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철현의 월요묵상] 최선에 홀리는 안목과 열정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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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현 고전문헌학자© 뉴스1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뉴스1

(서울=뉴스1) 배철현 고전문헌학자 = 최근 고 이건희 회장의 미술컬렉션 기증 소식을 들었다. 수집한 작품들 하나하나가 그의 안목과 열정이 창조해낸 기적이다. 안목은 대상을 눈으로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마음과 영혼을 울리는 작품과 조우하여 매료당하는 끌림이다. 그런 안목을 지닌 자는 오히려 눈을 감고 그 작품이 미세하게 뿜어내는 아름다운 소리에 본능적으로 반응한다. 열정은 자기-신뢰다. 정색을 하고 좌정하여, 자신에게 진실한 것만이 진정 진실하다고 확신하였을 것이다.

국내 굴지의 기업 삼성을 세계 최고의 IT기업으로 재창조한 이건희 회장에게 이 천재들의 예술작품들이 왜 중요했는가. 최고의 기술은 예술이기 때문이다. 아니 기술과 예술은 하나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자신에게 운명적으로 주어진 시간이 지나면 죽는다는 사실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다. 이 필멸성이 동물상태의 인간을, 영원을 희구하는 신적인 인간으로 탈바꿈시켰다.

구석기 시대 일부 소수의 '호모 사피엔스'들은 깊은 동굴로, 한 손엔 횃불을, 다른 한 손엔 목탄을 들고 들어가 자신들이 낮에 관찰하여 마음속에 담았던 거대한 야생황소를 그렸다. 생존이 힘든 빙하시대에 어머님의 자궁과 같은 깊은 동굴 안으로 들어가 그림을 그리면서 현생인류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가 시작됐다.

인류의 과학, 특히 의학의 시조인 히포크라테스(기원전 460-377)는 철학자였다. 그는 마라톤 전쟁, 살라미스 해전, 그리고 펠로폰네소스 전쟁을 치루면서, 수많은 사람이 전쟁터에서 비참하게 죽은 것을 목격하였다. 히포크라테스는 부모로부터 의술을 배웠고, 그것을 처음으로 체계화하여, 의사가 되려는 학도들을 위한 '교본'을 만들었다. 전쟁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을 치료하면서 시간의 시급함과 응급처치의 중요성을 실감했기 때문이다. 그의 의학 교본에 등장하는 '격언집'(Aphorismi)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인생은 짧고 기술은 길다. 위기는 쏜살처럼 달아나고 경험은 위험하고 결정은 어렵다. 의사는 '자신에게 옳은 것'을 행동으로 옮기고 환자, 간호원들,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협력할 태세를 갖추어야 한다."

인생은 짧을 수밖에 없다. 모든 것을 삼켜버리며 심판을 하는 시간은 한 번도 멈춘 적이 없다. 강물이 흘러가듯 항상 저만치 달아나버린다. 우주가 빅뱅으로 탄생한 137억년 전이나 이 글을 쓰기 시작한 1시간 전이나, 지금의 시점에서 보면 순간이다. 인생은 허약하고 불확실하고 불완전하다. 그런 삶을 연장하는 열쇠가 '기술'이다.

'기술'에 해당하는 그리스어는 '테크네'(techn?)다. '기술'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테크놀로지'(technology)의 어원이다. '테크네'는 '남들이 보기에는 전혀 상관이 없는 것들을 하나로 엮어 상상하지도 못한 유용한 것을 만들어내는 솜씨'다. 그것은 동치미 김치 담그는 어머니의 손맛이며 모네가 자기 정원을 보고 '수련'을 그린 실력이다. 세상은 온통 상상을 뛰어넘어 측정 불가능한 신비로 가득 차 있다. 지구와 동식물을 살리는 물은 수소 2개와 산소 하나의 절묘한 결합이며 정반대 것들, 즉 암수의 결합으로 창조된 모든 생물이 그 예들이다.

로마 시대의 서정시인 호라티우스는 히포크라테스의 문장을 라틴어로 이렇게 번역하였다. 'vita brevis ars longa.' 호라티우스는 그리스어 '테크네'를 라틴어 '아르스'로 번역하였다. 예술을 의미하는 영어단어 '아트'(art)의 어원이다. 우리는 흔히 이 문장을 '예술은 길다'라고 번역한다. 여기서 예술은 우리가 흔히 아는 예술을 포함한 모든 기술을 의미한다. 예술은 어떤 분야든지 최선의 경지를 지칭하는 용어다. 이건희 회장에게 '기술'은 당연히 '예술'이었을 것이다. 그 순간에 몰입하여 이질적인 것들에서 최고를 선택하여 표현하는 예술가는 그에게 무한한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이건희 컬렉션 중에 색채의 마술사라고 불리는 러시아 출신 프랑스 화가 마크 샤갈(1887-1985)의 '연인의 꽃다발' (1982)이란 작품이 있다. 그가 인생을 마감하는 95세 때 그린 그림이다. 프랑스 남부 니스 생폴드방스에서 화살처럼 지나가 버린 인생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삶에 가장 행복한 순간을 화폭에 담았다. 오른편 아래에 그가 어린 시절을 보냈던 벨라루스의 비테프스크의 풍광을 그렸다. 고향은 그에게 유대신앙, 신비주의, 추상주의, 그리고 색채의 대담함을 가르쳐주었다. 그 영혼의 고향을 아련한 고동색으로 그렸다.

왼편 아래는 샤갈의 첫사랑인 벨라와 누워 있는 자신을 그렸다. 오래전에 세상을 뜬 첫사랑, 벨라를 오른손으로 껴안는다. 아직도 애틋하게 보고 싶은 그의 감정을 표현하였다. 가운데에는 샤갈과 벨라의 사랑이 만들어 낸 꽃다발이 마치 분수처럼 뿜어져 올라간다. 하늘 끝도 담지 못한 숭고한 기쁨이다. 샤갈이 만들어낸 예술작품은 사랑이라는 신비한 기술이 만들어낸 자식이다. 이건희 회장은 우리에게 천재적인 화가들의 최선을 선물해 주었다. 21세기 문명의 기반인 최첨단 기술은 고독을 통한 그의 심오한 통찰이 만들어낸 예술이었다. 그의 안목과 열정을 앞으로 전시될 박물관에서 빨리 보고 싶다.

러시아 출신 프랑스 화가 마크 샤갈(1887-1985)의 '연인들의 꽃다발'© 뉴스1
러시아 출신 프랑스 화가 마크 샤갈(1887-1985)의 '연인들의 꽃다발'©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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