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라지는 ‘탄소중립’ 시계에 산업계 ‘패닉’

[머니S리포트-‘탄소전쟁’의 그림자②] 이중과세 물고 무역장벽 높이는데… 보완정책·인센티브 모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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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전 세계가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탄소와의 전쟁’을 선포하면서 그 후폭풍이 국내 산업계를 덮치고 있다. 탄소 배출을 강제로 제한하기 위해 각종 규제성 제도를 도입함에 따라 철강과 석유화학 등 탄소 배출량이 많을 수밖에 없는 업종이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돼서다. 탄소 전쟁에 휘말린 업계의 고민을 살피고 기업의 대응 현황을 점검해봤다.
포스코 포항제철소에 있는 밀폐형 원료저장설비 사일로. /사진=포스코
포스코 포항제철소에 있는 밀폐형 원료저장설비 사일로. /사진=포스코
주요 국가가 오는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실질 배출량을 제로(0)로 만드는 ‘탄소중립’을 선언하면서 탄소 다(多) 배출 업종인 철강·정유·석유화학 업계엔 긴장감이 감돈다. 기업의 저탄소 전환을 위한 노력이 이어지고 있지만 친환경 공정 전환에 따른 비용 증가·일자리 감소·세금 인상·무역 장벽 등 풀어야 할 숙제가 산적하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최우선으로 삼고 성장과 환경의 절충점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탄소세, 세율 점진적 인상해야 



정부는 최근 탄소 증세를 꺼내 들었다. 기후변화 위기에 대응하고 세계적인 녹색경제 기술 패권 경쟁에서 살아남으려면 탄소배출 억제가 불가피하다는 판단에서다. 정유·석유화학·철강업계와 전문가들은 아직 구체화되지 않은 탄소세 도입 시기와 세율 등에 대해 여러 가지 시각을 내놓고 있다. 현재 휘발유와 경유엔 교통·에너지·환경세가 부과된다. 리터(ℓ) 당 휘발유는 529원, 경유는 375원이다. 탄소세가 더해지면 정유업계 입장에선 이중부담으로 다가올 가능성이 크다. 이에 에너지 세제부터 획기적으로 개편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교통·에너지·환경세를 남기고 탄소세를 도입하면 결국 소비자에게 부담이 전가될 것”이라며 “만약 기존 탄소배출권거래제에 참여하지 않는 기업을 탄소세 부과 대상으로 삼는다면 제도 간 차익거래를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같은 기준으로 세율을 매겨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교통·에너지·환경세가 잔존하면 형평성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에 모든 에너지원에 대한 환경·사회적 영향 등을 다시 검토해 세제를 개편해야 한다”고 했다. 

낮은 세율부터 시작해 점진적인 인상을 시도해야 한다는 시각도 나온다. 강만옥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유럽의 경우 탄소 1톤당 평균 40달러의 탄소세를 부과하고 있다. 향후엔 70~80달러까지 오를 것이란 전망도 있다”며 “유럽을 무턱대고 따를 것이 아니라 기업의 경쟁력과 물가 상승 등을 고려해 세율을 탄력적으로 정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탄소중립 과정에서 경쟁력을 잃는 기업과 산업이 생길 수 있는 만큼 부작용을 고려한 보완 정책과 세수를 활용한 기업의 지원방안도 필요하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학부 교수(한국납세자연합회장)는 “정부가 기본소득 재원 마련 차원에서 탄소세 도입을 거론했는데 방향성부터 잘못됐다”며 “재정확보 목적에서 시작한 탄소세 부과는 오히려 경제를 짓눌러 재정을 줄일 것”이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세수를 활용한 기업 지원대책 방안도 명확해야 과세저항이 줄어들 것”이라며 “탄소세만으로 모든 세수를 확보할 수 없다. 기본소득 재원이 필요하다면 경유세나 플라스틱세 등으로도 세금을 늘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원은커녕 탄소세 웬 말” 볼멘소리


