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적시점] 일본은 왜 ‘외산 가전의 무덤’이 됐나

세계화 대응 늦어… 전압 주파수 양분화도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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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 시내에 위치한 한 전자제품 매장. / 사진=로이터
일본 도쿄 시내에 위치한 한 전자제품 매장. / 사진=로이터
일본의 가전시장은 흔히 ‘갈라파고스’로 표현된다. 남태평양 갈라파고스 제도가 육지에서 떨어져 홀로 고유한 생태계를 형성한 것을 빗댄 것으로 국제 표준이나 글로벌 흐름을 고려하지 않은 채 내수에 주력하다 세계 시장에서 고립된 상황을 꼬집는 용어다.

현재 일본의 가전산업은 그만큼 극심한 내수 의존도를 보이며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다. 좀처럼 외산 제품이 끼어들 틈이 없어 ‘외산 가전의 무덤’으로도 불린다. 한때 워크맨과 TV 등으로 세계를 선도했던 일본의 가전산업은 어쩌다 안방에 고립됐을까.



보수적·폐쇄적 문화 부작용


일본의 산업별 동향 정보를 제공하는 ‘업계동향서치’(業界動向サ-チ)에 따르면 2019~2020년 일본 가전업계 내수시장 규모는 46조2000억엔이다. 매출 기준 점유율은 ▲소니(17.9%) ▲파나소닉(16.2%) ▲미쓰비시(9.6%) ▲캐논(7.8%) 등 대부분 일본 기업이 시장을 나눠 가지며 그들만의 리그를 형성하고 있다.

‘톱10’에 이름을 올리고 있는 도시바(7.3%)의 백색가전 사업과 샤프(4.9%)는 2016년 각각 중국 메이디그룹과 대만 폭스콘에 인수된 사실상 중국계 기업이다. 그럼에도 뿌리를 일본에 두고 있는 만큼 일본에서 인지도가 높다.

반대로 일본과 무관한 외국산 가전이 일본 시장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현재 전 세계 TV와 냉장고 시장 1위를 점유하며 글로벌 가전시장을 선도하는 한국의 삼성전자도 일본에서만큼은 좀처럼 점유율을 확보하지 못해 2007년 일찌감치 사업 철수를 결정했다.

일본 대기업을 중심으로 형성된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판단 하에 일본 사업을 접고 대신 유럽·미국·신흥국 시장 등에 집중하기로 한 것이다. 미국과 유럽 가전업체도 상황은 비슷하다. 그나마 한국의 LG전자가 일본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시장에서 10% 안팎의 점유율을 확보하며 일부 가전 부문에서 유의미한 성적을 내고 있다.

이는 일본 특유의 보수적이고 폐쇄적인 문화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일본은 1억3000만명의 내수시장을 보유하고 있어 독자적인 표준이나 국내시장 특화 제품에 주력하는 경향을 보인다.

한일경제협회는 과거 ‘일본 전자산업 부진이 주는 시사점 보고서’에서 “(일본 기업은) 세계에서 가장 눈이 높은 소비자가 있는 일본 시장에서 경쟁력을 높이면 세계시장에서도 통할 것이라는 믿음을 보유했다”며 “그 결과 일본 시장에서는 절대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고 있지만 세계 시장에서는 입지가 적은 분야가 다수”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일본 기업이 자국민 중심의 일본향 제품 개발에 열을 올리고 소비자들 역시 자국 제품을 선호하는 현상이 고착화되면서 내수시장 고립을 자초했다는 의미다. 이 때문에 일본의 세계 시장 경쟁력은 내수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크게 뒤처진다. 일례로 일본 브랜드 TV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은 지난해 기준 3.8%에 그쳤다.

사용지역별 주파수에 맞는 제품을 사용하라는 안내문. / 사진=일본 파나소닉 홈페이지 캡처.
사용지역별 주파수에 맞는 제품을 사용하라는 안내문. / 사진=일본 파나소닉 홈페이지 캡처.



같은 나란데 전압 주파수는 두 개


현지에서도 이 같은 문제점을 지목한다. 요시카와 료조우 도쿄대학 모노즈쿠리경영연구센터 특임연구원은 과거 니혼게이자이 신문 기고에서 “일본 기업이 이렇게까지 추락한 것은 한마디로 21세기 패러다임 변화에 대처를 소홀히 한 것이 원인”이라며 “어떤 제품이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가를 철저히 발굴해 제품 개발이나 가격 설정 시 반영할 수 있어야 일본 제품이 새로운 시장에서 좋은 평가를 받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일본의 기이한 전압과 주파수 방식도 일본 가전 시장의 갈라파고스화를 부추기는 요인으로 지목된다. 한국은 세계적 추세에 맞춰 전압 220V에 주파수 60㎐를 공통적으로 쓴다. 반면 일본은 100V를 사용하고 지역에 따라 주파수도 양분돼있다. 일반적으로 시즈오카현 후지강과 니가타현 이토 주변을 경계로 동일본(관동지역)은 50㎐, 서일본(관서지역)은 60㎐를 사용한다.

이는 동일본과 서일본의 전력회사가 달라 동쪽은 50㎐를 사용하는 독일로부터 발전기를, 서쪽은 60㎐를 사용하는 미국으로부터 발전기를 수입해 전력망을 구축한 탓이다. 전 세계적으로 한 나라에서 두 가지 주파수를 쓰는 곳은 일본이 유일하다.

문제는 가전을 사용할 때 적합한 주파수에 맞는 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면 성능 저하나 제품 고장의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이 때문에 일본에서는 같은 회사의 동일한 모델도 동일본용과 서일본용으로 구분해 판매하고 있다. 제조사는 홈페이지 등을 통해 전기 주파수에 맞는 상품을 사용하라고 안내한다.

업계 관계자는 “해외 제조사 입장에서는 자국 브랜드 충성도가 높은 일본에서 굳이 지역별로 다른 전력계통에 맞추기까지 하며 제품을 생산해 경쟁하는 것보다는 성장성이 높은 미국·유럽·신흥국 등에 주력하는 게 더욱 효율적일 것”이라고 귀띔했다.

물론 주파수를 혼용해 사용할 수 있는 제품도 있다. 하지만 일본의 전압 자체가 100V로 낮다는 게 걸림돌이다. 업계 관계자는 “일본이 사용하는 전압 100V는 세계 대다수 국가가 사용하는 220V보다 송배전 과정에서 전기 손실이 25%가량 많고 전기의 질도 떨어진다”며 “고전압을 필요로 하는 최신 가전제품 트렌드와는 맞지 않다”고 말했다.
 

이한듬
이한듬 mumford@mt.co.kr  | twitter facebook

머니S 산업팀 기자입니다. 많은 제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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