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월경상점'을 가다… "더이상 부끄러워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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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 여성들은 모두 월경을 겪었거나, 겪고 있거나, 겪을 예정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우리 사회 여성들은 모두 월경을 겪었거나, 겪고 있거나, 겪을 예정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생리대는 검은 봉투에 담아주세요”

모든 여성들이 살면서 겪었거나, 겪고 있거나, 혹은 겪을 예정인 월경은 ‘숨겨야 하는’ 존재였다. 생리용품을 들고 다닌다며 비난하는 사람은 없지만 가급적이면보이지 않도록 검은 봉투에 담아 다니는 게 익숙해졌다. 반면 최근에는 ‘생리현상’에서 유래한 생리로 에둘러 말하거나 그것조차 부끄러우면 ‘그날’이나 ‘마법’으로 말하던 월경 문화를 바꾸자는 움직임이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서울 한복판에 있는 ‘Period(월경)


서울 동작구 소재 월경상점의 외벽에는 빨간 글씨로 'Period'(월경)가 써있다. /사진=이지앤모어 제공
서울 동작구 소재 월경상점의 외벽에는 빨간 글씨로 'Period'(월경)가 써있다. /사진=이지앤모어 제공

세계적인 색채 연구소인 미국의 팬톤이 2020년 발표한 ‘올해의 색상’은 Period(월경)다. 성별을불문하고 모두가 월경에 대해 당당하게 얘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성에 비교적 개방적인 외국기업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 같겠지만 한국에도 당당하게 ‘Period’를 표시하고 월경에 대해 다양하고 당당한 선택권을제시한 가게가 있다. ‘월경상점’으로 불리는 이 가게는소셜 벤처기업인 ‘이지앤모어’가 서울시 동작구에 위치한 여성창업시설 ‘스페이스 살림’에 연 매장이다. 점차 변화하는 월경문화를 살펴보기 위해 방문한 기자에게도 이곳은 아직 낯선 공간이었다.

빨간 외벽의 월경상점은 어느 번화가가 아닌 주택이 밀집한 서울시 동작구 대방동에 자리하고 있었다. 월경상점은 외관부터 당당하게 빨간 글씨로 ‘Period'(월경)라고 써있다. 내부 벽도 마찬가지다.

‘빨강’을 모티프로 한이곳. ‘월경용품’을 취급하는 곳임을 알 수 있다.

기자의 예상보다 월경상점에 대한 관심도가 높았다. 김민지 월경상점 매니저는 “아무래도 SNS에 익숙하고 월경에 대한 관심이 많은 20‧30대 여성이 많이 찾지만 여자친구나 딸에게 선물하기 위해 방문하는남성, 40‧50대 여성손님도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월경상점이 위치한 스페이스 살림이 주택가에 위치해 있다 보니 주민들도 호기심에많이 들어온다”고 덧붙였다.


다회용 월경용품… "건강과 환경 두 마리 토끼 잡아요"


월경상점에는 월경 팬티와 주변 마트나 편의점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면 생리대가 전시돼 있다. /사진=한은진 기자
월경상점에는 월경 팬티와 주변 마트나 편의점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면 생리대가 전시돼 있다. /사진=한은진 기자

월경용품이라 하면 보편적으로 ‘일회용 생리대’를 떠올리지만 월경상점 안에는 일회용 생리대를 비롯해탐폰과 면 생리대, 국내에선 아직 생소한 월경컵과 월경컵 세척제 등 다양한 월경용품이 자리하고 있다. 마치 온갖 물건을 파는 월경 전문 ‘드럭스토어’에 온 느낌을 받았다.

상점 한 편에는 생리대와 월경팬티 등이 ‘펼쳐진 채’ 전시됐다. 다른곳에서 이런 용품들이 펼쳐진 걸 봤다면 괜히 부끄러워 눈길을 피했겠지만 월경상점에서만큼은 누구보다 편하게 월경용품을 이리저리 살펴보고 만져볼수 있었다.
일회용 생리대에 비해 비교적 접하기 어려웠던 면 생리대, 월경 팬티 등도 얼마든지 만져볼 수 있었다. 

표백을 하지않아 아이보리 색을 띠어 유독 친환경적인 느낌을 주는 면 생리대, 방수 기능이 있어 잘 때도 샐 걱정없이 두껍고 톡톡한 면 소재의 월경 팬티가 월경상점 한 편에 자리하고 있었다.

이중 면 생리대가 주목을 받은 건 빨래 후 재사용이 가능해 요즘 유행하는‘제로 웨이스트’ 아이템이기도 하고 ‘일회용 생리대 유해물질 논란’에서 자유롭기 때문이다. 월경상점에는 면 생리대와 월경 팬티 외에 또다른 친환경 월경용품도 있었다.


"신기한 것 투성이… 여자들도 '월경컵' 몰라요"


월경상점 벽면에는 한국에서 합법화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월경컵이 놓여있다. /사진=한은진 기자
월경상점 벽면에는 한국에서 합법화된 지 얼마 되지 않은 월경컵이 놓여있다. /사진=한은진 기자

월경상점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건 내부 빨간 벽면을 가득 채운60여개의 ‘월경컵(생리컵)’이었다. 투명한 색부터 파란색, 빨간색, 검정색 등 다양한 색과 모양의 월경컵이 진열돼 있다.

