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호家 덮친 경영권 분쟁 잔혹사

[머니S리포트 - 다가온 주총, 막 오른 금호家 분쟁 2막②] ‘조카의 난’ 발발에 10여년 전 ‘형제의 난’ 재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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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의 조카인 박철완 상무가 경영진 교체와 배당 확대 등을 요구하며 반기를 들었다. ‘조카의 난’이 발생한 것이다. 금호 가(家)는 2010년에도 그룹의 경영권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인 전례가 있다. 불과 10여년 만에 다시 발생한 불화에 재계의 비상한 관심이 쏠린다. ‘조카의 난’은 왜 시작됐을까. 또 어떻게 끝날까. 금호석유화학에 드리운 경영권 분쟁의 그림자를 따라가 봤다.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왼쪽)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 사진=뉴시스·머니투데이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왼쪽)과 박찬구 금호석유화학 회장. / 사진=뉴시스·머니투데이
금호석유화학이 ‘조카의 난’에 휘말리면서 금호그룹의 과거 경영권 분쟁사도 재조명받고 있다. 최근 조카인 박철완 금호석화 상무로부터 공격을 당한 박찬구 회장이 과거 자신의 셋째형인 박삼구 전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과 치열한 다툼을 벌였던 당사자여서다. 당시 분쟁을 계기로 금호그룹은 둘로 쪼개졌고 10여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형제의 난’이란 불편한 역사가 금호 오너 일가를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있다.



형제 사이에 대체 무슨 일이?


박삼구 전 회장과 박찬구 회장의 갈등은 2000년대 후반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금호그룹은 2000년 회장에 오른 박삼구 체제에서 대우건설(2006년)과 대한통운(2008년)을 잇따라 인수하며 덩치를 급속도로 불렸다. 하지만 끝내 유동성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경영위기를 맞이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대우건설 가치가 급락하면서 금호그룹은 큰 손실을 입었고 결국 2009년 대우건설을 다시 토해내기에 이르렀다.

동생인 박찬구 회장은 잇단 대규모 인수·합병(M&A)에 부정적이었다. 박삼구 전 회장이 추진한 M&A로 그룹에 경영난이 발생하자 이를 계기로 형제간 불화가 커졌다는 게 재계의 중론이다. 박찬구 회장은 2009년 대우건설의 최대주주였던 금호산업의 지분을 매각하고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금호석화의 지분 매집에 나섰다. 계열분리를 위한 밑그림이었다.

박삼구 전 회장은 2009년 7월 금호석유화학 이사회를 열어 박찬구 회장을 해임하고 자신도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이에 박찬구 회장이 박삼구 회장에게 경영책임을 묻겠다고 반발하면서 형제 간 갈등이 깊어졌다. 두 형제의 다툼은 이듬해 채권단이 금호석화를 그룹에서 분리 경영키로 결정한 뒤 일시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박찬구 회장은 2010년 2월 금호석화 회장으로 복귀했고 박삼구 회장은 같은 해 11월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2011년 들어 다툼이 이전보다 더욱 치열하게 재개됐다. 박찬구 회장이 횡령·배임 조성 혐의로 검찰 조사를 받게 됐는데 그 배후에 박삼구 회장이 있다고 의심한 것이다. 실제로 박찬구 회장은 당시 검찰 조사와 관련해 “‘죄지은 사람’은 따로 있을 것이다. 누구인지는 알아서 판단하라” “이번 조사는 금호아시아나와 관계있다고 생각한다”는 등의 작심발언을 날렸다.

혐의가 일부 인정돼 집행유예를 받은 뒤에도 그는 “형(박삼구 회장)과 화해는 불가능하다. 형이 검찰에 손댔기 때문에 루비콘강을 지나버렸다. 형이 다 지휘를 했는데 하루아침에 없었던 것으로 할 수 있겠나”라며 앙금을 드러냈다.

금호家 덮친 경영권 분쟁 잔혹사



극적 화해했지만 불씨는 여전


갈등이 심화하면서 형제의 거리두기도 한층 강화됐다. 2012년 박찬구 회장은 서울 신문로 금호아시아나 본관을 떠나 수표동 시그니처타워에 금호석화와 그 계열사의 보금자리를 마련하며 독자노선을 본격화했다. 채권단이 정한 ‘경영분리’를 넘어 완전한 독립경영을 위해 공정거래위원회에 계열분리도 신청했다. 당시 공정위는 계열분리를 거부했지만 금호석화는 이 사건을 법정으로 옮겨 2015년 12월 대법원에서 분리 확정판결을 받아냈다.

치열하게 전개되던 형제의 다툼은 2015년부터 다시 화해 무드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박삼구 전 회장이 언론을 통해 박찬구 회장과의 화해 용의를 여러 차례 내비쳤기 때문. 박찬구 회장은 처음엔 박 회장의 제안을 거부했지만 2016년 경제계 신년인사회에서는 “(화해를) 생각해보겠다”며 한층 누그러진 모습을 보였다.

이후 2016년 8월 화해는 현실이 됐다. 금호석화가 기업 본연의 목적에 더욱 집중하겠다며 금호아시아나를 상대로 진행하던 모든 소송 일체를 전격 취하하기로 발표한 것이다. 금호아시아나도 이를 환영한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7년여에 걸친 형제의 다툼이 극적으로 종식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하지만 갈등이 완전히 해소된 것은 아니란 지적이다. 여전히 상표권 분쟁이 지속되고 있어서다. 상표권 확보는 ‘금호’ 브랜드의 정통성 승계라는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다.

금호산업과 금호석화는 ‘금호’라는 상표권을 공동 등록했지만 상표에 대한 실제 사용권리는 금호산업이 갖고 있었다. 금호석화는 2009년까진 상표 사용료를 금호산업에 지불해오다 형제의 난을 계기로 상표 사용료 지급을 중단했다. 상표권의 공동소유자인 만큼 지급 근거가 없다는 판단에서다. 그룹의 공식 로고인 윙 마크도 더 이상 사용하지 않았다.

반면 금호산업은 2012년 8월부터 계열사의 상표권 사용료를 월 매출액의 0.1%에서 0.2%로 올리기로 통보하고 금호석화와 그 자회사 금호P&B화학 등이 보유한 금호산업의 기업어음(CP) 100억원 중 58억원을 상환한 것으로 상계 처리했다.

이에 반발한 금호석화 측은 이듬해 5월 이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했고 금호아시아나도 금호석화 계열사를 상대로 미납한 상표 사용료 260억원을 지급할 것과 상표권 지분을 이전할 것을 요구하는 맞소송을 냈다. 1심 판결(2015년7월)과 2심 판결(2018년2월)에서 모두 금호석화가 승소했으며 현재 대법원의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
 

이한듬
이한듬 mumford@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S 산업팀 기자입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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