이트' 콘셉트 영상. 삼성은 2018년 이후 VR·AR 신제품을 출시하지 않았지만 관련 기술은 지속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워킹캣(@_h0x0d_) 트위터
최근 유출된 '삼성 글래스 라이트' 콘셉트 영상. 삼성은 2018년 이후 VR·AR 신제품을 출시하지 않았지만 관련 기술은 지속 개발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사진=워킹캣(@_h0x0d_) 트위터

정부와 업계는 5G가 VR·AR 확산의 기반이 되고 VR·AR이 5G를 위한 콘텐츠로 자리잡기를 기대한다. 화면 해상도가 8K(양안 4K) 수준이 돼야 VR 콘텐츠가 사용자에게 충분한 몰입감을 선사한다는 평가도 있다. 8K VR 콘텐츠의 용량은 1분 분량이 1GB(기가바이트)에 달한다. 이를 소화해줄 5G도 여러 논란을 겪으며 본궤도에 오르기 시작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았다. 5G와 함께 VR·AR도 이제 시작인 셈이다.

업계 관계자는 “과거 한 대기업 임원이 VR·AR의 미래를 3D TV처럼 사장될 것이라고 전망하는 말을 듣고 충격받은 적이 있다. 역설적으로 현재 중국 등이 대규모 투자를 추진하는 상황에서 우리 VR·AR 업계가 뒤처지지 않으려면 결국 대기업이 나서줘야 한다”며 “콘텐츠와 디바이스를 포함한 여러 문제는 현 추세로 볼 때 시간이 지나면서 해결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팽동현
팽동현 dhp@mt.co.kr  | twitter facebook

열심히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 0%
  • 0%
  • 코스피 : 3212.98상승 14.1413:35 04/20
  • 코스닥 : 1030.88상승 1.4213:35 04/20
  • 원달러 : 1111.70하락 5.513:35 04/20
  • 두바이유 : 67.05상승 0.2813:35 04/20
  • 금 : 64.83하락 0.2913:35 04/20
  • [머니S포토] 한정애 "정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착실하게 대비…환경부 역할은 제한적"
  • [머니S포토] 국회 긴급현안보고 출석한 '정의용'
  • [머니S포토] 인사 나누는 이재명과 정성호
  • [머니S포토] 기아, 준중형 세단 '더 뉴 K3' 출시…1738만~2582만원
  • [머니S포토] 한정애 "정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착실하게 대비…환경부 역할은 제한적"

커버스토리

정기구독신청 독자의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