월경컵은 질 안에 삽입해 자궁 경부 아래 위치시켜 피를 받아내는 월경용품이다.반영구적으로 사용이 가능해 요즘 유행하는 ‘제로 웨이스트’ 아이템이자 의료용 실리콘으로 만들어져 유해물질 가능성이 비교적 낮다.

진열된 월경컵 아래에는 월경컵을 사용할 수 있도록 질 길이를 재는 모형이 있었다. 질 모양이 그대로 담긴 생김새에 조금 당황스러울 수도 있지만 누구나 편하게 몸에 대해 알 수 있도록 월경컵초보자를 위한 배려가 엿보였다.

질에 직접 손가락을 넣고 길이를 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김매니저는 “손가락에 젤을 바르거나 의료용 장갑을 낀다면 훨씬 쉽게 질 길이를 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스페이스 살림에 들렀다 우연히 월경상점을 방문했다는 30대 여성 허모씨는벽면을 가득 채운 월경컵들을 보면서 “인터넷에서만 접했지 실제로 이렇게 많이 진열된 모습은처음 본다”며 놀라워했다. 

“얼마든지 직접 만져보라”는매니저의 말에 기자는 조심스럽게 월경컵을 만져봤다. 어떤 것은 유독 부드럽고 어떤 것은 비교적 딱딱했다. 한 월경컵은 유독 크기가 크거나 탄성이있었다.

김 매니저는 “사람마다 질의 길이나 근육, 라이프스타일이 다르기 때문에 다양한 월경컵이 출시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밑에 있는 질 모형에 손가락을 넣어 질 길이를 재는 법을알아보고 내 라이프스타일에 따라서 몸에 맞는 다양한 월경컵들을 얼마든지 선택해 쓸 수 있다”고 조언했다.

월경컵은 한국에서 판매가 합법화된 지 얼마되지 않아 아직은 우리 주변에서 생리대를 사듯 쉽게 구매하긴 어렵다.

김 매니저는 월경컵에 대해 “아무래도 한국에서 판매가 합법화된 지얼마 되지 않은 제품이고 ‘삽입’해서 써야 한다는 사실에거부감을 느끼는 여성이 많은 편”이라며 “하지만 월경컵을통해 여성들이 자신의 신체에 대해 좀 더 알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폭넓은 월경권을 가졌으면 좋겠다”고강조했다.



“폭넓은 연구 필요… 편하게 월경 얘기할 수 있어야”


월경상점 내부에는 펼쳐진 생리대들이 당당하게 진열돼 있다. /사진=한은진 기자
월경상점 내부에는 펼쳐진 생리대들이 당당하게 진열돼 있다. /사진=한은진 기자

김 매니저는 “월경상점은 우리 사회의 이 같은 인식을 바꿔서 언제든지월경을 생각하고 논의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월경에 대한 과학적인 연구가 폭넓게 이뤄져 더 많은 여성이 건강하게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면좋겠다고 밝혔다. 

지난 2017년 ‘생리대유해물질 파동’이 일어났을 때 일회용 생리대의 휘발성유기화합물(VOCs)이여성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려지지 않아 혼란이 일었다. 그는 이후에도 정혈과 생리대가 오랜 시간있을 때 몸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등에 대한 연구 결과가 마땅히 없었던 점을 꼬집었다.

그는 연구가 ‘월경 기간 동안 피를 흘리는 것’에만집중하면 안된다고 주장했다. 월경은 월경 전 배란 과정이나 월경전증후군(PMS) 등 모든 과정을 포괄하는 만큼 전체적인 과정에 대해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 매니저는 마지막으로 월경이 우리 일상에서 특별한 일이 아닌 ‘하나의일상적인 순환’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가 화장품 가게나 옷 가게에 가서 자유롭게 물건을 보고이야기하듯 새로 나온 ‘월경용품’을 구입해보고 얘기할 수있는 사회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당히 ‘월경’ 외쳐야”… 긍정적 교육 통한인식 개선 필요


월경상점을 통해 사회적 거리 좁히기에 나섰지만 아직도 어색해 하는 이들이 많다.인식이 부족한 탓이다. 2016년 한 여학생의 ‘깔창생리대’ 사건 이후 5년이 지났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터 놓고 월경을 논의하는 것조차쉽지 않다.

안현진 여성환경연대 활동가는 “생리현상에서 유래한 생리보다 월경이라는정확한 단어 사용을 통해 월경에 대한 인식 개선을 이뤄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공공기관이나 언론에서도 공식적으로 사용하는 ‘생리’보다 달마다 돌아오는 건강 사이클을 뜻하는 ‘월경’을 사용해야 한다”며용어 수정의 필요성을 지적했다.

안 활동가는 월경 교육에 대해서도 짚었다. 그는 “월경을 ‘임신에 실패해서 출혈하는 행위’로만 바라볼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몸에 대해 알 수 있는 긍정적인 행위로 교육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초경 시기에는 월경이 무엇인지, 청소년기에는 월경하는 몸의 권리와 함께 현재 사회가 월경을 터부시하는 문제를 교육하면서 여성의 권리를 놓치지않도록 해야 한다는 것.

안 활동가는 “우리 사회가 월경을 자유롭게 얘기하려면 공교육부터 시작된 월경과 몸에 대한정보들이 우리 사회에 잘 확산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한은진
한은진 lizhan96@mt.co.kr  | twitter facebook

안녕하세요. 머니S 한은진 기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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