주요 업종별 탄소 배출량.
주요 업종별 탄소 배출량.
2050 탄소중립을 실현하려면 정부의 지원도 절실해 보인다. 정부는 온실가스 배출량이 많은 철강·석유화학·정유 등 주력 수출 산업을 저탄소 구조로 전환하는 ‘제조업 르네상스 2.0’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철강 산업엔 수소 환원 제철과 전기로를 적용하고 석유화학 산업에선 나프타를 바이오 혹은 수소에 이산화탄소를 결합한 원료로 대체한다. 정유 산업은 연료를 전환하고 이산화탄소를 회수하는 신기술을 적용하기로 했다. 공통적으론 이산화탄소 포집·저장·활용 기술 개발과 에너지 효율 개선 및 그린 수소 활용 등을 강화한다. 

업계는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큰 틀이 제시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지만 탄소 중립 투자 비용과 이에 따른 매몰 비용에 대한 대안이 제시되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산업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철강·시멘트·석유화학 3개 업종에서만 탄소 중립 비용으로 2050년까지 최소 400조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정된다. 철강업계가 수소 환원 방식의 전기로로 전환하려면 기존 용광로(고로)에서 쇳물을 뽑아내는 공정 전체를 바꿔야 한다. 이에 따른 투자와 매몰 비용은 110조원에 이를 것으로 철강업계는 평가했다. 

정유·석유화학업계는 정부가 발표한 ‘사업 재편에 대한 인센티브 강화’를 두고 불만을 나타냈다. 업계가 그 대상에 포함되는지 또 어떤 방식으로 인센티브를 제공할 계획인지 실체가 없어 추측만 무성하다. 건설산업 침체 등으로 실적 하향세를 걷는 시멘트업계의 표정도 굳어있다. 한국시멘트협회에 따르면 시멘트 산업 매출은 2016년 5조원에서 ▲2017년 4조6600억원 ▲2018년 4조3600억원 ▲2019년 4조3200억원으로 내려앉았다. 지난해엔 3조원 안팎을 기록한 것으로 예측됐다. 

시멘트업계 관계자는 “시멘트는 수요보다 공급이 더 많은 시장이어서 탄소 절감에 따른 부담을 제품 가격에 전가하기 매우 어렵다”며 “시멘트 생산 원가 증가에 대해 정부가 일부 지원하거나 세제·금융지원이 뒷받침돼야 한다”고 호소했다. 



무역비중 높은 韓, 감축기술로 ‘탄소국경세’ 넘어야



한국을 넘어 유럽과 미국에선 탄소국경세를 도입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한국석유화학협회와 한국철강협회 등에 따르면 국내 산업별 유럽·미국 수출 비중은 ▲석유화학 13.3% ▲정유 10% ▲철강 20%다. 탄소국경세가 추가되면 또 하나의 수출장벽이 생기는 셈이다. 유럽의 탄소국경세 부과로 수출길이 좁아질 경우 국내 정유·석유화학·철강업계의 주요 수출시장인 아시아 지역에 물량이 쏠릴 가능성도 높다. 

하지만 ‘수출로 먹고 사는’ 한국이 보복관세를 부과하면 수출에 차질을 빚을 거란 우려가 업계 사이에서 팽배하다.  문종철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탄소국경세는 국내 기업에 치명타가 될 가능성이 아주 높지만 반발하기에도 어려운 위치”라며 “유럽과 미국 내 기업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도록 요구하거나 탄소국경세의 진척 속도를 보며 선제적인 탄소감축 기술을 개발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기업의 부담이 국내·외에서 갈수록 커지는 만큼 기존 탄소배출권의 무상할당 비중을 늘려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유종민 홍익대 경제학부 교수는 “유상할당을 늘리면 제도는 정부 중심으로 운영된다”며 “무상할당을 늘리고 감축량을 조금 더 강화한다면 정부 개입과 기업의 저항이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권가림
권가림 hidden@mt.co.kr  | twitter facebook

안녕하세요 산업1팀 권가림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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